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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26화 (26/206)

기적의 IT 재벌 26화

“반갑습니다, 여러분. 피곤한 잡스를 대신해 앱스토어의 미래를 발표할 대니얼 강입니다.”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미 잡스가 걸어둔 마법은 풀렸다는 걸.

난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단상 아래를 한 번 둘러본다.

수백 개의 시선이 내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다.

무대 아래에서 느끼지 못한 압박감.

여과되지 않은 긴장감이 내 심장에 그대로 전해져온다.

후유……. 이럴 걸 예상했잖아.

아무 계획도 없이 무대에 선 건 아니다.

이미 잡스가 판을 다 깔았으니, 나는 내 방식대로 발표를 이어갈 것이다.

“앞서 잡스의 발표로 대략적인 앱스토어의 비전은 이해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질문하시는 분이 없더군요. 혹시 졸고 계셨던 건 아니시죠?”

조크를 던졌지만, 반응이 없다.

젠장, 이 분위기 어쩔 거야.

“지금부터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먼저……. 거기 앉으신 푸른 타이 신사분.”

내가 지목한 사내가 일어서자 주최 측에서 마이크를 전달한다.

“예, 저는 슈퍼독을 개발한 에디 칼턴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앱스토어라는 플랫폼을 애플이 아닌, 타사의 휴대폰에까지 지원할 의향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비록 내가 애플사 직원은 아니지만 미래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답변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앱스토어는 애플의 기기에만 지원될 예정입니다.”

“정말입니까?”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이런, 세상에. 오직 애플폰 전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건가요? 개발비를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의 우려가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앱스토어가 쓸 수 있는 기기는 애플폰 1세대와 애플폰3G가 유일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예상했던 질문 중 하나다.

“반대로 그건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직 두 기기에만 포커스를 맞추게 되므로 개발 기간이나 유지보수에 들이는 비용은 확연히 줄어들 테니까요.”

“음…… 그렇긴 하죠.”

이 시절의 모바일 프로그램은 개발보다 최적화나 버그 수정이 더 골머리를 썩였다.

아직 모바일 기기에 표준이 정립되지도 않은 터라, 회사마다 적용한 기술, 해상도, 구동 방식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장 점유율이 낮은 기기는 아예 지원을 포기해 버릴 정도였다.

칼턴은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우선, 하나 넘겼고.

답변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들이 쇄도한다.

“네, 거기 계신 숙녀 분. 말씀하세요.”

“올해 애플폰 판매량은 얼마로 예상하십니까?”

“제 예상이지만 600만 대를 조금 넘길 거 같습니다.”

개발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하면 내가 답한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앱스토어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마도 잡스를 제외하면 미래를 아는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설마, 그는 이런 것도 예상 한 건가?

답변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붙어온다.

나도 모르는 새 움츠려졌던 어깨가 펴지고, 시선도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게 됐다.

처음엔 날 보고 ‘뭐 하는 놈이 잡스 대신 질문을 받는 거야?’라는 표정을 하던 사람들도 이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분위기로 흐른다.

슬슬 질문거리가 떨어져 간다고 생각했을 때, 참석한 개발자치곤 나이가 많은 중년인이 손을 번쩍 든다.

“저도 질문 있습니다!”

“네, 거기……. 헛.”

질문자의 얼굴을 본 순간 말문이 턱 막힌다.

저 사람은 브랜든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선임 부사장이잖아. 여길 대체 왜 온 거야?

스미스는 내가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치고 들어왔다.

“대니얼, 당신의 답변은 훌륭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모인 모든 개발자의 근본적 갈증은 풀어주지 못 한 거 같군요.”

“그 갈증이 뭔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허허, 가르쳐 드리고 말고요.”

그는 단상으로 성큼성큼 올라오더니 나와 눈을 마주친다.

“과연, 애플폰 전용 앱을 만들면 수익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그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개발자의 의문이겠지요.”

“그건 첫 질문에서 제가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답변으론 여기 있는 개발자들을 납득 시키지 못합니다. 애플에선 일단 앱스토어 전용 앱을 개발해 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에겐 생계가 달린 문젭니다. 만약, 개발했는데 수익이 없으면 애플이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플랫폼 사업자가 개발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개발비 명목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건, 기존의 스마트폰이나 PDA에서 쓰던 방식이다.

이건 개발자의 자유로운 참여를 지향하는 앱스토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스미스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객석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 잘 생각해보시죠. 현재 모바일OS 점유율은 심비안과 블랙베리, 윈도우 모바일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점유율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애플만 보고 개발을 시작한다고요? 허허, 저희 개발자들을 자선 사업가쯤으로 보는 겁니까?”

이 늙은이. 처음부터 훼방 놓을 작정으로 왔구나.

나도 인정한다. 애플OS는 아직 불안정하다.

고작 1년밖에 안 된 OS였기에 다음에 출시 될 애플폰이 흥행에 실패하면 같이 침몰할 게 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애플의 신제품인 애플폰3GS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며 연간 판매량 2천만 대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될 테니까.

그에 반해, PDA에 탑재된 심비안의 점유율은 1년 채 못가 바닥까지 처박힌다.

스마트폰의 출시 후, PDA를 쓰는 사람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난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스미스 씨. 재미난 통계치를 가져오셨군요. 그런데 당신이 제시한 통계치도 수익에 관한 의문을 해소할 순 없을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난 의도적으로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모바일OS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 구매에 얼마를 소비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여기 모인 개발자분들 중 PDA용 소프트웨어 팔아서 재미 보신 분 있습니까?”

고개를 돌려 누가 손을 들었는지 확인하는 사람만 있을 뿐,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

당연히 있을 리가 있나.

이 시절의 PDA는 보급률이 1% 채 안 됐을 뿐더러,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사람도 드물었다.

대부분의 PDA 사용자들은 기본 프로그램으로 문서나 메일링을 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포럼에 모인 개발자들의 주 수입은 제조사에서 요청한 소프트웨어를 납품하거나, 간단한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익이 나지도 않는 PDA 점유율을 들이밀고 앉았으니. 비웃음이 나올 수밖에.

난 일부러 놀라는 척하면서 말했다.

“스미스 씨. 개발자분들은 PDA에서 수익이 없다고 하네요. 이게 정말입니까?”

“개발자들은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소.”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야 충분히 벌고 있겠죠. 설마, 여기 계신 모든 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 취직시키겠다는 소리는 아닐 테고……. 아 참. 윈도 모바일에서 판매된 외부 소프트웨어 매출통계 가지고 계시죠? 얼마나 팔렸던가요?”

“으음…….”

그는 입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뭐라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렇겠지, 그 사실상 수익이 제로에 가까운 통계치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본전도 못 찾은 스미스는 이를 악물고 날 노려보다, 터덜터덜 단상 아래로 내려간다.

난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관중에 던진다.

“앱스토어는 단순한 애플OS의 판매 플랫폼이 아닙니다. 개발자와 소비자의 직접적인 창구가 될 것이며. 이 말은 즉, 더 이상 개발자들이 제조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발자들 대부분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눈을 마주친 몇몇은 엄지를 치켜들기도 한다.

“제가 장담하건대, 개발자들은 앱스토어라는 혁명으로 해방을 맞이할 것입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산발적이던 박수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어느덧 티파티 룸 전체를 메워버렸다.

더불어 환호 소리까지 들려오자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내가……. 해낸 건가? 잡스를 대신해서?

단상을 내려가는데 다리가 휘청거린다.

억지로 몸을 가누며 대기실로 들어가자, 잡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였어요! 대니얼, 역시 당신이 해낼 줄 알았습니다. 브랜든 자식이 뒷문으로 빠져나갈 때, 썩은 표정을 당신도 봤어야 했는데. 크흐흐.”

“그랬나요? 정신이 없어서 그가 간 줄도 몰랐네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수고했다면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있는 게 전설로만 여겼던 스티븐 잡스라니.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앱스토어라는 혁명으로 개발자는 해방을 맞이한다니.”

“제가 무대에서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반응만 좋으면 됐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잡스는 갑자기 진지해진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대니얼, 나와 같이 일할 생각 없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신지…….”

“애플로 대니얼, 당신을 스카우트하겠다는 말입니다.”

“애플에는 당신과 같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대니얼, 저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가시죠.”

충격 때문인지 사람이 멍해진다.

내가 애플에 입사한다고……?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을 때와는 비교도 못 할, 그런 전율이 내 전신을 휘감는다.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에게 인정받았다는 성취감은 그 어떤 마약보다 짜릿한 쾌감이었다.

잡스와 함께 일하고 싶다.

애플폰 개발에 참여하고 싶다.

애플에 입사해서 커리어를 쌓고, 세계적인 IT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욕망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저마다의 소리를 질러댄다.

난 녀석들을 억지로 밀어 넣고 말했다.

“그 말……. 진심입니까?”

“물론이죠. 충분히 고민하고 꺼낸 이야깁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한 걸 가까스로 멈췄다.

애플에 입사할 기회.

미래를 아는 내가 애플이라는 호랑이에 올라타면 손쉽게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다.

회귀 전의 나였다면 가랑이를 붙잡고라도 들어가려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난 회귀 전, 영일 포장에서 10년을 일했다.

애사심이 투철했던 건 아니지만, 내 힘닿는 데까지 회사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귀를 겪고 냉정하게 지나온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회사 생활이 내게 남긴 건 무엇 하나 없었다.

그 대상이 애플이라고 뭔가 달라질까?

씁쓸한 과거 일을 떠올리자, 벅차올랐던 감정이 차갑게 식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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