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61화 (61/206)

기적의 IT 재벌 61화

“구글 검색엔진을 가져와 쓰겠다고?”

“200억 달러가 있으면 구글을 통째로 인수해도 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장담하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거면 다음을 인수할 때 쓴 돈에 20배라고.”

“역시 그렇죠?”

내 말을 곱씹던 신용화의 미간에 주름이 진다.

“타사의 검색엔진을 쓰면 포털을 합병한 의미가 없어지잖아. 포털이 아니라 포털 껍데기만 서비스하겠다는 거야?”

“그럼, 없던 기술을 뚝딱 하고 만들어 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구글은 지난 10년간 모아둔 데이터베이스와 기술력으로 돌아가는 포털입니다. 그걸 단기간에 잡을 수 있다는 건 오만입니다.”

“나도 알아, 안다고. 그래서 네게 의견을 물으러 온 거 아니냐.”

그는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더니,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든다.

“대표실에선 금연입니다.”

“한 대만 피우자. 답답해서 그래.”

기어코 불을 붙이려 하자, 내가 라이터를 빼앗아 버렸다.

“담배 태울 시간 없습니다. 지금부터 본론이니까 잘 새겨들으세요.”

준비해둔 백지에 펜을 놀린다.

단숨에 그려낸 건 현재 구글의 메인 페이지였다.

사실, 구글의 메인은 Google이라는 로고와 네모난 검색창이 전부였으니 그렸다고 하기도 뭐했다.

“신용화 씨, 포털은 검색엔진이 전부가 아닙니다. 구글처럼 검색창만 덩그러니 있는 포털도 있지만, 이건 왕도가 아닙니다.”

“구글이 왕도가 아니라니? 세계 원톱 포털인데.”

“적어도 아시아권에선 아니란 이야깁니다. 한국을 예로 들어 보죠.”

하얀 백지 위에 국내 1위 포털인 NEVER의 모습이 슥슥 그려진다.

대강의 포인트만 잡아낸 스케치였다.

“정보 검색을 위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뉴스나 날씨, 증권 등의 포괄적인 정보를 얻고자 들어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긴 하지. 포털에 접속하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뉴스니까.”

“그 외에 만화나 음악, 소설 따위의 웹 콘텐츠를 보고파서 접속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럼, 부수적인 웹 콘텐츠에 올인하자? 그건 좀 리스크가 있어 보이는데.”

얘는 또 뭔 올인이야. 도박 중독자세요?

“올인이 아닙니다. 각자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겁니다. 구글이 검색엔진은 최고일지 몰라도 국가별 맞춤 서비스가 부족하니까, 그걸 트와일라잇이 채워주면 되는 겁니다.”

“호오. 이론상은 괜찮아 보이는데.”

지금까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신용화의 귀가 쫑긋해진다.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야후와 야후 재팬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Bing을 가져와서 쓰고 있습니다.”

“그건 전혀 몰랐는데. 다들 검색엔진을 빌려서 쓰고 있었다니.”

“그뿐만 아닙니다. 일본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포털 점유율은 3%가 고작이지만, 같은 검색엔진을 쓰는 야후 재팬은 60%가 훌쩍 넘는 답니다.”

아직 1년 뒤긴 하지만 야후 재팬은 Bing을 버리고 구글 검색엔진으로 갈아타게 된다.

그 덕분에 구글이 일본 검색엔진의 99%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즉, 검색엔진도 중요하지만, 사용자를 잡아둘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거군.”

“이해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역시 강 대표야. 답답이들 데려다 백날 회의시켜봐야 이런 결과는 안 나온단 말이지.”

신용화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수첩에 뭔가를 적어댔다.

그러던 중 주문했던 커피가 들어온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커피를 한 입 머금는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티타임이 이어지는데.

“이 쿠키, 제법 맛있네요.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해 온 거라더니, 식감부터 확실히 다르다고 할까요.”

“그거 한정판이라 파리에서도 구하기 힘든 거다. 다음에 또 가져다줄까?”

속셈이 너무 뻔하다.

“쿠키만 택배로 부치시죠. 신용화 씨는 오지 말고.”

“쳇, 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놈.”

내가 쿠키를 음미하고 있을 동안에도 신용화는 끙끙거리며 생각을 정리하기 바빴다.

“기존 포털에서 있던 웹툰과 영상 콘텐츠를 전부 끌어오면 기본은 할 거 같고, 음원은 SG텔레콤의 멜온이 있으니 그대로 연결하게 하면…… 아, 잠깐.”

메모하던 그의 손이 멈춘다.

“아까 말했던 한국형 유튜브. 그건 뭐야?”

“아아, 그거요.”

까먹은 줄 알았는데, 용케 기억하고 있었네.

난 노트북을 그에게 건낸다.

스크린엔 동영상 프로그램인 다음 팟튜브가 실행되고 있었다.

“다음 팟튜브? 유튜브 비슷한 건가.”

“단순히 영상을 게시하고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방송자와 시청자 간의 실시간 소통을 가능케 만들어 주죠.”

“아하, 그래서 쌍방향이라고 했구나.”

“쉽게 예를 들자면, TV를 보던 시청자가 댓글을 달고 방송 중인 연예인들이 직접 답을 해주는 형식이죠. 국내엔 파프리카TV라고 비슷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그럼, 거길 인수하는 게 빠르지 않아? 우린 시간이 촉박하잖아.”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수할 필요까진 없고 나중에 흡수하면 됩니다. 신용화 씨가 이쪽 사업에 뛰어들면 파프리카TV는 자연스럽게 망해버릴 테니까요.”

“어째서? 아, 잠깐. 알 것도 같다.”

그는 펜을 톡톡 두드리며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쪽은 망 사업자인 SG텔레콤을 끼고 하니까, 대규모 데이터 전송이 필요한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겠지.”

국내 동영상 서비스는 망 사용료 때문에 엄청난 광고를 깔아두거나, 화질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았고.

구글의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는 해외망이었기에 속도가 느렸다.

그런 상황에서 신용화가 인터넷 방송 사업에 뛰어들면 SG텔레콤의 기반을 써서 시장을 장악하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그거 말고도 SG텔레콤의 자원을 합법적으로 SG컴즈에 몰아 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죠. 지금은 신용화 씨가 SG텔레콤을 경영하고 있지만, 본진은 어디까지나 SG컴즈니까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쳐댄다.

“좋아. 아주 좋아. 이게 바로 묘수지. 거기다 SG텔레콤의 요금제를 결합해서 동영상 서비스 무료를 밀어주면 모바일에서도 효과만점이겠군.”

그는 흥분했는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말을 이었다.

“거기다 멜온의 뮤직비디오를 무제한으로 풀어두고, 연예인들을 직접 방송에 출연시키면……?”

“나쁘지 않네요.”

“그치?”

국내 최대 통신사와 최대 음원 서비스를 끼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과감한 전략이다.

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어찌 됐든, 통신 시장의 발달로 웹 콘텐츠가 문자에서 이미지로 바뀌었듯. 얼마 후면 이미지에서 영상으로 또 한 번 변혁이 생길 겁니다.”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라, 이 말이네.”

“최종 판단은 본인이 하셔야죠. 제가 대신 경영해 드릴 게 아니니까요.”

아직 커피가 남았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문은 여기까지. 슬슬 목이 아플 지경이거든요.”

“야, 강 대표. 조금만 더 얘기해보자. 응?”

대표실 밖까지 따라오려는 신용화를 손으로 막았다.

“이후부터는 추가 자문비를 받겠습니다. 제가 좀 비싼 몸인 건 아시죠?”

“으으…… 냉정한 자식.”

“비즈니스는 언제나 냉정해야 합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습니까? 자, 어서 움직이세요. 어서요.”

내가 억지로 밀어대자 구시렁거리며 짐을 챙기는 신용화.

내색은 안 했지만, 솔직히 놀랐다.

포털과 영상 서비스는 내가 단독으로 진행하기 버거워 툭 던져 준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디테일을 저만큼이나 채워 넣을 줄이야. 저런 게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이라는 걸까?

어찌 됐든, 포털과 영상 서비스 건은 내 손을 떠났다.

SG컴즈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전적으로 신용화 본인 손에 달린 것이다.

* * *

샌프란시스코 중심 시가지.

그중에서도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곳에 닉스 이노베이션의 사무실이 있다.

본디 미국 사업이 커지면 전초기지 개념으로 쓰려고 매입해 둔 곳이지만, 지금 당장은 용도가 없었기에 매형 혼자서 사무실을 관리하고 있다.

탁.

테이블에 찻잔이 놓인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커피잔이다. 아기천사 일러스트가 앙증맞다.

“누나, 땡큐. 어? 원두커피네?”

“요즘 핸드드립을 배우고 있거든. 한 번 평가해줘.”

살가운 목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내가 누나에게 소리를 지른 그날.

누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매형을 따라 미국행을 택했다.

그 덕분에 누나와 조금 서먹해지기도 했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에서 매형과 지내는 누나는 충분히 행복해 보였으니까.

“음, 향이 괜찮네. 블루마운틴이야?”

“어떻게 알았어?”

“요즘 커피에 빠져 살 거든.”

진한 커피향을 맡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입에 커피를 달고 산다.

내가 향만 맡고 커피잔을 내려놓자.

“맛은 안 봐?”

“식으면 마시려고.”

“지금 마셔봐 온도 딱 맞춰 뒀으니까.”

음? 커피라면 믹스밖에 모르던 누나가 핸드드립을 내준 것도 놀라운데 온도까지 조절해뒀다고?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커피잔을 든다.

입술을 스쳐 혀로 넘어오는 암갈색 액체.

배전도가 적당해 쓰지도, 시지도 않은, 균형 잡힌 맛이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특색은 없지만, 완성도는 높다고나 할까.

“좋네.”

“진짜? 진짜야?”

“어.”

단답형 평가임에도 누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방정 떨지 마. 믹스커피 물도 못 맞추던 것치곤 제법이라는 말이었으니까.”

내가 뒤늦게 툴툴거렸지만, 누나는 이미 알아챘을 거다. 내가 퍽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핸드드립은 어디서 배운 거야?”

“요 앞에 가게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거…….”

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말은 새어 나간 뒤다. 놀란 누나가 내 눈치를 본다.

“현우야, 미안. 미국까지 왔는데…… 나 정말 바보 같지?”

“사과할 필요 없어. 누나가 뭘 하든 이제 신경 안 쓰기로 했으니까.”

무심한 척 커피를 마셨지만, 이상하게 커피의 쓴맛이 강해진 거 같다.

젠장. 누가 샷이라도 추가했나.

“저. 저기 그래서 말인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뭔데.”

“나, 작은 카페 하나 차리고 싶은데…….”

“나쁘지 않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속으론 ‘이거다!’라고 소리쳤다.

누구 아래에서 일하는 거보단 개인 사업을 하는 게 백배 천배 나은 일이지.

생각해둔 규모는 있어? 위치는? 로스터리로? 아니면 테이크아웃? 차라리 시작은 유명 프랜차이즈로 하는 게 어때?

따위의 질문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목구멍 앞에서 가까스로 막아냈다.

내가 야단법석 떨어 대는 거보다, 누나가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게 옮은 일이었으니까.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줘. 나도 커피 좋아하니까 누나가 카페를 운영하면 좋지.”

“지, 진짜야?”

“물론. 동생 잘 만났다고 생각해.”

“현우야 고마워. 진짜, 진짜 고마워. 이번만 도와주면 다음부터는 나 혼자 힘으로 해 볼게.”

누나는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더니 내 목을 끌어안고 뺨에 뽀뽀까지 해댄다.

“우리 사랑하는 동생님. 누나가 더 잘할게.”

“아, 진짜 숨 막히게 왜 이래.”

“헤헤, 누나가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일단 좀 떨어질래? 징그럽거든.”

그러던 중. 사무실 문이 열린다.

비에 홀딱 젖은 매형의 등장이었다.

“어? 현우, 네가 웬일이냐? 또 무슨…….”

매형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누나가 뛰어들어 매형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어 댔으니까.

“준오 씨. 현우가 카페 차리는 거 도와준대요.”

“잘됐네요. 역시 말하는 게 낫다고 했죠?”

“그러니까요. 제가 동생 하난 잘 뒀다니까요.”

누나는 매형을 붙잡고 한참을 뱅글뱅글 돌더니.

“아, 잠시 나갔다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곤 뛰쳐나가 버렸다.

수십억대 오피스텔도 마다하던 사람이 카페 하나 열어준다는 건 저리도 좋을까?

누나가 열어두고 나간 문을 매형이 닫았다.

“미국엔 언제 왔어, 연락도 없이.”

“언제는 제가 연락하고 왔나요.”

매형은 비에 젖은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

“하긴, 네가 올 때가 됐지 싶더라.”

“뭐가요?”

“항상 사고 치면 내게 오잖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온다.

“한국 쪽 뉴스가 장난 아니더라?”

“무슨 뉴스요?”

휴대폰을 꺼내든 매형이 포털을 검색한다.

“2위 포털과 3위 포털의 합병. NEVER의 대항마 출격. 기자들이 빨아주는 제목 하나는 기차게 뽑는다니까.”

“으으…….”

“아, 이것도 멋지네. 재벌과 천재, 두 신성이 IT 업계의 신화를 다시 쓰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제목이 연이어 튀어나온다.

왜 부끄러움은 옆에서 듣고 있는 내 몫인 걸까.

“더 불러줘? 국내 토종 포털의 해외진출. 일본 게섯거라. 음…… 게섯거라 보다 일본, 나 떨고 있니? 이게 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결국, 참지 못하고 매형의 검색을 저지하고 나선다.

“왜 그래? 더 멋진 거도 있던데.”

“듣기 힘드니까 제발 그만해 주세요.”

“너희가 일부러 뿌린 거 아냐? 떡밥은 네가 만들었겠고, 기자들 움직인 건 SG쪽에서 했겠네. 안 봐도 비디오지.”

미국에 있는 사람이 국내 흐름을 훤히 다 알고 있다. 역시 클래스는 어디 안 간다.

난 커피잔을 옆으로 치우곤 서류 두 뭉치를 내려 둔다.

“다 알고 계시다니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또 골치 아픈 거 들고 왔구만. 뭔데?”

“이번에 SG컴즈와 다음 합병에 관한 서류입니다. 대략적인 주가 흐름 예상도도 같이 첨부했고요. 그리고…….”

서류를 대충 훑던 매형이 내 말을 가로막는다.

“잠깐. 네가 뭐 하려는 지 맞춰 볼까?”

“해보시죠.”

“굳이 다음이 없어도 닉스 챗에 검색 기능을 넣는 건 문제없잖아.”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신용화와 손을 잡고 다음까지 합병한다? 거기다 왜 이런 기자회견까지 했을까? 이거 이상하단 말이지. 네가 쓸모없는 일을 하는 놈은 절대 아닌데.”

날카로운 눈빛이 내게로 향한다. 난 슬쩍 시선을 피했다.

“보나 마나 다른 꿍꿍이가 있어. 이렇게 대놓고 주가 띄우려는 걸 보니…… 아하, 알겠다.”

매형은 묘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잇는다.

“포털의 합병은 한 방을 위한 발사대구나. 그치? SG컴즈를 띄워서 돈을 땡기고 다른데 투자하려는 거 같은데.”

“그, 글쎄요.”

“시치미 떼기는. 어지간한 건 네가 직접 하려 들 텐데, 꼭 돈을 써서 인수하려는 거 보면. 능력만으로 커버가 안 되는 곳에 들어가려는 거 같은데…….”

그러곤 툭 던지는 한 마디.

“혹시 중국에 투자할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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