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53화 (53/206)

기적의 IT 재벌 53화

일론 머스크.

천재적 사업가, 희대의 몽상가, 미래의 설계자.

일론을 지칭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다.

그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12살 때 처음으로 PC게임을 만들어 판매했으며, 23살 때 사업을 시작하여 28살에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다.

이후 인터넷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을 창업하여 떼돈을 벌게 되며, 그 돈을 전기 자동차 생산업체인 테슬라 모터스에 투자하여 최대주주가 된다.

내연기관의 도움 없이 100% 순수한 전기만으로 운행하는 전기 자동차.

화석 연료 자동차에 비교하면 공해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주로 야간에 남아도는 전기로 충전하기에 값싼 연료비와 낭비되는 전기도 활용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린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전기차가 상용화에만 성공하면 기존 화석연료 자동차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단으로 여겨졌기에, 일론의 테슬라는 막대한 투자를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2020년에도 순수 전기차는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2%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배터리기술의 더딘 발전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내부에 배터리를 꾹꾹 눌러 담아도 400㎞를 운행하는 게 고작인(냉·난방기를 틀거나, 겨울철이거나, 과속하면 그마저도 엄청나게 줄어든다) 배터리 용량도 문제였고.

그만한 배터리를 탑재하면 차량 가격이 억대로 뛰어 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 덕에 전기차 업계가 친환경, 낮은 연료비를 장점으로 홍보를 해대도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는 건 먼 미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미래는 바뀔 것이다.

몽상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리튬 에어 배터리가 내 손에 있으니 말이다.

리튬 에어 배터리는 기존의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이론상 5배의 용량을 가졌으며, 값비싼 산화 코발트를 산소로 대체했기에 생산 단가마저 20% 저렴한 차세대 배터리다.

만약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가 리튬 에어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면 가격도 가격이지만 풀 차지 시 2000㎞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손만호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론 머스크…… 그라면 투자할 수도 있겠군요.”

“전기차의 최대 약점인 항속거리와 충전소의 부재,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그건 내연기관 차량의 종말을 뜻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아, 잠깐만요. 테슬라가 최근 일본의 이차전지 업체에 투자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산요가 유력할 겁니다.”

정확히는 산요를 인수한 파나소닉일 거다.

2010년 말, 테슬라는 안정적인 리튬 이온 배터리의 공급을 위해, 파나소닉에 5천만 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테슬라에 투자를 받는 건 일본의 파나소닉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Sol 에너지가 될 테니까.

참고로, 앞으로 2년간은 일본 이차전지 업계에 최대 불황기가 찾아온다.

한국과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리튬 이온 배터리 가격은 연일 하락하지만, 수요가 많아진 만큼 원자재 가격은 역으로 치솟기 때문이다.

“일본 이차전지 업체들이 목 빠지게 투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가 기회입니다.”

“당연히 자기들에게 떨어질 거라 여겼던 투자금이 다른 곳에 흘러가면……. 어후. 제가 당사자도 아닌데 아찔하군요.”

몸을 부르르 떠는 손만호 부장.

자신이 몸담은 Sol 에너지가 한 번 도산한 경험이 있기에 더 와닿는 것이리라.

“그래도 공장은 계속 돌릴 겁니다. 단가가 안 맞아도 이차전지 파트를 매각하려면 억지로라도 유지하려 들 테니까요.”

“그렇겠죠. 설비를 멈추는 순간, 자신들이 끝장인 걸 시인한 거나 마찬가지가 되니까요.”

“전 그때. 차세대 이차전지 양산 계획을 발표할 겁니다.”

“허.”

그건 중국의 저가 공세에 궁지까지 몰린 일본 이차전지 업체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일격이 될 거다.

“그럼 산요나 소니의 이차전지 부문을 도산시킬 생각입니까?”

“도산해도 좋고, 여차하면 인수할 생각도 있습니다. 일본이 가진 이차전지 특허는 어마어마하니까요.”

이차전지에 한해서지만, 일본의 대들보인 산요를 먹는다는 말에 손만호 부장은 떡 하니 입을 벌리고 굳어버렸다.

“그러니 그전에 리튬 에어 배터리의 시제품이 완성돼야 합니다. 손 부장님, 이제부터 바빠지실 겁니다.”

리튬 에어 배터리의 양산 발표로 이차전지 시장이 순간적으로 흔들리겠지만, 어차피 모든 배터리를 리튬 에어 배터리로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리튬 이온 배터리 시장은 잠시 주춤했다가도 다시 살아난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 전에 내가 통째로 집어삼키겠지만 말이다.

자신들의 숨통을 끊은 업체가 인수 의사를 밝히고 나서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 *

Sol 에너지는 대변혁을 맞이했다.

기존에는 태양광 패널 공사와 운영을 주력으로 삼았다면, 앞으로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Sol 에너지는 사명을 닉스 에너지로 변경하게 됐으며, 이로써 닉스 이노베이션의 자회사가 하나 늘어나게 됐다.

기존 Sol 에너지 사원들은 태양광 패널 사업이 축소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모회사인 닉스 이노베이션의 규모를 보고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손만호 부장은 닉스 에너지의 운영 이사로 승진했고, 무자파는 배터리 개발부서의 연구소장 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Sol 에너지의 재무이사를 맡고 있던 매형은 미국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재무이사 자리를 사임했는데.

그 후임으로 자신의 친구인 NNB 캐피털의 김재천 상무를 추천했다.

모든 임원급은 연봉 상승뿐만 아니라 회사 10분 거리의 신축 아파트가 지급됐다.

무자파와 무함마드는 고급 아파트와 억대 연봉이 적힌 계약서를 받아들자, 가족들을 한국으로 이주시키겠다고 벌써 마음이 붕 떠 있는 모습이었다.

* * *

Sol 에너지가 닉스 에너지로 사명으로 바꾸고 첫 임원 회의가 열렸다.

회의실에는 대표이사인 나와 손만호 운영이사, 김재천 재무이사가 둘러앉았다.

연구소장인 무자파는 언어적 문제 때문에 차후 회의 내용을 통보해주기로 하고 불참했다.

“손만호 이사님은 직원들에게 신소재 배터리 연구 파트가 추가된 거지. 기존 태양광 사업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주지 시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번은 시선을 김재천 이사에게 옮긴다.

“김재천 이사님.”

“예.”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된 만큼,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김재천 이사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고개를 숙여온다.

“아, 그런데. 김재천 이사님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NNB 캐피털에서도 곧 이사로 승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대 금융회사의 이사 자리를 마다하고 왜 닉스를 선택하신 겁니까?”

“그게 말이죠…….”

그는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전 재무 책임자인 준오가 일이 많아서 죽겠다고 꼭 좀 와달라고 그래서 말이죠.”

“예?”

나와 손만호 이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김재천이 씩 웃는다.

“그건 농담이고. 사실, 준오가 진지하게 설득하더군요. 황금 동아줄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요.”

“황금 동아줄…….”

손만호 이사가 혼자서 중얼거리자, 김재천이 주먹을 꽉 말아쥔다.

“손만호 부장님. 아, 아니. 손만호 이사님도 처음부터 보셨겠지만, 회사가 이렇게 단기간에 급성장하는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강 대표님의 플랜은 이제 시작이라는 거죠.”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손만호 이사.

“제삼자로써. 솔직히 대표님이 언제 고꾸라질지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도박적인 주식 투자부터 시작해서, 이후의 경영방식은 너무 공격적이었으니까요.”

음, 인정한다.

내가 해왔던 일들은 조금만 미끄러져도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만약, 미래를 알지 못했다면, 절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게 웬걸? 고꾸라지기는커녕, 회사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만 나는 게 아닙니까? 믿을 수 없는 일이 연속해서 생기니, 평소 제가 가졌던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제삼자로서가 아니라, 내부인으로써 대표님이 언제까지 성공하나 지켜보고 싶다고 말이죠.”

그는 이야기하면서 목이 탔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곤 말을 이었다.

“제가 닉스에 들어온 이유가, 좀 불순한가요?”

“특이하긴 한데, 문제가 될 부분은 없는 거 같습니다. 재무이사로서의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야. 나중에 제 전기 같은 걸 쓰는 건 아니겠죠?”

“흐흐, 그것도 고려해봄 직하네요.”

잠시 커피 타임이 이어지고 다시 분위기가 돌아온다.

“자, 자. 이제 업무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죠. 손만호 이사님.”

“예, 대표님.”

“새롭게 들어설 연구실 부지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존에 있던 부지가 있어서 그대로 쓴다는 말이 있던데요.”

그는 챙겨온 서류와 지도를 펴 보이며 답한다.

“닉스 에너지 본사 건물에서 약 5㎞ 정도 떨어진 지대에 창고가 있습니다. 기존에 태양광 패널을 보관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패널을 보관하는 터라, 비어 있습니다.”

“좋습니다. 거길 허물고 연구소 건물을 올리는 거로 결정하겠습니다.”

“저기……. 대표님. 창고는 허물지 않고 그냥 써도 문제없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골조를 보강하고 내부 인테리어만 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그럼, 창고를 임시 연구소로 쓰고 다른 부지에 새 연구소 건물을 올리도록 하세요. 즉시 연구에 착수할 수 있도록요.”

“대, 대표님. 그럼 예산이…….”

“보안 문제 때문이라도 새 건물이 필요합니다.”

보안이라는 말에 대쪽 같은 손만호 이사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 그리고. 연구실에 필요한 설비는 돈에 제한 둘 필요 없습니다. 무자파 소장과 상의하여 필요하다면 몽땅 다 사들여도 좋습니다.”

“제가 무자파 소장에게 듣기론 미국에서 쓰던 설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전량 새 걸로 구매하도록 하세요.”

손만호 이사는 난처하다는 듯 서류를 쳐다본다.

“새로운 연구소에 집행된 예산이 500억입니다. 연구 설비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천차만별인데, 이러다 1년 치 예산을 다 써버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끼어든 건 김재천 이사였다.

“1년 치 예산이 500억이 아니라. 연구소 설립 비용으로만 집행된 게 500억입니다. 운영 예산은 아직 편성이 안됐고요.”

“예? 그게 무슨…….”

손만호 이사가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되묻는다.

“그러니까 편성된 예산이 1년 치가 아니라 초기 세팅비라는 소립니다.”

“아니, 잠깐. 500억이 초기 예산이라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대표님이 직접 편성하신 예산입니다. 제가 재차 확인까지 했고요. 안 그렇습니까, 강 대표님?”

입에서 말이 안 나오는지 입만 벙긋벙긋 걸리며 날 바라보는 손만호 이사.

그로선 기가 찰 노릇이겠지.

기존 Sol 에너지의 밥숟가락 하나까지 몽땅 처분해도 500억이 될까 말까 하는데, 그 돈을 연구소 하나에 퍼붓는다고 하니까.

결국, 내게 진실을 물어온다.

“대표님, 연구소 하나에 500억. 이게 사실입니까?”

“그만큼 닉스에서 이번 프로젝트 Air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십시오. 손만호 이사님도 특별히 신경 써 주시고요. 이번 기회에 능력을 보여주세요.”

내 말에 손만호 이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 맡겨만 주십시오.”

그의 표정엔 비장함이 서려 있다.

마치, 인류를 구원하는 미션을 전해 받고 떠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음? 내가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말했던가?

그 500억의 예산 책정은 닉스의 한 달 치 로열티 수입이라는 걸 말해줬어야 했는데, 분위기로 봐서 당분간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 같다.

* * *

미국의 IM케미컬의 운영은 매형에게, 닉스 소프트는 브릭에게 일임하고.

난 당분간 한국에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낮 동안은 닉스 코리아에서 업무를 보고, 해가 떨어지면 닉스 에너지로 날아가 연구 진행을 도왔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리튬 에어 배터리 개발의 진행 상황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진척되고 있는 터라, 오히려 피곤함을 모를 정도였다.

* * *

평범한 오후의 닉스 코리아 집무실.

난 1시간째 전화기를 붙들고 배터리 소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때, 대표실 문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대표님, 전화가 와 있습니다.”

“지금 좀 바쁘니까, 기다려 달라고 하세요. 아니면 조금 있다 다시 전화……. 음?”

말단 직원이 아니라, 총괄팀장인 서진서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직접 전화를 전달하러 왔다면, 필시 평범한 일이 아닐 터.

“어, 음. 메이, 미안한데 지금 중요한 일이 생겨서요. 이따가 다시 전화 드리죠.”

뚝.

난 통화를 끊은 후 직접 문을 열어 줬다.

“대, 대표님.”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꼭 집어 든 채 서 있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확연히 긴장한 모습이다.

“진서 씨, 누구 전화기에 그러십니까?”

“넥키의 김정주 회장님입니다.”

“예? 그분이 왜요?”

“대표님 전화번호를 알 수 없어서, 지금 제 전화로 전화를 거셨다는데……. 오늘 조용히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다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