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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34화 (34/206)

기적의 IT 재벌 34화

요 며칠간 노트북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눈에 먼지가 낀 것처럼 뻑뻑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애플폰XI과 신형 노트북이 블루투스(Bluetooth: 근거리 무선 통신)로 연결할 수 있다는 거였다.

만약, 별도의 연결이 불가능했다면 좁은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했을 테니 말이다.

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부 저장소를 다시 훑어본다.

“뭔가 있을 줄 알았더니. 기대가 너무 컸나?”

미래에서 온 스마트폰.

이 안에 특별한 뭔가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개인적인 바람이었을 뿐. 애플폰XI는 본 주인인, 전 상무가 남겼던 흔적이 전부였다.

차라리 이게 구글의 안드로이드였다면 파일을 뜯어보기라도 했겠지만, 이건 OS의 보안이 철저한 애플폰이다.

개방적인 안드로이드와는 다르게, 애플 OS는 프로세서 내부에 OS가 저장되었기에 시스템 파일을 열어볼 방도가 없었다.

드물게 애플 OS의 취약점을 건드려 해킹에 성공하는 해커들도 있었지만, 애플에서 취약점을 발견한 해커에게 100만 달러의 보상을 내건 다음부턴 그마저 사라져 버렸다.

아까웠다. 너무나 아까웠다.

미래 기술의 집약체인 모바일 OS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제치고 세계 1위의 모바일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을 텐데.

“해킹이나 진득하게 배워 둘 걸 그랬나? 아냐, 어차피 OS가 있어도 탑재시킬 기기가 없잖아. 내겐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말을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으론 수많은 활용법이 슥슥 지나다닌다.

시큼한 포도를 지나치는 여우의 심정으로 시선을 다른 쪽에 돌린다.

OS는 뚫는 게 불가능하니, 외부 앱이라도 건져볼 심산이었다.

애플에서 미리 선탑재한 앱인 전화, 메시지, 앱스토어 등은 필요 없으니 넘기고. 인터넷 접속 앱인 사파리? 이건 쓸 만할 듯도 한데……. 지금은 필요 없으니 일단 보류.

자, 그다음은. 어?

한 지점에서 내 마우스 커서가 멈춘다.

[Wei xin]

한국어로 발음해보면 웨이-씬.

중국 텐센트사에서 만든 모바일 메신저 앱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많이 사용된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1위인 왓츠업과 견줄 만큼 많은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의 코코아톡이나 서양의 왓츠업보다 다채로운 기능이 특징이다.

텐센트는 IT계에서 후발 주자였지만 MSN 메신저를 카피한 QQ메신저로 입지를 다졌고, 모바일용 웨이-씬으로 중국 1위 IT 기업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음, 이상한데? 왜 중국 앱인 웨이-씬이 전 상무 폰에 깔려 있는 거지?

아무래도 중국에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깔아둔 모양이다.

닉스 소프트에서 열심히 개발 중인 닉스 챗에 웨이-씬의 기능을 일부라도 이식할 수 있다면 근사한 그림이 나올 거 같다.

미래의 누군가가 만들 기술을 훔친다는 죄책감도 살짝 들었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모바일 메신저 앱이 왓츠업의 카피 버전 아닌가?

“게다가 왓츠업의 창업자, 브릭을 내가 고용했으니 아무 문제 없다고. 음……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자기 합리화군.”

난 중얼거리면서도 눈으론 다른 앱을 훑어본다.

본 주인이 스마트폰의 활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런지 대다수가 기본 탑재 앱이었고, 특이한 앱은 바둑, 장기 같은 것들과 사진을 꾸며주는 포토샵 같은 게 전부였다.

“후유.”

의자와 함께 몸을 뒤로 젖히자,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지금이라도 해킹을 배워서 애플 OS를 뚫어볼까? 아니다, 배운다 해도 애플 OS를 뚫는다는 확신도 없을뿐더러,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기껏 OS를 손에 넣었는데, 애플 OS와 안드로이드가 시장을 선점한 뒤라면 쏟아부었던 노력은 물거품이 될 테니까.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미래의 폰에 담긴 파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은 나 혼자 분해해서 차곡차곡 재정립해야 한다는 말인데. 역시, 미래의 앱이라도 뜯어보려면 개발을 배우는 게 정답이겠지.

게다가 2020년 앱을 2008년식으로 다운그레이드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뭐 하나 될 만한 게 없다.

막막하다고 할까.

이것만이라도 조언을 얻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건, 스칼릿이었다.

브릭이 그녀를 극찬하기도 했고, 개발팀을 이끌었다면 실력도 보통은 넘을 테니까.

곧장 국제전화를 돌린다.

뚜우- 뚜우- 철컥.

-예, 닉스 소프트입니다.

“스칼릿? 저 대니얼인데요. 뭐 좀 물어볼게요.”

-물어볼 거? 그게 뭔데. 아, 잠시만. 마이크! 이거 디버깅 안 끝났잖아. 네가 안 했다고? 그럼 누가 작업한 거야. 작업한 놈 빨리 잡아 와! 당장!

수화기 너머에서 우당탕하는 넘어지는 소리 함께 비명이 들려온다.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대니얼, 뭐라고 했었지?

“음, 그러니까. 제가 앱 하나를 다운그레이드 시킬 게 있어서요. 조언이 좀 필요한데.”

-그런 것쯤은 알아서 처리해. 기한 내에 프로젝트를 끝내려면 한시가 급하다고!

“어, 어……. 스칼릿?”

뚝.

대차게 까였다.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하나.

“후우- 그 외에 인맥이라곤……. 잡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수아 씨가 있구나!”

다시 전화를 돌린다.

한 번 까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은 전화가 조심스럽다.

-여보세요?

“수아 씨. 저 현우예요.”

-아, 현우 씨. 안녕하세요. 한국에 돌아오셨나 보네요.

“예, 그제 들어왔어요. 보내주신 충전기는 잘 받았습니다.”

-작동하던가요?

“덕분에 잘 쓰고 있어요. 언제 한 번 밥이라도 사드려야 하는데.”

-제가 서울에 올라와 버렸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 있다. 나 역시 아쉬운 건 매한가지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내가 먼저 움직이는 수밖에.

“수아 씨.”

-저기.

동시에 목소리가 울린다.

“네, 말씀하세요.”

-현우 씨, 먼저 이야기하세요.

“음……. 그럼 제가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수아 씨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런데요.”

-부탁요?

“예, 소프트웨어 최적화 문젠데. 혹시, 서울 올라가면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돌아온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야.

-그럼, 다음 주나 제가 내려갈 일이 있으니까 그때 한 번 봬요.

“아뇨, 충전기 건으로 신세 진 것도 있는데 제가 올라가야죠. 마침, 서울에 볼일도 있거든요.”

* * *

점심을 먹고 나른함이 찾아오는 오후.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카페로 몰릴 시간이다.

실내로 들어서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 뒤쪽에 앉아 있는 여자 봤어?’

‘봤지. 남자들 전부 침 흘리면서 지나가더라. 얼굴도 착하지만 몸매가 진짜 끝장이야.’

‘모델 아닐까? 진짜, 저런 여자랑 사귀면 소원이 없겠다.’

‘꿈 깨라. 분위기 못 봤냐? 분위기가 찬 바람이 쌩하더라. 말 걸면 백퍼 까이겠던데.’

사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카페의 많은 사람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긴 속눈썹과 인형처럼 새하얀 얼굴.

거기에 무심한 표정으로 턱을 괸 모습은 도도함의 끝을 보여줬다.

덕분에 근처의 사내들은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볼 뿐,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

“여기예요!”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현우 씨. 부산에서 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요즘은 KTX 타면 금방이죠.”

“그래도 고생하셨어요. 커피는 어떤 거로 하실래요?”

“커피는 마시고 왔습니다. 그보다 자리를 옮길까요, 아니면 여기서 이야기 좀 하고 갈까요?”

“여기서 좀 보고 가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백팩을 꺼내 든다.

그곳에선 아령처럼 묵직해 보이는 노트북이 튀어나왔다.

열차에서 미리 이야기를 나눴기에 뭔가를 준비해 뒀나 보다.

“필요하신 게, 소프트의 다운그레이드였죠?”

“다운그레이드, 혹은 최적화죠.”

“다운그레이드는 인사이드를 개발하면서 지겹도록 해봤어요. 일정에 쫓기면서 만들다 보니 타사 제품의 소프트웨어를 리사이징해서 넣었거든요.”

만나서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개발 이야기로 넘어가다니. 첫 만남부터 그래왔지만 이런 모습이 그녀답다 싶다.

“현우 씨? 현우 씨? 멍하니 뭐해요.”

“아, 아닙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다운그레이드 시킬 게 어떤 소프트예요? 간단한 소프트면 몰라도 게임은 손댈 곳이 많아서, 다시 개발하는 게 빠를 수가 있어요.”

“게임은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게임이면 제 분야가 아니라 도와드릴 수 없거든요.”

유수아가 게임을 먼저 물어본 이유가 있다.

이 시기엔 PC게임을 모바일로 이식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옴레아 정도면 스타크래프트 정도는 굴릴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간단한 메신저라고 할까요? 음……. 세이월드를 모바일판으로 이식한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네요.”

“세이월드요? 그거 간단한 수준이 아니잖아요. PC용 윈도우즈와 윈도 모바일은 이름만 비슷하지 완전 다른 OS나 마찬가지예요.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고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단순히 다운그레이드만 할 거니까요. 예를 들어, 고성능 기기에서 쓰던 소프트웨어를 저성능에 돌아가게 만드는 거죠.”

“저성능으로 구동시키려면 소프트를 가볍게 만든다는 뜻이죠?”

“바로 그거죠.”

내가 가진 웨이-씬 파일은 어쨌거나 애플 OS 전용 앱이다.

별도의 파일 수정 없이 가볍게만 만들 수 있다면 애플폰3GS에서 구동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건 다운그레이드까지 필요 없고, 다이어트를 좀 시켜주면 가능해요.”

“다이어트? 그게 뭔가요.”

“제가 임의로 그렇게 불러요. 말로만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편이 빠르겠죠? 옆으로 앉으세요. 거기선 화면이 잘 안 보이니까.”

내가 일어서자 얼른 의자를 빼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옆에 앉자, 멈췄던 마우스 포인트가 움직인다.

딸깍-.

그녀가 선택한 파일은 간단한 달력 앱이었다.

우선 해상도를 본판보다 낮게 조절했고, 색을 표현하는 방법도 낮은 사양 방식으로 바꾼다.

그 후엔 달력이 떠오르는 애니메이션의 프레임(frame: 정지화면의 단위. 일반적인 LCD 모니터는 초당 60프레임을 표현한다.)을 몇 개 날려 버린다.

난 작업 과정 전체를 머릿속에 새기기 위해 최대한 집중해서 모니터를 쳐다봤다.

“여기선 이걸 지우고, 수치를 더 낮게 내려요.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녀는 이후에도 몇 가지 수정 작업을 더 거쳐서 샘플을 완성했다.

“자, 이쯤이면 상당히 다이어트 됐을 거예요.”

“벌써 끝난 건가요?”

“더 많은 부분을 건드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시간 관계상 이 정도로 끝낼 거예요. 이제 구동시킬 테니 잘 보세요.”

두 개의 달력 앱이 동시에 떠오른다.

하나는 원본이고, 다른 하나는 경량화시킨 달력이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경량화 쪽이 더 빠릿빠릿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손을 본 쪽이 빠르네요.”

“노트북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스마트폰에서 구동시키면 차이는 더 확연하게 느껴질 거예요. 간단한 눈속임이지만 이 작업을 거치면 어지간한 기기에도 소프트를 구동시킬 수 있죠.”

“성능 차이가 크게 나도 가능할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격차가 크게 날 수가 있어요?”

지금까지 나온 스마트폰 종류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질문이 돌아오는 건 당연했다.

“좀 많이 나요. 아주 많이.”

“그러니까 많다는 게 어느 정도예요? 성능 차가 2배는 나나요?”

2020년의 앱이라도 3년 전 기기에는 돌아가기 만들었을 테니, 2017년 출시된 애플폰8 기준으로 구동되는 앱을 애플폰3GS에 구동되게 만들면 되는 거다.

그 둘의 성능 차이라면…….

“대략 16배 정도?”

말을 내뱉고 나니, 케이크를 푹푹 찌르던 그녀의 포크가 멈춰있다.

16배의 성능 차이를 내는 모바일 기기라니.

인정한다. 내가 말하고도 어이없네.

“결국, PC용을 모바일로 이식하려는 거네요.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그런 게 아닌데…….”

고구마 하나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미래에서 가져온 앱인데요.’ 라곤 말할 수 없잖는가.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애플 PC에서 쓰던 소프트웨어를 애플폰에서 구동시키는 게 목표예요. 같은 애플의 OS니까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거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국내에서 애플 OS를 다루는 곳은 찾기 힘들 텐데요. 비슷한 작업을 하는 곳은 한곳 알지만요.”

“비슷한 곳?”

귀가 솔깃해진다.

내가 눈을 빛내며 물어오자, 그녀는 일부러 고민하는 척하면서 뜸을 들인다.

“내일 인도 커리 먹으러 갈래요? 제가 굉장히 맛있는 곳을 아는데. 커리가 싫으면 해물 파스타와 피자가 끝내주는 집도 있죠. 제가 그 집 파스타가 너무 맛있어서 소스를 포장해 갔다니까요.”

“후후, 커리든 파스타든 다 좋아요.”

그녀는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던 세이월드 있죠?”

“당연히 알죠. 미니홈피로 유명한 곳이니까요. SG텔레콤 자회사인 SG컴즈에서 서비스하고 있던가요.”

“맞아요. 거기서 모바일 이식을 준비하고 있대요. 제가 아는 선배가 거기서 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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