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41화
“그때 흡수한 부지가 이렇게 넓었었군요.”
“네가 두서없이 땅을 먹어 치운 탓이지. 저쪽 산 뒤편도 전부 태양광 패널을 설치 중이다. 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워?”
“지도로 봤을 땐, 이리 넓을 줄 몰랐거든요.”
“그게, 회사의 대표라는 놈이 할 말이냐.”
지난날을 돌아보자 쓴웃음이 지어진다.
다른 일에 쓰느라 Sol에너지는 언제나 뒷전으로 미뤘던 게 사실이니까.
뭐, 내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한국에선 닉스 코리아의 터를 잡고 새로운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개발에도 참여해야 했고.
한편으론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닉스 챗을 봐주느라 일주일에 한 번꼴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거기다 애플과는 디자인 협약 건이 걸려 있어, 주기적으로 디자인 미팅에 참석도 해야 했으니.
정말이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국에선 브릭이, 한국에선 서윤서가 팀의 중심을 잘 잡아줬기에 내가 할 일이 줄었다는 것 정도일까?
만약, 그 둘이 없었다면 진즉에 과로로 쓰러졌을 거다.
매형이 멈췄던 차를 다시 출발시킨다.
창문을 열자, 구수한 고향의 냄새가 넘어온다.
“넌 사람 복 하난 많은 놈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떠맡기다시피 한 Sol에너지를 손만호 부장 혼자서 관리하고 있잖아.”
“아아, 그랬죠.”
손만호 부장은 첫인상부터 호감이던 사람이다.
망한 거나 다름없는 회사에 끝까지 남아, 사무실과 자재를 지키던 모습.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배가 침몰하면 짐 하나라도 더 챙겨서 도망갈 생각부터 하는 게 보통이니까.
“내가 가끔 들러서 경영 상황을 체크하는데, 능력이 범상치 않아. 흡수한 업체 측 사람들을 잘 다독여서 회사를 정상화하는데 딱 2주 걸렸다. 게다가 경비직으로 마을 주민을 고용해서 흘러나오는 잡음을 원천봉쇄 했더라고.”
“태양광 패널 공사가 5월이면 끝난다고 했죠?”
“지금처럼 순탄하게만 진행되면 4월에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걸.”
“어쨌든, 이번 3분기 전까지는 공사가 끝나겠네요.”
“너, 9월에 돌아올 채권 만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매형이 말한 채권이란, Sol에너지 인수 때부터 안고 있던 98억 5천만 원의 부채를 말한다.
“지금처럼만 공사가 진행되면 문제없어. 관에 들어가 못까지 박고 있던 회사를 강제로 끄집어내 줬으니 은행에서도 섭섭하게 대하진 않을 거다. 중요한 건 그 이후지.”
“역시 그렇겠죠.”
잠시 대화가 끊어진다.
나도 매형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지만 선뜻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매형 쪽이었다.
“Sol에너지. 꼭 매각해야겠냐?”
“저보다 재무 전문가인 CFO의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난 다시 공을 매형에게 떠넘긴다.
“휴우- 냉정하게 따지면 채무 연장과 동시에 매각이 맞는 결정이겠지. 네가 하려는 IT쪽 사업과 태양광은 연계될 건덕지가 없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매형은 또다시 한숨을 푹하고 쉰 뒤 말을 잇는다.
“손 부장이 회사를 키워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하진 않네.”
그가 어쨌길래 매형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지금은 이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공사가 끝나면 바로 전기 생산에 들어가겠죠?”
“큰 문제가 없는 이상 그렇겠지.”
내 목표는 처음부터 Sol에너지가 아닌 자금의 융통이었다. 목적을 이룬 지금은 Sol에너지를 쥐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문제는 손 부장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너무 빨리 회사를 정상화하고 자리까지 잡았다는 거다.
남 주기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직원이 너무 유능해도 문제라더니, 내가 그런 말을 쓰게 될 줄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Sol에너지를 미래에 흥할 만한 사업으로 끌어 올릴 방법은 없을까?
아이디어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간질거린다.
* * *
지방 일주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는 역삼동에 있는 닉스 코리아 사무실.
임대료는 근처보다 비싼 편이지만 주변에 공실이 많아, 차후 사무실 확장을 염두에 두고 고른 곳이다.
탁 트인 전경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가 전해진다.
처음 사무실을 얻었을 땐, 4명밖에 없어서 썰렁했던 곳이, 이젠 22명의 개발자와 15명의 인턴이 일하는 공간이 됐다.
경력직 개발자들은 배 씨 형제와 서진서의 인맥으로 쉽게 모을 수 있었고.
인턴은 공개 모집을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몰려 면접까지 봐야 했다.
내 생각엔 국내에서 앱스토어용 개발 업체가 없으니, 이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대거 몰린 듯했다.
“오, 대표님. 이번은 미국에 오래 있다 오셨네요?”
반갑게 날 맞아주는 배기태.
그는 새로운 소셜미디어 프로젝트에서 가장 열정적인 멤버다. 나와 함께 회사 수면실에서 노숙하는 동지기도 했고 말이다.
“부산에 좀 들렀다 왔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집에 들르겠어요.”
“아, 집이 부산이라고 하셨지. 한 번도 집에 가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서울에 사시는 줄 알았네요.”
“흐흐, 집에 자주 가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유쾌하게 웃은 배기태가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표님 자리에 닉스 챗 시연 준비를 해뒀습니다. 미국의 닉스 소프트 쪽에선 대표님이 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먼저 진행하라니까 아직 기다리고 있대요?”
“스칼릿이 말하길, 첫 시연은 대표님이 해줘야겠답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꼭 이라네요.”
내 자리에 다가가자 호리호리한 사내가 PC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마이클, 뭐가 잘 안 돼요?”
책상 아래서 낑낑대던 그가 고개를 치켜든다.
“왔군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금방 손 볼 테니까. 이거 접촉 단자가 헐거워서 말썽이라니까요.”
“당신 같은 고급 인력이 기기 세팅이나 하고 있다뇨.”
“말만 고급 인력이지 인턴 교육이나 하는 신센데요, 뭘.”
마이클은 스칼릿 팀의 초기 멤버로, 닉스 챗과 닉스 서클의 연동을 돕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물론, 명목상 이유가 그렇다는 거고.
실제론 그를 중심으로 앱스토어 전문 개발자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국내엔 앱스토어 전문 개발자가 없었기에, 차후 원활한 앱 개발을 위해선 필수적인 일이었다.
처음엔 떨떠름하게 여겼던 마이클이지만 닉스 코리아의 4명밖에 없는 팀장 자리와 더불어 높은 연봉을 쥐여주자 불만이 쏙 들어간 상태다.
그가 꼼지락거리는 사이, 휴대폰이 부르르 떨린다.
해외 전화. 닉스 소프트였다.
“여보세요.”
-보스, 어디예요? 왜 아직 연락이 없는 거예요? 우린 한참 전부터 준비가 끝났다고요.
브릭의 목소리가 격양돼 있다.
한시라도 빨리 베타 버전을 시연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올랐나 보다.
“사무실에 왔습니다. 기기에 문제가 있어서 손 보고 있다네요.”
그때,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마이클.
PC와 내 애플폰을 연결한다.
곧이어 사무실 벽면을 비추는 프로젝터에 애플폰 화면이 대문짝만하게 떠오른다.
“지금 준비가 끝났네요. 그쪽 서버는 문제없죠?”
-우린 언제나 스탠바이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완성된 닉스 챗을 닉스 코리아 직원들에게 공개할 때군요.”
미국에서 설치해온 닉스 챗 베타 버전을 실행시킨다.
먼저 떠오른 건 쨍한 색감이 어우러진 구동 화면이었다.
앱의 첫인상인 구동 화면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조잡하지 않아야 했기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오오, 시작하나 봐.”
“저걸 우리 회사가 만들었다고?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처음 보는 형태야.”
“닉스 챗은 MSM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는데, 디자인 하나로 전혀 다른 느낌이야.”
인턴 직원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아직 피처폰을 쓰던 시기이기도 했고, 모바일용 디자인이라곤 PC 화면을 작게 만드는 게 고작이던 때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닉스 챗의 심플한 디자인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구동 준비 중……]
[서버와 연결합니다. 연결 중…… 연결 완료!]
[닉스 챗을 시작합니다.]
내가 접속한 걸 닉스 소프트 쪽에서도 감지했는지, 대뜸 목소리가 넘어온다.
-접속했군요. 어떤가요? 별문제 없었죠?
“아직까진 순조로워요. 자, 이제 메시지를 보내보세요.”
-자, 그럼 보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온다.
“브릭? 긴장하고 있는 거 아니죠?”
-긴장이 안 될 리가요. 미국에서 해외로 보낸 첫 번째 모바일 메시지. 오늘은 닉스 소프트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거예요. 첫 마디를 뭐로 보내죠? 이런, 이걸 먼저 생각해뒀어야 했는데. Hello World?
언제부턴지 캠코더가 나와 프로젝터를 찍고 있었다. 나중에 홍보용 영상으로 쓴다는 게 이거였나?
긴장감이 내게도 전염됐는지, 땀으로 셔츠가 눅눅해진 게 느껴진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두고 셔츠의 단추를 푸려는 차에 삐롱!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브라이언 브릭: 여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닉스 소프트입니다. 한국의 닉스 코리아는 메시지를 받았습니까?]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브릭은 예술적으로 소질이 없다. 고민해서 나온 메시지가 이런 상투적인 문장이라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달에 가 있는 우주선에 보내는 메시지인 줄 알았을 거다.
-메시지 갔어요? 갔어요? 갔다고 해줘요. 제발.
브릭의 진지한. 아니, 절박함까지 묻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묘한 장난기가 발동한다.
“보낸 거 맞아요?”
-어,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거리가 멀어서 통신이 지연되는 거 아닐까요?”
-그건 아닐걸요. 계산대로라면 지금쯤 가고도 남았을 텐데……. 거기다 우리 쪽엔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패킷도 들어왔다고요.
“데이터가 손실됐을 가능성도 있으니 다시 보내보세요.”
[브라이언 브릭: 메시지 다시 전송합니다. 닉스 코리아, 응답하세요.]
[브라이언 브릭: 저기요?]
[브라이언 브릭: 보스, 메시지 안 보여요?]
[브라이언 브릭: 오 제발. 신이시여.]
옆에서 마이클의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찌나 웃어대는지 입을 가리고 있는데도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다.
이 이상 놀려먹으면 너무 가혹하겠지.
[대니얼: 닉스 소프트 직원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휴가를 떠나셔도 됩니다. =)]
메시지의 전송이 끝나고 5초 정도 지났을까?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호우! 호우! 우리가 해냈어! 해냈다고!
-휴가다! 휴가! 휴가! 브릭, 우리 언제부터 휴가 갈 수 있는 거예요?
-지금 당장! 롸잇 나우! 쏘리 질러!
-예에에에에에!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
바람 빠지는 폭죽 소리도 나는 거 같고 비명에 가까운 외침도 들려온다.
“저기 브릭? 제 말 들려요?”
내가 떠들어봐야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돌아오는 건 광란의 함성소리 뿐.
“어쩔 수 없나.”
난 브릭과 연결된 대화방을 내려두고 연락처 탭으로 넘어갔다.
연결된 애플폰3G는 미국에서 실사용 중인 휴대폰이었기에 제법 많은 연락처가 저장돼 있었다.
연락처 목록을 훑어 내려가던 도중, 내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된다.
[스티븐 잡스]
연결해봐? 어쩌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잡스의 연락처를 선택해, [대화방으로 초대하기] 버튼을 터치하자. 잠자코 있던 마이클이 눈을 똥그랗게 뜬다.
“진짜 스티븐 잡스예요?”
“그럼, 가짜 스티븐 잡스도 있습니까?”
그사이에 몇 명이 더 다가와 눈을 빛낸다.
“애플의 스티븐 잡스? 대표님 잡스랑 아는 사이였어요?”
평소 말수가 적던 서윤서였다. 그녀는 흥분했는지 양 뺨에 홍조가 올라 있었다.
“우리 대표님이 애플의 디자인 파트너잖아. 너, 그거 몰랐어?”
“대애박! 선탑재 얘기 나올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대표님이 진짜 대단한 분이었구나.”
“어쩐지 닉스 서클에 들어가는 샘플 디자인도 뭔가 특별하더라니.”
닉스 소프트에 이어, 닉스 코리아까지 시끌시끌해졌다. 사무실이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운 와중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스티븐 잡스(Guest)님이 입장했습니다.]
“와, 와, 와, 왔어요. 대니얼, 잡스가 왔다고요. 잡스가!”
“진정해요, 마이클. 그러다 숨넘어가겠어요.”
호들갑을 떨어대는 마이클을 진정시키고 메시지를 전송시켰다.
[대니얼: 반갑습니다, 잡스. 초대에 응해주셨군요.]
[스티븐 잡스(Guest): 음? 대니얼? 내가 아는 디자이너 대니얼이 맞는가?]
[대니얼: 맞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닉스 코리아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죠.]
[스티븐 잡스(Guest): 자네가 만들고 있다던 모바일 메신저가 이거로군. 닉스 챗이라고 했던가? 아니, 잠깐. 난 앱을 설치한 적 없는데? 대니얼, 앱도 없이 어떻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