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45화 (45/206)

기적의 IT 재벌 45화

신형 애플폰 출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애플의 행보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출시 일정부터 시작해서 통신사와의 조율, 국가별 로컬 정책, 보안, 가격 책정까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게다가 애플은 공장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팹리스 업체였던 탓에 바다 건너에 있는 공장의 제품 수율이나 QC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CEO인 잡스의 부재도 큰 문제였다.

애플엔 우수한 임직원이 많았지만, 잡스처럼 카리스마로 일을 밀어 붙일만한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사소한 문제도 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많았고, 회의가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일이 태반이었다.

임시 CEO를 맡은 톰 쿡은 여느 때처럼 릴레이 회의에 시달리다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의자까지 도달할 힘이 없어, 소파에 몸을 늘어뜨렸다.

“이거, 스티븐이 왜 쓰러졌는지 알 거 같은데.”

잡스의 간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사의 말론 앞으로 업무 복귀는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잡스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비추어볼 때, 6월에 있을 신제품 발표 전까지는 무리해서라도 복귀 선언을 하고 말리라.

그전까지 큰 문제없이 애플을 굴리는 게 임시 CEO인 쿡의 임무였고 말이다.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도착한 서류가 있습니다. 지금 가져다 드릴까요?”

잡스의 담당 비서인 제리의 목소리였다.

마음 같아선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녀가 직접 가져올 정도면 CEO에게 직통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문서라는 뜻이다.

쿡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문을 연다.

“어디서 온 건가요.”

“닉스 소프트에서 보내왔습니다.”

“닉스 소프트? 거기서 제게 서류를……?”

서류봉투의 받는 사람란엔 애플의 CEO. 추신으론 민감한 사항이 포함돼 있음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민감한 사항이라고?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걸 써둔 거지.”

쿡은 귀찮다는 듯 서류봉투를 개봉한다. 안에는 사진 몇 장과 서류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대충 내용을 훑어가는데, 제목부터 시선이 멈춰 버렸다.

[닉스 소프트의 독자적 앱을 애플 임원이 무단 도용한 사건에 대한 내용 증명]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그는 피곤함을 잊은 채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본사(닉스 소프트)가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카피한 업체를 추적하던 중, 귀사(애플)의 임원 한 명이 불법 행위에 관여한 사실을 알 게 됐습니다.

공정한 소프트웨어 경쟁체제를 지향하는 애플의 임원진이 이번 사건에 주도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에, 본사는 통탄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은 물론이고…….]

목이 메는 게 느껴져 여기서 더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이 서류대로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말단 직원도 아닌, 임원이 무단 카피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면…….

‘지금까지 앱스토어 활성화에 기울인 시간과 노력들이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갈 거다.’

쿡은 눈을 부릅뜨고 다시 서류를 읽어 내려간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목조목 적혀 있는 조사 내용은 허위라고 하기엔 너무 디테일했다. 거기다 첨부된 사진은 결정타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곳엔 코딩하는 동양인들과 함께,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같이 찍혀 있었다.

그는 애플의 CMO인 제프 베이커였다.

‘제프. 이 망할 자식. 요즘 하는 행동들이 이상하다 싶었더니만.’

사진이 없었더라도 범인이 그라는 정황 증거는 차고 넘쳤다.

통신사와 마찰을 핑계로 닉스의 선탑재 앱 변경을 요청한 것도 그였고, 잡스가 직접 맥 월드 엑스포에서 닉스 챗의 수상을 지시했는데 그걸 뒤집으려 들었던 것도 그였다.

‘닉스 챗의 카피앱. 그걸 밀어주기 위해서였다면 그가 밀어붙였던 모든 일이 퍼즐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

급격한 피로가 몰려와 눈을 비볐다.

속이 쓰려 오는 게 얼마 전 치료 받았던 위궤양이 재발한 것만 같았다.

“제리, 당장 제프를 호출해 주세요.”

“베이커 씨는 오전에 대만 공장으로 떠나셨습니다. 생산 라인 쪽을 직접 확인하신다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돌아오라고 하세요. 지금 당장.”

* * *

내용 증명을 보낸 이튿날, 그렇게 만나 뵙기 힘들던 애플의 임시 CEO 톰 쿡이 나를 직접 찾아왔다.

이유는 뻔했다. 이번 일을 묻어 달라는 것.

지금 타이밍에 스캔들이 생기면 앱스토어 개발자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있었으니, 예상할 수 있는 행보였다.

그가 내건 조건은 닉스 챗의 선탑재 재개와 더불어, 추가 홍보 지원이었다.

마음 같아선 법정까지 끌고 가서 제프 베이커를 매장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회사의 대표로서 당장의 감정보다 장기적인 이득을 취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애플과 닉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 말이다.

결국 앱스토어 수수료를 10% 감경하는 조건을 추가로 얻어내고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제프 베이커는 CMO자리에서 사퇴하고 아일랜드 지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잠잠해지면 다시 일선으로 복귀하겠지.

이번 사건으로 느낀 점이 많다.

내가 주력으로 밀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약점과 애플OS 플랫폼에 종속된 닉스 챗의 한계.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기보다, 다른 둥지를 찾아 나서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 리치 호텔.

그동안 스위트룸은 기념일이나 돈이 썩어나는 사람들의 전유 공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직접 스위트룸에 묵어보니 생각이 바뀐다.

최상급 룸서비스야 두말할 것 없고, 조용한 환경과 딸린 응접실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었다.

스위트룸 응접실엔 나와 매형, 그리고 회색 코트를 입은 무표정한 사내가 둘러앉아 있다.

“사용자님, 요청하신 건은 잘 처리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계속 감시합니까?”

“이젠 됐습니다.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으니까요.”

내 맞은편에 앉아 나를 사용자라고 부르는 사내는 SPI(solider private investigator)에 소속된 탐정으로 자신을 그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평범한 외모를 가졌지만, 쳐다보고 있자면 메마른 황무지처럼 건조한 표정 때문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시점으로 의뢰를 종결하겠습니다.”

내가 맡긴 의뢰는 애플 임원들의 감시였다.

기업 임원급의 감시는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그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의뢰에 착수했고, 별거 아니라는 듯 의뢰를 처리해냈다.

“잔금 처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게 된다.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비밀요원이 이런 느낌일까?

타깃이 되면 이런 사람에게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뼛거릴 지경이다.

잠시 후.

이체가 완료됐다는 팩스가 도착했고, 그레이는 어딘가 전화를 걸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체를 확인했습니다. 이건, 이번 조사 보고서입니다.”

그는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서 내밀며 말을 덧붙인다.

“의뢰가 끝나는 즉시 조사 내용은 전수 폐기됩니다. 따라서 보고서를 분실하면 재발급은 불가능하다는 걸 미리 알려드립니다.”

“재발급 요청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길.”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레이가 떠났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마치, 누아르 영화의 마약 거래 현장처럼 이뤄졌다.

“전에도 느꼈지만, 분위기가 장난 아니네요. 역시 전문 탐정은 다르다고 할까요?”

“탐정이라고 다 저렇진 않아. SPI가 특별한 거지. 그들은 전역한 정보 장교들이 주축으로 만든 탐정 업체거든.”

매형도 목이 탔는지 연신 찬물을 들이켰다.

그걸로 모자랐는지 차가운 맥주까지 한 캔 따다가 벌컥벌컥 마셔댄다.

“그보다, 넌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의뢰를 맡긴 거냐? 내 살아생전에 너처럼 간땡이가 배밖에 나온 놈은 처음 봤다.”

“자주 듣는 이야기네요.”

내가 너스레를 떨자, 매형이 인상을 팍 쓴다.

“이번에 의뢰한 곳이 SPI라서 다행이지, 어쭙잖은 탐정 사무소였다면 네가 당할 수도 있었어. 경영은 네가 알아서 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 생길만한 일은 내게 언질이라도 주고 진행하자, 응?”

탐정업이 발달한 미국은 SPI처럼 전문적인 탐정 업체도 있었지만, 반대로 간판만 그럴싸하게 걸어두고 허접스럽게 운영되는 곳도 넘쳐났다.

질이 나쁜 탐정은 의뢰를 일부러 질질 끌거나, 역으로 의뢰인을 협박하는 일도 잦았다.

“저도 생각 없이 의뢰한 건 아닙니다. 자, 보세요.”

보고서를 넘겨받은 매형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간다.

“엥? 뭐야. 이동 루트만 땄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의뢰했습니다. 이동 루트만 감시하면 도청기나 몰래 카메라 같은 증거가 안 남으니까 까요.”

“그것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덕분에 제대로 한 건 걸리긴 했다만.”

본디 의뢰의 목적은 통신업계와 붙어먹는 임원의 뒤를 까보는 거였다.

그걸 물고 늘어지면 선탑재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감시하는 내내 통신업계와 접촉하는 애플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매번 휴지조각 같은 보고서만 들어오던 중.

행사장에서 선탑재 불가를 통보했던 제프 베이커의 기록에서 이상이 포착됐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대만 출장이 잦았는데, 알고 보니 몰래 개발자들을 모아 닉스 챗을 카피한 모바일 메신저를 개발하고 있던 것이다.

단순 카피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모바일 메신저를 운영할 셈이었는지, 대만 사무실엔 개발자가 스무 명이나 일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개발자 중엔 초창기 닉스 소프트 퇴사자 2명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매형은 보고서를 다 읽어 내려간 후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애플의 임원이 닉스 챗을 카피하고 있었을 줄이야.”

“저도 뭔가가 있을 거란 생각만 했지. 이런 대어가 걸릴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애플의 임원이 뭐가 아쉬워서 스타트업의 앱을 카피하고 있었을까?”

“모바일 메신저는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합니다. 그 말은 즉, 선점만 가능하다면 엄청난 돈이 된다는 거죠.”

“고작 메시지를 주고받는 앱인데, 애플의 임원이 탐낼 정도라고?”

“오히려 임원이니까 더 탐났겠죠. 제프 베이커는 이번 선탑재를 막을 정도로 파워 있는 사람이니 자신의 앱을 흥행시키는 것쯤은 쉽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라면 닉스 챗의 선탑재를 막고, 순위를 조작하거나 심사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카피앱을 밀어줬을 거다.

내가 만약, 힘이 없었다면 두 눈 뜨고 그 짓거리를 당했을 테고 말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을 거다. 힘을 키워야 한다. 최대한 빨리.

잠시 말을 고르던 매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현우야. 난 솔직히 메시지 앱으로 어떻게 돈을 벌지 모르겠다. 기껏해야 광고? 설령 돈이 벌린다 해도 그게 큰돈이 될지는 회의적인 입장이야. 차라리 게임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너 NG소프트 주식도 있잖아.”

“모바일 메신저 시장은 돈이 돼요. 그것도 매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이요.”

“어휴,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다시 선탑재되기로 했으니 잘 된 거겠지.”

미래가 어찌 될지 까맣게 모르는 사람으로선 고작 메시지 앱이겠지만.

글쎄, 그 메시지 앱이 20조에 팔려 나갔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건사고는 많았지만, 닉스 챗의 성적은 순항 중이다.

맥 월드에서 [혁신][디자인] 2개 부문에서나 상을 받은 탓에 앱스토어 유틸리티 부문 1위를 차지했고, 다운로드 횟수도 200만을 넘어섰다.

1000만대 남짓 팔린 휴대폰에서 200만 다운로드면 가히 독보적인 성적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이제 한 달 후면 신형 애플폰이 출시된다.

선탑재된 닉스 챗이 전 세계에 뿌려지면 닉스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 * *

본디 1월에 열렸어야 할 맥 월드 엑스포가 4월로 밀린 시점에서 미래는 변해 버렸다.

그 영향인지 6월에 개최 예정이던 WWDC(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는 한 달 미뤄진 7월에 열리게 됐다.

이곳에서 또 한 번 미래가 바뀐다.

WWDC의 발표장엔 본디 부사장인 필 실러가 올라와야 했지만, CEO로 복귀한 스티븐 잡스가 무대에 서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WWDC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여러분께 어썸한 제품을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본디 애플폰3GS가 발표됐던 현장에서는.

[여러분에게 차기 애플폰을 공개합니다. 바로, 애플폰4입니다.]

애플폰3GS를 건너뛰고, 내가 디자인한 애플폰4가 세상에 공개됐다.

독점적인 모바일 메신저 닉스 챗을 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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