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28화 (28/206)

기적의 IT 재벌 28화

개발자 포럼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앱스토어와 애플 생태계의 비전을 전파했으며, 난 IT업계에 성공적으로 얼굴을 알리는 데뷔 무대가 됐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사람들이 날, 애플의 새로운 선임 디자이너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나로선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포럼이 끝날 때까지 [애플의 선임 디자이너 대니얼 강] 행세를 했다.

내 생각엔 그 소문을 잡스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 같기도 했다.

뭐, 그 덕분에 포럼이 끝날 때까지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 말이다.

보스턴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난 잡스와 함께 캘리포니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는 애플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의 애플 본사는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이 전부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착공할 애플 제2캠퍼스는 부지만 3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초거대 시설이 된다.

나는 남은 주말 동안 실리콘밸리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IT 기업의 메카라고 불리는 실리콘밸리는 IT 덕후인 내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달콤했던 휴일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이제 쿠퍼티노에 온 진짜 목적을 달성해야 할 시간이 됐다.

월요일 아침에 잡힌 애플의 긴급 이사회 안건은 신규 디자인 협약 건.

소집 요청자는 CEO인 스티븐 잡스였다.

끼익-

무거운 회의실 문이 닫힌다.

무려 4시간에 걸친 릴레이 협상을 한 탓인지 온몸의 기력이 빨린 느낌이다.

“대니얼, 힘들어 보이는군요.”

“조금 버겁긴 하네요.”

어찌 된 일인지 나보다 건강이 안 좋은 잡스는 멀쩡해 보인다.

4년 전,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사람이 맞긴 한 걸까? 어쩌면 이미 이런 회의쯤은 익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이사회 사람들을 만나보니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충격입니다. 저렇게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이 IT업계를 움직이고 있다니. 잡스, 당신은 대체 저 사람들과 어떻게 일하는 겁니까?”

“돈만 보고 움직이는, 저런 이들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 그것도 CEO가 할 일입니다. 제가 없으면 어떻게 될지가 걱정이지만요.”

“어, 음…….”

앞으로의 미래를 아는 난 쓴웃음이 지어졌다.

잡스를 대신해 CEO가 될 사람은 톰 쿡이다. 그가 이끄는 애플은 혁신보다 안정을 택한다.

제조과정을 간소화하고 부품 공급 회사의 숫자를 줄였으며, 재고 관리와 유통 과정을 중점으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했다.

그 선택은 경영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지만 혁신적인 애플 제품을 원하던 소비자들에겐 씁쓸한 결과였다.

“그것보다 계약사항은 만족하십니까? 제 생각엔 디자인을 너무 헐값에 넘기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애플의 CEO가 제게 이런 말을 하시면 안 되죠.”

“CEO는 회사의 대표지, 소유주는 아닙니다.”

“하하……. 그래도 좀.”

잡스는 주먹을 불끈 쥐며 상을 찌푸렸다.

“망할 이사회 놈들은 제 경영실적이 나빠지면 또 해임안을 올릴 겁니다. 야비한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죠.”

실제로 잡스는 애플의 설립자면서도 1985년에 쫓겨났다가, 1996년에 복귀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사회와는 앙숙처럼 지내는 듯하다.

그런 탓인지 협상할 때도 잡스는 시종일관 내 편을 들어줬다.

그 덕에 난, 협상 테이블에서 더 많은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고 말이다.

“추가 요청사항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 주세요. 아직 내부 회의가 남았으니까요.”

“제겐 이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계속 추구하고, 계속 시도하라. 당신이 스탠퍼드에서 했던 말이잖아요?”

“이거, 참.”

잡스는 쑥스러운 듯 콧잔등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슬슬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회의실에선 이사회 놈들이 눈이 빠져라 절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난 기쁜 마음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잡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그와 헤어지는 게 아쉽진 않았다.

우린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보게 될 테니까.

* * *

애플 본사를 빠져 나온 난,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주세요.”

택시의 안락한 시트에 몸을 뉜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두려 했지만,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져 온다. 아무래도 내 손에 들린 서류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겠지.

“역시 쉬기는 글렀나.”

고이 접어둔 서류를 한 장씩 넘겨본다.

그러다 중간쯤부터 등장하는 로열티에 관한 부분을 다시 읽어갔다.

닉스는 애플과의 협약 기간(2년) 동안 디자인(스마트폰 3종, 노트북 3종, 주변부품 1종. 총 7종)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애플은 닉스의 디자인을 채용한 제품에서 발생한 매출의 0.1%를 로열티로 지급한다.

만약, 닉스의 디자인을 차용한 기기의 판매량이 1000만대가 넘을 경우, 초과 판매분의 매출은 프리미엄 로열티를 적용하여 0.9%를 추가로 지급한다.

이 부분이 계약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애플의 이사진들은 로열티를 0.1%만 지급하길 원했고, CEO인 잡스는 내 디자인을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걸 강조하여, 최소 0.3%는 줘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이사진과 잡스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 당사자인 내가 직접 나서서 이사진의 안인 0.1%를 택해 버렸다.

날 도우려던 잡스는 의아한 표정을, 협상에서 승리한 이사진들은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난 씰룩이는 입꼬리를 붙잡는 데 고생해야 했다.

왜냐고?

로열티 0.1%를 택하는 대신, 이름도 생소한 프리미엄 로열티라는 조건을 추가할 수 있었으니까.

이건, 미래를 알고 있는 나였기에 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애플의 이사진은 물론이고 IT 분석가들도 2008년에 출시한 애플폰3G의 차기작은 1000만대가 판매량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다.

통상적인 휴대폰의 교체 주기는 2년이었고, 전화 기능만 멀쩡하면 수년째 같은 폰을 쓰는 경우도 허다했으니 말이다.

애플폰 1대당 판매가가 700달러라고 가정하면 1000만대의 매출은 70억 달러.

70억 달러의 0.1%는 700만 달러다.

700만 달러.

이것이 애플의 이사진들이 예상한 최대 로열티였다.

하지만 2009년에 출시 될 애플폰3GS는 그 3배인 3000만대를 판매하며, 내후년에 등장할 애플폰4는 무려 9500만대를 판매하게 된다.

만약, 애플폰4부터 내 디자인이 적용되고 1000만대 이후 분.

즉, 8500만대에 로열티 1%가 적용된다면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대당 700달러 제품을 8500만대 팔았으니 애플은 무려 매출만 595억 달러. 거기에 1%인 5억9500만 달러는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잡스가 요청한 0.3%를 승낙했으면 2억 달러 정도로 마무리될 로열티가, 이사진들의 판단미스로 곱절 이상 불어나게 된 것이다.

700만 달러로 디자인을 샀다고 생각했던 이사진들이 실제는 로열티로 6억 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애플, 이사님들 완전 땡큐. 이거만 가지고도 평생을 놀고먹겠어.”

물론, 로열티 하나 보고 미국에 와서 잡스를 만난 건 아니다.

내가 처음에 제시했던 조건은 애플폰 뒷면에 새겨진 글귀인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대신 [Designed by Nix]를 심어 달라는 거였다.

만약 이 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닉스의 이름은 단번에 유명해질 테고, 회사의 가치도 천정부지로 뛸 것이다.

로열티 비율보다 이 부분에서 더 오랜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당연히 이 조건은 애플에서 거부했다.

애플이라는 자존심은 자사 제품 뒤판에 타사 이름이 박히는 걸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Designed by Nix] 대신 다른 조건 하나를 내가 얻는 것으로 협상이 마무리됐는데.

그 조건이란.

애플은 닉스와의 협약을 진행하는 동안 닉스에서 제공하는 앱 서비스 1종을 선탑재시킬 의무가 있다.

계약서 마지막 장에 자필로 휘갈겨 쓴 추가 조항.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이게 내 미국 방문의 진짜 이유였다.

이 한 문장이 가지는 파급력을 애플의 이사진은 물론이고 혜안이 있던 스티븐 잡스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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