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38화 (38/206)

기적의 IT 재벌 38화

“국내만 보지 말고 해외까지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를 먼저 먹어야 해외로 갑니다.”

매형과 정성도 대표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단기적으론 대기업에 인수되는 게 이로울지 몰라도, 포털의 영향력은 국내 한정입니다. 소셜서비스는 내수 시장에서 날고 기어봐야 해외에서 세를 불린 서비스가 밀려오면 꼼짝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매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 대표가 말을 잘랐다.

“포털요? 변호사님, 우리가 SG컴즈와 협상에 들어갔다는 건 어디서 들었습니까?”

“예?”

투데이즈파티가 SG컴즈와 인수 협상 중?

나와 매형은 벙찐 표정을, 정성도 대표는 비밀을 들켰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이다.

우리가 말하고 있던 업체는 거대 포털사인 NHU였는데, 정성도 대표는 SG컴즈를 말하는 줄 알았나 보다.

서로의 오해가 빚어낸 침묵.

잠시지만 강제 티타임이 펼쳐진다.

그런데 NHU에 인수될 업체가, 왜 뜬금없이 SG컴즈와 인수 협상을 진행한 거지?

설마, 신용화 녀석이 내가 오마이투데이를 노리는 걸 알고 방해하려는 속셈으로 접근한 걸까?

아니, 이건 말이 안 된다.

내가 공개적으로 오마이투데이를 인수하려던 것도 아니고 대표에게만, 그것도 사흘 전에 의사를 전달했을 뿐이다.

그걸 알아차리고 중간에서 인터셉트 했다는 건 너무 억측이다.

결국, 남은 수는…….

여기서 투데이즈파티와 SG컴즈와 협상이 결렬되고, 차후 NHU와 인수 협상이 타결됐던가.

아니면 두 업체가 경쟁 입찰을 벌여서, 최종적으로 NHU가 먹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로선 골치 아프게 됐다.

신용화가 나를 대하는 태도로 볼 때, 이 사실을 알면 방해했으면 했지 돕지는 않을 테니까.

“변호사님?”

“아, 저기. 그러니까.”

매형이 당황하고 있자, 이번엔 내가 앞으로 나섰다.

“인수에 참여하려면 대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건 기본 아니겠습니까?”

“음……. 그래도 의아하군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이쪽 업계에선 한 다리만 걸치면 아는 사람이 나오죠.”

여기서 괜히 NHU도 인수에 참여할 거라는 정보를 주는 건 손해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화제를 전환해야 했다.

“대표님, 혹시 SG컴즈도 오마이투데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거 알고 계십니까?”

“경쟁사인데 당연히 알고 있죠. 세이월드에서 파생된 버전인 세이유였던가요? 저희를 카피하다시피 한 서비스더군요.”

자기들도 트위터를 카피했으면서.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 다시 내려간다.

“비슷한 플랫폼 2개가 한 회사에서 운영된다는 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성도 대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어갔다.

“SG컴즈는 세이유와 오마이투데이의 사용자를 합치려는 계획입니다. 두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합쳐지고 국내 원톱인 세이월드와 연계할 수 있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겠죠.”

“그럼, 통합 소셜미디어 서비스의 운영은 누가 하죠?”

“당연히 제가 합니다.”

“확신하십니까?”

그가 날 빤히 쳐다본다.

내 질문의 의도를 뻔히 알았기에 불쾌감이 깃든 눈빛이지만, 그 속엔 불안함도 함께 섞여 있다.

매형 역시 그의 신경을 긁어대는 내 태도에 당황한 눈치다.

난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대기업이 어떤 짓을 하는지 겪어 보신 분이니, 더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혹시 마음이 바뀌거든 연락주시죠.”

우리가 사무실을 나설 동안, 정성도 대표는 자리에 앉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 * *

오마이투데이 인수가 불확실해지자, 내 행보는 전보다 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유투데이. 여기도 탈락. 이걸로 오늘만 4번째구나.”

노트에 선을 쫙쫙 긋는다.

3월까지는 베타 버전을 만들어야 했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떤 업체든 최소 조건만 맞으면 인수하려고 했지만, 그 최소를 갖춘 업체조차 없었다.

대다수 벤처업체는 외관만 그럴싸하게 만들었지 운영방식은 주먹구구요, 내실은 속 빈 강정처럼 부실했다.

“국내 쪽을 더 돌아보는 건 시간 낭비 같고. 이젠 해외 쪽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유투데이 건물 밖으로 나서자, 낡은 세단 한 대가 날 기다리고 있다.

2003년식 소나타.

매형이 출퇴근용으로 쓰는 녀석이다.

연식이 오래된 건 아니지만, 관리가 엉망이라 10년은 더 낡아 보인다.

내가 다가가자 세단의 창문이 열린다. 아주 힘겹게.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들어가자마자 까고 나왔으니 빨리 왔지.”

“그 정도였어요?”

“일단 타. 가면서 이야기하자.”

매형의 차는 차 문을 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기본이고, 문이 쳐졌는지 잘 닫히지도 않았다.

“전 매형 차를 탈 때마다 차 문이 떨어져 나갈까봐 조마조마 하다고요. 수리하시던지 새 차로 한 대 뽑으시는 건 어때요?”

내가 투덜거리며 차에 오르자 매형이 말했다.

“인마, 일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차에 관심 둘 시간 이 있겠냐.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번 건만 끝나면 좀 한가해질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매형이 가자미눈을 뜬다.

“너, 저번에도 그 말 하지 않았냐?”

“착각일 겁니다. 착각.”

내가 딴청을 피우자 매형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방금 미팅한 곳은 어떻게 됐어? 유투데이라고 했던가? 내가 간 곳보단 규모가 큰 거 같던데.”

“둘러볼 것도 없던데요. 운영 방식이 너무 허술해서 인수하면 오히려 짐만 될 게 뻔해요. 커피를 빨리 마시고 나온다고 혀 델 뻔했습니다.”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네가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니고?”

“정도라는 게 있죠. 진짜 어린애들 소꿉놀이하는 거 같다니까요.”

내 불평에 매형은 뭐가 그리 웃긴지 킥킥거리며 웃기만 한다.

“해외 쪽에는 연락 좀 있던가요?”

“미국 쪽 애들은 인수가를 너무 높게 불러. 이번에 페이스북이 트위터를 5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다는 소식은 들었지?”

“페이스북에서 과감하게 대시 했는데 차였다면서요.”

“그래. 그 소식이 퍼지는 바람에 다들 헛바람만 들었다니까. 1억 달러를 부른 놈도 있더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자기들이 트위터라도 되는 줄 알아.”

매형은 생각만으로도 열이 받는지 핸들을 쿵쿵 때려댔다.

“아 참. 그것보다 사무실에 오마이투데이 쪽에서 팩스가 한 장 들어왔다더라.”

“팩스요?”

“응. 인수가를 경쟁 입찰로 진행한다네.”

이건 좀 이상한데.

정성도 대표의 의도대로 SG컴즈에 인수될 생각이었다면 경쟁 입찰할 이유가 없을 텐데? 가격이라도 부풀려볼 생각인 걸까?

“미심쩍어서 내가 정보를 좀 찾아봤는데. 네 말대로 NHU가 오마이투데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던데.”

“역시나. 우리더러 SG컴즈와 NHU 사이에서 들러리 좀 서달라, 이 말이네요.”

“그런 셈이지.”

상황이 점점 안 좋게 흐른다.

경쟁 입찰이면 가격이 얼마까지 뛸지 가늠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매형, 제 여유 자금이 얼마나 될까요.”

“네가 언제부터 여유 자금이 있었다고. 다 NG소프트 주식이고 Sol에너지와 닉스 소프트에 들어가 있지.”

골치 아프게 생겼다.

미국 쪽 업체 인수를 하자니 가격이 너무 높고, 국내에선 쓸 만한 업체가 오마이투데이밖에 없는데 먹잇감을 노리는 이리떼가 너무 많다.

차라리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스타트업을 꾸려 볼까?

닉스 소프트에서 인원을 빼서 빡빡하게 일정을 잡으면 어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트업 때문에 닉스 챗 일정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그거야말로 쪽박이다.

“휴우- NG소프트 주식을 일부라도 털어야 할까요?”

“돈이 궁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아직 더 오를 여력이 있어서 너무 아깝단 말이죠. 차라리 주식으로 대출을 더 내는 건 어떤가요?”

“건실한 기업도 몇 천을 못 막아서 무너지는 수도 없이 봤다. 절대 돈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돼. 게다가 네 사업 내용을 보니, 규모는 커질지언정 수익 창출 시기가 애매하던데. 앞으로 계속 대출만 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답답하다.

매형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서 더 그렇다.

내가 처음에 쥐고 있던 돈이 100억이 아니라 1조 정도였으면 더 편하게 갔을 텐데…….

갑자기 픽 하고 웃음이 나온다.

처음엔 100억이 통장에 들어 있는 거 보고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이젠 1조라니. 이래서 인간이 간사하다는 거다.

일이 안 풀린다고 주저앉아 있어 봐야 답은 없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들이박고 보는 거다.

* * *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어요?”

“강현우로 예약했습니다.”

“4번 방으로 예약돼있습니다. 코너 돌아서 맞은편입니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고급 일식집.

입구서부터 일반 음식점과는 느낌이 다르다.

각 방은 출입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돼 있고, 방과 방 사이에 방음재를 얼마나 쑤셔 넣었는지 실내는 도서관처럼 고요하다.

약속 시각이 10분쯤 지나고서야 기다리던 얼굴이 나타난다.

“이거, 사람을 또 놀라게 하네. 진짜로 연락해올 줄이야.”

SG컴즈의 전무, 신용화. 재벌 집 도련님의 등장이다.

“신용화 씨, 그럼 언제 이야기 한 번 하자던 말은 빈말이었습니까?”

“뭐 반쯤? 아무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름이 김현우라고 했었나요?”

일부러 내 성질을 긁으려 든다. 물론, 그런 수작엔 콧방귀도 안 나오지만.

“강현우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일식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밥 먹자고 불러낸 건 아닐 테고. 본론만 깔끔하게 말하죠? 피차 바쁜 건 마찬가질 텐데.”

“제가 바쁜 건 어찌 아셨습니까?”

“오마이투데이 인수에 실패해서 다른 업체 찔러 보고 다닌다는 거. 벌써 소문 다 났어요. 이 바닥이 진짜 좁거든요.”

“아직 실패한 건 아닙니다. 뚜껑은 열어 봐야지 않겠습니까.”

“후후, 뭐 그렇게 생각하시든지요. 아, 그보다 현우 씨가 생각보다 대단한 분이셨더군요. 미국에서 닉스 소프트라는 회사의 공동 대표로 계신 거 같던데,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닉스 챗?”

내 뒷조사라도 한 걸까?

내 표정이 굳어 있자, 그는 한 방 먹였다는 미소를 짓는다.

“모바일 메신저를 개발 중이시던데, 방향은 잘 잡은 거 같습니다. 활성화만 된다면 크게 성장할 여지가 있어요. 아, 물론 활성화된다는 전제하에서지만요. 미국 쪽도 통신사들이 보통은 아니거든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쉽지 않다는 건 제가 잘 알죠. 돈을 준다고 꼬셔도 실사용자를 늘리는 건 쉽지 않거든.”

녀석이 은근슬쩍 말을 놓는다.

이렇게 나와 주면 나야 고맙지. 이쪽도 준비한 게 있으니까.

“사용자를 꾀려고 준비한 게 고작 무료문자였으니. 실사용자를 늘리는 게 당연히 어려웠겠죠. 이게 대기업에서 준비한 건지, 아니면 구멍가게에서 준비한 건지 모를 정도였다니까요.”

방금 내가 한 말은 SG컴즈가 세이유를 런칭할 때, 선심 쓰듯 무료 문자 100건을 지급했던 걸 꼬집는 말이었다.

신용화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했지만 한쪽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가 마케팅 담당자였다면 무료 문자 100건이 아니라 도토리를 100개씩 쐈을 겁니다. 어차피 공짜나 다름없는 거 아닙니까? 이건 뭐 주고도 욕먹고. 쯧.”

“우리 아우님이 미국물을 먹어서 그런가? 간땡이가 제법 크네?”

“간땡이는 모르겠고, 겁 대가리 없는 놈이란 말은 자주 듣습니다.”

신용화와의 시선이 마주친다. 날 무섭게 노려보던 녀석은 픽하니 웃으며 입을 비스듬히 한다.

“날 화나게 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을걸? 네가 미국에서 만드는 닉스 챗. 오마이투데이와 연계시키려고 한 거 아냐? 모바일 메신저에 소셜미디어를 연계시킬 생각이겠지.”

“꼭 오마이투데이가 아니어도 됩니다. 저야 뭐, 보고 배울만한 실패 사례가 눈앞에 있어서, 천천히 하기로 했거든요.”

내가 말한 그 실패 사례란 SG컴즈가 계획했던 메신저, 소셜, 포털의 결합이었다.

난 최대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덕분에 신용화의 여유 넘치던 표정에 확실히 균열이 생겨 있다.

“너, 착각하지 마. 다른 업체를 인수하려 해도 내가 방해하면 넌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알아둬.”

“그래서 이번 오마이투데이 인수 건도 끝까지 진행하실 셈입니까? 이미 SG컴즈에는 세이유라는 동종 플랫폼이 있는 데도요?”

“인수만 하면 우린 무조건 이득이야. 세이유로 합병시켜도 되고, 오마이투데이를 고사시켜도 세이유 쪽으로 사용자들 대부분이 흡수될 테니까.”

“음, 역시나. 처음부터 정성도 대표 체제를 그대로 끌고 갈 생각은 없었군요.”

그는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벤처 체제를 끌고 간다고? 웃긴 소리 하고 앉았군. 그들은 능력이 있어서 살아남은 게 아니야.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어드밴티지 하나로 살아남은 거지.”

“저는 그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용화 씨가 재벌 아들로 태어난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려고 날 불러냈나? 이거 사람을 잘 못 본 거 같은데.”

난 그가 충분히 짜증 날 수 있게 일부러 찬을 하나 집어 먹으며 우물거린다. 쩝쩝 소리까지 내주며 말이다.

“그럼, 제가 가랑이를 붙잡고 애원이라도 할 거 같았습니까? 제발 오마이투데이를 인수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요?”

“뭐?”

“회사에서 전무님, 전무님거리며 떠받들어 주니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하하, 착각하지 마세요. 제가 뭐가 아쉬워서요?”

“이놈이…….”

빠득하고 이 가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신용화는 물 한잔을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요리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천천히 드시다 가시죠.”

“건방진 새끼, 언제까지 그따위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신용화.

난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물을 새로 따라 마신다.

그리곤 엎어뒀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신용화 전무님의 이야기는 잘 들으셨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성도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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