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23화
바쁜 현대의 상징과 같은 도시 뉴욕.
강변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사내 한 명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굳게 다문 입술과 간편한 캐주얼 차림.
그는 애플의 설립자이자 현 CEO기도 한 스티븐 잡스였다.
잡스는 최근 들어 한 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건 애플폰3G와 함께 야심차게 출시한 애플OS의 성장세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
기존 스마트폰들과 애플폰 1세대의 단점인, 앱을 유저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보완하고자. 2세대인 애플폰3G에선 앱스토어를 신설했다.
앱스토어는 사용자가 직접 사용할 앱을 검색하고 필요하면 구매까지 이어지는 모바일 마켓이었다.
구상대로만 흘러간다면 사용자는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고, 개발자는 더 좋은 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애플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얻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출시가 벌써 5개월이 지났음에도 사용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왜지? 이건 정말 놀라운 발견인데, 대체 왜?’
답답했던 잡스는 전문 기관에 앱스토어의 문제점을 조사시켰다.
기관에서 돌아온 보고서에 따르면, 근본적인 문제는 앱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의 저조한 관심이었다.
현재 앱스토어에 올라온 앱이라곤 아마추어가 엉성하게 만든 무료 앱이 대다수였고 간혹 올라오는 고퀄리티 앱은 수익성이 현저하게 낮았다.
개발비도 건지지 못하는 플랫폼은 자연스럽게 전문 개발팀의 관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어설픈 앱만 범람하는 앱스토어는 사용자들마저 등을 돌려버리게 됐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앱스토어는 죽은 플랫폼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만 했기에 애플은 자체적으로 해결 방 안을 모색하게 된다.
‘해결책이랄 것도 없지. 유일한 방 안은 쓸 만한 앱을 앱스토어에 등록시키는 것. 그 외의 방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니까.’
고급 개발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적임자로는 애플의 아이콘이자 CEO인 스티븐 잡스가 낙점됐다.
지금 스티븐 잡스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고, 애플에서도 그걸 잘 알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달리던 택시가 멈춰선다.
쭉쭉 뻗은 빌딩의 숲 사이에 있는 HTL호텔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잡스는 성큼성큼 로비로 향한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오늘 티파티 룸에서 열리는 개발자 포럼에 참석하러 온 스티븐 잡스입니다.”
“티파티 룸요? 죄송한데 저희 호텔엔 티파티 룸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분명 HTL호텔의 티파티 룸에서 개발자 포럼이 열리기로 했는데.”
“잠시 기다려주세요.”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는 직원을 보자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제법 규모 있는 포럼이기에 직원이 모를 리 없을 텐데…….
갑자기 어지럼증이 몰려와 습관적으로 안경을 고쳐 쓴다.
이번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무리한 일정을 잡은 탓이리라.
서부에 있는 캘리포니아와 동부에 있는 뉴욕은 비행기로도 6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손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티파티 룸에 대해선 알아보셨습니까?”
“예. 티파티 룸에서 열리는 개발자 포럼은 뉴욕의 HTL 호텔이 아니라 보스턴의 HTL호텔에서 열리더군요. 아무래도 보스턴의 HTL호텔이 신축인지라 착각하신 거 같습니다.”
잡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 쥐었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는 차로 4시간 거리다. 오늘 같은 휴일엔 그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고 말이다.
당장 택시를 잡아탄다 해도 도착했을 때쯤엔 이미 포럼이 끝났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이번 개발자 포럼은 애플OS와 더불어 앱스토어를 홍보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리다니.
지금의 실수는 사내에서 자신을 고깝게 생각하는 이사들이 물어뜯을 좋은 건수를 제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좋은 생각을 한 탓인지, 급 피로가 몰려온다.
천천히 걸어가 라운지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몸을 기댄다.
‘지금이라도 보스턴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캘리포니아로 돌아갈까?’
해결 방법이 없는 고민을 해봐야 짜증만 날 뿐이다.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할 때,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온다.
“잡스? 스티븐 잡스, 맞습니까?”
“누구십니까?”
고개를 들어보자, 그곳엔 인상적인 눈빛의 동양인이 서 있었다.
그는 대뜸 명함을 먼저 내민다.
“전 닉스 이노베이션의 디자이너, 대니얼 강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티븐 잡스.”
명함을 건네받은 잡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제 팬이라니 고맙군요.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제가 좀 바빠서…….”
손을 흔들어 주고 빠져나가려는 잡스를 그가 붙잡는다.
“잠시만요. 지금 보스턴으로 가실 겁니까?”
잡스가 경계의 시선을 보내자 그는 멋쩍게 미소 짓는다.
“아, 오해는 마세요. 방금 프론트 직원과 이야기 하는 걸 들었을 뿐이니까요.”
“후우- 들었으니 아시겠군요. 잠시 후면 보스턴에서 개발자 포럼이 시작될 텐데, 전 멍청하게도 뉴욕에 와버렸습니다. 포럼이 끝나기 전까지 보스턴에 도착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 같군요.”
“좋습니다. 잡스, 제가 당신을 도울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기껏해야 20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사내다. 그런데도 행동 하나하나에 깍듯한 예절이 배여 있다.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군. 아니, 동양인이라 그런건가?’
잡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당신을 보스턴까지 안내해드리죠.”
“휴일의 뉴욕 시내는 지옥입니다. 이미 늦어버린 개발자 포럼에 참석하는 것 보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게 나을 거 같군요.”
“그건 평범하게 갔을 때 이야기구요.”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위로 쿡쿡 찔러댔다.
“무슨 뜻입니까?”
“저희는 보스턴까지 날아간다는 뜻입니다.”
* * *
잡스가 애플OS 2.0의 홍보차, 보스턴 개발자 포럼에 갔던 일은 그의 자서전에 상세히 쓰여 있다.
앱스토어 개발자들에게 어떤 당근을 던져줄지에 대해 고민하다, 장소를 착각하고 말았다.
어떻게 포럼이 열리는 보스턴 HTL호텔이 아니라 뉴욕의 HTL호텔로 갈 수가 있지? 내가 만약, CEO가 아니라 일반 직원이었다면 당장 해고당했을 것이다.
잡스는 급히 택시를 타고 보스턴으로 갔지만, 그의 등장만 기다리던 포럼의 분위기는 이미 험악해진 상태였다.
그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개발자들에게 약속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적힌 자서전 내용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초기 애플폰의 디자인을 너무 완벽하게 만든 게 문제였다. 그 덕분에 우린 3년간 비슷한 디자인의 애플폰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
잡스의 자서전을 몇 번이나 읽은 난, 그의 가려운 부위를 긁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난 그가 포럼의 장소를 착각할 걸 미리 알고 있으며, 2020년까지 출시 된 모든 스마트폰 디자인을 두 눈으로 확인 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에게 개입하면 미래는 변할 것이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고정된 미래를 이용하여 지금처럼 투자자로만 살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내 손으로 바꾸며 직접 뛰어들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난.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선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