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57화 (57/206)

기적의 IT 재벌 57화

닉스의 발표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중 가장 영향이 큰 곳은 인터넷 여론이었다.

본디 네티즌들에게 논란이 됐던 것은 닉스가 어떤 디자이너를, 얼마나 채용할 것이냐였지만 1000만 달러의 상금은 기존의 논쟁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1위. 1000만 달러

2위. 닉스 1000만 달러

3위. 1000만 달러 한국 돈

4위. 환율

……

10위 닉스 이모티콘

포털 실시간 검색어 10위는 모두 닉스가 휩쓸어 버렸다.

인터넷 모든 커뮤니티에는 닉스가 어떤 회사기에 1000만 달러를 상금으로 내걸 수 있으며, 닉스 챗이 뭘 하는 프로그램인지 묻는 게시글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예 포털의 1면에는 닉스를 소개했던 과거 기사가 중복으로 올라와 클릭을 유도하고 있을 정도였다.

국내도 국내지만, 진짜 이슈가 크게 터진 곳은 해외 쪽이었다.

닉스 챗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미국이나 유럽은 닉스의 이번 기행이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실사용자들은 어떤 이모티콘이 추가될 것인지와 더불어 PC 버전 닉스 챗에 관심이 쏠렸다.

강당에서 발표를 마치고 닉스 코리아 사무실로 돌아가자, 이미 기자들이 입구를 둘러싸고 있었다.

“왔다. 저기 저 사람이 강현우 대표야.”

“잡아! 잡아서 코멘트 따내!”

날 보고 우르르 몰려드는 기자들.

“닉스가 내 건 상금이 100억이 넘는다는데, 그 돈이 언제 지급되는 겁니까?”

“112명을 전원 채용한다는데 사실입니까? 그중에 얼마나 정직원이 되는 건가요?”

“강현우 대표님! 한 말씀만 해주시죠.”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개중엔 억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녀석도 있다.

난 손짓으로 그들을 한 발짝 떨어뜨렸다.

“필요한 답변은 할 테니까, 조금만 물러서 주세요. 너무 붙으면 사진 뽑기 힘들잖아요.”

내가 능숙하게 대처하자, 오히려 기자들이 당황하는 눈치다.

기껏해야 20대 중반인 새파란 놈이 자신들을 교통정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발표장에서 했던 말은 모두 지킵니다. 112명을 모두 인턴으로 채용할 것이며, 공정한 테스트를 거쳐 닉스의 정직원으로 전환시킬 예정입니다.”

“몇 명이나 정직원이 되나요?”

예상했던 질문이 날아들었다.

“정해진 숫자는 없습니다. 이번 이모티콘 테스트에서 내부 가이드라인을 넘는 사람은 전원 정직원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답변이 끝나자 일제히 질문이 쏟아진다.

“가이드라인을 공개할 수 있습니까?”

“100억이 넘는 상금은 어떤 의도로 기획된 겁니까?”

“1000만 달러 상금이 너무 과한 거 아니냐는 말이 많습니다. 여기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난 마지막 질문을 한 여기자를 지목해 말했다.

“방금 1000만 달러가 과하고 하셨습니까?”

“과하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금으로 1000만 달러가 아니라, 1000만 원을 걸었으면 기자님들이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그건…….”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을 쏟아댔지만 난 손을 내저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강 대표님, 조금만 더 답변해 주시죠!”

“닉스가 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단순한 홍보입니까, 아니면 더 큰 뭔가가 있는 건가요?”

“대표님!”

밀치고 들어오려는 기자들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지금까지의 발언과 더 자세한 내용은 30분 뒤, 닉스 서클에 공지될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방금 따낸 코멘트의 유통기한은 30분이라는 소리였다.

글머리에 [속보]나 [단독] 따위를 붙이려면 지금이라도 기사를 올려야 했기에 기자들이 바퀴벌레처럼 흩어진다.

다시 한산해진 로비.

덕분에 여유를 부리며 대표실까지 갈 수 있었다.

대표실까지의 복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잠시 후면 여긴 난리판이 될 거다.

보고하러 온 직원들과 쉼 없이 결려오는 인터폰, 거기다 기자들이 로비를 뚫고 올라올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전쟁 시작이려나.”

습관적으로 중얼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바탕화면에는 이번에 출시될 닉스 챗 PC판이 깔려 있다.

아직 사내에서만 돌아가는 알파 버전이지만 완성도는 여타 다른 메신저를 압살하는 수준이다.

사실, 이번 닉스 챗 PC판은 내가 다년간 메신저를 써오며 아쉬웠던 점을 보완한 녀석이다.

사용빈도가 낮은 기능은 상세 옵션으로 모두 몰아버리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본연의 기능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당장 수익을 낼 필요가 없었기에 구질구질한 광고나 부가기능이 없다는 게 깔끔함의 비결이었다.

만약, 내 의도대로 흘러서 닉스 챗 PC판이 확실히 자리를 잡는다면 차후 밀어닥칠 안드로이드에서의 경쟁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다.

PC든, 애플OS든, 메신저 싸움에는 사용자 숫자가 곧 경쟁력이니 말이다.

메신저를 다 둘러보곤 포털에 들어간다.

예상했듯, 1면부터 닉스에 대한 뉴스가 올라있다.

그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방금 내가 한 인터뷰였다.

[닉스의 강현우 대표. “상금 1,000만 달러, 과하지 않다.”]

얼마나 급했으면 기사 내용에는 오타가 그대로 올라왔을 정도다.

뉴스의 댓글에는 닉스가 어떤 회사인지부터 시작해, 1000만 달러를 지급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 글이 올라온다.

자칭 전문가들도 나타나, 기업 공개도 안 된 회사의 실적과 전망을 들먹이며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엉망인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를 펼치는 그들의 댓글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혀를 쯧 하고 차게 된다.

“탕수육을 부어 먹니, 찍어 먹니, 하는 거로도 싸우는 애들이니 어련하시겠어.”

다른 뉴스를 살펴보려는 차에, 휴대폰이 부르르 울린다.

발신지는 미국.

브라이언 브릭의 휴대폰 번호였다.

“오, 브릭. 어쩐 일이에요?”

-대형사고를 치곤 어쩐 일이라뇨. 여긴 보스가 한 발언 때문에 난리도 아니에요.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와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요.

“저처럼 미리 전화선을 빼놔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장애 접수 전화가 올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난 작게 웃은 뒤 말했다.

“반나절도 안 돼서 미국이 떠들썩할 정도면 성공한 작전이네요.”

-역시 작전이었군요. 이번 채용이 논란거리가 된 것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짜고 기획한 거 같은 냄새가 나는데요. 일부러 지금 타이밍에 터트린 거죠?

“제가 설계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 능력자는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닉스의 채용이 이슈화돼서 장작을 추가로 넣어줬을 뿐이에요.”

-그 장작, 참 비싸네요. 1000만 달러짜리 장작이라니.

“장작값이 비쌀수록 잘 타는 법이죠. 이번 이슈로 기세를 탄 닉스 챗이 PC에서도 원탑을 찍으면 남는 장사 아닐까요?”

-으아, 또 나왔어. 저 근거 없는 자신감.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은 자신 없어요. 기회가 왔길래 한 번 질러본 거니까요. 어찌 됐든, 닉스 챗 PC판 런칭을 잘 부탁드립니다.”

-베타 버전은 벌써 완성됐으니 내일이라도 문제없이 배포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특이사항 생기면 다시 전화해 주세요.”

전화를 끊으려는 데 다급한 목소리가 넘어온다.

-보스! 잠시만요.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왜 하필 타 모바일OS가 아니라 PC를 택한 거죠?

“음…….”

림의 블랙베리, 노키아의 심비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애플의 애플OS, 구글의 안드로이드.

지금은 모바일OS의 춘추전국시대다.

난립하는 모바일OS중, 애플폰의 애플OS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0% 남짓.

애플의 애플OS를 접수했다면, 상식적으로 다른 모바일OS로 진출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애플OS와 안드로이드를 제외한 타 모바일OS는 시장 경쟁에서 도태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물론 브릭에게는 이 사실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모바일OS는 역사가 짧습니다. 당장 어찌 될지도 모르는 플랫폼에 시간을 허비하는 거 보다, 탄탄한 PC 쪽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지나치게 과감한데요. 이러다 마이크로소프트 쪽에서 모바일용 메신저를 내놓으면 우리는 핀치에 몰릴 수도 있어요.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윈도 모바일은 망한다. 그것도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폭삭 망한다.

하지만 PC용 윈도즈와 오피스라는 무기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이 망한다는 건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리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보험 정도는 들어 두는 게 좋겠지.

“좋습니다, 브릭. 타 OS 지원을 위한 인력을 확보해 두세요. 진행은 상황보고 차차 하기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뚝.

지이잉-.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또 전화가 걸려온다.

이번 발신지는 독일이다.

닉스 챗과 닉스 서클 연동을 담당하다, 유럽지사 책임자로 발령낸 마이클이었다.

“유럽 쪽도 난리가 난 건가.”

이번에는 전화를 받지 않고, 닉스 챗으로 짤막한 답을 남긴 후 전원을 꺼버렸다.

다시 고요가 찾아온 대표실.

멍하니 천장을 보자,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닉스의 유명세에 똥줄이 타고 있을 사람.

SG그룹의 신용화였다.

“이만치 떡밥을 뿌렸으면,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됐는데.”

* * *

[닉스 코리아 총상금 100억 대의 디자이너 슈퍼스타K 실시. “심사위원은 전 세계의 닉스 사용자가 될 것.”]

뉴스를 본 신용화는 입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닉스가 유니콘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날아오르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기 때문.

그는 피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비벼 끄곤 창밖을 바라본다.

그곳엔 최근 몇 달 새 폭삭 늙어 버린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이리라.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실실 웃어대며 신경을 긁어 대던 녀석.

닉스의 대표이사 강현우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고 오라고? 젠장, 누군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줄 아나.”

그 누구보다 애플폰을 국내에 들여오고 싶어 한 것은 신용화 자신이었다.

하지만 SG텔레콤의 경영권을 쥐고 내부사정을 들여다보자, 그런 말은 쏙 들어가게 된다.

통신사 특성상 매출 대부분은 내수에서 발생한다.

서비스 가입자의 통화, 문자, 데이터 요금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통신사의 수익이지만, 진짜 알짜배기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단말기를 사면 부과하는 단말 할부금.

100만 원에 달하는 단말기를 24개월 할부 판매하는 대가로 받아 내는 이자 수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때문에 통신사는 높은 단말기 출고가를 원했으며, 제조사는 못 이기는 척 통신사의 요청을 들어주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기형적인 통신 시장에서 국내 1위 제조사인 오성전자와 척을 지는 건 꿀단지를 걷어차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대로 있어 봐야 답은 없어. SG텔레콤은 이미 국내 시장의 50%를 먹은 상태고, 여기서 더 점유율을 높이려 들면 정부에서 독과점 위반을 들이밀 거다.’

차선책으로 닉스 같은 투자처를 백방으로 알아보고도 다녔다.

하지만 닉스로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신용화에게 어쭙잖은 IT업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젠장, 어쩌면 좋냔 말이다.”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집무실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데, 인터폰이 찌르르 울린다.

발신자는 비서실4.

신용화가 수족으로 부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여보세요.”

-전무님, 큰일 났습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침착하게 말하세요.”

-그, 그게. 방금 SG오일 쪽에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SG오일이면 SG텔레콤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큰형이 자리를 옮긴 곳이다. 느낌이 안 좋다.

“무슨 일입니까.”

-신석호 전무님이 부사장으로 승진할 거란 소식입니다.

“확실한…… 정보 맞습니까?”

-SG오일뿐만 아니라 SG본사까지 크로스 체크한 정보입니다.

“후유…….”

반사적으로 깊은 한숨이 터졌다.

신용화가 관리하는 SG텔레콤에도 사장과 부사장은 있다.

하지만 그들의 권한은 제한적이었고. 중대한 결정은 SG그룹 오너일가가 도맡아서 진행했다.

쉽게 말해, SG그룹은 형식상으로만 전문 경영인 체제를 흉내 내고 있었다.

‘이번에 형님이 부사장 자리에 오르면 그 관례 자체가 무너지게 된다.’

오너일가가 전면으로 나선다는 건, 그룹의 승계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신호탄이다.

그리고 그 스타트를 끊은 건 회장 자리에 가장 가까운 첫째 형, 신석호였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변경사항 생기면 연락 주세요.”

-예, 전무님.

신용화는 담담하게 인터폰을 내려놨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어쩌지는 못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급히 휴대폰을 집어 든다.

연락처에서 찾을 이름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꼴통 강현우]

신용화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 인생에 마지막 도박을 이 녀석이랑 하게 될 줄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