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58화 (58/206)

기적의 IT 재벌 58화

닉스 챗 PC판은 출시 첫날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가칭, 디자이너 슈퍼스타K 덕분에 유명세를 치른 것도 있지만, 기존에 닉스 챗과 닉스 서클을 쓰던 사람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닉스 챗 PC판은 베타 버전임에도 출시 일주일 만에 1000만 명이 다운받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기록은 최단시간 1000만 다운로드를 넘긴 소프트웨어라는 기네스북에도 올라, 또 한 번 닉스의 이름이 포털 일면에는 박히는 사건이 됐다.

닉스의 발표를 촬영 왔던 케이블 방송사는 당일 시청률이 짭짤하게 나왔던지, 아예 디자이너 슈퍼스타K라는 이름으로 임시 프로그램을 편성을 해버렸다.

디자이너 슈퍼스타K는 네티즌들의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존하는 방송이 된 것이다.

불 꺼진 닉스 코리아 사무실.

오후 8시 이후엔 모두 퇴근한다는 원칙 탓에 사무실은 텅 비어 있다.

나 역시 평소라면 6시 전에 퇴근하지만, 오늘은 통화할 일이 겹치다 보니 조금 늦어 버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탕비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 나오고 있었다.

“음? 누가 불을 켜고 간 건가.”

별생각 없이 탕비실로 다가가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음 주까지 인턴들 이모티콘 출시 일정 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관심도가 높을지 몰라도 언제 식어버릴지 모르니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아무리 서둘러도 다음 주는 무리 아닐까요?”

“꼭 전부 완성 시켜서 내놓으란 법은 없어요. 최소 4개 정도만 선출시 시키고, 이어서 추가 출시 개념으로 보완하도록 하죠. 빨리 출시시킬수록 BEST 순위에 오르니까 유리하다고 귀띔해주면 더 좋겠죠?”

배기수와 서진서의 목소리다.

“그러다 디자인이 너무 어설프게 나오면 그것도 문제일 텐데…….”

이어서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도 넘어온다.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배기태였다.

“걱정하지 마. 우승만 하면 1,000만 달러를 준다는데, 나 같으면 약을 빨면서라도 밤새워서 완성 시킨다.”

“그럴까?”

“당연하지. 거액이 걸리면 인간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그거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설정 같은데.”

“기분 탓이야, 기분 탓.”

강제로 8시까지 퇴근하라고 해뒀더니, 탕비실에서 촛불을 켜고 회의하고 있을 줄이야.

들어갈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끼어 들어봐야 방해만 될 거 같았으니까.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했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 길에 심부름센터로 전화를 건다.

“닉스 코리아 사무실 아시죠? 예, 거기가 맞습니다. 잔치스시에서 초밥 대짜 하나랑 아메리카노 찐하게 해서 3개 가져다주세요. 예, 탕비실입니다. 빨리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마치고 창밖을 바라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왠지 감성적 느낌이 들어, 혼자 중얼거리게 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닉스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

그에 따라 조직은 비대해지고, 직원도 늘어났다.

회사를 경영하면 직원과는 단순히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사이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왠지 그들의 생계가 내 손에 걸려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만약, 내가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하다 한 방에 무너지면…… 저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요즘 들어 마음 편하게 주식 투자금으로 놀고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벌여둔 일이 얼만데, 그러긴 이미 늦었잖아.”

픽 웃으며 계단을 마저 내려간다.

늦은 시간임에도 주차장에는 많은 차가 주차돼 있다.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직원들의 차였다.

“이 시간까지 일을 시키는 기업이 문젠지, 아니면 법을 만든 정치인 놈들이 문젠지.”

혀를 차며 주차된 차에 올라타려는 바로 그때.

부르르 하고 휴대폰이이 울려댄다.

[재벌 아들내미]

큰 물고기라 그런지 떡밥을 뿌리고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반응이 온다.

신용화, 네가 그래 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

난 일부러 휴대폰이 한참 동안 울게 놔뒀다가 전화를 받았다.

“예, 강현웁니다.”

-강 대표님, 전화 받는 거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습니다.

이 녀석은 항상 존댓말로 시작했다가 반말로 끝난다.

“제가 요즘 바쁩니다. 뉴스도 안 보고 사세요?”

-건방 떨기는.

이거 봐.

“용무가 있어서 전화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전화로는 좀 그렇고.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

* * *

약속 장소는 사무실에서 5분 거리인 카페다.

커피 맛이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카페의 3층은 간이 격벽이 처져 있어, 시선을 피해 간단한 업무를 보기 알맞은 장소였다.

“반갑습니다, 신용화 씨. 딱 한 달 만이던가요?”

“정확히 한 달하고 이틀 됐지.”

커피잔을 입에 살짝 가져 댔다가 떼며 말하는 녀석.

평범한 대답과 행동이지만 재벌가 특유의 부티 같은 게 느껴진다.

저런 건 타고 나는 걸까, 아니면 지위가 만들어 주는 후광일까?

나 역시 커피를 한 번 홀짝이고 말했다.

“그간 고민이 많으셨나 봅니다. 얼굴이 말이 아니네요.”

녀석은 대답대신 입술을 실룩거린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특별한 일도 없이 제 얼굴을 보고 싶으셨던 건 아닐 테고.”

“당연하지.”

“그럼, 일전에 제시했던 제안에 답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자, 네가 요구했던 조건이다.”

테이블 위에 서류 한 장이 올라온다.

내용은 간결하고도 명료했다.

SG텔레콤이 애플폰을 국내에서 판매하겠다는 요청서였다.

“원본은 이미 사람을 시켜서 미국으로 보냈어. 내일쯤이면 결과가 나오겠지.”

“그럼 내일 만나자고 하시지, 왜 결과도 안 나온 지금 보자고 하신 겁니까.”

“결정 난 뒤, 네가 날 물 먹이면?”

난 그의 태도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를 그런 놈으로 보고 계셨습니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신용화의 눈빛이 불신에 쌓여있다.

예전 오마이투데이 입찰을 블러핑하고 직원 빼먹은 거 때문인가? 아니면 저번 만남에서 추가 조건을 내걸고 어깃장을 놔서? 어쩌면 매번 그의 성질을 긁어 댄 탓일지도 모르겠다.

“저를 못 믿으시면서 어떻게 같이 일을 하겠습니까.”

“넌 못 믿지만, 독점 메신저를 가진 닉스의 성장은 믿으니까.”

합리적인 답이군.

그는 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은 뛰어난 거 같다. 멘탈이 약한 게 흠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네 제안대로 SG텔레콤은 애플폰을 국내에 들여오기로 했다. 이제 물량만 확보되면 통신사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바로 출시 될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번째 서류를 내민다.

일전에 봤던, 이면계약 서류였다.

“자, 내가 조건을 클리어했으니 너도 계약서에 사인을 해줘야겠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을 텐데, 생각보다 빨리 결정을 내리셨군요.”

“그 힘든 조건을 내건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이거 때문에 오성전자와 SG텔레콤의 사이는 당분간 냉전 상태가 될 거다.”

“엄살도 심하십니다. 어차피 KT가 먼저 애플과 접촉했을 텐데, SG는 뒤늦게 합류한 모양새 아닙니까?”

내 말에 얼굴을 감싸 쥐는 신용화.

“넌 정부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KT와 재벌가인 SG가 같다고 생각해?”

“그런 관계는 이해득실에 따라 언제든 틀어지는 거 아닐까요.”

“이해득실을 따지면 더더욱 통신사와 제조사의 사이가 벌어져 봐야 좋을 게 없지. 내가 SG텔레콤을 정상적으로 경영할 생각이었으면 이번 같은 결정은 절대 내리지 않았을 거다.”

“우리, 쓸데없는 가정은 하지 맙시다. 지금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잖습니까.”

“쳇.”

신용화는 속이 타는지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곤 얼음까지 깨 먹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거래 조건에 변경사항을 넣고 싶다. 너에게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거야.”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죠.”

애매한 답변에 신용화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지다 펴진다.

“형식상 투자 형태를 띤 5000억은 그대로 무이자 대출로 가되. 이후에 추가될 투자는 정상적인 지분 투자 형태로 받아들여 달라는 조건이다.”

5000억이면 현금자산이 많은 SG텔레콤에서도 부담되는 금액이다. 그런데 추가로 더 투자하겠다고?

신용화가 오너 핏줄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운영권만 넘겨받은 처지일 텐데. 이게 가능한 소릴까?

그에게 조심스레 운을 뗀다.

“그럼, 닉스에 얼마를 더 투자하시려고 그럽니까?”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

신용화…… 미쳤냐?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시선을 외면하려는 듯 커피에 설탕을 집어넣는 척한다.

“혹시 이번엔 회삿돈이 아니라 개인 자금을 넣으려는 겁니까?”

돌아오는 답이 없다. 그럼 정답이라는 거겠지.

녀석, 진짜 급하긴 급한가 보다.

“그런 눈빛 하지 마라. 나도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무리라는 걸 알면서 이러는 거 보면, 뭔가 일이 생겼겠군요.”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한 부정.

“혹시, 그룹에 지분 문제라도 터졌습니까?”

커피를 휘젓던 숟가락이 멈춘다.

맞네, 맞아.

다른 일에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녀석이, 지분 문제만 나오면 표정이 무너진다.

여기서 더 후벼 파봐야 의만 상할 테고.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뭐, 좋습니다. 신용화 씨 집안 사정이 어떻던,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니까요. 투자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죠.”

“그래, 얼마나 투자를 받을 생각이지?”

“흠…….”

난 일부러 고민하는 척하면서 말을 꺼냈다.

“솔직히 더 투자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이미 5000억이 있는데.”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투자금을 더 모으려고 우회 상장을 준비 중이잖아. 넌 나를 바보로 아는 거냐?”

그는 상체를 앞으로 숙인다. 그러곤 시선으로 내 눈을 뚫어 버릴 생각이라도 한 듯 쳐다본다.

“네겐 어떨지 몰라도. 난 인생을 건 도박판에 뛰어들었어.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을 계속 떠볼 생각만 하는 건 너무 무례한 행동 아냐?”

녀석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그의 속내를 읽을 순 없다만, 결의가 가득 차 있다는 건 확실했다.

난 커피를 마시는 척하면서 시선을 내렸다

그곳엔 가지런히 서류 두 종이 놓여 있다.

하나는 SG텔레콤에서 5,000억을 무상으로 대출해 준다는 이면계약 서류고.

다른 하나는 오성전자를 등지고 애플폰을 국내로 들여오겠다는 확인서다.

이 서류들은 닉스에겐 이득을 주겠지만, 반대로 SG텔레콤에겐 엄청난 손해를 입힐 것들이다.

거기다 자신의 개인재산을 털어서까지 닉스에 투자하려 드는 걸 보면…….

신용화, 진짜 올인했구나.

겉으론 멀쩡한 척하고 있지만, 절박한 감정이 스멀스멀 넘어오는 게 느껴질 정도다.

녀석을 어쩔까?

지금의 신용화는 한계 직전이다.

다급하고도 다급한 나머지, 닉스라는 동아줄을 마지막으로 쥐어 보려고 발악하는 중이라는 거다.

그런 녀석을 적당히 도와주는 척하며 잡아먹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SG그룹의 핏줄인 녀석을 잘만 구슬려서 써먹을 수 있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 쪽까지는 내가 편하게 움직일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 묘한 감정이 몰려온다.

내가 한 사람의 미래를 손에 쥐고 저울질하고 있다니. 이래선 내가 욕하던 재벌, 위정자들과 무슨 차이란 말인가!

입술을 아프도록 깨문다. 매형의 말이 맞았다.

돈에 지배당하는 순간, 괴물이 되는 건 한순간이라더니. 지금의 내가 딱 그 꼴이었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한다.

그러곤 흔들리는 감정을 바로 잡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생각을 좀 오래했나요?”

“아니, 별로. 여기 커피 맛이 좋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조한지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닉스의 지분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그래, 최대한 많이 필요해.”

“죄송하지만 지금은 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거절의 말에 그의 미간이 팍 주름진다. 하지만 경솔하게 언행을 내뱉지는 않았다.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지금은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애플폰을 국내에 들여오는 공은 충분히 챙겨 드릴 생각입니다.”

“맨입으로 때울 생각은 아니겠지?”

대답 대신 테이블에 꽂혀 있던 냅킨을 한 장 뽑아 든다. 그러곤 볼펜으로 글을 죽죽 써 내려갔다.

사각사각.

볼펜 굴러가는 소리만 남고 실내는 고요하다.

신용화는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집중해서 냅킨을 바라본다.

그래봐야 글자가 깨알같이 작아서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냅킨 대부분이 글씨로 찬 후에야 난 쓰는 걸 멈췄다.

“이걸로 이번은 퉁 치는 거로 하죠.”

“그게 뭐기에 퉁 쳐?”

“SG텔레콤. 아니, 신용화 씨 미래를 위한 컨설팅입니다.”

“뭐?”

그는 냅킨을 내 손에서 뺏어 들다시피 하더니 제목부터 읽어 내려간다.

“프로젝트 S. 구글을 넘어설 세계적인…….”

그때, 그가 쥐고 있던 냅킨을 내가 다시 빼앗는다.

“어허. 컨설팅을 받으려면 보수를 주셔야죠.”

“준다고 할 땐 언제고. 갑자기 보수라니?”

“컨설팅해 준다고 했지 공짜라는 이야기는 안 했습니다만?”

난 일부러 그의 눈앞에서 냅킨을 팔랑팔랑하며 말했다.

“제가 듣기론 KG전자에서 맥킨지 컨설팅을 받는데, 매년 300억을 낸다더라고요.”

그게 어떻다는 거야? 라는 표정을 한 신용화가 냅킨을 뺏으려 든다.

물론 녀석보단 젊은 내가 더 재빠르다.

“후우- 후우- 젠장, 그래 얼마면 돼? 그 종이 쪼가리 얼마면 되냐고.”

“특별 할인이 적용된 컨설팅비는 1,000만 달러 되겠습니다.”

“그거, 설마……?”

응. 그 설마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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