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27화
“흐읍, 후-”
우선,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곤 대답을 기다려준 잡스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최고의 IT 회사인 애플에서 저 같은 녀석을 원한다니. 정말, 감정이 벅차서 가슴이 떨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역시 거절해야겠습니다.”
“예? 대체 왜죠?”
“전에 다니던 직장 생활이 정말 끔찍했거든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죠. 그걸 되풀이할 순 없습니다.”
잡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대니얼, 나도 당신과 같아요. 첫 직장에서 1년을 못 채우고 때려치웠으니까요.”
“아타리 말이군요.”
“오, 잘 알고 있군요. 똥 같은 게임을 만들던 회사였죠. 혹시 해보셨습니까? E.T. 라고.”
“물론 해봤죠. 똥이 아까운 게임이던데요.”
우린 동의한다는 듯 서로를 보고 킥킥거렸다.
확실히 같은 취미를 가진 덕후끼리는 나이나 국가와 상관없이 통하는 뭔가가 있다.
거절당했음에도 잡스는 이 정도로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다시 나를 붙잡았다.
“뛰어난 씨앗이 있어도 토양이 엉망이라면 꽃을 틔우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든 걱정은 내려놓고 애플로 와주세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는 닉스 하나를 컨트롤하기도 버겁거든요.”
“닉스?”
닉스 이야기가 나오자, 잡스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호오. 닉스라는 곳, 대니얼의 회사였습니까? 뭐 하는 회사죠? 소프트웨어? 웹 서비스? 아니면 게임?”
“아직까진……. 디자인 회삽니다. 앞으로 더 추가될 예정이지만요.”
“오! 정말 죄송해요. 대니얼이 디자이너라고 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군요. 그땐 너무 경황이 없어서.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대니얼의 디자인을 구경했으면 하는데요.”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사실, 아까부터 어떻게 하면 대화의 흐름을 이쪽으로 돌릴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던 차였으니까.
잡스가 먼저 제의해주면 나야 고맙지.
소중히 들고 다니던 서류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든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거세게 요동친다.
내 디자인을 본 그의 반응이 어떨까?
놀랄까? 아니면 고개를 가로저을까? 어쩌면 혹평을 쏟아 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창조물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하물며, 보여줄 인물이 잡스라니. 처음부터 최종 보스에게 당도한 느낌이랄까.
긴장할 거 없어. 처음부터 이러려고 미국에 온 거잖아.
긴장감을 꾹꾹 누르며 노트북을 조작한다.
언제든 디자인을 보일 수 있게 해뒀기에 준비는 순식간에 끝났다.
마지막으로 엔터키를 탁! 하고 누르자 렌더링 프로그램의 로딩 바가 차오른다.
“음, 3D 렌더링 이미지군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 쪽이었습니까?”
“맞습니다. 스마트폰 디자인이죠.”
그 말에 흥분한 잡스가 손을 짝- 하고 마주친다.
마치, 아이처럼 흥분한 그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날 재촉해댄다.
“스마트폰? 정말 기대됩니다. 자, 어서 어서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노트북 모니터에 이미지가 떠오른다.
3D로 실물처럼 제작된 이미지는 내 오리지널 디자인을 채택한 스마트폰이었다.
2014년부터 유행을 타는 날카로운 플랫 디자인과 애플사의 감성을 섞어 커스텀 한 녀석으로, 쭉 뻗은 밴드 라인이 특징이다.
아쉽게도 얇은 베젤은 이 시대에 구현하기 힘들었기에 제외했고, 두께도 적당히 넓혔다.
그런 마이너스 요소를 더했음에도 전체적으로 스포츠카를 연상케 하는 날렵함이 살아 있었다.
“이 디자인, 어떻게 생각합니까?”
꿀꺽.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진다. 이를 미리 악물고 쏟아질 악평에 대비한다.
제발………….
잠시 후, 모니터를 뚫어지라 보던 그의 시선이 내게 도달했다.
“대니얼, 당신…….”
잡스는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본다.
“당신, 뭐 하는 사람입니까?”
“예? 그게 무슨 말이신지.”
“어디서 당신 같은 사람이 뚝 떨어진 거죠?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아는 단어로 표현이 안 되는 디자인이군요. 혹시 미래에서 왔습니까?”
“헙! 컥, 컥.”
순간 너무 놀라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역시 당신을 애플로 끌고 가야겠습니다. 자, 어서 캘리포니아로 가시죠. 어서요.”
“잡스, 잠시만요. 이 디자인이 상업적 가치가 있어 보이나요?”
잡스는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가 아니라 천재적인 상인이다. 그라면 디자인의 미적 부분보다 상업적 가치를 먼저 꿰뚫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과 정반대였다.
“상업성요? 지금 저랑 장난합니까?”
그는 잔뜩 상기 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가리킨다.
“상업성이 대숩니까? 자, 보세요. 제가 가진 애플폰3G를 이 이미지 옆에 가져다 대면, 이런 맙소사. 제 애플폰은 원시인이 쓰던 부싯돌처럼 보이잖아요. 이 디자인은 미쳤어요. 이건 미쳤다는 말 말곤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요!”
성공? 진짜 성공이야?
기쁨의 환호보다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사실, 내 오리지널 디자인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차선책도 있었다.
내후년에 등장할 애플폰4의 디자인을 베이스로 살짝만 변화를 준 렌더링도 준비해뒀으니까.
양심에 찔리는 행동이었기에 내 디자인 선에서 끝나길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긴장이 풀린 내가 픽 하고 웃자, 잡스는 도리어 화를 낸다.
“웃을 게 아닙니다. 전 매우 진지하단 말입니다.”
“예?”
“이런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는 디자이너의 영입을 방금 실패했잖습니까. 이젠 그 어떤 디자인을 봐도 이 녀석이 아른거려서 승인을 못 내릴 게 뻔합니다.”
내 오리지널 디자인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그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걸터앉는다.
“다시 생각해줄 수 없습니까? 한시적이라도 좋습니다. 애플에 와주십시오.”
“저는 한곳에 묶일 생각이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회사엔 출근 안 해도 괜찮습니다. 대신, 계약만 하는 거죠. 음……. 프리랜서 형식의 계약이 되겠군요. 형식상이지만 대니얼은 애플의 디자이너가 되는 거고, 애플은 대니얼의 디자인을 쓰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보수는 업계 최고를 약속하죠.”
잡스의 이런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이 시기의 잡스는 후속 애플폰의 디자인을 결정하고자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샘플 의뢰를 해대고 있었다.
디자인 샘플 비용만 300만 달러를 썼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새로운 디자인에 목말라 있었겠는가?
그런 그에게 시대를 앞서나간 디자인이 뚝 떨어졌으니. 이런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내가 별다른 말이 없자. 그는 애가 탔는지 침을 튀겨 가며 말을 이었다.
“방금 본 디자인을 쓰는 대신에 로열티로 10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모자랍니까? 그럼 150만 달러?”
“자, 잠시만요.”
“그보다 더 원하시는 겁니까? 그럼 100만 달러에 스톡옵션 10만 주를 드리겠습니다. 자, 어서요.”
“진정해요. 잡스, 제발.”
“10만 주에 제 몫 10만 주를 개인적으로 챙겨 드리죠. 자, 합이 20만 주! 더는 안 됩니다! 잠깐, 그렇다면.”
벌떡 일어난 그는 다짜고짜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대니얼, 다른 디자인도 있겠죠?”
“예, 그렇긴 한데 아직 미완성이라.”
“그럼, 노트북 좀 빌립시다. 다른 디자인도 다 확인해야겠어요.”
“헙! 그건 안 됩니다! 거기 서요, 잡스!”
난 대기실 밖으로 노트북을 들고 나가려는 그를 막기 위해 진땀을 빼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