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44화 (44/206)

기적의 IT 재벌 44화

눈을 몇 번이나 끔뻑거렸다.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다운로드 숫자는 500명씩 늘어간다.

2000명에서 2500명으로, 다시 3000명이 된다.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가는 숫자는 헛것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허허, 3천 명? 버그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오늘 중으로 10만 명을 돌파할지도 모르겠네요.”

“서버가 버틸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브릭이 가슴을 탕탕 친다.

“오늘 홍보 영상 뜨는 걸 고려해서 50만 명까지는 무리 없이 수용할 서버를 임대해뒀죠. 아쉬운 게 있다면 전부 미국 서버라 해외에서 접속하면 속도가 안 나온다는 것 정도?”

“닉스 코리아 쪽에도 서버를 연결하도록 하죠. 아시아에서 접속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니까요.”

“고양이 손?”

“아, 그건 일본에서 온 속담인데 한국에서도 쓰이는 표현입니다. 고양이 손으론 일에 도움이 안 되지만 그거라도 써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느낌이랄까요.”

“오! 귀여운 느낌의 비유네요.”

나와 브릭이 떠드는 동안 노트북을 검색하던 유수아가 내 팔을 잡아끈다.

“현우 씨, 이거 좀 보세요. 기사예요, 기사.”

“무슨 기사요?”

“여기요. 아예 현우 씨 얼굴이 1면에 떠 있어요.”

유수아가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리며 한 곳을 가리킨다.

그곳엔 보스턴의 개발자 포럼에서 찍힌 내 사진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맥 월드에 발표될 제품은 역대 최고의 판매량을 갱신할 것” …… 애플 디자이너의 자신감?]

맥 월드 엑스포에 참석한 애플의 디자이너이자 닉스의 대표이사인 대니얼 강(사진1)은 이번에 발표될 제품이 “역대 최고판매량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의 말로 비추어볼 때, 이번에 공개될 제품은 새로운 제품이 아닌, 기존 제품의 업그레이드 판으로 보이며 새로운 디자인일 가능성이 크다.

평소 대니얼 강은 애플의 디자인 미팅에 자주 참여하는 모습(사진2)이 포착된 만큼, 이번 제품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줬으리라 예상된다.

한편, 그가 이끄는 닉스 소프트에서 개발한 모바일메신저, 닉스 챗(사진3)이 이번 행사에서 정식으로 공개된다고 하니, 앞으로 심화할 앱스토어 경쟁의 귀추가 주목된다.

기사를 다 읽은 후에야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만든 앱도 정식으로 공개되니까 기사에 잘 써주세요.’

큰 기대 없이 툭 던진 말에 이 정도 파문이 생길 줄이야.

맥 월드 엑스포는 이제 시작된 만큼, 별다른 기삿거리랄 게 없었다.

그 때문인지 내 인터뷰를 다른 언론사까지 퍼 나르고 있었다.

기사를 끝까지 읽어나간 브릭이 거친 콧김을 내뿜는다.

“아직 영상도 안 떴는데 이런 화력이면, 영상 공개 후엔 진짜 10만 명 뚫는 거 아닐까요?”

기대에 찬 브릭과는 달리, 난 걱정이 앞섰다.

“브릭, 진짜 50만 명은 버틸 수 있는 거 맞죠?”

“일단 예상 수치는 그렇긴 한데…….”

뒷말이 기어들어 간다.

“무료 앱은 설치와 삭제가 쉬워서 첫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거 아시죠?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지, 사람 많이 탔다고 가라앉으면 안 됩니다.”

“무, 물론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브릭은 안절부절못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서버 상황도 다시 점검하라고 해야 할 거 같고, 일단 동영상과 이미지 전송은 막아두죠. 아, 아니다. 이참에 서버를 증설하는 편이 낫겠군요.”

아직 행사 도중인데도 브릭은 휴대폰을 붙잡고 뛰어나가 버렸다.

“행사가 끝나고 가도 괜찮을 텐데…….”

내가 중얼거리자,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유수아가 말을 받는다.

“두 사람, 진짜 부럽네요.”

“예? 뭐가요?”

“같은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옆에서 지켜보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 같아요.”

“스타트업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해서 실제로 일해 보면 죽을 맛입니다.”

“저는 그것마저 부러운데요.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이행하기 급급한 대기업 문화에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니까요. 앗! 내가 좋아서 대기업에 입사했으면서 무슨 배부른 소리람. 미안해요. 실없는 소릴 해서.”

“아니에요. 저도 국내 기업 문화를 잘 알기에 공감이 가네요. 이참에 수아 씨도 스타트업 쪽으로 이직하는 건 어떤가요?”

내 말에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스마트폰 기획, 제조를 스타트업 수준에서 할 수 없잖아요. 그건 해외 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아는 스타트업 중에 그런 곳이 딱 하나 있어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어디요? 그런 곳이 있어요?”

“닉스라고 미래에 애플을 넘어설 회사죠.”

“에……?”

순간 멈칫한 그녀가 날 뚫어지라 쳐다본다.

단상에서 떠들고 있는 제프 베이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녀가 내 팔을 툭 치며 말한다.

“뭐예요, 정말. 진짜 기대했잖아요.”

“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꿈은 클수록 좋다잖아요.”

세계 1위 IT업체인 애플을 스타트업인 닉스가 넘어선다는 건 지금으로선 허무맹랑한 소리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플랜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맥 월드 엑스포의 메인 행사는 순조롭게 반환점을 돌았다.

새로운 애플OS에 추가기능을 발표하고, 앞으로 애플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리는 시간이 이어진다.

객석에 앉은 기자들은 새로운 애플의 제품이 언제 발표되는지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내 제프 베이커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고, 임시 CEO를 맡은 톰 쿡이 바통을 이어받아 올라선다.

흘러나오던 배경음악까지 변했다.

신제품 공개가 임박했다는 기대감이 객석을 휘감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애플의 임시 CEO를 맡은 톰 쿡입니다.]

인사말과 함께 무대 뒤 프로젝터가 켜졌는데.

떠오른 건 신제품 영상이 아니라 앱스토어 시상식이었다.

잔뜩 기대했던 기자석에서 탄식이 흘러 나온다.

분위기를 신제품 공개 쪽으로 몰아놓고 시상식을 해버리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우 씨, 저기 저 사람. 제프 베이커 아니에요?”

유수아가 가리킨 곳엔 방금까지 무대에 있던 제프 베이커가 객석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맞는 거 같네요.”

“그가 왜 아래로 내려오는 걸까요? 앗, 이쪽으로 와요.”

나와 베이커는 눈을 마주쳤다.

객석이 어두웠지만, 그가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눈은 웃지 않는, 그런 미소 말이다.

그는 천천히 우리가 앉은 자리까지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대니얼.”

“베이커 씨,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어인 일로?”

“조용히 이야기 좀 나눌까 해서요. 일단 밖으로 나가실까요?”

“곧 닉스 챗의 영상이 발표될 텐데요.”

난 그를 빤히 쳐다봤다.

행사가 진행 중인데 갑자기 나가서 이야기하자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그도 그걸 아는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밖에 시간이 없을 거 같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는지요.”

“애플과 닉스가 맺은 계약에 중대한 변경사항이 있습니다.”

무대 뒤편에 마련된 임시 휴게실.

그곳에 나와 마주 앉은 베이커는 대뜸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닉스 챗은 차기 애플폰에 선탑재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충격적인 소식.

하지만 덤덤하게 말이 나왔다.

“그렇군요.”

내가 별 동요가 없자 오히려 베이커가 놀란 눈치다. 난 그가 듣길 원하는 질문을 던졌다.

“선탑재를 못 시키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애플폰의 Wi-Fi 기능 때문입니다.”

난 팔짱을 낀 채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는 날 슬쩍 쳐다보더니.

“통신사들은 애플폰이 자신들의 파이를 뺏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계에 엄청난 로비를 넣는 중이고요.”

“그것과 닉스 챗이 무슨 상관입니까?”

“애플폰에 탑재된 Wi-Fi는 데이터 사용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통신사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닉스 챗은 통신사가 가진 문자 메시지 풀을 몽땅 먹어치울 겁니다. 그런 서비스를 통신사들이 반길 리 없죠.”

“하, 통신사? 그쯤은 애플이 눌러버릴 수 있는 위치 아닙니까.”

제조사와 통신사의 관계는 통신사가 절대적인 갑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 제조사일 때 이야기고, 팬덤이 확고하고 대체재가 없는 애플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플은 통신업계와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아이튠스 때문에 음반 업체들과 로비전을 벌인 게 얼마 전인데, 또 로비전을 하긴 부담스럽습니다.”

“그럼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겠다는 이야깁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섭섭하군요. 계약을 깬다는 게 아니라 차선책을 요청한다는 겁니다.”

그가 테이블에 계약서 사본을 내려놓는다. 마치, 지금 당장 확인해 보라는 듯 말이다.

“계약상으론 닉스에서 제공하는 앱 서비스 1건을 선탑재시킨다고 돼 있으니, 닉스 챗 말고 다른 앱을 제시해주시죠.”

계약 당시엔 [모바일 메신저 앱]이라고 명시 할 수 없었기에 앱 서비스라고 해둔 걸 걸고넘어질 생각이구나.

“이달 말이면 차기 애플폰을 공장에서 찍어 내는 거로 압니다. 그 전까지 새로운 앱을 준비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됐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시면 다른 앱을 인수해서라도 제시하세요.”

천하의 애플이 하는 통보다.

오랜만에 갑질다운 갑질을 당해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어째선지 피식거리는 웃음이 먼저 새어 나왔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과거의 나였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숙이고 들어갔겠지. 하지만 지금의 난 그냥 을이 아니다.

애플과 싸워서 이기진 못하더라도 팔 한 짝 정도는 잘라낼 힘이 있는, 슈퍼 을이다.

“전 처음부터 닉스 챗을 선탑재시킬 생각으로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선탑재 불가라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난 테이블에 놓인 계약서 사본을 집어 든다.

“어쩔 수 없다? 그럼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요.”

결심이 섰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쫙- 쫙- 쫙-.

갈가리 찢어져 허공에 흩뿌려지는 계약서.

그는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눈을 부릅뜨고선 쳐다본다.

“선탑재가 무위로 돌아갔으니 애플과 닉스의 계약은 파기입니다. 앞으로 저희 디자인을 쓰고 싶으시면 다시 계약서를 가져오세요. 물론 지금처럼 헐값에 디자인을 쓸 순 없을 겁니다.”

이제 2달 뒤면 신형 애플폰 출시가 예정돼 있다.

이미 설비 라인이 다 깔린 지금, 디자인을 갈아엎는다는 건 엄청난 손실을 뜻했다.

제프 베이커, 당신 사람 잘못 건드렸어.

“뭔가 오해를 하시나 본데, 그러지 말고 우리 대화로 풀어봅시다.”

“대화요? 미국에선 가만 있는 사람 뒤통수를 후려갈겨 놓고 대화하는 풍습이 있습니까?”

“일단 진정 좀 하시고…….”

그를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 구석에 쌓아둔 상자 더미에 다가간다.

그곳엔 오늘 행사에서 발표될 신형 맥북 Air가 담겨 있었다.

“이제 발표될 신형 맥북 Air. 일부분은 제가 디자인한 거 알고 계시죠?”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제품박스에서 맥북 Air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힌지 부분에 힘을 줘, 억지로 비틀어버린다.

얇디얇은 기기는 으득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났다.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노트북의 상판 전면, 베젤, 모서리 마감의 특허는 벌써 닉스가 선점해뒀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그게 무슨…….”

난 대답 대신 맥북 Air의 하판을 그에게 툭 던진다.

뜯겨 나간 상판이 있던 자리는 흉하게 전선만 늘어져 있었다.

“애플이 신형 맥북 Air를 팔려면 이 부분밖에 팔 수 없을 겁니다. 온전한 제품을 팔면 디자인 특허 침해로 막대한 배상금을 토해야 할 테니까요.”

그의 표정은 더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나 보다.

“애플과 소송에 들어가면 닉스도 이득 볼 건 없을 텐데요. 승소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싸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질질 끌며 지치게 할 생각이겠죠.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보여줄 생각입니다.”

난 그의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이가 드러날 정도로 씩 웃었다.

“닉스가 이번 결정을 내린 사람 정도는 시궁창에 처박을 수 있다는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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