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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24화 (24/206)

기적의 IT 재벌 24화

엄청난 프로펠러 소음이 헤드셋 너머로 들려온다.

10분에 1500달러를 주고 고용한 개인 헬기가 내는 소음이었다.

내 옆 좌석엔 애플의 CEO이자, 스마트폰의 전설이라 불리게 될 스티븐 잡스가 앉아 있다.

아이처럼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엄지를 치켜든다.

“이대로라면 개발자 포럼이 끝나기 전에 도착하겠군요. 대니얼,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럴 땐 영어 회화를 배워둔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영일 포장에 일을 던져주는 오성전자 디자인 팀의 절반이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었기에 싫어도 영어를 익혀야 했으니까.

한때는 해외로 이직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영어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뭐, 중소기업 출신의 디자이너가 영어 하나 더 할 줄 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차를 몰면 4시간이지만 헬기로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헬기에서 내린 우리는 보스턴 시내까지 이동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차량으로 이동했다.

“자, 어서 타시죠. 여기서 보스턴 HTL 호텔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잠깐만요. 대니얼, 할 말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우선. 헬기뿐만 아니라, 차까지 준비해준 당신의 섬세함에 감사하고 싶군요.”

잡스가 감사를 표하자, 난 손을 내저었다.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저도 이번 개발자 포럼은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잡스, 당신의 발표가 예정된 포럼이잖습니까.”

“그저, 홍보 목적의 발표뿐입니다. 그보다 전 걱정이 앞서는군요. 당신이 제게 무얼 얻고자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말입니다.”

솔직히 뜨끔하다.

그에게 뭔가 얻고자 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니얼,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공과 사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따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타고 온 헬기 이용료도 제가 내도록 하죠.”

잡스는 타인과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한 듯했다.

나 역시 헬기 한 번으로 친분이 쌓일 거로 생각진 않았다.

난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공과 사가 분리돼 있다니, 그것 참 다행입니다. 저도 그쪽이 편하니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앞으로 IT계의 전설이 될 애플폰을 만든 사람. 그것만으로 당신을 돕고 싶다면 이상할까요?”

“이상하죠.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당신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21세기 최고 발명은 스마트폰이며, 스마트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애플입니다. 그건 인정하시죠?”

내 말에 잡스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좋습니다. 이미 역사엔 스마트폰의 탄생이 기록됐습니다. 당연히 스마트폰에는 스티븐 잡스라는 이름을 뺄 수 없을 테고요. 역사에 오르내릴 인물. 그를 돕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실제로 미래에는 스티븐 잡스의 일대기와 업적을 담은 영화, 서적,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

심지어 교과서에도 그의 연설이 등장할 정도였으니.

IT 업계에서의 그는, 이미 역사 그 자체다.

“역사에 오르내릴 인물이라……. 흠흠. 부담스럽긴 하지만 듣기 싫진 않군요.”

“제가 당신을 돕는 걸, 개인적인 호의로 봐달라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를 돕겠다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닐 거 같군요. 일단 당신을 믿어보겠습니다.”

한결 풀린 표정의 그가 먼저 차에 올라탄다.

후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처음 보는 사람과도 뚝딱뚝딱 친분을 만들던데, 역시 현실은 쉽지 않다고 할까.

일단 잡스와 동행하는 데까진 성공했으니 이제부터가 진짜다.

그와 만남은 계산적이었다 해도, 그를 만난 이후의 말과 행동은 모두 진심이어야만 했다.

진심이 아니면 진짜 마음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차를 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스마트폰을 주제로 이야길 꺼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 통화용으로만 쓰이던 셀룰러폰은 사양길로 접어들 겁니다.”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통신 회사들도 통화료보다 데이터로 장사하려 들겠죠.”

내가 살짝만 거들어주면 잡스는 신이 나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해댄다.

“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그걸 대비해서 우린 데이터 절감 기술도 같이 연구하고 있어요. 앞으로 통신 속도는 더 빨라지겠지만, 통신료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아, 미안합니다. 너무 제 얘기만 해댔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잡스,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이건 IT 기기 덕후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이겠죠.”

“더쿠?”

“더쿠가 아니라 덕후입니다. 일본에서 유래 된 말인데, 한 가지 계통에 미쳐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마니아보다 조금 더 강렬한 단어겠군요.”

“그럼 저도 대니얼과 같은 덕후겠군요.”

“흐흐, 그렇게 되나요? 앞으로도 우리와 같은 덕후가 세상을 움직일 겁니다. 지금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말이죠.”

“그거, 듣기만 해도 즐거운 일이군요.”

당신과도 그 광경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말,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스티븐 잡스는 앞으로 3년 후, 본인이 앓고 있던 췌장암으로 눈을 감는다.

21세기의 위대한 발명이라 불리는 스마트폰.

그것을 필두로 IT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정작 그 도화선을 당긴 천재는 결과의 조각조차 구경 못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와 관심사가 같았기에 토론 주제가 끊길 염려는 없었다. 오히려 잡스 쪽이 더 적극적이었다.

“저희 애플팟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잡스, 이미 MP3플레이어는 휴대폰이 잠식했습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애플팟은 이제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대니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멍청한 이사진들은 아직도 애플팟 연구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더군요.”

“그들은 우리 같은 덕후가 아니잖습니까.”

잡스는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스마트폰은 더 많은 것을 대체 할 것입니다. 그중 최종 목표는 역시…….”

그와 난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데스크톱이겠죠.”

잡스와 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먹을 마주 댄다.

“빙고.”

“혹시, 그에 대해 준비는 하고 있습니까?”

“지금의 웹 사이트는 모바일에서 너무 불편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우선 모바일에 맞는 규격을 먼저 설정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따르게 할 생각입니다.”

“앞선 기술을 맛본 사용자들이 몰리면, 개발자들도 애플이 제시한 규격을 따를 테죠.”

“바로 그겁니다!”

잡스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애플의 탐욕스러운 이사들은 이런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그저, 단기 실적에만 목을 맬 뿐이니까요. 하, 이런 맙소사. 대니얼, 제가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압니까? 당신 같은 사람과 같이 일하지 못 하는 걸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흥분한 잡스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점차 PC에서 스마트폰으로 흐름이 넘어가면, 애플의 독자 OS에 종속된 사용자들을 가진 우리가 주도권을 쥘 겁니다.”

“지금의 윈도우즈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말입니까?”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요.”

평범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속으론 놀라움의 연속이다.

독자 OS에 종속시킬 생각을 지금부터 하고 있었다니!

나야 미래에서 왔으니, 앞으로의 일을 훤히 꿰뚫고 있다지만 잡스는 지금 시대의 사람 아닌가? 그의 혜안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잠시 후.

차가 천천히 감속을 시작한다.

“저기가 보스턴 HTL호텔이군요.”

내 말에 잡스가 창밖을 내다본다.

“아직 포럼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개발자들은 저와 같은 IT 덕후입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일 아침까지라도 기다릴 겁니다.”

“덕후라는 말이 점점 마음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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