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30화 (30/206)

기적의 IT 재벌 30화

세계 IT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

최고의 기업은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은다.

야후의 제리 양,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로 이어지는 IT 기업의 창업 신화는 실리콘밸리로의 인재 쏠림 현상을 더 가속했다.

실리콘밸리로 기업들의 이주가 줄을 이었지만, 구직자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몰려들었다.

브라이언 브릭도 그 구직자 중 한 사람이었다.

야후에 10년간 재직한 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자 무작정 사직서를 던졌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자신감만 있으면 기업들도 자신을 중한 요직에 채용하고 승승장구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직장이 정글이면, 밖은 지옥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야후에서 쌓은 10년의 커리어를 강조해도 브릭의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실리콘밸리엔 유능한 인재들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브릭은 이미 6달이나 계속된 구직활동에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였다.

면접관 앞에선 어깨가 움츠러들었으며, 시선은 자연스레 바닥을 향했다.

“저희 페이스북에선, 아무래도 브라이언 브릭 씨의 채용이 힘들 것 같습니다.”

구글, 제록스, 델, 노키아, 트위터 등등. 이번이 몇 번째 퇴짜인지 세는 걸 포기한 지 오래다.

페이스북 면접장을 나온 그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야후를 박차고 나올 때, 자신만만하던 자신은 어디로 갔을까? 이대로 구직 활동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닐까? 내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까?

건물 앞을 천천히 걸어 나온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비틀비틀 걷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야도 어쩐지 흐릿한 거 같고…….

이런. 안 돼!

* * *

“이 사람이 네가 찾는 그 사람?”

“브라이언 브릭, 72년생. 수북한 수염에 곰처럼 생긴 모습을 보니 맞는 거 같네요. 병원의 응급실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페이스북 도착한 우리는 입사면접장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란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이 사람, 브라이언 브릭이었다.

“현우야.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데 우리가 응급실까지 찾아온 거냐?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아니겠고.”

“음……. 야후에서 10년간 일했고, 지금은 딱히 하는 일이 없을걸요.”

“쉽게 말해서 백수?”

“그런 셈이죠.”

매형은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 반대편에 날아와 꼭 만나야 한다던 사람이 백수라니.

“그럼 방금은 왜 페이스북 건물에서 나온 거야?”

“오늘이 페이스북 면접 날이거든요.”

내 말에 매형은 허탈한지 혼자서 한참이나 허허허 거리며 웃어댄다.

“이 사람 때문에 날 한국에서 부른 건 아니라고 말해줘. 제발.”

“서류도 보고 겸사겸사죠. 덕분에 미국 구경도 하고 좋잖아요?”

“야이, 씨!”

매형이 티슈 곽을 집어 던지려 할 때, 병상에서 미약한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깨어났나 본데요.”

우린 자연스럽게 누워 있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으, 으음……. 여긴……. 어디? 당신들은 누구죠?”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브릭이 몸을 일으키려 한다.

난 재빨리 그의 행동을 제지하고 나섰다.

“브라이언 브릭 씨, 맞으시죠? 여긴 병원입니다.”

“병원? 제가 왜 병원에 누워 있는……. 끄으!”

“아직 일어서면 안 됩니다. 당신은 페이스북 건물을 나서다 쓰러졌고 지금은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어요.”

“페이스북……. 아, 면접.”

몸을 계속 일으키려던 그의 힘이 탁 풀리는 게 느껴진다.

“혹시, 집엔 연락했나요?”

“아뇨, 아직. 지금은 제가 보호자로 돼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편히 쉬시면 됩니다. 제가 병원 수속은 처리를 끝냈으니까요.”

그 말에 브릭이 날 빤히 쳐다본다.

미국의 응급실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걸 처음 보는 동양인이 다 냈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아, 오해는 마세요. 전 브릭 씨의 사업 계획서를 보고 스카우트를 위해 왔으니까요.”

“제, 사업 계획서요? 아, 아아…….”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저희 닉스에서 일하실 생각 있습니까? 브릭 씨가 구상한 사업,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잠시 텀을 둬, 그가 생각할 시간을 준다.

갑자기 이런 제안을 받으면 누구라도 당황스럽겠지.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한숨을 내쉰다.

“솔직한 말로, 저 같은 놈을 써주신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뭘 하는 기업인지도 모르는 곳에 선뜻 들어가겠다고는 입이 안 떨어지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이걸 봐주시고 결정해주세요.”

내가 손짓하자, 매형은 어제 밤새도록 검토했던 서류를 그에게 건네준다.

“이게 뭡니까?”

“애플과 저희 닉스가 계약한 서류입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그에게 부연 설명을 해준다.

“앞부분은 디자인 계약에 관한 부분입니다. 브릭 씨가 봐야 할 곳은 마지막 페이지에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요?”

“그 내용을 브릭 씨가 구상한 사업에 연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고개를 갸웃거린 브릭은 건성으로 페이지를 슥슥 넘긴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 도달하곤 그 문장을 발견한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그는 자신이 병상에 누워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내 손을 붙잡아 온다.

“합시다! 이건 무조건 됩니다! 어서, 계약서를!”

지금까진 무력함에 절어 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브릭, 일단 진정하세요.”

“진정할 수 없어요. 오, 이런 맙소사! 제 구상에 딱 필요한 조건을 들고 오다니. 혹시,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입니까?”

그가 날 붙잡고 볼에 입을 맞춰온다.

“으익.”

생긴 것처럼 힘이 어찌나 센지, 매형까지 달라붙어서 그를 떼어내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뻐서. 오, 오우. 이런 맙소사!”

브릭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연신 거친 콧김을 내뿜는다.

“일단 쉬고 계세요. 계약서와 필요 서류를 준비해서 다시 올 테니까요. 여긴, 제 명함입니다.”

멋쩍은지 뒷머리를 슥슥 긁던 그가 명함을 보고 또 한 번 깜짝 놀란다.

“대니얼 강? 혹시, 보스턴에서 열린 개발자 포럼에서 잡스를 대신해 앱스토어 발표하신 분이세요?”

“아,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죠?”

“호우! 호우! 앱스토어라는 혁명으로 개발자는 해방을 맞이한다! 그 발표는 실리콘밸리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는 내 손을 맞잡곤 연신 위아래로 흔들어 재낀다. 힘이 어찌나 센지 내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다.

“당신 같은 분과 같이 일 할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이거, 진짜 꿈은 아니겠죠? 좀 꼬집어 주시겠어요?”

“원하신다면.”

난 아까의 복수로 젖먹던 힘까지 써 그의 코를 잡아 비튼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응급실에서 소란피우지 말고 누워 계세요. 곧 돌아올 테니까.”

복잡한 응급실을 빠져 나왔다.

브릭과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매형이 참았던 질문을 쏟아낸다.

“개발자 포럼? 잡스를 대신해서 발표도 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매형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보다 매형, 새로 만든 법인에 지분 설정은 해두셨죠?”

“그건 끝냈지. 닉스 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만든 닉스 소프트. 그런데 저 브릭이라는 사내에게 지분을 35%나 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면 싸게 치는 겁니다. 20조를 퉁치는 건데요.”

“엥? 20조?”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기에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고 속으로 삼킨다.

브라이언 브릭.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채용이 거절된 후, 혼자서 창업에 나서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앱이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왓츠업이다.

왓츠업은 회원 수만 자그마치 10억 명에 달하는 초거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로 성장하는데, 2014년엔 자신의 채용을 거부했던 페이스북이 왓츠업을 190억 달러에 인수하게 된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그가 본래 구상하던 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선점 효과가 중요한 모바일 메신저 앱 특성상, 애플폰의 선탑재 앱으로 밀어 넣으면 그 파괴력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것이다.

“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자 흥분감에 숨이 거칠어진다. 더불어 심장은 전력으로 피를 짜내온다.

쿵, 쿵, 쿵.

단순히 돈을 벌었다고 생각했을 땐 느끼지 못했던 희열감이 내 전신을 휘감는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앞서 걷던 매형이 돌아보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온다.

“현우, 너 얼굴이 완전 붉은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뇨. 오히려 상태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는걸요. 진짜, 진짜, 최곱니다. 일을 얼른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죠.”

“나야 그럼 좋지.”

“오늘 밤은 한잔하지 않고선 잠들지 못 할 거 같네요.”

“흐흐, 오늘은 밤새도록 달려보자.”

전 세계를 독점하는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그 그림의 가장 중요한 퍼즐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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