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35화
세이월드.
국내 최초로 소셜미디어의 틀을 잡은 웹 서비스 플랫폼이다.
소규모로 시작했던 세이월드는 미니홈피라는 컨텐츠가 역대급으로 히트하면서 국민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세이월드는 가입자의 출생지, 출신 학교, 직장 등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일촌이라는 인맥으로 엮어주는 서비스로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세이월드의 전성기는 딱. 여기까지였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시장의 흐름을 PC에서 모바일로 바꿔버리는데, 그 흐름을 타지 못한 세이월드는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게 내가 아는 세이월드의 역사다. 한데, 벌써 모바일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국내의 모바일 붐은 애플폰3GS와 갤럭시스S가 출시된 직후인 2010년부터다.
세이월드가 2008년 말부터 모바일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도태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걸까? 아니면 미래가 변했다?
만약, 미래가 변한 거라면 곤란해진다.
세이월드는 내가 생각한 사업 반경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행보를 보인다.
국내에 세이월드가 세를 넓히면 같은 파이를 두고 싸워야 할 테고.
그 말은 즉, 무주공산에 깃발만 꽂으려던 내 계획의 전면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거다.
“현우 씨? 현우 씨!”
“예? 수아 씨 무슨 일이에요? 도착했어요?”
“뭐예요, 정말. 아까부터 불러도 대답도 없고. 게다가 표정이 엄청 무서웠다고요.”
“아, 제가 그랬나요?”
너무 생각에 심취했나 보다.
“수아 씨, 벌써 9시가 넘었는데. 지금 가봐야 사람이 있을까요?”
“이쪽 업계는 지금이 한창일 시간이랍니다. 보통 자정이 넘어서 퇴근하거나, 그마저 못하는 사람들은 회사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일을 시작하죠.”
한국의 IT 기업은 사람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거로 유명하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그 정도로 퇴근을 안 시킨다는 소리다.
얼마나 회사의 불이 안 꺼지면 등대라는 비유적 표현이 있겠는가.
내가 그 소문을 접했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5년 후였으니까 이땐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저긴가요?”
“맞아요. SG텔레콤의 신사옥이죠.”
불을 환히 밝히고 있는 신축 빌딩. 등대라는 비유가 딱 와닿는 순간이다.
“아 참. 수아 씨는 내일 출근 안 하세요?”
유수아의 표정이 급격히 시무룩해진다.
“해야죠. 제게 허락된 휴일은 일요일이 다랍니다. 이것도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서 간신히 얻은 거예요.”
그럼, 평소엔 일요일도 매번 출근했다는 말이잖아.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사람 막 굴리는 건 똑같구나.
“정말 금쪽같은 일요일이겠어요.”
“사실, 쉬는 날이 너무 오랜만이라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현우 씨가 와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어? 그럼 제가 약속했던 풀코스 서비스는 어찌 되는 건가요.”
“그건 세이브 했다가 다음에 로드 하는 거로 해요.”
“죄송하지만 본 서비스는 저장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후후, 뭐예요, 그게.”
사담을 나누다 보니 금세 주차장까지 도착했다.
그녀는 SG텔레콤 신사옥이 초행은 아니었는지, 능숙하게 미로 같은 빌딩 안으로 날 안내했다.
[SG컴즈- 개발부]
우리가 멈춘 곳에 걸린 명판이다.
“여기가 세이월드 모바일판을 개발하는 곳인가요?”
“그것뿐만 아니라 SG컴즈의 모든 소프트를 여기서 만들어요. 메신저 소프트인 세이트온 아시죠? 그것도 여기서 담당해요.”
세이트온은 한국에서 MSN 메신저를 밀어낸 토종 프로그램이다.
초기엔 MSN보다 사용빈도가 낮았지만, 세이월드와 연계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회사에 갑자기 찾아와도 괜찮은 걸까요?”
“저만 믿어요.”
유수아는 사무실 안을 슬쩍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V 자로 만든다.
“이 시간에 오면 부장급은 다 퇴근이거든요. 안에 들어가도 눈치는 안 보일 거예요. 자, 따라오세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지만 사무실엔 절반 이상의 자리가 차 있었다. 그래 봐야 다 합치면 스무 명은 될까?
나름, 대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실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렇게 규모가 작을 줄이야.
“선배님 저 왔어요.”
그녀가 쪼르르 다가가자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여인이 돌아본다.
나이는 서른 초반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질끈 묶어 넘긴 머리는 야근에 최적화된 모습이었다.
“어? 수아? 네가 웬일이야.”
“선배님 보고 싶어서 왔죠. 여기 커피 사 왔어요.”
“오, 땡큐.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누구?”
선배라 불린 여인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반갑습니다. 강현우라고 합니다.”
“전 김화선이에요. 그런데 여긴 어인 일로?”
예상은 했지만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린 유수아가 중간에 끼어들어 온다.
“제가 개인적으로 신세 진 분이에요. 모바일 이식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던데 딱 선배가 떠오르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락도 없이 외부 사람을 데리고 오면 어떡해.”
김화선이 내 얼굴을 은근슬쩍 살피는 기색이다.
뭐지? 내가 잘생겨서는 아닐 테고.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수아야 일단 휴게실로 가자.”
“예~”
사무실을 빠져나와 휴게실로 가는 동안에도 김화선은 내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본다.
뭐라 말을 꺼내려나 싶었지만 말을 걸어오진 않는다. 내 단순한 착각인 걸까?
휴게실에 도착한 우리는 원형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선배, 회사생활은 어떠세요?”
유수아의 말을 김화선이 받는다.
“어휴. 나오는 건 한숨이요, 느는 건 주름이야. 위에서 무리한 작업을 계속 주문하니까 일에 진전이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KG전자에 말뚝박고 있는 건데, 괜히 SG컴즈로 와서 고생만 하고 있다니까.”
“선배, 우리도 똑같아요. 안 되는 걸 되게 만들라고 닦달하는 게 윗분들 특징이잖아요.”
“아니, SG계열은 그 정도가 심해. 완전 말도 안 되는 걸 시켜두고 날짜 안에 완성하라고 해대니 의욕이 생기겠어? 그냥 배 째라 하고 버티는 게 고작이지.”
난 두 사람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혹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게 미니홈피를 통째로 모바일로 이식하는 작업인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여기저기서 들었죠.”
“어휴. 기본 베이스는 완성됐는데, 윗분들은 욕심이 어찌나 많으신지. 세이월드가 가진 미니홈피는 물론이고 도토리를 써서 구매하는 아바타나 배경까지 전부 복사하라고 지시하니 죽을 맛이에요.”
전성기의 세이월드는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해 사용되는 도토리를 팔아서 짭짤한 수익을 남기고 있었다.
경영진으로선 모바일로 세이월드를 이식해도 그 수익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겠지.
“미니홈피 기능은 모르겠지만 아바타까진 힘들겠는데요. 모바일의 좁은 화면은 표현의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평소 쌓인 게 많았던지, 김화선은 탁자를 내리치며 울분을 토해낸다.
“바로 그거예요. 애초에 PC용 웹 서비스를 모바일로 어떻게 100% 이식하냐고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터치폰부터 적용하고 차차 범위를 늘려가자는 헛소리나 해대고.”
“그럼 지금 작업하는 게 윈도 모바일용이 아니라 터치폰용이라고요?”
“맞아요. 우선 작업하는 게 오성전자의 햅틱 시리즈 버전이죠.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윈도 모바일용은 차후에 지원 예정이고요.”
“허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데이터 통신료가 살인적으로 비싸기에 피처폰의 인터넷은 유명무실했다.
그런 플랫폼에 세이월드를 이식한다 해도 사용자는 턱없이 적을 것이다.
SG컴즈는 같은 계열사인 SG텔레콤이 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런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풀터치폰에서 작업했던 데이터를 윈도 모바일로 전환하기 쉬워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건가요?”
“두 플랫폼은 기본 바탕부터 다를뿐더러 기기의 성능이나 해상도가 제각각이라 공통점이 전혀 없어요. 게다가 윗분들이 그런 걸 생각이나 했겠어요?”
성능이라는 말에 내 귀가 뜨인다.
내 목적 중 하나인 애플폰XI의 앱을 애플폰3GS로 이식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였으니까.
“성능 차이도 이식에 영향을 주나요?”
“당연하죠. 두 세대 이상의 차이면 싹 엎어버리고 새로 만드는 게 더 빠를걸요.”
역시 애플폰XI에 있던 앱을 이식하는 건 힘든 일인가. 그럼에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강력한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세이월드가 열심히 헛발질하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대로 흐르면 세이월드의 도태는 기정사실이다.
통신사와 제조업체가 쌓아 올린 장벽으로 인해서 뒤처진 국내 모바일 앱 시장은 애플폰3GS의 등장과 동시에 닉스가 접수하게 될 것이다.
“저기…….”
언제부터인지 김화선이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버렸나.
“혹시 이 잡지에 나오신 분 맞으세요?”
“잡지요?”
그녀가 펼쳐 든 건 [월간 IT]라는 잡지였는데, 메인표지모델이…….
어딘가 익숙했다.
엥? 이거 나잖아?
보스턴 헤어샵에서 열심히 세팅한 머리와 값비싼 투톤 정장.
거기에 지적인 이미지를 주고자 쓴 도수 없는 안경까지.
이날 외모에 신경을 좀 쓰긴 했다만…….
내가 날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니. 역시 후 보정의 힘은 위대하다.
“제가 맞는 거 같네요.”
말을 하고도 낯 뜨겁다. 사진과 실물의 차이가 지구 반대편 정도로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애플의 선임 디자이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어머, 어떡해. 저 완전 애플 팬이에요. 사인 한 번 부탁해도 될까요? 아니지, 사진 같이 찍어요.”
“뭐, 어려운 건 아니죠. 그런데 제가 애플의 선임…….”
“현우 씨가 대니얼 강이었어요?”
이번엔 유수아의 외침이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잡지와 날 번갈아 쳐다본다.
수아 씨, 자괴감 드니까 사진이랑 비교하며 보지 마세요.
제발, 플리즈.
“수아야. 현우 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같이 다닌 거야?”
“대박! 개발자 포럼의 발표문은 다 읽었는데, 영상이나 사진을 본 적이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현우 씨 왜 안 말해준 거예요!”
두 여인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눈길이다.
“혹시 이번 소프트웨어 이식에 관한 건도 애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가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하는 프로젝트? 어떤 분야로 하는 거죠?”
김화선이 포문을 열자, 옆에서 유수아가 지원사격에 들어간다.
“현우 씨는 어떤 디자인을 담당하셨어요? 소프트웨어 디자인? 아니면 하드웨어 쪽인가요?”
“애플엔 어떻게 입사하셨어요? 잡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소문대로 괴짜인가요? 엄청난 천재라고 하던데 진짜예요?”
두 여인이 쏟아내는 질문에 머리가 멍해진다.
우선 내가 애플의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부터 해명하자, 그리고 그다음은 그날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면 될 테니까.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휴게실 문이 쿵! 하고 열리며 사내 한 명이 들어온다.
“오, 수아야. 회사에 왔구나?”
나이는 서른 초반쯤 될까? 옷차림에서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게 어딘가의 도련님 같은 녀석이다.
“요, 용화 오빠? 여긴 어떻게.”
“우리 수아가 왔다고 해서 달려왔지. 회사에 오면서 연락도 안 하다니. 나 좀 서운한데?”
용화라는 녀석이 다가오자 김화선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아, 안녕하세요, 전무님.”
“김 과장님도 계셨네요. 과장님이라도 수아가 왔다고 연락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 말에 김화선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는다.
뭐야, 저 녀석.
게다가 전무라고? 삼십 대에 대기업에서 전무를 달았다면 보나 마나 오너 일가일 텐데.
SG그룹이면 신성호 회장이 운영하는 곳이고, 그럼 이름이 신용화?
많이 듣던 이름인데, 신용화. 신용화…….
아!
돈만 깨 먹는다던 재벌 3세들 중, 그나마 사람 구실한다던 SG그룹 막내아들 이름이 신용화였던 거 같다.
그가 소셜커머스와 통신사 서비스를 연계시켜서 경쟁사들을 다 고사시킨 사건은 이 바닥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말로만 들었던 재벌 집 막내아들이 여긴 왜 온 걸까?
“반갑습니다, 신용화입니다.”
녀석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예, 강현웁니다.”
예의상 자리서 일어나 손을 맞잡았는데, 손아귀에서 빡빡한 압력이 느껴진다.
녀석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에선 확연한 적의가 느껴진다.
이놈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