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48화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SG텔레콤으로선 전혀 실익이 없는 계약이지만, 투자금을 반환받기 전엔 엄청난 투자 실적이 난 것처럼 부풀리는 효과는 있겠군요.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당연히 여기지.”
신용화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더니 말을 잇는다.
“난 SG그룹의 지분을 손에 넣는 거고, 닉스는 엄청난 투자금을 얻는다. 어때, 이거면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지?”
“확실히 닉스로선 좋은 조건이네요.”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안 받곤 못 배길 조건이지.”
닉스 챗과 닉스 서클로 전 세계 메신저-소셜서비스를 장악하려면 마케팅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돈을 뿌리다시피 해서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면 후발주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녀석의 계획에 응할 생각은 없다.
급한 건 내가 아니라 2년이라는 리미트를 가진 쪽이었으니까.
난 읽던 서류를 대충 정리해서 그에게 건넨다.
“좋네요. 윈-윈은 이런 계약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하지만 한 배를 타기 전에 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앙금은 풀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용화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싹 사라진다.
“계약 조건은 닉스에 일방적으로 유리해. 이 정도면 충분히 양보한 거라고.”
“서류상은 그렇지만, SG그룹의 지분과 5000억을 비교하면 딱히 제가 유리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그래서 거절하겠다는 거냐.”
녀석이 낮게 으르렁거린다.
“조건은 맘에 듭니다. 다만, 뭔가를 같이 하려면 우리 사이에 신뢰를 쌓은 다음 하는 게 순서겠죠.”
난 대표실 구석에 쌓아둔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사과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애플폰4였다.
“국내에서 쓰려니까 인증을 받아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더군요.”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정용화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난 상체를 앞으로 숙여, 그와 시선을 좁히고 말했다.
“SG텔레콤에서 정식으로 애플폰4를 유통해주시죠. 그게 제 조건입니다.”
대표실에 고요가 찾아온다.
답을 해야 할 신용화는 말하는 법을 잊은 건지. 입을 굳게 다물고만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너, 애플폰을 국내 유통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지?”
“담합해서 막고 있는 국내 시장을 개방하라는 뜻이죠.”
신용화는 두통이 밀려오는지 머리를 부여잡는다.
“신용화 씨가 전에 말했듯, 계속 막는다고 막히는 게 아닙니다. 점유율 1위인 SG텔레콤 입장에선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겠지만 다른 통신사도 같은 생각일까요?”
내가 묘한 웃음을 흘리자, 소파에 기대고 있던 신용화가 자세를 바로잡는다.
“뭔가 정보가 있구나.”
“이미 KT가 움직였습니다. 올해 안엔 한국에 애플폰이 들어올 겁니다.”
“끄응…….”
단기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신용화 입장에선 대형 악재다.
KT가 단독으로 애플폰을 들여오면 과반을 차지한 SG텔레콤의 점유율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국내로 들여올 거면 SG텔레콤에서 선수 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거기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해.”
“복잡할 게 뭐 있습니까? 국내 시장이야 통신사가 갑이나 마찬가질 텐데요.”
국내 시장은 통신사를 거치지 않으면 휴대폰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시장에서 점유율 과반이 넘는 SG텔레콤은 갑 중의 슈퍼 갑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성전자 때문에 그러시죠?”
신용화가 경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너, 혹시 독심술 같은 거 배운 건 아니지?”
“정황상 뻔한 겁니다. SG텔레콤은 오성전자에게 가장 많은 푸쉬를 받은 통신사 아닙니까? 그런데 갑자기 애플폰을 들여오겠다고 하면 오성 입장에서 배신이나 마찬가지라 느끼겠죠.”
“그걸 알면서 애플폰을 들여오라고 말한 거냐? 젠장, 나중에 어긋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신용화 씨, 안정적으로 회사를 굴려서 신석호 씨에게 넘겨주는 게 목표입니까?”
“뭐?”
자신의 형이자, 넘어서야 할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싹 바뀐다.
“그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배팅하세요. 평범하게 끌고 가봐야 판을 뒤집을 상황은 오지 않습니다. 하물며 2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니 더더욱 그렇고요.”
“회사가 도박판으로 보여?”
말을 그렇게 했어도 그가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오성전자와 관계가 틀어지면서까지 나와 손잡는 게 이득인지 저울질하고 있겠지.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전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도록 하죠.”
“이봐. 계약은? 이리 좋은 조건을 마다한다고? 너 제정신이야? 이건, 하- 정말, 이게 무슨, 무슨, 공짜로 5000억을 빌려주겠다고 하는데. 야, 인마!”
신용화는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자 당황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여유를 가장하던 그의 가죽이 완벽하게 벗겨진 순간이다.
“신용화 씨. 아직도 착각하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뭐, 착각?”
“닉스에 돈 대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는데 굳이 SG텔레콤의 돈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잊지 마세요. 제겐 당신 역시 흔한 투자자 중 하나일 뿐이란 말입니다.”
‘흔한’이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녀석도 느꼈을 거다.
이번 거래는 수평적인 거래가 아니라, 이미 추가 기울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신용화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 댄다.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여기서 더 찍어 누르면 일방적인 갑질이 되는 거고, 한발 물러서면 기술이 된다.
당연히 내 선택은 후자였다.
“사실, 계약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5000억을 무상으로 빌리긴 쉽지 않죠. 게다가 닉스로서도 국내에 믿음직한 파트너가 있으면 든든하고요. 하지만…….”
일부러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에 텀을 둔다.
내 말을 기다리는 그의 입이 더 바싹 마르도록.
“적어도 돌아갈 다리 정도는 불태우고 오시죠. 그래야 우리 사이에 실낱같은 신뢰라도 생길 테니까요.”
* * *
이태리 직수입 원단으로 만든 맞춤 정장과 초고가로 유명한 파텍필립 시계. 서류가방 역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다.
대외 이미지를 위해 옷차림은 잔뜩 꾸몄지만, 알맹이는 단시간에 바뀔 수 없었다.
한 끼에 30만 원이 넘는 한정식보다 누나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맛있었고, 오성급 호텔 주방장이 내주는 양식보다 피자를 선호했다.
26년 동안 MSG 덩어리에 길든 싸구려 입맛이 어디 가겠는가.
오늘도 술자리를 위해 내가 찾은 곳은 고급 일식집이 아니라 동네 호프집이었다.
번잡스러운 가게 구석에선 닉스 이노베이션의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1대 주주인 강현우와 2대 주주인 박준오.
안타깝게도 공동 2대 주주인 강현경은 불참했다.
잔에 반쯤 남은 맥주를 한 번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달달한 치킨을 입에 물자, 입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난 잔에 맥주를 채워 넣으며 말을 꺼낸다.
“미국에서 일이 잘 풀리셨다면서요.”
“잘 풀린 건 아니고, 반반쯤?”
테이블에 놓인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을 번갈아 가리키자 매형이 피식 웃어버린다.
“반반이면 하나는 건졌다는 거네요.”
“안 좋은 소식부터 전해줄게. 예전부터 네가 알아보라던 업체 중, 우버는 인수에 실패했다.”
우버는 운송 네트워크 회사다.
차량과 승객을 연결해서 수수료를 받는 네트워크 서비스가 주력이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반인이 제공하는 택시였다.
간단한 중개 서비스로 시작한 우버는 5년 후.
GM, 포드, 혼다 같은 완성차 업체의 가치를 추월해 버릴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우버는 꼭 인수해야 합니다. 돈을 얼마를 쓰든 상관없어요.”
“누군들 안 사고 싶었겠냐. 문제는 매각 의사 자체가 없어. 투자로 접근하려 해도 벌써 들어온 자금이 많은지 미팅을 잡는 것도 거절하더라고.”
우버는 내 그림에 필수적 퍼즐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인수해야 했다.
“우버 인수는 계속 진행해주세요. 라이드 쉐어링 서비스는 닉스 챗과 연계할 중요 포인트니까요. 진짜, 진짜 중요합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신경 쓰는 수밖에.”
매형은 잔을 비우고 똥집을 잔뜩 집어 입안에 쑤셔 넣는다.
난 매형이 씹어 넘길 시간을 주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좋은 소식은요?”
“오랜 기간 준비했던 IM케미컬 인수가 끝났다는 소식이지. 생각했던 거보다 상태가 안 좋은지 인수 의사를 밝히니까 옳다구나 하고 팔아버리더라고.”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IM케미컬은 신소재를 연구, 개발하는 업체다.
한때,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서 주가가 엄청나게 뛰었지만, 시장성이 없다는 게 밝혀지면서 주가는 바닥까지 폭락한 상태였다.
“보나마나 잔뜩 후려쳤겠네요.”
“후려친 게 아니라 적정 가격을 제시했다고 말해야지.”
매형이 말하는 적정가는 기준가의 절반을 뜻한다.
“한 번 현장에 들러야겠네요. 아, 말 나온 김에 내일 어떠세요?”
“나 어젯밤에 입국했어. 조금은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닉스가 어떤 회삽니까? 가족 같은 회사잖아요. 매형, 가족은 함께 하는 겁니다.”
“내 마음의 가족에서 앞 글자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그런 말 하지 마라.”
“에이, 왜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세요.”
“인마, 네가 내 나이 돼봐. 어디 체력이 예전 같은가. 난 3일간 휴가 쓸 테니까 찾지 마라.”
매형은 그렇게 소리치곤 술만 벌컥벌컥 마셔댄다.
내가 좀 심하긴 했나?
어찌 됐든, 이번 IM케미컬과 합병이 끝나면 닉스 이노베이션은 미국 시장에 우회 상장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을 직접 상장하려면 조건도 까다로울뿐더러 시일이 오래 걸리지만, 우회 상장은 비용과 시간 모두가 절감된다.
서로의 잔을 한 번 비우자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된다.
“그보다 SG텔레콤에서 가져다 준 투자 제안서 봤다.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런 조건이 나온 거냐? 완전 거저나 다름없던데.”
“그거 거절했어요.”
똥집을 씹던 매형의 턱이 딱 멈춘다.
그리곤 이 미친놈이 또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음,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그런 놈을 봤더라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테니까.
“매형,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다 생각이 있어서 거절한 거니까요.”
“야 이……. 아후. 진짜, 50억도 아니고, 5000억을 빌려준다는데 거절하는 놈이 어디 있어? 농담이지? 농담이라고 해줘, 제발.”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확인사살에 들어가자 연신 술만 마셔대는 매형.
그러곤 땅이 꺼지라고 한숨까지 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속이 타는 가보다.
“이달 말이면 애플에서 로열티가 들어오지 않나요?”
“뗄 거 떼면 500만 달러가 조금 넘더라. 내달 말에 들어오는 로열티부터는 확 뛰겠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애플폰4의 1000만대 판매는 다음 달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로열티 배율이 1%로 조정될 테니, 벌어들이는 로열티의 단위가 달라질 거다.
“그거면 회사 운영 자금으론 충분하지 않나요?”
“운영 자금이 모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5000억이면 전 세계에 닉스 챗 광고 폭격을 때릴 수 있는 돈이라고.”
“광고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닉스 챗을 설치할 수 있는 기기는 애플폰이 유일하잖아요. 이미 대다수의 애플폰엔 닉스 챗이 깔려 있다고요.”
“그래, 네 말이 맞긴 한데. 아까운 건 아까운 거야. 5000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은행에만 넣어둬도 연 100억은 먹는 돈이잖아. 넌 그걸…… 어휴. 말해봐야 내 속만 썩어들어 가지.”
매형은 아까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잔을 비운다. 난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돈, 다시 돌아온다고 확신합니다.”
“확신이라…… 신용화가 빈정 상해서 다시 투자하려 할까? 재벌가 아들내미의 자존심이 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도 닉스 챗과 닉스 서클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며 똥줄이 타고 있을걸요.”
첫날, 닉스 서클은 가입 요청이 폭주해 잠시 서버를 내리는 일이 있었지만, 가입 대기 시스템을 적용한 다음부터는 깔끔하게 연동을 이어나갔다.
그로부터 나흘째로 접어든 지금.
닉스 챗은 2000만 명의 사용자를 돌파했으며, 닉스 챗 이용자의 30%가 닉스 서클과 연동을 마쳤다.
앞으로도 애플폰4의 판매가 늘어나면 날수록 닉스도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다.
“어차피 SG텔레콤에서 투자받을 생각이었다면 왜 거절했어?”
“쉽게 허락해주면 버릇 나빠집니다.”
“허허, 오너 일가에 갑질하려 들다니.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딱히 갑질만을 위해선 아닙니다. 국내에 애플폰4를 들여오는 조건을 추가로 걸었어요.”
그 말을 들은 매형은 책상을 탁하고 내려친다.
“옳거니! 그거 좋구나. 국내 과반을 차지하는 통신사가 애플폰을 들여오면 닉스 챗이 한국 시장도 쉽게 먹을 수 있겠어.”
표면상으로 드러난 이유는 그게 맞지만…… 일단 그 정도로만 말해두는 게 좋겠지.
“그죠? 저만 믿고 쭉 가시면 됩니다.”
내가 사악한 표정으로 미소를 흘리자.
“이 음흉한 자식. 네가 내 편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다.”
“자, 다시 한잔하죠.”
내가 잔을 치켜들자 매형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잔을 마주쳐 온다.
“닉스의 성공을.”
“위하여!”
쨍!
목구멍에 맥주를 단숨에 흘려 넣는다. 동시에 목이 얼어버릴 것은 청량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상쾌한 기분은 잠시.
사라졌던 걱정들이 다시 되돌아온다.
닉스 챗. 닉스 서클. 애플OS.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안드로이드OS.
요즘 들어 생각이 많아졌다.
스마트폰에서 애플OS 점유율은 고작 15% 남짓.
거기에 내년부턴 구글의 안드로이드OS가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할 테니 지금보다 경쟁은 더 치열해질 거다.
그전에 시장 장악을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SG텔레콤의 5000억 말고도 묵직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전세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그런 한 방 말이다.
우린 알딸딸할 때까지만 술을 마신 후 자리를 파했다.
우선 대리를 불러다 매형을 보냈고, 난 서울 근교에 임대한 오피스텔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무장한 경비업체 직원 두 명이 경계 중이다.
그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경례를 해온다.
카드키를 가져다 대고 추가 비밀번호까지 입력한 후에야 현관문이 열린다.
삐빅-
서른 평 남짓한 실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외부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보안창 탓이리라.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이 오피스텔은 호화로운 감옥을 보는 듯했다.
“후, 덥네.”
늦게까지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넥타이만 풀어헤치곤 옷을 갈아입는 것도 미룬 채 방으로 향했다.
그런 나를 맞이한 것은 육중한 두께의 보안문이다. 이 문은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어지간한 폭발에도 견딘다고 한다.
지문과 홍채를 찍고, 정맥까지 스캔하는 삼중 보안을 거친 후에야 철컥하곤 문이 열렸다.
고요한 실내에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이 울려온다.
책상엔 비커와 삼각대가, 수납장엔 특수 용액들이 오와 열을 맞춰 늘어져 있다.
반대편엔 다수의 PC가 전류와 전압, 온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그래프로 뿌려주고 있다.
마치 연구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이 모든 중심엔 ‘L’ 형태로 3개가 켜켜이 쌓여 있는 물체가 연결돼 있다.
이건 애플폰XI에서 빼낸, 일명 [리튬 에어 배터리]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리튬 에어 배터리는 30년간 포터블 배터리 시장을 독점해온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의 다음 세대 배터리로, 기존 배터리보다 3배 많은 충전량과 절반 가격으로 제조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
난 이걸로 IT업계의 판도를 뒤엎을 생각이다.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 드론, 태양광 ESS 시스템 등등. 모든 미래 사업을 지배하는 성배, 그게 리튬 에어 배터리의 힘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