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54화 (54/206)

기적의 IT 재벌 54화

김정주 회장은 국내 1위 게임 개발·유통사인 넥키의 창업주이자, 한 푼의 외부 투자 없이 회사를 상장까지 이끈 능력자다.

그는 단순한 개발자가 아니라 성공한 투자자이기도 했다.

2004년에는 메이플 스토리를 개발한 위젯을 인수해 대박을 쳤으며, 2008년에는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를 인수와 동시에 중국까지 진출시켜 돈을 갈퀴 채 쓸어 담게 된다.

그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 왜 나를 보자고 했을까? 그것도 은밀하게 말이다.

“대표님. 강현우 대표님?”

“예? 아, 예.”

서진서 팀장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다.

아차, 닉스 팀장급 정기회의 중이었지.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죠?”

내가 질문하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배기수 팀장이 답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신규 디자이너를 몇 명이나 채용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아, 그랬었죠. 채용공고는 냈습니까?”

“오늘 아침에 공고를 냈는데, 벌써 34명이 지원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보게 된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공고를 올리고 기껏해야 2시간이 지났을 텐데, 34명이나 지원했다니.

창립 멤버를 모은다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미국행 비행기 표까지 끊어주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말이다.

“디자이너 채용 방식은 팀장들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최근 들어 닉스 소프트의 업무 대부분을 팀장들에게 위임했기에 다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인원은 어떻게 할까요? 00명으로 공고하긴 했습니다만.”

“작업물에 대한 퀼리티만 나온다면 얼마를 뽑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15명 정도면 될까요?”

배기수의 말에 서진서가 끼어든다.

“기수 씨, 15명이면 디자이너만으로 사무실이 꽉 차게 돼요. 앞으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10명도 많은 거라고요.”

“그래도 대표님 의중대로 진행하려면 15명은 돼야…….”

내가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시킨다.

“신규 채용은 30명으로 하죠.”

순간 입을 떡 벌리는 두 사람.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배기태는 키득거리며 웃다가 엄지를 치켜든다.

“역시 이래야 우리 대표님이지.”

“이번 디자이너 채용 건은 기태씨가 책임지고 진행하세요.”

“나, 나닛? 난다 고레?”

“평소엔 상관없는데, 회의 땐 어설픈 일본어 사용을 자제해주세요.”

쌤통이라는 표정의 배기수와 실실 웃고 있는 서진서.

배기태는 평소 가벼운 언행이 문제되긴 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스킬이 특출하게 뛰어났다.

좋게 말하면 친화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똘끼라고 할까.

또한 애니메이션 마니아였기에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터를 뽑아야 하는 이번 채용에는 적임자인 셈이다.

난 자리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디자인 팀은 사무실을 따로 배정하겠습니다. 진서 씨는 아래층에 빈 사무실 추가로 임대해주시고, 기수 씨는 다음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이 정확히 얼만지 파악해서 다시 보고해주세요.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급하게 회의를 끝내고 밖으로 나선다.

잠시 후면 넥키의 김정주 회장을 만나 게 된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했으니, 단순한 이야기는 아닐 터.

닉스 챗이나 닉스 서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그럼, 닉스 챗에 애드온으로 넥키에서 만든 게임을 넣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넥키에서 만든 모바일 게임이라면 퀼리티는 보장될 테고, 분명 반응도 좋겠지만…… 이건 아닐 거 같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과도기인 시대.

아직도 사람들은 모바일 메신저 플랫폼의 파괴력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닉스 챗을 기껏해야 MSN 메신저의 아류정도로 보고 있었으니까. 이건 닉스로 건너오는 투자금의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모바일 메신저의 파급력을 예측할 정도의 혜안을 가진 자라면 스티븐 잡스? 인심 좀 써서 SG그룹의 신용화 정도가 마지노선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김정주 회장은 7개 국어가 가능한 천재라는 소문도 있었으니까.

진즉에 모바일 시장의 팽창을 눈치 채고 모바일용 프로젝트를 잔뜩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 *

장소는 서울 대학교 근처의 재즈 바.

낮 동안은 장사를 안 하는지 간판에 불이 꺼져 있다.

천천히 아래로 걸어 내려가자,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딸랑.

바 안에는 주인도 없었다.

그저 테이블에 두 중년인이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었을 뿐.

“헙.”

난 그들을 보고 대번 누군지 알아봤다.

NG소프트의 김택진 사장.

넥키의 김정주 회장.

국내 게임회사 3대 장인 3N(넥키, NG소프트, 넷블)의 대표 중 2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니.

뉴스로만 접하던 인물들을 눈앞에서 보자, 심장이 쿵쿵 발길질해댄다.

난 IT기기도 좋아했지만, 지독한 게임 마니아기도 했다.

그런 내게 워너비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오직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고 생각하자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휘감는다.

내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두 사람 모두 자리서 일어나 악수를 청한다.

“반갑습니다. 넥키의 김정주입니다.”

“김택진입니다.”

나 역시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건 NG소프트의 김택진 사장이었다.

“햐, 이거. 제가 그렇게 보자고 할 때는 극구 거절하더니, 선배님이 보자니까 바로 나오시네요. 저, 좀 서운합니다.”

김정주와 김택진은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1년 선후배 사이다.

업계에선 경쟁사였지만 편한 자리에선 선배라는 호칭을 쓰는 듯 했다.

난 흐릿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땐 제가 좀 바빴습니다. 한창 닉스 챗 런칭으로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니까요.”

“아하. 닉스 챗. 그거 써보니까, 아주 멋진 녀석이더군요. 애플폰 사용자뿐만 아니라 웹 플랫폼을 통해, 게스트로 접속할 수 있게 해둬서 너무 편했어요.”

그 말을 김정주 회장이 받는다.

“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지금은 애플폰 한정이라 이 정도지, 일반 휴대폰에도 설치가 가능하면 엄청 날 거 같던데?”

“결정적으로 디자인이 이 세상 디자인이 아닙디다. 저도 그거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들을 엄청 쪼아대고 있다니까요.”

분위기는 딱딱하지 않고 자유로웠다.

간단한 과일과 마른안주를 집어 먹으며, 맥주로 목을 축이는 게임업계의 거성들.

내가 생각했던 진중한 이미지와는 퍽 달라서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사실. 오늘 한 번 뵙자고 한 건, 달리 큰 뜻은 없습니다. 그저 국내에 나타났다는 IT계의 신성과 말을 한 번 섞어 보고 싶어서죠.”

거짓말이다.

그럼 서진서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내게 은밀히 만남을 요청할 이유가 없다.

분명 무슨 딜이 있었기에 자리를 만든 것이리라.

호탕하게 맥주잔을 비운 김택진 사장이 말을 이어한다.

“솔직한 말로 우리 회사의 대주주님께서 한 번은 회사를 찾아 주실 줄 알았습니다.”

“이미 회사를 잘 이끌고 계신데 제가 가서 위화감을 조성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본인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군요.”

불만 섞인 말투였지만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NG소프트에서 김택진 사장의 지분이 25% 남짓한데, 이해관계가 없는 개인이 지분 11%를 보유하고 나타났으니, 경영권 문제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때문에 김택진 사장은 연 초에 자사 지분 2%를 추가로 확보했다.

“한 번 만나 뵈려했었습니다만 제가 일이 겹치는 바람에 좀 늦어졌습니다.”

“서로 바쁜 건 아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냥 신세 한탄 한 번 해봤습니다.”

웃기게도 주주총회 전에는 나를 만나려고 계속 연락하던 사람이 주주총회가 끝난 4월부터는 단 한 번의 연락도 없더라.

내가 주주총회에서 무슨 짓이라도 벌일까봐 계속 연락해 왔던 거겠지. 뭐 이 바닥이 다 이런 거 아니겠는가.

대화가 끊어지자 이번은 과일을 집어 먹던 김정주 회장이 입을 연다.

“강 대표님은 IT쪽 신성이라 불리지만 게임 산업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게임에 빠져 살다시피 했죠. 사실 넥키 주식을 가지고 싶었는데. 상장을 계속 미루고 계시더군요.”

“아직 외부 투자를 받을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렇게 말씀하시니 지분이 더 탐나는 데요? 공모를 하기 전에 귀띔이라도 해주시길.”

이후에는 신변잡기 같은 말이 이어진다.

“혹시 즐겨 하시는 게임이 있습니까?”

“최근엔 바빠서 하지 못했지만 바람의 나라를 많이 했었죠.”

“오호. 바람의 나라를 하셨습니까.”

바람의 나라는 지금의 넥키가 있게 만든 1세대 머그게임이다.

텍스트 입력방식으로 즐기던 머드게임에 그래픽을 씌운 머그게임은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온라인 게임 열풍을 몰고 왔다.

“게임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모뎀으로 몰래몰래 하다가 전화비 폭탄을 맞고선, 어후. 집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불쑥 김택진 사장이 끼어든다.

“그 시대 게임을 자주하셨으면 리니지는 안 하셨습니까?”

“리니지는…… 음…….”

자사 게임의 이름이 나오자 그의 눈이 반짝반짝하다.

“제가 사행성 게임은 즐기지 않습니다.”

“컥, 대주주가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되는 건지. 주가 폭락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거 같군요.”

“하하. 농담이고요. 리니지도 짧게나마 해봤습니다. 순수한 강함의 추구와 PvP를 국내에 정립한 명작이죠.”

그의 얼굴이 티가 날 정도로 편다.

난 여기서 립서비스를 좀 더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공짜니까 인심 팍팍 쓰는 셈 치고 말이다.

“그보다 신작 라인업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어느 쪽 말입니까.”

“아이온은 기존에 있던 재료를 잘 버무린 수작이라면 블레이드&소울은 보는 재미와 손맛, 두 가지를 한 번에 잡은 대박의 느낌이 오더군요.”

“이거 출시도 안 한 게임을 훤히 꿰뚫고 계신 거 보니, 저희 본사에 스파이라도 심어 두신 게 아닐까 걱정 될 정도입니다.”

“제가 게임에 통달해서 척 보면 아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NG소프트를 공격적으로 매수한 거고요.”

게임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자 자연스럽게 빈 술병도 늘어간다.

그런 와중에도 속으로는 언제 본론이 튀어 나올까 싶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게임에 빠삭한 3명이 모이자,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다 주제가 세 바퀴 정도 돌자. 슬쩍 화제가 전환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강 대표님이 최근 모바일 게임 업체들의 지분을 모으고 다니신다던데…….”

“소문이 벌써 그렇기까지 퍼졌습니까? 이거, 스파이는 제가 더 의심해봐야겠는데요.”

“하하하. 농담도 잘 하십니다.”

입은 웃지만 눈이 그대로라 어색한 표정이다. 자, 무슨 보따리를 가져왔는지 개봉 할 시간이다.

먼저 신호탄을 쏴 올린 건 넥키의 김정주 회장이었다.

“아시다시피, 넥키과 NG소프트는 국내시장에서 더 먹을 게 없습니다. 몸집을 불려봐야 기존 파이를 나눠 먹는 게 한계겠죠.”

몇 년 만 지나면 외산 게임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었다.

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로서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PC패키지 게임에 투자하자니, 국내는 그쪽 시장이 고사한 상태라 개발자를 구하기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온라인 게임을 해외에 서비스하려면 로컬 라이징부터 시작해서 돈이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더군요.”

이거, 설마…….

“의외로 답은 금방 나왔습니다. 저희가 약한 PC게임과 불안정한 플랫폼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말이죠.”

그, 설마가 맞았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필두로 팀 포트리스, 레프트4데드, 도타2 같은 게임 개발 능력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유통 플랫폼, 스팀을 가진 해외 업체.

“넥키와 NG소프트는 밸브를 공동 인수할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표정이 굳는다.

의외라서가 아니다. 이건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다.

넥키과 NG소프트가 합작으로 해외 게임업체를 인수하려던 건 이쪽계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으니까.

다만, 그건 2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게다가 그걸 지금, 내게 말했다는 건…….

“강현우 대표님,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희와 힘을 합쳐, 밸브 인수전에 합류해 주십시오.”

머릿속에 쾅! 하는 포탄 소리가 울린다.

밸브는 앞으로 WOW와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급 회사로 성장한다.

거기다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은 실 사용자가 1억 명이 넘는 초거대 플랫폼이 된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닉스 챗에 스팀 커뮤니티를 애드온으로 넣으면 역대급 공룡 게임 커뮤니티가 완성될지도 몰라. 이거 받는 게 무조건 유리한 딜인데.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밸브를 인수해 버리면 앞으로의 게임 산업은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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