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40화
오마이투데이 인수전은 NHU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최종 인수가는 52억 9천만 원.
본래라면 20억대로 매각됐어야 할 기업이 배는 더 비싸게 팔린 셈이다.
물론, 난 그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트위터는 5억 달러짜리 인수 제안을 거절했고, 2012년에는 3천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0억 달러에 팔려 나간다.
참고로 2019년엔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의 광고 매출로만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하니, 소셜미디어의 실제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당장 오마이투데이에 52억 9천을 투자한 NHU의 판단은 소셜미디어의 미래를 생각하면 괜찮은 판단이다.
물론, 그 가치를 끌어냈을 때 이야기겠지만.
두 기업의 M&A 전문가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난 슬그머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혼자가 아닌, 오마이투데이 핵심 개발자들과 함께 말이다.
“비행은 어떠셨어요?”
내 질문에 세 명의 개발자는 연신 고개를 숙여 온다.
“최고예요. 퍼스트클래스를 예약해 주시다니,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덕분에 너무 편하게 왔어요.”
퍼스트클래스 4장을 예약하는 데 들었던 돈은 2천만 원이다.
크다면 큰돈이지만, 수십억씩 돈을 부어 기업을 인수하려 했던 탓인지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무리하게 여행 일정을 잡았는데, 승낙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아가는 항공편도 퍼스트클래스로 예약해 뒀으니, 편하게 지내다 가주세요.”
그 말에 개발자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 저기…… 그런데…….”
홍일점인 서윤서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희……. 아직 입사한다고도 안 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올해로 29살인 그녀는 투데이즈파티의 메인 디렉터였다.
정성도 대표와 함께, 오마이투데이에 첫 삽을 뜬 개국공신이기도 했다.
“이거, 나중에 입사 거절하면 토해야 되는 거 아닐까?”
“항공료만 천만 원이야.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내 눈치를 살살 보는 두 사람은 쌍둥이 개발자. 배기수, 배기태 형제였다.
그들은 영국 뉴캐슬 대학을 나온 유학파였는데, IT업체에서 대체 복무를 하기 위해 입국했다가 한국에 정착한 케이스였다.
이들의 웹 개발 능력은 국내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라 투데이즈파티 매각 소식과 동시에, 동종 업계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고 한다.
국내 IT 업체들이 이들을 스카우트하려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내가 한 발 앞서 이들을 빼 올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정성도 대표와 내가 했던, 모종의 협약 때문이었다.
닉스는 이번 경쟁 입찰의 바람잡이 역을 하고, 그 대가로 정성도 대표는 오마이투데이의 핵심직원을 내게 우선하여 연결해줬다.
그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회사가 먹히고 얼마 버티지 못하리란 걸 느꼈겠지.
어쨌든.
내가 대출까지 내며 열심히 액션을 한 결과, 정성도 대표는 20억 대에 매각될 회사를 2배나 뻥튀기해서 52억 9천만 원에 팔아먹었으며, 난 내게 꼭 필요한 인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윈-윈 이라는 거지.
개발자들은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처럼 공항을 두리번대고 있었다.
난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은다.
“제가 한국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입사는 선택사항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저희 닉스 소프트를 방문하시고, 아니다 싶으면 한국에 돌아가시는 건 자유입니다.”
“꼭 곧장 돌아가야 하나요?”
배기수의 질문에 난 고개를 가로젓는다.
“남은 시간 동안 미국에 남아 관광을 하셔도 됩니다. 자, 여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입니다.”
눈치를 보던 직원들이 하나둘 항공권을 받아 간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직원 중, 배기태가 앞으로 나섰다.
“강 대표님. 진짜, 진짜로 나중에 딴말하시면 안 됩니다. 저 빈털터리라 갚을 능력 없어요.”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뭐라도 나온다지 않습니까.”
“예?”
배기태의 얼굴이 순간 잿빛으로 물든다.
“농담입니다, 농담. 이미 티켓을 드렸는데 어떻게 딴말을 하겠습니까. 자자, 어서 승차장으로 가시죠.”
따라오는 직원들의 표정이 안 좋다.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였나 보다.
“여러분이 입사를 꺼리는 이유를 잘 압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명 회사에 덜컥 입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고개를 끄덕이며 배 씨 듀오가 말했다.
“까놓고 말해서 엄청 불안해요.”
“맞아요. 전 어제까지 닉스라는 회사가 있는 줄도 몰랐다니까요.”
닉스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 당연했다. 닉스가 설립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으니 말이다.
잠자코 있던 서윤서도 거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입사요청을 해주신 건 고맙지만…… 닉스에 대해서 인터넷이나 잡지를 훑어봐도 아무 정보가 없더라고요. 그러니…… 이직은 신중하게 결정하겠어요.”
내가 우려했던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IT쪽 스타트업은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덕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만 그만큼 하루아침에 망하는 업체도 많다.
선임 개발자급인 그들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기에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리라.
내가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 인수에 목을 맨 이유도 이런 패널티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런 걱정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얼마 후면 닉스 챗이 런칭될 거고, 그때가 되면 고급인력들이 앞다퉈 닉스의 문을 두드릴 테니까.
* * *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벗어난 오피스텔 단지.
이곳은 닉스 소프트 1호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회의실의 원형 탁자에 둘러앉은 우리는 간단한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난 한국 개발자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린 후 입을 열었다.
“닉스 소프트를 둘러본 소감은 어떠세요?”
“신생치곤 자리가 잡힌 회사네요. 직원들은 열정이 넘쳐 보였고 사무실도 아주 멋져요.”
배기수의 말에 배기태가 맞받아친다.
“난 처음부터 이런 곳일 줄 알았어. 집값이 비싼 샌프란시스코에 3층짜리 사무실을 임대할 정도면 자본적으로 튼튼하다는 증거니까.”
“웃기시네. 미국 오기 하루 전까지 갈까 말까 고민했던 놈이. 퍼스트클래스 아니었으면 안 왔을 거라며?”
“야, 그걸 왜 여기서 이야기해!”
두 쌍둥이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린다.
“보스! 미국에 올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시지. 마중도 못 나갔잖아요.”
“오랜만이에요, 브릭.”
브릭과 난 주먹으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회사엔 별일 없죠?”
“별일이야 항상 있죠. 스칼릿이 베타 버전을 3월까지 만들어내라고 얼마나 채찍질을 해대는지, 대표인 제가 죽을 지경입니다.”
“스칼릿의 불같은 성격이 어딜 가겠어요.”
불현듯, 그녀가 디자인을 배우겠다고 호텔까지 쫓아왔던 게 떠올랐다.
성격이 화끈한 정도를 넘어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었지.
“그래도 이번처럼 마감이 급한 프로젝트엔 그녀 스타일이 제격입니다. 닉스 챗의 기본 틀을 잡는데 두 달을 예상했는데, 고작 3주 만에 뚝딱 끝내버렸다니까요.”
닉스 챗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로 스칼릿을 선정한 건, 브릭의 판단이었다.
그녀의 성격 탓에 팀워크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나 보다.
“베타 버전이 나오면 직원들 인센티브라도 준비해주세요. 짧게나마 휴가를 주는 것도 괜찮겠네요.”
“크으, 보스는 저랑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이야기하려 했었는데.”
“이번에 500만 달러를 새로 투자받았으니 넉넉하게 지급해도 될 겁니다.”
“내가 이래서 보스를 좋아한다니까요.”
스칼릿이 채찍을 휘두르면 브릭이 당근을 쥐어준다. 이 둘의 조합은 생각 이상으로 케미가 좋을 거 같다.
“아 참. 소개가 늦었네요. 이쪽은 한국에서 온 닉스 코리아의 예비 직원들입니다.”
“예비 직원?”
브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직원들을 둘러보더니.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다.
“아하! 그거 군요.”
“네, 그겁니다.”
우리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당연히 직원들은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예비 입사자 여러분들, 저를 따라오세요. 닉스의 프로젝트가 어떤 건지, 저 브라이언 브릭이 직접 보여드리죠.”
배 씨 듀오는 유학파였기에 브릭의 말을 곧장 알아들었고, 서윤서 역시 리스닝은 가능했기에 얼떨떨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브릭, 제가 해도 됩니다.”
“이쯤은 맡겨주세요. 이분들이 어떤 행운을 잡았는지 설명하는 건 저로서 충분하니까요.”
브릭은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투데이즈파티 직원들을 데리고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조용해진 회의실.
혼자 남게 되자, 긴장이 풀린다. 더불어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온다.
퍼스트클래스를 탔기에 저번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눈꺼풀이 떨어져 내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의자에 몸을 뉘고 잠시 눈만 감고 있자.
그래, 아주 잠시만이야... 잠시…….
음…….
“보스?”
뭔가 브릭을 닮은 곰이 보이네.
헛것이 보이는 건가.
혼자서 한참을 중얼거리던 브릭이 회의실을 빠져나가려 한다.
“나 일어났어요. 할 말 있으면 하세요.”
“눈이 완전히 풀렸잖아요. 안쪽에 수면실 있으니까 거기서 자요.”
“아뇨,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언제 가져다 놨는지 책상 위에 서류들이 놓여 있다.
서류는 닉스 코리아에 입사한다는 계약서였는데 세 장 모두 예쁘게 서명이 날인돼 있다.
“모두 입사에 응했군요.”
“닉스 챗 디자인을 보더니 눈이 초롱초롱해지더군요. 그리고 이게 모든 애플폰에 선탑재될 거라고 귀띔함과 동시에 사인부터 하더라고요.”
하하, 다행이네.
서윤서와 쌍둥이 형제는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베스트 멤버다.
이들만 잡는다면 소셜미디어 제작도 큰 문제없이 굴러갈 거다.
한시름 놓게 되자, 반사적으로 하품이 흘러나온다.
“하음- 피곤해라. 직원들은 숙소로 돌아갔나요?”
“닉스 챗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은지, 2층에서 견학 중이에요. 올라오라고 할까요?”
“그럴 필욘 없어요. 전 수면실에서 눈 좀 붙일 테니, 한국 직원들이 찾으면 좀 깨워줘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브릭이 대뜸 질문을 걸어온다.
“꼭 한국에서 소셜미디어 프로젝트를 해야 했나요?”
“갑자기 그건 왜요?”
“여기 실리콘밸리만큼 스타트업을 운영하기 좋은 동네도 없는데 한국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서 있다.
브릭은 멀쩡한 닉스 소프트를 놔두고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자국이 움직이기 편해서 그래요?”
“그건 브릭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몰라서 그래요. 제가 장담하건대 한국만큼 사람 부리기 좋은 동네는 없습니다.”
내가 실실거리며 웃자 브릭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난 수면실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 인도에 아웃소싱 많이 하죠?”
뜬금없는 질문에 브릭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들보다 더 싼 값에 고급 인력을 쓸 수 있다면 어떠세요? 충분히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마, 말도 안 돼요. 인도 쪽 아웃소싱 비용은 고작 14,000달러예요. 그런데 그보다 인건비가 더 싸다고요?”
“한국에선 14,000달러로 신입을 구할 수 있고, 선임급 개발자도 28,000달러만 주면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겁니다.”
참고로 지금 환율은 1,500원대다.
“한국이 의외로 인건비가 싸네요.”
“진짜 무서운 점이 뭔 줄 아세요? 한국의 IT업계는 그 돈을 받으면서 주당 90시간 이상을 일한다는 거죠.”
“헥? 주 90시간? 월 90시간이 아니라?”
“거기다 연장 근로 수당도 없어요. 포괄 임금제라는 제도가 있어서 계약한 연봉만 주면 밤낮으로 사람을 쓸 수도 있죠.”
일명, 인간 무제한 요금제.
같은 개발자로서 동질감을 느꼈는지 브릭이 펄쩍펄쩍 뛰기 시작한다.
“맙소사! 그건 노동 착취라고요!”
“제가 착취하겠다는 게 아니니까 일단 진정해요. 닉스는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줄 겁니다. 근무시간을 나누고, 연장 근로엔 그에 합당한 보수를 줄 거예요.”
한국에선 줄 거 다 주면서 고용해도 실리콘밸리 인건비의 절반이면 족하다.
게다가 인도나 중국인 개발자에 비교해 한국인 개발자는 부지런하고, 일을 빨리 쳐낸다는 장점도 있다.
“후- 좋아요. 한국의 개발환경이 좋다는 건 저도 인정하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놓친 게 있는 거 같은데요.”
“뭐죠?”
“한국은 애플폰 미출시 지역이라 앱스토어 개발툴을 다루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거죠.”
역시 브릭. 예리한 곳을 찔렀는데.
하지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한국개발을 택한 건 아니다.
“소셜미디어 서비스는 앱이 아니라 웹 서비스로 출시할 겁니다.”
“예? 그럼, 애플폰 선탑재는 물 건너간 거 아닌가요? 가장 큰 이점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진데…….”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형태는 웹 서비스로 만들되 모바일용으로 최적화시키는 거죠. 앱에선 웹 쪽으로 연결만 시키면 되겠죠?”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당장 팀원들과 상의해봐야겠어요.”
그는 아이처럼 흥얼거리며 2층으로 내려갔다. 뭔가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것처럼 말이다.
“후우- 이걸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건가.”
미국의 닉스 소프트와 한국의 닉스 코리아.
두 곳만 문제없이 연계되면 소셜미디어의 강호, 페이스북과 정면대결을 펼치는 것도 꿈은 아닐 거다.
* * *
새로운 삶부터 시작해 주식 투자, 태양광 사업, 잡스와의 만남, 닉스의 설립까지.
바쁜 나머지 추위를 느끼지도 못하고 겨울이 지나 버렸다.
그리고 싹이 트는 봄이 찾아왔을 때.
기다리던 닉스 챗의 베타 버전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