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56화 (56/206)

기적의 IT 재벌 56화

[닉스 코리아, 인턴 디자이너 채용에 1,452명 몰려.]

일반 대중들에겐 이름도 생소한, 스타트업의 채용 뉴스가 포털 일면을 장식했다.

디자이너는 프리랜서가 많은 직종이었기에 1,452명이 몰렸다는 건 그리 대단한 소식은 아니다.

하지만 지원대상인 닉스 코리아는 설립일이 1년이 채 안 된 스타트업이라는 점.

게다가 지원자의 대부분이 커리어가 쟁쟁한 실력자들이었고, 지원 부문이 고작 인턴이라는 건 충분한 화젯거리가 됐다.

업계 관계자들이야, 닉스가 애플에 디자인을 제공할 정도의 영향력 있는 기업이고, 대표인 강현우의 디자인 능력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애플폰이 출시조차 되지 않은 한국의 대중들에겐, 닉스가 뭐 하는 회사인지조차 몰랐기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일이었다.

닉스의 인턴 채용 소식이 이슈화되고, 실시간 블라인드 테스트로 112명이 선발된 그날 밤.

닉스의 팀장들은 회사 근처 커피숍에 모여 야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표님도 참. 어떻게 하려고 일을 더 키우신대요?”

서진서의 말을 배기태가 받았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 이거 대표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잖습니까. 이번에 이슈된 걸 오히려 기회로 삼으시려나보죠.”

“일단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리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방송사까지 섭외하다니. 스케일을 너무 키우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네요.”

“사실 이번 기회로 닉스의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될 테니 그리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닐 거 같은데요. 거기다 생각보다 재미있을지도 몰라요. 흐흐.”

그 말에 듣고 있던 배기수가 버럭 화를 낸다.

“멍청아, 구경하는 제삼자로선 재미난 일이겠지만, 진행은 우리가 해야 한다고. 없던 시스템을 새로 넣어야 하는데……. 아후 죽겠다, 정말.”

배기수는 머리가 아픈지 안경을 벗어 놓곤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댄다.

그런 그에게 어깨동무하는 배기태.

“뭐, 그리 엄살이야. 지금 하던 프로젝트 잠시 내려놓고 진행하면 금방 하는 거잖아.”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네가, 참 부럽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서진서가 벌떡 일어난다.

“내일 바로 인턴들 집결 시킨다니까. 아침 일찍 출근하세요. 오늘 회의는 이걸로 끝. 그럼, 먼저 갑니다.”

서진서가 빠져나가자 배기수도 짐을 싸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쳐대는 배기태.

“야, 기수. 내가 재미난 정보 하나 가르쳐 줄까?”

“이미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사양하마.”

거절했음에도 배기태는 자기 할 말을 이었다.

“대표님이 이번에도 뭔가 준비하고 계신 거 같더라.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주 큰 거 한 방이래.”

“대표님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항상 깜짝 놀랄 만한 거 준비해오시잖아.”

“아냐 인마. 이번은 급이 다른 거래. 뭐라더라, 블록버스터급이라던가.”

“젠장, 난 지금 주어진 일만으로도 죽을 맛이라고.”

* * *

112명의 인턴 면접자가 뽑힌 다음 날.

포털의 뉴스란부터 정보가 뿌려지기 시작한다.

[닉스 코리아 지원자 1,452명 중 112명의 디자이너 최종 면접? 최종 합격? 추측성 보도 난무.]

[닉스 코리아 소속 익명의 제보자 “112명을 전원 채용하고자 한다.” 사실 여부는 미지수.]

[임직원 70명인 닉스 코리아, 112명의 디자이너 채용설의 진실은?]

닉스의 인턴 디자이너 채용에 관한 소식은 더 이상 디자인 업계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

평소 디자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일반인은 물론이고,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항상 등장하는 악성 댓글 전사들까지 참전해서 일이 들불처럼 커지게 된 것이다.

-저기서 몇 명 뽑는데 1,452명 몰린 것임?

└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00명이라고 했으니 10명 이상은 채용할 듯.

└그럼 145:1이네? 무슨 대기업 정직원 채용도 아니고 인턴에 저리 몰린다냐.

└백수 디자이너들이 많겠지. 듣보잡 회사 들어가려고 1,400명이나 몰린 거 보면 말이다.

└너 같은 백수 놈이나 듣보잡이라고 하는 거고. 애플에 디자인 팔아먹는 회산데 디자이너들이 안 몰리겠음?

-애플에서도 닉스 디자인 한물갔다던데.

└어떤 무개념이 그래? 지금 애플폰4 디자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사진) 눈깔 장식?

└예전 디자인이 더 낫다. 이질감이 너무 심해.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뇌를 안 거치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거냐?

-방금 애플폰4 실물 보고 왔는데. 디자인이 잘 뽑히긴 했더라.

└그래 봐야 중소기업인데 채용해봐야 10명이나 하려나.

└규모는 작지만, 자금력은 좋을 듯. 애플폰 한 대 팔릴 때마다 닉스에서 로열티 가져간단다. 699달러짜리 대당 1달러만 먹어도 지금까지 2000만대 팔렸으니까 2000만 달러는 벌었겠지.

└오늘 환율 1170원으로 계산하면 234억이네. 닉스 사장 20대던데 인생 폈네, 폈어. 젊고 돈 많고 키도 크던데 완전 부럽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분명 빠지는 게 하나는 있겠지. 가령…….

└가령?

└고추가 작다거나.

└너 이야기 하는 거지?

대표실에서 댓글을 지켜보는데, 저절로 피식하는 웃음이 새 나오게 한다.

인턴을 뽑는 게 뭐라고 서로 물어뜯고 난리를 치는지. 세상에 신경 쓸 일이 이리도 없을까?

이들에겐 이미 디자인이고 어떻고는 중요치 않을 거다.

그저 물어뜯고 씹어댈 대상이 필요할 뿐.

최종 채용이 결정되면 누가 인턴으로 뽑히더라도 누가 더 낫네, 못하네, 같은 악플이 달릴 게 뻔했다.

서류를 챙겨 대표실을 나선다.

문 앞에선 서진서가 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 대표님 나오셨군요. 이번 행사 관계자들과 인턴 직원들. 모두가 스탠바이 됐습니다.”

“준비한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진서는 내가 그대로 지나쳐 가려고 하자.

“저, 저기. 대표님. 파이팅이에요.”

그녀가 소심하게 주먹을 쥐어 보였지만, 불안해하는 감정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뜬금없이 112명의 인턴을 모조리 채용한다고 하질 않나. 의도적으로 채용 뉴스를 흘리고, 방송국에도 연락해 취재까지 오게 했으니 무리도 아니지.

아마, 서진서 뿐만 아니라 모든 닉스의 직원들이 같은 생각일 거다.

“걱정하지 말고 팝콘이나 준비하세요.”

“팝콘요?”

“화끈하게 불 지르고 올 테니까. 불구경하려면 미리미리 준비해두란 소립니다.”

이번 인턴 오리엔테이션은 따로 강당을 임대해서 진행했다.

닉스 코리아 사무실에는 그 많은 인원을 감당할 수 없어서 취한 조치였다.

이번에 투자금 좀 땡기면 빌딩 하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당으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웅성거림이 흘러나온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특별히 떨리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는다.

언제부터일까? 대중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이런 말인가 보다.

“좋아, 한 번 놀아보자고.”

안으로 딱 한 걸음 내딛자마자, 소리가 뚝 끊어진다. 마치, TV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말이다.

난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순간, 112명의 예비 인턴과 방송국 직원, 언론사, 닉스 관계자들까지, 족히 200개의 시선이 날 향한다.

거기다 예상보다 더 많은 카메라가 대기 중이다. 넷상의 열기가 그만큼 뜨거웠던 것이리라.

그런데도 긴장감보다 자연스러운 미소가 흘러나온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전 닉스의 대표, 강현우입니다.”

여태까지 거쳐 왔던 발표장과는 달리 박수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졌다.

“먼저, 저희 닉스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두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를 다시 진행한다.

“단 8일간의 모집 동안 1,452명의 지원자가 몰렸습니다. 사실 저희의 원 계획이라면 30명의 인턴 디자이너를 선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객석의 앉아 있는 디자이너들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스친다.

애초 예상했던 10명보다는 많은 수치였으니 말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음에도 여기 남아 계신 분들의 우열을 가릴 순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이번에 선발된 112명의 디자이너분들이 뛰어났다는 이야기겠죠. 그래서 닉스는 30명을 채용하기로 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잠시 이야기를 끊고 객석을 바라본다.

이어질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운 건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포함이었다.

“112명 전원을 닉스 코리아의 인턴으로 채용하겠습니다.”

루머만로 치부했던 112명 전원 합격설이 진짜로 판명된 순간.

객석에서 디자이너들의 함성과 기자들의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난 강당이 조용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채용 시점은 지금 이 시각부터이며, 정직원 승격에 대한 테스트도 바로 이어서 시작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또 한 번 장내는 충격에 빠진다.

건질 내용이 많았기에 방송국 카메라는 쉴 새 없이 돌아갔고, 기자들의 타이핑 속도도 빨라져 간다.

“여러분들은 닉스 챗과 닉스 서클에 들어갈 이모티콘을 만들게 됩니다. 주제나 형식, 모든 건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번 이모티콘을 테스트할 사람들은.”

내가 손가락을 튕기며 사인을 주자, 프로젝터의 화면이 켜진다.

그곳엔 개발팀에서 밤새도록 제작한 닉스 챗과 닉스 서클의 이모티콘 스토어가 나타난다.

“바로, 전 세계의 닉스 챗, 닉스 서클 사용자들입니다.”

화면에 비친 스토어가 실시간으로 구동된다.

이모티콘을 닉스 멤버십에서 내려 받는 것부터 시작해서, 실시간 평가 기능과 코멘트 기능까지.

마지막으로 평가가 나쁜 앱부터 스토어에서 삭제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영상으로 흘러나온다.

전대미문의 실시간 전 세계 평가 시스템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입사와 동시에 적자생존 환경에 내던져진 디자이너들은 방금까지 환호했던 모습이 쏙 들어가 버렸고, 기자들은 기대하지도 않던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이 점차 빨라진다.

“물론, 닉스 서비스가 한국에서는 생소하기에 투표 참가가 힘들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한국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닉스 챗의 새로운 버전도 함께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안 그래도 실내가 어두운데 빔 프로젝터가 쏘는 영상까지 검정 일색이다.

그러던 중 검은색 바탕에 녹색 글귀가 떠오른다.

[Nixchat for PC]

“와! 대박. 닉스 챗 PC 버전이래.”

“PC? 닉스 챗은 모바일용 메신저 아니었어? 이번엔 PC까지 먹으려 드는 건가.”

“국내엔 세이트온과 버디버디, 지니, MSM메신저까지 있는데 닉스 챗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 지금은 세이트온이 1위지만 디자인으론 상대가 안 되잖아. 거기다 모바일 연동까지 생각하면 진짜 몰라.”

기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물론 디자이너들의 한숨 소리도 함께.

“디자이너 여러분에게 아무 보상도 없이 이런 일을 시키는 건 아닙니다. 이모티콘으로 발생한 수익 일부는 디자이너에게 직접 돌아갈 것이며, 닉스에서도 상금을 지급합니다.”

화면이 바뀐다. 그곳엔 커다랗게 10,000,00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상금 1000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112명의 경쟁자를 뚫어야 했기에 그다지 큰 호응은 없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정도의 반응이라고 할까.

지금까지의 발표에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던 기자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손이 멈춰 있다.

“이모티콘 제작 상금이 1,000만 원이면 스타트업치곤 많이 쓴 편이네요.”

“고작 1,000만 원 주는데 방송국까지 부른다고요?”

“혹시, 1인당 1,000만 원씩 나눠주겠다는 거 아닐까요.”

“그럼 토탈 10억이 넘습니다. 이모티콘에 10억 넘게 지출하는 건 낭비죠.”

“어, 저거 뭐야? 분위기가 좀 이상해요.”

10,000,000이라는 숫자 앞에, 어느새 없던 커서 하나가 깜빡깜빡하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객석.

내가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가자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강당에는 내 숨소리가 울릴 정도로 고요함만 남아 있었다.

“살아남은 최후의 1인에게 지급될 상금은.”

그리고 깜빡이던 커서가 있던 자리에 떠오른 단위는 달러($)였다.

“1000만 달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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