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59화 (59/206)

기적의 IT 재벌 59화

“1000만 달러. 이번 디자이너 슈퍼스타K의 상금이죠.”

“그걸 나더러 내라고?”

“신용화 씨가 아니라 SG텔레콤이 내는 겁니다. 한국 디자인 산업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는 거죠. 닉스와 SG텔레콤의 연계를 알리는 뉴스거리도 될 테고요. 그림 딱 나오지 않나요?”

신용화는 똥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반대로 물어보자. 넌 그 휴지조각에 적힌 내용이 1,000만 달러의 가치를 한다고 생각해?”

“물론입니다. 이건 신용화 씨의 미래니까요.”

“말 장난치지 마.”

“이게 장난으로 보이세요?”

내가 정색해 보이자, 신용화는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려댄다.

“함정 같지만 일단 패를 한 번 보자고. 턱도 없는 소리면 바로 반품이다.”

“1,000만 달러 감사히 받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냅킨을 올려두자, 그는 잽싸게 가져가 훑어댄다.

“세이트를 다목적 포털이 아닌, 검색에 특화된 포털로 만든다? 이 정도면 SG컴즈 정도에서 가능한 일인데, 뭐 그리 대단한 내용이라고 바람을 잡은 거야?”

“국내용이면 그렇겠죠. 하지만 노리는 스케일이 세계급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급…….”

“SG그룹의 숙원이 내수용 기업이라는 딱지를 떼는 거 아닙니까? 그에 딱 맞는 사업인 거 같은데요.”

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하다 답한다.

“세계에서 먹힐 거라는 근거는?”

“제가 도와드리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난 휴대폰을 집어 들어 닉스 챗을 켠다. 그리고 한 쪽에 비어 있는 공간을 톡톡 두들긴다.

“여기서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게 하면 어떨까요? 추가로 채팅창에 검색 결과를 공유도 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당연히 결과를 보고 닉스 서클에도 집어넣을 수 있겠죠?”

“잠깐, 이거.”

그의 표정이 확 바뀐다.

지금까지는 얌전을 떨고 있었다면, 이젠 그딴 건 상관없다는 듯 내 휴대폰에 코를 박고 쳐다본다.

“닉스 챗 사용자가 어제부로 3,000만 명이 됐으니까, 하루에 1건만 검색해도 페이지뷰가 3,000만이 되겠죠.”

“메신저와 포털의 결합…….”

본디 이 건은 내가 단독으로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검색 포털은 이미 구글이 꽉 쥐고 있는 상황에서 닉스가 진입하자니 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러나 SG텔레콤의 자회사, SG컴즈는 이미 국내 포털 사이트를 가지고 있고, 그만한 자본력과 서버도 있다.

여기에 닉스가 연계만 해준다면 사이트가 글로벌 포털로 성장할 포텐셜은 충분하다.

“영미권은 구글을 제치기 힘들겠지만, 아시아 쪽은 아직 승산이 있습니다. 물론 신용화 씨의 능력 여하에 따라 결과물은 다르겠지만요.”

언제부턴지 그의 주먹이 꽉 쥐어 져 있었다.

나보다 먼저 소셜, 메신저, 포털의 결합으로 시장을 먹으려던 녀석이니 이게 어떤 제안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관심 없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 구글 검색을 넣는 게 저야 편하니까요.”

“자, 잠깐. 시간을 줘. 나도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까…….”

“그럼, 전화 한 통 마칠 때까지 답을 주시죠.”

난 말을 끝냄과 동시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세 번의 착신 음이 끝나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표님?

“아, 진서 씨. 아직 퇴근 안 하셨죠?”

-예. 아직요. 지금은 보내주신 초밥 세트 먹고 있어요. 대표님, 퇴근 시간 못 지켜서 죄송해요. 헤헤.

“지금은 일이 많으니 어쩔 수 없죠. 그보다, 아는 기자 있으면 기사 하나 실어 달라고 하세요.”

-지금 바로요?

“예, 긴급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떤 기사인가요?

“디자이너 슈퍼스타K의 상금 전액을 SG텔레콤에서 지원한다고요.”

수화기 너머에서 ‘예?’라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너머에서도 외마디 고함이 터져 나온다.

“야, 강현우!”

“왜 그러시죠, 신용화 전무님?”

“상의도 없이 무슨 기사를 긴급으로 내보낸다는 거야.”

“그럼, 그거 필요 없으시겠네요.”

내가 냅킨을 뺏으려 들자, 신용화는 급히 냅킨을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그러곤 당황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계획을 짜고 일을 진행 시켜야…….”

“그러니까 1000만 달러를 주겠다는 겁니까, 아니면 못 주겠다는 겁니까? 그것만 지금 말해주세요.”

“그게, 그러니까…….”

생각을 짜내려 해도 답이 있을 리 있나.

이미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봐버렸는데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 없었을 거다.

결국, 그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나온다.

“1000만 달러, 지원하는 거로…… 하지.”

“진서 씨, 들으셨죠? 바로 기사 실어 주세요.”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집어넣는다.

그사이 신용화는 냅킨을 다시 꺼내서 내용을 몇 번이나 훑고 있었다.

난 커피를 한 잔 더 시켜 마시며,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줬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내가 새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이었다.

“말이 안 돼.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뭐가 말이 안 됩니까?”

냅킨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프로젝트 S? 제2의 구글을 노린다는 사업계획은 코흘리개들도 할 법한 생각이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단순히 큰 틀만 보면 그랬다는 거다.”

신용화는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적시고 말을 이었다.

“이 냅킨에 적힌 내용처럼 현실성 있고 완성된 사업 계획을 만들려면…… 밤낮으로 IT분야만 연구하는 석박사? 아니지, 전 세계 IT흐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초월자는 돼야 가능해. 특히 닉스와 연동 부분을 읽곤……. 쪽팔리지만,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 이러니 네가 경영하는 닉스가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지.”

솔직히 놀랐다. 언제나 턱을 치켜들고 있던 그의 입에서 저런 극찬이 나올 줄이야.

그는 한참 동안 입을 우물거리더니, 패배한 장수 같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너와 같이 일하고 싶다. 허락해다오.”

어깨가 축 처진 녀석의 모습.

낯설고도 낯선 광경이다.

벼랑 끝 도박을 하면서도 꼿꼿하게 굴던, 그 재벌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향후 재벌가의 엘리트라 불릴 그가, 고작 단편적인 미래를 아는 나 따위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마음이 불편하다.

답답하고도 속이 탄다.

어째서?

사실 이유는 알고 있다.

한때,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나였으니까.

난 한참이나 생각하고 생각해서 입을 연다.

“신용화 씨, 이거 좀 실망인데요.”

“무슨…….”

“당신이 본 건, 냅킨에 한 장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벌써 싸움에서 패한 개 꼴을 하고 있다뇨.”

“…….”

“처음에 보여줬던 투지는 어디 갔습니까? 5,000억을 꼬라박고, 오성전자를 내친, 그 투지 말입니다! 당신, 이번 도박에 인생을 걸었다면서요!”

말문이 막혔는지 신용화는 멍하니 날 쳐다본다.

“본디 제가 진행하려 했던 사업은 닉스 챗을 필두로 메신저, 소셜, 포털, 미디어, 기타 모든 IT서비스를 단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동시키는 겁니다. 뭔지는 아시겠죠.”

“독점적 멀티 플랫폼.”

“맞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뜨자마자, 자연스럽게 닉스를 써서 뉴스와 미디어를 시청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게임과 만화, 도서, 음악을 즐기죠. 거기다 음성 비서를 써서 일정까지도 공유하게 할 겁니다. 그걸 한 기업에서 독점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제국이 완성된다. 닉스라는 이름의 제국이지.”

제국? 그런 건 생각 못 했는데. 재벌 아들이라 그런지 일반인과 사고 자체가 다르다.

신용화는 냉수를 억지로 목에 밀어 넣는다. 그러곤 말을 씹어뱉듯 말을 토했다.

“하나만 묻자. 포털도 닉스가 진행할 것이지. 왜 내게 넘겨주려 한 거지?”

“넘겨주려는 게 아니라, 알아서 키우라는 겁니다. 포털은 제게 계륵이거든요. 지금의 닉스가 포털 사업에 발을 담가봐야 먹을 수 있는 파이는 한정적입니다. 아직 자리가 안 잡힌 동남아 쪽이나, 모바일 의존도가 높은 일본이 한계겠죠.”

“포털은 한 국가에서만 성공해도 이익이 어마어마해.”

“그건 상대적인 겁니다. 전 세계에 먹거리가 널려 있는 닉스에겐, 고작 세계의 한 귀퉁이일 뿐이니까요.”

평소의 신용화였다면 ‘건방진 소릴 하는군.’ 같은 소리가 나왔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한참이 지나도록 입을 열지 못했다.

* * *

[SG텔레콤, 디자이너 슈퍼스타K의 상금 1000만 달러 지원하겠다.]

[SG텔레콤의 신용화 상무 “상금 지원은 처음부터 협의가 이루어진 사항.”]

[닉스와 SG텔레콤의 시너지는? 두 회사의 협업에 대한 기대로 주가 연일 상승세.]

밤사이 드문드문 보이던 뉴스는 날이 밝음과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닉스가 단독으로 1000만 달러 상금을 내걸었을 땐, 네티즌들끼리 상금이 제대로 지급되니 마니하고 싸워댔지만, SG텔레콤에서 상금을 지원한다는 뉴스와 동시에 논란은 거품처럼 사그라져 버렸다.

달라진 건 네티즌 반응만이 아니었다.

닉스에 부정적인 기사를 올려대던, 경제지들의 기사 방향도 유턴해 버렸다.

기존엔 고액의 상금 때문에 기업이 휘청거릴 거릴 수 있다든지, 상금을 철회해야 한다든지, 따위의 뇌내망상을 써대던 언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닉스를 찬양하는 기사를 써 올렸다.

지금 타이밍에 닉스를 깎아내리면 SG라는 대기업까지 같이 깎아내리는 것과 다름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처세라고 할까.

그로부터 열흘 후.

난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 유진 호텔에 와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란 것도 벌써 1시간째. 이젠 좀이 쑤실 지경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밖을 내다본다.

국내 최고의 호텔다운 웅장한 실내와 더불어 기품 있는 장식들이 멋스럽게 어울려 있다.

은은히 퍼지는 클래식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진짜 현악대가 연주 중이었고, 회장의 중앙엔 인공 분수까지 물을 퍼 올리는 중이다.

돈이 썩어 나는 녀석들만 이런 곳을 빌리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대표님, 입장시간 됐습니다.”

진행 직원을 따라 장내로 들어선다.

그와 동시에 일제히 플래시가 터져 나온다.

대부분 내 쪽이 아니라 반대편 대기실에서 나오는 신용화를 찍어대는 플래시였다.

진행자가 나와 신용화를 단상 중앙으로 안내한다.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중앙 단상에 나와 신용화가 마주하자 일제히 플래시가 터진다.

그리고 악수.

또 플래시가 터진다.

사진에 잘 나오려고 눈을 부릅떴더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다음부턴 선글라스라도 준비하든가 해야지.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신용화가 말을 걸어온다.

“이야, 강 대표 무대 체질인가 봐? 웃는 게 자연스러운데.”

당연한 말씀. 이건 10년간 다져온 영업용 미소다.

난 그대로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신용화 씨는 분발하셔야겠는데요. 입이 비틀려서 웃고 있잖습니까.”

“이게 최대한 노력한 거라고.”

우린 입꼬리에 쥐가 날 정도로 웃어 준 후 자리에 앉았다.

이후부터는 형식적인 발표가 이어진다.

“SG텔레콤과 닉스는 뉴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콘텐츠 분야 협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주력하던 통신은 물론이고, IT분야를 통해 전 세계를 향해 도전할 것입니다.”

신용화가 구구절절 내용을 읊어댄다.

난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며 떠다니는 먼지를 세고 있었다.

후에도 기자회견 방식은 연극처럼 진행됐다.

미리 지정된 기자들이 준비된 질문을 던지면, 신용화가 정해진 답을 내놓는다.

한참이나 질문과 답변을 이어가던 신용화가 마이크를 잡는다.

“질문은 여기까지 받겠습니다. 다음으로 저희 SG텔레콤과 파트너가 된 닉스의 강현우 대표가 깜짝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깜짝 발표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기자들의 손이 멈춘다.

두둥-

음악이 바뀌고, 내가 단상에 올라선다.

기대감에 눈을 빛내는 기자들.

내겐 이미 한 차례 특종을 터트린 전과가 있었기에 더 그런 것이리라.

이제부터 연극이 끝나고, 진짜 무대가 시작된다.

“이번 닉스와 SG텔레콤의 협업은 단순한 플랫폼 제휴가 아닙니다. 양사는 적극적인 IT 기술 개발에 나설 것이며, 뉴미디어 시대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발돋움할 것입니다.”

기대했던 기자들 눈빛에 실망의 기색이 스친다.

뭔가 사건이 하나 터질 줄 알았는데, 흔해 빠진 소리만 늘어놨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 신호탄을 알리기 위해, 닉스와 SG텔레콤은 기업을 공동으로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인수할 기업은 양대 포털 중 하나인,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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