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55화
냉정하게 말해서 게임 시장이 어떻게 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 이들과 마주 보고 있는 건, 게이머 강현우가 아니라 닉스의 대표 강현우니까.
개인적인 감정은 모두 배제한 채. 그저, 이번 인수가 타당하냐에만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우선해서 따져볼 것은 밸브의 인수 가능성이다.
공룡 게임사인 EA가 밸브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 제시했던 금액은 10억 달러다.
한화 약 1조 2천억 원.
그런 거액을 제시했음에도 결국 EA는 밸브 인수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지금은 2012년이 아닌, 2009년이다.
밸브의 몸값이 그때보다는 적을 게 분명한 상황.
게다가 넥키과 NG소프트에 닉스까지 가세하면 자금 문제로 인수가 엎어질 일은 없다고 확신한다.
다음으론 이 회사의 필요성이다.
밸브가 보유하거나 개발 예정인 게임은 PC게임이다.
게임사인 넥키나 NG소프트에겐 탐스러운 과일이지만, 내겐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아쉬운 정도인, 딱 그런 존재다.
하지만 밸브가 운영 중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은 다르다.
스팀은 ID만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클릭 한 번으로 게임을 결제하고 내려 받을 수 있으며, 스팀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든 게이머들이 서로 커뮤니티를 이룬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
이것은 닉스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서비스의 수익성이 제로라고 해도 사람만 모을 수 있다면 돈이 된다는 걸, 난 내 두 눈으로 봤던 사람이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난다.
이번 딜. 성사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니,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역시 그게 문제겠지.
결국,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나.
결심과 동시에 몸을 앞으로 곧추 세운다.
“좋습니다. 공동 인수에 닉스도 합류하도록 하죠.”
내 말만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밸브의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강 대표라면 승낙할 줄 알았어요.”
이미 인수를 기정사실로 여기는지 건배를 위해 내 잔에 맥주를 따라주려는 김택진 사장.
하지만 내가 손으로 그의 움직임을 제지한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묘해진다.
인상이 구겨진 김택진 사장이 뭐라 한 마디 하려는 걸 김정주 회장이 막아선다.
“나중에 다른 말 하는 것보다 미리 조건을 맞춰 보고 하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겠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잔에 조금 남아있는 맥주를 목으로 흘려 넣고 말을 잇는다.
“딱 까놓고 말해서 밸브 자체는 제게 아무런 득이 없습니다. 제가 두 분처럼 게임사를 운영하던 노하우나 인프라가 있는 거도 아니니까요. 다만.”
“다만?”
“밸브가 소유 중인 유통 플랫폼인 스팀은 탐납니다. 스팀 커뮤니티를 닉스 챗이나 닉스 서클과 연동시키면 충분히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밸브를 인수하면 스팀은 자연히 딸려오잖습니까. 그럼 뭐가 문젭니까?”
“네. 딸려오기야 하겠죠. 하지만 제 지분이 얼마나 될까요? 30%? 25%?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겠군요.”
“지분은 투자금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
내가 김정주 회장의 말을 잘랐다.
“분배는 공정하겠지만 경영권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제가 얼마를 가진다 한들, 두 대표님의 합이 저보다 높다면 전 아무런 힘이 없어질 테니까요.”
김정주 회장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린다.
“어째서 그렇게만 생각하시죠. 이견이 있다면 조율하면서 진행하면 되는 부분입니다.”
“넥키와 NG소프트, 두 게임사는 자사 게임의 해외 진출이라는 지향점이 일치하겠지만, 닉스는요? 닉스는 이미 해외에서 서비스 중인 종합 소셜 플랫폼입니다. 당연히 국내 게임사와는 방향성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 듣고 있던 김택진 사장이 잔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그럼 어쩌겠다는 말입니까!”
난 그런 그의 반응을 즐기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밸브와 스팀을 분리하는 겁니다. 스팀만 따로 떼서 제게 주시죠.”
눈을 똥그랗게 뜨는 두 사람.
난 그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쏘아붙인다.
“제가 원하는 건 게임 플랫폼인 스팀의 100% 경영권입니다. 닉스는 밸브의 게임과 개발진에 대한 소유권은 깔끔하게 포기하도록 하죠.”
“우린 해외 진출로를 마련하기 위한 스팀도 필요합니다.”
“당연히 인수의 동반자인 넥키과 NG소프트의 게임은 스팀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해드려야죠.”
역으로 제안이 들어오자, 두 게임사 대표들의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것이 득일지, 실일지를 재고 있는 것이리라.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사장은 게임을 돈 주고 사면 바보라고 불리던 시대부터 게임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런 두 사람이 스팀이라는 게임 구매 플랫폼이 미래가 있다고 생각할까?
그들에게 밸브란, 해외 시장에 진출할 교두보이자. 자사의 게임을 유통할 수 있는 창구일 뿐이다.
그들이 스팀을 먹어봐야 제대로 키운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차라리 내가 단독으로 먹어 버리는 게 낫다.
잠시의 고심.
난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려고 했는데, 금방 결과가 나와 버렸다.
서로가 최소의 투자로 필요한 부분만 먹는 조건이었으니. 생각할 여지도 없었을 거다.
닉스는 밸브에서 분리한 스팀에 대한 100% 지분을 가지고, 밸브에 대한 지분을 포기한다. 라는 내용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넥키는 내가 가진 NG소프트 지분을 매입하고, 김택진 사장의 지분도 일부 매입해서 총알을 마련하기로 했다.
주식의 매입가는 현재 NG소프트의 종가인, 16,9000원에 프리미엄 15%를 추가해서 전량 매입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인수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성공할 겁니다.”
손을 맞잡고 있었지만 내 속내는 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넥키과 NG소프트가 밸브 인수에 퇴짜를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난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없다.
NG소프트 주식은 어차피 청산하고자 했던 거고, 시장가보다 15%의 프리미엄까지 얻었으니까.
밸브 인수에 성공해서 스팀이 내 손에 들어와도 이득, 실패해서 현금을 쥐게 돼도 이득.
내게 이번 협상은 뭘 해도 이득인 꽃놀이패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 * *
닉스 코리아엔 인재가 닥쳤다. 재난의 인재(人災)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인재(人材)였다.
사건의 발단은 평범한 모집 공고로부터 시작됐다.
닉스 소프트에서 인재를 모집합니다.
닉스 서클, 닉스 챗에 필요한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 인턴 직원을 모집합니다.
경력 무관하며, 6개월간의 인턴을 진행 후 정직원으로 채용합니다. 자세한 사항은……(중략)
흔하디흔한 디자이너 구인 공고였다.
하지만 그 흔한 공고에 날아든 이력서는 무려 1000통이었다.
그것도 일주일 만에 날아든 숫자만 이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게 좀 황당했다.
닉스 챗과 닉스 서클, 내리 2연타를 성공시킨 독창적 디자인은 이미 [대니얼 디자인]이라는 고유 명사가 붙을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다.
거기다 뒤늦게 애플폰4의 디자인은 닉스의 대표인 내가 단독으로 만들었으며, 매번 거액의 로열티까지 받고 있다는 뉴스가 터지는 바람에 이쪽 업계에서 엄청난 파문이 일고 있었다.
애플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부와 명예가 동시에 굴러들어왔지만, 그만한 유명세에는 시기하는 세력도 생기기 마련이다.
일부 디자이너나 네티즌들은 기존의 애플 디자인이 더 낫다며, 닉스의 디자인은 순간의 유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당연히 애플폰4를 필두로 닉스 디자인을 선호하던 사람들은 그들을 유행에 뒤처진 자들이라고 대응했는데, 그 결과는 넷상의 치열한 댓글 싸움으로 번졌다.
싸움은 애플폰4가 출시되고 몇 달이 지났지만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오히려 다른 디자이너까지 합세해 애플이 낫다, 닉스가 낫다는 주제로 몇 날 며칠 동안 토론을 벌일 정도였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닉스가 디자이너를 모집한다고 공고를 냈으니,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 * *
닉스 코리아의 팀장들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당연히 인턴을 어떻게 뽑아야 잡음이 없을 것이냐는 거였다.
“30명도 많은데 최종 1,452명이 몰렸어요. 엄청난 네티즌들이 이번 면접을 지켜보고 있는데, 30명만 어떻게 뽑냐고요. 이건 미친 짓이에요.”
서진서가 투덜거리자, 옆에 앉은 배기수 역시 깊은 한 숨을 내쉰다.
“지원자 중엔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유명한 대기업 종사자도 포함돼 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기준으로 인턴을 뽑았다간 나쁜 소문이 돌 수도 있어요.”
“역시 그렇겠죠?”
전염된 듯 서진서 역시 한숨을 내쉰다.
“이봐요. 배기태 씨. 채용 책임자면 어떻게 좀 해보라고요.”
그제야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배기태가 입을 열었다.
“오늘까지 지원한 지원자가 총 1,452명입니다. 145명도 아니고 1,452명. 저 많은 디자인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건……. 죽으라는 말이겠죠. 진짜 대표님이 절 죽이려고 한 걸지도.”
“서류에서 거를 만한 방법은 없을까요?”
“거를 순 있겠지만……. 그것도 반발이 심할걸요.”
단순한 사무직 채용이었으면 학력, 경력, 토익 같은 수치로 걸러버릴 수 있겠지만 디자이너를 그런 식으로 뽑는 건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이번 채용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누가 봐도 공정하게 뽑혔다는 말이 나올 방법을 써야 해요.”
결국, 팀장들이 머리를 맞대서 내린 결론은 이랬다.
-경력직과 신입의 비율을 7:3으로 유지 시킬 것.
-지원 파트별로 인원을 배분할 것.
-디자인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디자인 스타일별로 최종 배분할 것.
-배분한 디자인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며, 진행 영상은 닉스 서클로 실시간 공개할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방식이 SNS상에 퍼지면서 이때 당시 케이블 채널에서 유행하던 [슈퍼스타K]의 이름을 따서, [디자이너 슈퍼스타K]라는 검색어가 포털 상위에 걸렸다.
그리고 이틀 뒤.
네티즌의 지대한 관심 속에 블라인드 테스트가 실시간으로 진행됐다.
전화로 참관 문의가 올 정도로 열기는 뜨거워진 상태.
공정하고도 공정하게 진행된 테스트에선, 최종적으로 112개의 디자인이 뽑혔다.
사실, 30개가 남을 때까지 계속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야 했으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억지로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지금 테스트를 인터넷으로 지켜보는 네티즌이 수만 명이 넘어갈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이제 남은 112명의 면접이었다.
닉스 코리아의 팀장들은 디자인 쪽 전공이 없었고, 그렇다고 디자인 파트 직원들에게 면접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번 최종 면접에는 네티즌뿐만 아니라 1340명의 탈락자가 ‘어디 누가 뽑히나 두고 보자’라며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여기서 자칫 잘못했다간 넷상에 닉스에 대한 비방이 도배될 수 있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결국, 공은 디자이너이자, 대표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 * *
“그러니까, 최종 면접은 제가 봐달라는 말씀인 거 같은데. 맞나요?”
“그,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최종 면접이라고 해봐야 금방 끝나겠죠. 총 몇 명인가요?”
긴장한 표정의 배기태가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112명입니다.”
“음? 최종치곤 너무 많은 인원 아닌가요?”
“그게……. 그럴만한 이유가 좀 있었습니다.”
배기태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인턴 디자이너를 뽑는데 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몰렸으며, 공정하게 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친 것까지.
종합해 보자면 네티즌의 눈치 때문에 상황이 여기까지 굴러왔다는 거다.
“기태 씨. 질문 하나 하죠.”
“예.”
“제가 직접 뽑으면 논란이 덜할까요?”
그는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답했다.
“아뇨. 분명 무슨 말이 나올 겁니다. 사실, 지금은 뭘 골라도 욕먹을 게 뻔하죠.”
“그런 사항을 제게 가져 왔어요?”
“면목 없습니다.”
배기태는 고개를 푹 숙였다.
“후…… 어쩔 수 없죠. 기태 씨.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난 112개의 디자인이 프린터 된 서류를 그에게 다시 넘겨준다.
“112명을 다 합격시키는 겁니다.”
“예?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니까 욕은 덜 먹겠죠.”
“저기 대표님. 아무리 그렇다 해도. 112명은 무립니다. 닉스 코리아 전 직원이 70명이 채 안 되는 데, 디자이너를 그렇게 많이 뽑다니요. 아무리 여론을 의식한다 해도 그건 좀…….”
“이럴 땐 발상을 바꿔보세요. 112명을 억지로 떠안는 게 아니라, 112명이 일할 만한 자리를 만들면 되는 거죠.”
난 자리에서 일어서 배기태를 마주 본다.
그는 여전히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는 거 같기도 했다.
“인턴 디자이너 전원에게 닉스 챗 이모티콘을 제작시키도록 하죠.”
물론 그냥 이모티콘 제작을 맡길 생각은 없다.
네티즌들이 원하면 보여 줄 것이다.
본격 이모티콘 슈퍼스타K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