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60화
“인수할 기업은 양대 포털 중 하나인, 다음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다음과 닉스가 합병하는 겁니까. 아니면 다음이 SG텔레콤이나 SG컴즈에 인수되는 겁니까?”
“세이트와 다음 중 어느 포털이 남는 건가요. 역시 다음이 남고 세이트가 합병되겠죠?”
“지분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빗발치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잠시 기다리자, 자연스럽게 소란은 잦아든다.
“기삿거리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말할 동안은 질문을 접어두시고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산발적인 웅성거림이 사라진다. 회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우선, 다음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인 김한석 대표님의 지분은 SG텔레콤이 전량 인수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 탓인지 기자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눈치다.
“닉스는 다른 루트로 다음의 지분 14.9%와 SG컴즈의 지분 12.8%를 매입했습니다. 이로써 저희 두 업체는 앞으로 소셜-포털-메신저의 연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건 준비된 영상을 보시죠.”
내가 손을 딱, 하고 튕기자 기자회견장의 조명이 일순간 꺼진다.
이어서 중앙 분수에 빔 프로젝터가 쏘아진다.
[SG Com’s×Nix soft]
화면이 전환되고.
먼저 나타난 것은 닉스 챗과 세이트온이었다.
두 개의 메신저는 서로 원을 그리며 합쳐졌고, 종국엔 세이트온이 사라지고 닉스 챗만 남게 된다.
“역시 세이트온과 닉스 챗을 합칠 생각이었구나.”
“채용과 상금 이슈로 닉스 챗 PC의 점유율이 3위까지 올랐던데,”
“1위인 세이트온과 3위인 닉스 챗이 합치면 국내 메신저 시장은 단숨에 먹어치우겠군.”
서서히 닉스 챗의 모습은 사라졌고.
이어서 현 2위 포털인 다음과 3위 포털인 세이트의 메인화면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번 역시 두 포털이 하나로 합쳐졌는데, 결과물은 아예 새로운 디자인으로 탈바꿈한 포털이었다.
“오오! 저건 닉스 디자인이야.”
“강현우 대표가 직접 포털 메인을 디자인했구나.”
“2위와 3위가 합치고 디자인까지 전면 뜯어고치면 NEVER도 긴장할 수밖에 없겠는데.”
“에이, 세이트와 다음을 합쳐봐야 점유율은 20%도 안돼. NEVER는 국내 시장의 80%를 먹고 있다고. 저래 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아까의 메신저 통합보다 관심은 더 뜨거웠다.
단순히 하나로 통합될 거로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새로운 포털의 모습이 나타났으니까.
다시 조명이 켜지고.
기자들이 일제히 단상을 쳐다본다.
다들, 내 입이 열리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에서 보셨듯, 닉스와 SG컴즈는 단순히 기술 협업 관계가 아니라, 플랫폼 자체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닉스 챗은 세이트온의 사용자를 공유할 것이며.”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잇는다.
“닉스 챗에는 포털 기능이 더해질 겁니다. 전 세계 닉스 챗 이용자 3,200만 명과 더불어, 세이트온의 1,000만 명이 검색 기능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플래시가 빗발친다.
“질문 있습니다!”
“검색 기능은 언제부터 가능한가요?”
“강현우 대표님! 질문 좀 받아주세요!”
참아왔던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나와 신용화는 묵묵히 무대 뒤편으로 빠져나갔다.
* * *
다음의 경영권을 쥐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니, 벌써 끝나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기자회견 전부터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였으니까.
과반의 지분을 확보한 나와 신용화는 즉시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고, 다음과 SG컴즈의 합병을 밀어붙였다.
다음은 이미 포털 1위인 NEVER와는 많은 격차가 벌어져 있었고, 그 상황이 굳어진 상태였기에 다른 주주들도 이번 합병 건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기존의 대표이사가 주식 전량을 매각하고 사임했기에, 그 자리에는 신용화가 앉게 됐다.
그는 대표이사로 취임함과 동시에 기존의 임원들 목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이른 새벽에 결정 난 일이었기에 임원들은 영문도 모르고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들의 빈자리는 자신이 예전, SG컴즈에서부터 데리고 있던 측근들이 차지하게 됐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새로운 포털의 이름은 트와일라잇으로 결정됐다.
앞으로 한 달의 유예 기간이 지나면 다음과 세이트는 문을 닫게 된다. 기존 URL로 접속하면 자동으로 트와일라잇으로 연결될 것이다.
사실, 지금의 트와일라잇은 거창하게 홍보만 했을 뿐, 알맹이는 바뀐 게 없었다.
그저 메인과 전체적인 형태만 내가 디자인해 주고 알맹이는 기존의 세이트와 같았으니까.
남은 한 달의 준비 기간 동안, 새로운 포털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전적으로 신용화의 능력에 달린 셈이다.
* * *
[다음과 세이트의 합병. NEVER의 대항마가 될 것인가.]
[SG텔레콤의 신용화 상무 “닉스와 IT분야 협업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것. 그 신호탄은 다음 인수.”]
[닉스와 SG텔레콤의 시너지는? 두 회사의 협업에 대한 기대로 주가 연일 상승세.]
위와 같은 뉴스가 경제지 1면과 포털을 휩쓸었다.
그 덕분인지 닉스의 채용 이슈와 상금 1,000만 달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역시 짜게 식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턴 디자이너들이 매일같이 새로운 이모티콘을 찍어서 올린 탓에, 해외 사용자들에겐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국내의 반응이 좀 아쉽게 됐지만, 상금 1,000만 달러도 SG텔레콤에서 전액 지원해준다 했으니. 닉스로서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끄으-”
헤드셋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쭉 켠다.
그나마 요즘은 몸이 덜 피곤하다.
매일같이 김해공항으로 날아가는 생활 대신, 화상통화로 보고를 받았기에 조금 여유가 생긴 탓이다.
시계를 흘긋 쳐다본다.
오전 10시 10분.
벌써 오전 회의가 시작됐을 시간이다.
난 외투를 집어 들고 빠르게 회의실로 향했다.
“서버와 회선은 SG 측에서 적극적으로 푸쉬해 주고 있어요. 덕분에 닉스 서클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보다 접속 속도가 월등히 빠릅니다.”
서진서의 보고에 난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럼, 기태 씨.”
“예, 대표님.”
“이모티콘 쪽은 어떻게 됐나요.”
“어제까지 최종 20명이 남았고 앞으로 2주 후에 우승자가 나올 거 같습니다.”
배기태가 이모티콘이 인쇄된 서류를 내게 가져다준다.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이모티콘의 퀼리티는 수준급이었다. 역시 돈의 힘은 위대하다는 건가.
“분명 우리 인턴 디자이너들 말고, 대리로 출품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우승자 나오기 전에 꼭 체크하세요. 보통 네티즌들이 먼저 냄새를 맡으니까 그쪽부터 모니터링하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은 시선을 개발 팀장인 배기수에게 넘긴다.
“개발 쪽은 어때요? 닉스 챗 PC판에 버그는 좀 나오던가요?”
“놀랍게도 단 하나의 버그도 없었습니다.”
“와우, 아예 없다고요?”
배기수는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고 답했다
“예, 베타 버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함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의 닉스 소프트는 개발 환경이 어떻기에 이런 완성도가 나올 수 있는 거죠? 거긴 한국처럼 개발 일정이 빡빡하지도 않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아, 대표님 오해는 마세요. 닉스가 빡빡하다는 게 아닙니다. 다른 IT 업체들이 그렇다는 거죠.”
음, 미국 쪽은 브릭의 당근과 스칼릿의 채찍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보군.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는데, 회의실 문이 삐죽 열린다.
히쭉 웃으며 들어오는 사내와 수행원 하나.
SG텔레콤의 신용화였다.
그의 양손에는 과일과 간식이 가득 들려 있었다.
“또 왔습니까?”
내가 시큰둥하게 말했음에도 그는 웃음기를 거두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뭐 그리 쌀쌀맞게 그래?”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요?”
“어떤 사이긴, 믿음직한 파트너 사이지.”
그날 이후로 신용화는 사람이 백팔십도 바뀐 거처럼 내게 들러붙어 왔다.
대부분 업무에 관한 조언을 바라고 온 거였지만 말이다.
“제가 좀 바쁘니까 회의가 끝난 다음에 오시겠습니까?”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야?”
“당연하죠. 닉스 내부 회의인데요. 외부인은 신속히 퇴장해 주시죠.”
“상금을 대는 물주로서 회의에 참석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요, 여러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자, 쿠키 좀 드시고 하세요. 이거, 프랑스에서 직배송해 온 겁니다. 한 번 맛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이젠 능글능글하기까지 하다.
팀장들은 상대가 재벌 아들인지라 어쩌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후우, 회의는 오후에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내가 서류를 챙겨 회의실을 나서자, 신용화도 쪼르르 따라 걸어온다.
“칼같이 잘라 버리네.”
“누구 때문에 그렇죠.”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신용화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안으로 들어온다.
“새로운 포털을 준비하려면 한창 바쁘실 텐데, 이런 곳에서 낭비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았다.
그러곤 내선 번호를 누르더니.
“여기 아메리카노 2잔 가져다주세요. 한 잔은 샷 2잔 추가해주시고 다른 한잔은 반 샷만 추가해주세요.”
“신용화 씨!”
“왜? 반 샷 아냐? 샷 하나 전부 넣어 달라고 할까?”
“그게 아니잖습니까.”
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원하는 게 뭡니까?”
“강 대표의 머리.”
“아후, 진짜. 포털은 알아서 진행하라고 했잖습니까. 디자인은 이미 끝낸 거로 아는데요.”
내가 열을 내든 말든 그는 가져온 쿠키 하나를 집어 씹어 먹는다.
그의 입에서 나는 오독오독 소리가 한 방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SG컴즈에서도 포털 문제로 매일같이 회의는 진행하고 있어.”
“그럼, 거기 참석을 하셔야죠. 여기 와서 쿠키나 까먹고 있을 게 아니라요.”
“범인들을 모아서 회의해 봐야 답은 안 나와. 차라리 여기서 농성하며 네 의견을 듣는 게 낫지.”
아주 작정을 하셨구만.
이렇게 나오신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지.
“좋습니다. 제가 자문을 해드릴 테니. 조건이 있어요.”
“이렇게 나와야 강현우지.”
그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잡는다.
“뭔데. 말만 해 뭐든 들어준다.”
“국내에 애플폰을 들여올 때, 기깃값의 50%를 SG텔레콤에서 보조금으로 뿌려주시죠. 그럼 제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음…….”
애플폰4의 국내 출시가는 899,000원으로 예정돼 있다.
여기서 통신사와 제조사가 일정 부분을 판매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대리점에 지급하게 된다.
하지만 애플폰은 제조사에서 지원해주는 보조금이 없기에 모든 보조금을 통신사에서 내야 했다.
이건 절대 못 받겠지. 라고 생각하고 제안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좋아, 그 조건 콜이다.”
“예?”
“한다고. 보조금 팍팍 뿌려줄게. 닉스 챗 점유율이 올라가면 나도 손해는 아니니까.”
난 어이가 없어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진심입니까? 대당 45만 원이라고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겁니다.”
“45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손해는 SG텔레콤에서 보게 될 텐데.”
“엥? 2년 안에 실적 내는 게 목표 아니었습니까?”
“형식상이지만 닉스에 5,000억을 투자했는데 실적 걱정을 왜 하겠어. 적당히 유지만 하면 알아서 고공행진을 할 텐데. 난 딱 2년만 버티면 되는 거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내 표정을 읽었는지 신용화가 픽 웃는다.
“그리고 요금제로 장난 좀 치면 잃은 거 메꾸는 건 순식간이야. 국내 1위 통신사의 저력을 얕보지 말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열 받는다.
10년간 SG텔레콤에 VVIP였던 기억 때문이겠지.
“그보다, 빨리 아이디어나 풀어봐. 뭔가 포털을 살릴 만한 방도가 있을 거 아냐.”
“후, 좋습니다.”
난 테이블에 백지와 펜을 올려두고 말을 이었다.
“새로운 포털의 문제점은 뭔지 알아내셨습니까?”
“물론이지. 포털의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는 나무랄 데 없어.”
“당연하죠. 제가 했으니까요.”
그는 내 말은 간단히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인지도도 광고 한 번 퍼부으면 쉽게 끌어 올릴 수 있으니 패스. 남은 건 검색의 질, 이게 가장 문제야. 포털의 기본이자 본질이니까.”
“다음 쪽 검색엔진이 세이트보단 낫지 않나요?”
“맞아. 하지만 좀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어. DB가 모자란 이유도 있지만, NEVER처럼 딱딱 짚어주는 맥락이 없단 말이지. 난잡한 느낌도 들고.”
“구글과 비교하면 어때요?”
구글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NEVER는 지식인과 블로그 검색으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잘 하고 있다뿐이지. 구글에는 한참을 못 미쳐.”
“그럼 새로운 포털은 NEVER보다 사용자 데이터가 부족하고, 구글보다 검색엔진에서 밀린다는 거죠? 그럼 간단하네요.”
“답이 벌써 나왔어?”
신용화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린다.
“지금 NEVER를 이길 검색엔진은 구글밖에 없다면 구글을 사세요.”
“어휴. 그걸 말이라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구글의 시가총액은 200억 달러가 넘었으니까.
하지만 난 진심이다.
“구글을 자체를 사라는 게 아니라. 구글 검색엔진만 사서 쓰라는 겁니다. 검색은 검색을 잘 하는 녀석에게 맡기고 우리는 웹 콘텐츠로 승부를 걸죠.”
“웹 콘텐츠?”
“가칭. 한국형 쌍방향 유튜브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