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32화 (32/206)

기적의 IT 재벌 32화

“브릭, 상황은 좀 어때요?”

“또 퇴짜예요. 개발 중인 앱에 쏟을 시간도 부족하니까 더는 연락하지 말라는데요. 아예, 인수 조건을 듣지도 않는답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촉박한 개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선택한, 스타트업 인수 작전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엔 스타트업도 많지만 스타트업을 노리는 꾼들도 많았다.

투자를 약속하고 알맹이만 빼먹는 벤처 캐피털이나 인수를 미끼로 스타트업을 흔들고 팀원을 빼가는 헤드헌팅 업체까지.

네임밸류가 부족한 닉스였기에 인수가 쉬울 거라 생각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지금의 스타트업들은 앱스토어에서 나는 수익이 거의 없을 테고, 배가 고플수록 인수에 혹하게 마련인데.

돈을 풀어서 개발자의 머릿수를 채우는 건 쉬운 일이다.

다만, 그렇게 구한 녀석들이 제 몫을 다할 거란 보장을 못 한다는 게 문제다.

스칼릿 팀처럼 작업 샘플을 볼 수 있다면, 옥석을 가리기 쉬웠기에 스타트업을 원했던 건데…….

생각에 잠긴 내게 브릭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가온다.

“이게 다 보스 때문이라고요.”

“예? 그게 무슨 소리죠?”

“기억 안 나세요? 개발자 포럼에서 했던 말.”

내가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흐릿하다.

“보스가 앱스토어 개발자들에게 바람을 넣었지 않습니까.”

아! 그거였나.

이제야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금 스타트업 애들은 몸이 달아 있다구요.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버렸으니까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저희가 인수가를 높게 부른다 한들, 꿈쩍도 안 할걸요.”

이거 참. 내가 했던 발표로 인해 내 발목이 잡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근처의 스타트업 팀들에게 계속 연락해 봅시다. 시도하다 보면 하나는 걸리겠죠.”

“앱스토어를 보고 연락하는 건 어떤가요? 이미 앱을 출시한 스타트업은 프로젝트가 종료됐으니까 매각하려는 곳도 있을 거 같은데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우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애플폰을 꺼내 든다.

먼저, 앱스토어에 실행시키고, 등록된 앱의 리스트를 천천히 내려간다.

그러다 브릭이 소리쳤다.

“슈퍼윙스! 이거 어때요? 이 게임, 만듦새가 장난 아니던데요.”

브릭이 가리킨 슈퍼윙스는 게임 카테고리에서 6위를 기록하고 있는 비행 슈팅 게임이었다.

“슈퍼윙스는 이미 앱스토어에서 상위권입니다. 충분한 수입이 있는데 회사를 넘기려 들까요?”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3D 체스를 만든 티랙튼 소프트는 어떤가요?”

“거긴 윈도즈부터 개발 팀이 꾸려진 곳이라 규모가 제법 크지 싶은데……. 어디 확인해 보죠.”

웹에서 티랙튼 소프트를 검색하자, 정보가 주르륵 떠오른다. 개발자만 100명이 넘어가는 거대 업체였다.

“PC용 소프트웨어부터 만들던 업체라 그런지 규모가 상당하네요.”

“PC 소프트웨어 업체라고 규모가 다 크진 않아요. 제가 야후에서 일할 때 알던 업체 중엔 영세한 곳도……. 아? 잠시만요.”

브릭은 뭔가 떠올랐는지 탁자를 쾅 소리 나게 두드렸다.

“어쩌면 앱스토어에 올라온 앱 중, 제가 아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요. 티랙튼 소프트처럼 PC용 소프트웨어 업체가 전향한 곳도 있을 테니까요.”

브릭은 야후에서 10년을 넘게 일했다. 당연히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업체도 많을 것이다.

“생판 모르는 업체보다 안면이 있는 업체를 알아보는 게 훨씬 좋죠. 어서, 확인해 보세요.”

그는 앱스토어의 리스트를 제목이 아닌, 만든 업체명으로 정렬시키고 쭉쭉 내려갔다.

얼마 후.

그의 손이 멈춘 곳은 [와인 셀럽]이라는 앱이었다.

그건 와인에 대한 정보를 담은 백과사전 앱이었는데, 와인 라벨을 카메라로 찍으면 자동으로 정보를 찾아주는 기능을 홍보하고 있었다.

서비스 카테고리의 22위. 유료 앱치곤 순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가격 책정이 너무 높았고, 게임이 아니었기에 실제 들어오는 수입은 형편없는 수준일 터. 여기라면 괜찮은데?

“베이직 소프트, 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업체죠. 그 당시엔 웹 소프트웨어 작업을 했었어요. 대표는 좀 거친 느낌이었지만, 직원들은 대부분이 같은 스탠퍼드 출신이라 손발도 잘 맞고 기초도 튼튼해 보였죠.”

“규모는 어떻게 되죠?”

이게 가장 중요하다. 너무 크면 삼키기 힘들고, 너무 작으면 인수하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대략 2년 전이었는데, 그땐 20명 정도를 유지한다고 들었습니다.”

“딱 좋군요. 업체와 연락해서 의사 물어보시고, 승낙하면 빠르게 진행해보죠.”

* * *

산호세 외곽에 있는 베이직 소프트의 사무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엔 사무실 대신 일반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주택을 사무실로 썼나 보군요.”

“실리콘밸리의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흔한 일이죠.”

브릭은 성큼성큼 입구로 걸어가 초인종을 누른다.

연달아 두어 번을 더 눌러봐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초인종 소리도 안 나고 안에 불도 꺼져 있네요.”

“전기를 내려놨나 본데요.”

“전화를 안 받을 때부터 이상했는데, 괜히 헛걸음한 게 아닌지.”

“잠깐. 차고 쪽에서 소리가 납니다.”

살짝 열린 차고 쪽을 둘러보자, 3대의 서버 컴퓨터와 통신선로가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다.

이곳은 전기가 들어오는지 서버가 불을 빛내며 구동하고 있었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왜 차고에서 작업하는 거죠?”

“그게 개발자들의 로망이거든요.”

“유명 창업자들이 차고에서 시작한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멀쩡한 집에 전기를 내리고 차고를 쓴다는 건…….”

그때,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망이 아니라 집에서 쫓겨나서 그렇습니다.”

그곳엔 머리가 개털처럼 부스스한 장신의 사내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닉스 소프트에서 왔습니다.”

“닉스 소프트요?”

“이번에 설립한 신생 소프트웨어 기업이죠. 그보다 베이직 소프트 직원입니까?”

베이직 소프트라는 말이 나오자, 젊은 사내의 미간이 좁아진다.

“직원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사장 놈 연락이 끊긴 지 두 달이 지났으니까요.”

생각했던 거보다 상황이 심각하구나.

난 차고 안을 슬쩍 훑어보곤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서 돌아가는 서버는 뭐죠?”

“저건 저희가 출시한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서버입니다. 저거라도 살려둬야 밀린 급여를 받을 테니까요.”

“밀린 급여요?”

“사장이 잠적했거든요.”

“아……. 혹시, 다른 직원들은 없나요?”

“모두 제 살길 찾아서 떠났죠. 아직 이직할 곳을 못 찾은 직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서버관리만 하고 있습니다.”

그림이 딱 그려지네.

법인 계좌는 벌써 동결시켰겠고, 이미 올라간 앱에 대한 수익금을 만들어서 임금과 퇴직금을 정산하겠다? 깡통 찬 사장을 찾는 것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럼 다른 직원들과도 연락하고 계시겠군요?”

“같은 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어차피 이쪽 계통에서 일 할 거면 연락하고 지내는 게 좋으니까요.”

“그렇다면, 저희가 도움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뜬금없이 도와준다는 말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임금 체불 소송. 준비 중인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도와준다는 겁니까?”

“저희도 베이직 소프트에서 받아 낼 게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와 함께 하시죠.”

* * *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앞서 우리가 쓸 만한 사무실이 필요했다.

브릭은 실리콘밸리 쿠퍼티노 쪽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하기 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조금 더 임대료를 주더라도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임대하면 근처에 거주하던 개발자들이 몰릴 거로 생각했으니까.

당장 눈앞의 비용보다 더 멀리 내다본 판단이었다.

우리가 구한 사무실은 200평 규모의 3층 건물로, 1층과 2층은 사무실로 쓰고, 3층은 회의실과 직원 휴게실로 결정했다.

이틀 만에 간단한 인테리어까지 마치자, 제법 그럴싸한 사무실이 완성됐다.

“자, 여기가 닉스 소프트의 1호 사무실입니다.”

“호우! 짧은 시간에 인테리어까지 끝냈군요?”

“일단 1층만 인테리어 했습니다. 내일은 손님이 찾아올 테니까요.”

“손님? 아, 내일이 베이직 소프트 직원들이 오기로 한 날이군요. 그런데 괜찮을까요? 우린 거짓말을 했잖아요.”

“전 거짓말 한 적 없습니다. 베이직 소프트에서 받아 낼 게 있다고만 했죠.”

베이직 소프트에서 내가 받아 낼 건 오갈 데가 없어진 직원들을 뜻한다.

내 뻔뻔한 대응을 본 브릭의 표정에 그늘이 드리운다.

“지금 와서 고백하는 거지만. 보스는 사기꾼 기질이 있는 거 같아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장난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들이 속았다는 걸 알면 난리를 피울지도 몰라요.”

“걱정하지 말아요. 임금체불 소송은 진짜 도울 거니까. 직원 복지로 그 정도를 못 해주겠습니까?”

“직원 복지? 허허허…….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할 정도네요.”

일단 내질렀지만 나도 반신반의하는 중이다.

숙련된 개발자를 구하려면 보수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지속될 거라는 신뢰성도 중요하다.

실리콘밸리는 하루에도 열 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곳이니 말이다.

그래서 규모가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려던 것인데…….

어쩔 수 없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수밖에.

“브릭, 인테리어가 끝난 1층을 임시 발표장으로 쓸 겁니다. 테이블 정리 좀 도와줘요.”

“뭘 발표하시려고요?”

“우리가 만들 앱에 대한 비전. 그걸로 예비 입사자들을 설득할 겁니다. 직원들이 입사하지 않고선 못 배기게 만들어야죠.”

다음 날.

약속 시각이 되자, 젊은 개발자들이 우르르 사무실로 몰려온다.

그 틈에는 우리가 처음 찾아갔었던 스칼릿도 끼어 있었다.

그녀는 날 보더니 아는 체를 해온다.

“대니얼, 제법 쓸 만한 사무실을 구했네?”

“반가워요, 스칼릿.”

“바쁜 날 보자고 한 이유가 있겠지? 시답잖은 일로 부른 거면 재미없어.”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분위기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뭔가가 있었다.

잠시 후.

서른 개를 준비했던 의자의 절반이 찼다.

기대엔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이 정도면 모바일 메신저 팀을 꾸리기엔 충분한 숫자다.

두근, 두근.

무대를 앞둔 내 심장이 요동친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던데, 두 번째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난 압박감을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고 빔 프로젝터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초대한 대니얼 강입니다.”

우려와는 달리 설명회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내심 집단 소송 서류를 책상마다 올려둔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브릭이 이미 물밑작업을 해둔 상태였다.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개발자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를 중에.

‘게시판에서 봤는데. 저 사람, 애플의 선임 디자이너래. 개발자 포럼에서 잡스를 대신해서 발표했다던데.’

‘나, 본 적 있어. 위클리 IT에 실려 있더라고.’

‘그럼, 닉스가 애플과 제휴했다던 게 사실일까?’

저 뒤쪽에서 나를 보고 있던 브릭과 눈이 마주친다. 그는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든다.

이런, 브릭.

곰 같이 생겨선, 혼자서 여우 짓을 하다니.

미리 작업을 칠 거면 내게도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았을걸. 괜히 혼자서 가슴 졸였잖아.

난 개발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한 중간 부분을 뭉텅 건너뛰고, 곧장 마지막으로 준비한 메인이벤트로 향했다.

“그럼,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완성된 샘플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저희가 개발할 닉스 챗을 소개합니다.”

화면이 전화되고, 모바일 메신저의 샘플 이미지가 나타난다.

내가 공개한 이미지는 미래의 모바일 메신저 앱인 왓츠업의 모습을 내 스타일로 변형해 둔 것이었다.

시간에 쫓겨 엉성한 부분도 있었지만 샘플 치곤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와우, 벌써 샘플이 나와 있어? 장난 아니네.”

“난 저런 식의 디자인은 처음 봤어. 색감부터 최근에 나온 앱들이랑은 다른데?”

“애플이랑 제휴했다는 게 진짠가 봐.”

여기저기서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 나온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발표인지 두고 보자며, 제일 앞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스칼릿도 날 보는 눈빛이 달라진 상태였다.

현장의 분위기로 봤을 때, 이미 상황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직 이직할 곳을 못 구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미 직장을 구했던 개발자도 퇴사하고 닉스 소프트에 넘어올 기세였다.

난 헛기침을 해서 시선을 모으고 소리쳤다.

“이상으로 닉스 소프트의 설명회를 마칩니다. 자, 다음으론 저희 닉스 소프트의 창업주이자 대표인 브라이언 브릭을 소개합니다. 브릭. 앞으로 나오세요.”

얼떨떨한 표정의 브릭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속삭였다.

“갑자기 불러내면 어떡하라고요. 아무런 준비도 안 했는데.”

“여긴 당신 회사고, 저 앞에 앉은 사람들은 이제 당신과 함께할 직원들입니다. 부담스러워 할 거 없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 난감해하는 브릭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이거면 됐겠지.

그가 마음껏 날뛸 수 있게 판을 깔았고, 날개까지 준비했다.

이제 닉스 소프트가 얼마나 날아오를지는 오롯이 그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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