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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22화 (22/206)

기적의 IT 재벌 22화

“수아 씨, 그러니까 K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겠다는 거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이번 인사이드가 망해 버리면 그렇게 될걸요. 아아, 정말이지, 왜 맨날 개발자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왜! 왜! 좀 진득하게 기다릴 줄을 왜 모르느냔 말이야!”

자리는 돼지갈비집으로 옮겼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여전히 스마트폰과 IT였다.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그녀의 지식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잦아졌다.

내 나름대로 진성 폰덕이라 생각했건만, 그녀 앞에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었다.

국내외 제조사의 시스템과 개발 흐름은 물론이고, 앞으로 내다보는 지향점, 특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일반인인 나로선 절대 알 수 없는 귀중한 정보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술에 취해 신세 한탄이나 해대는 만취녀A로 변해 버렸지만 말이다.

게슴츠레 날 쳐다보는 그녀.

“현우 씨, 옴레아가 그렇게 망작이라고 생각해요?”

“예? 뭐. 옴레아 정도면 거의 확정적이죠.”

“그럼 우리가 만든 인사이드는? 그건 어떻게 생각해요. 이거도 망작이에요? 망작 아니죠? 명작이죠? 예? 말 좀 해봐요.”

“네, 명작 맞아요.”

0원짜리 명작이겠지만.

내 말은 들은 유슈아의 표정이 확 편다. 배시시 웃는 게 옆에 꽃 하나 꽂으면 딱 어울릴 거 같다.

“으어어어엉, 과장님 이번 프로젝트는 너무 힘들어요. 저도 쉬고 싶단 말이에요. 지방 출장요? 예, 제가 갑니다! 저요! 제가, 제가…… 음…….”

“수아 씨? 수아 씨?”

“나 졸려서 잘게요. 깨우지 마요. 음…….”

다가가서 흔들어 봐도 반응이 없다.

대박. 진짜 뻗었어?

다 큰 처자가 이리 무방비하다니. 내가 나쁜 맘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미인을 눈앞에 두고 남자로서 음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와 관계를 그거(?) 한 번으로 끝장내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았으니까.

“이모! 여기 갈비 3인분 추가요.”

혼자서 돼지갈비 3인분을 더 먹고 냉면까지 흡입했지만, 유수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이거, 더 기다려봐야 답이 없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그녀의 휴대폰 연락처에 엄마라는 곳에 전화하자. 10분도 안 돼서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찾아와 그녀를 데려갔다.

뭐야, 이거. 무서워.

* * *

허름한 회색 집 앞에 멈춘 ‘허’ 번호판 제너시스.

거기서 내가 내리자 누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뭐야? 네가 거기서 왜 내려?”

“회사 차야. 당분간 내가 타기로 했지.”

“엥? 그런데 너 언제 운전해 본 거야? 입대 전에 간신히 면허 땄잖아.”

순간 뜨끔했다.

25세 강현우가 가진 면허는 장롱면허다.

한데 조금 전의 난 대형 세단으로 좁은 골목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왔으니 누나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응? 아……. 휴가 때마다 친구 거 좀 몰아봤지. 내가 말 안 했던가?”

“한두 번 몰아 본 솜씨가 아닌데.”

“하하…… 내가 운전에 재능이 있나 보지. 빨리 타. 이러다 늦겠다.”

평일임에도 도로는 차로 가득했다.

조수석에서 화장하던 누나가 날 슬쩍 쳐다보며 말한다.

“요새 맨날 집에 늦게 오더라.”

“어, 요즘 일이 좀 바빠서.”

“옷에서 여자 냄새나던데.”

“엑?”

하마터면 실수로 가속페달을 밟을 뻔했다.

“장난이야. 요즘 준오 씨랑 일하러 다니느라고 늦는 거지?”

“그, 그렇지.”

“현우 너, 지금도 이렇게 바쁘면 복학해선 어쩌려고 그래.”

“복학 안 할 건데.”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누나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날 쳐다본다.

“산업 디자인 배우고 싶던 거 아니었어? 너 그것 때문에 전과까지 했잖아.”

“군에서 고민을 좀 해봤는데. 복학 안 하는 게 낫겠다 싶더라. 지금 다니는 대학을 졸업해봐야 딱히 나아지는 것도 없고.”

“아무리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누나답지 않은 날카로운 반응.

충분히 이해한다. 누나는 어릴 적 모든 걸 포기하고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기에 나라도 대학을 졸업하길 바라는 것이다.

뭐, 지금의 난 대학을 나와 봐야 들어갈 만한 곳이 영일 포장 같은 중소기업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대학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었고 말이다.

이럴 땐 하얀 거짓말도 필요하다.

“걱정하지 마. 수도권 쪽으로 편입하려고 생각 중이니까. 아, 그것보다 내가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너, 말 돌리지 마.”

역시 내 누나군.

하지만 이쯤은 나도 예상했지. 받아라. 폭탄 드랍!

“나 이번 주에 미국 가.”

“뭐? 미국?”

놀라서 립스틱이 조커처럼 그어진 게 아주 걸작이다.

후후, 미래까지 가서 나이를 먹고 온 나의 승리군.

“무슨 일을 하는데 미국까지 가는 거야?”

“중요한 일.”

“뭐?”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지금 꼭 해야 하는 일.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일.”

“갑자기 왜 이렇게 진지해?”

진지할 수밖에 없지.

이번 건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니까.

꽉 막힌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와 백화점 앞을 지나쳐 간다. 백화점 앞에 세워줄 줄 알았던 누나가 내게 물어온다.

“어디가? 백화점 방금 지났어.”

난 대답 대신 백화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건물의 지하로 향했다.

지하 출입로에 들어서자 보안요원이 우릴 가로막는다. 그는 차에 붙어 있는 인식표를 보더니, 경례하며 차를 안쪽으로 인도했다.

“여기 어디야?”

“오늘부터 우리가 살 곳.”

“뭐?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가보면 알아.”

따라오면서도 누나의 질문 공세는 계속된다.

하지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지 않던가. 난 묵묵히 누나를 701호 앞까지 이끌었다.

“자, 여기야. 들어가 봐.”

“어? 어…….”

입구서부터 고급스러운 대리석과 아늑한 할로겐 불빛이 우릴 맞이했다.

내부는 이 시기에 유행한 엔틱풍 실내장식으로 가전, 가구가 모두 갖춰진 옵션 완비 오피스텔이다.

“여기 호텔이야? 천장이 뭐 이리 높아?”

“오피스텔인데 2개를 합쳤대. 복층으로 1층은 누나가 쓰고 2층은 내가 쓰면 될 거야. 회사에서 임대형식으로 지원해준 거니까 그냥 쓰면 돼. 짐은 내일 이삿짐센터…….”

“자, 잠깐. 현우야 잠깐만.”

누나는 혼란스러운 탓인지 진정을 못 하고 있었다. 난 억지로 카드키 한 개를 누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몸만 오면 돼. 다른 건 내가 다 처리했으니까.”

“그래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부모 때문에 그러는 거야?”

대답을 기다렸지만, 누나는 시선만 피할 뿐 말을 잇지 못한다.

“걱정하지 마. 집 전화도 여기로 돌려놨고, 예전 집 대문엔 우리 전화번호도 써둘 거야. 우릴 찾을 의지만 있다면 전화가 오겠지.”

찾을 의지가 있다면.

“…….”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누나에게 물 한잔을 따라 건넨다. 잔을 단번에 비운 누나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은 어때? 맘에 들어?”

“좋네. 전에 집보다 훨씬. 그래도 이사는 생각을 좀 해보자. 갑자기 이런 식으로 정하는 건…….”

“안 살아도 상관은 없는데, 그래도 관리비는 우리가 내야 해. 여기 관리비가 가구당 23만 원이더라.”

“23만 원?”

“여긴 2개 층을 헐었으니 그 2배인 46만 원이겠지.”

말문이 막혔는지 어버버거리는 누나.

“난 매달 46만 원씩 내면서 예전 집에서 살 생각 없어. 누나는 어쩌든 맘대로 해. 나 시간 없어서 나가본다.”

“야! 현우야!”

일부러 누나가 말릴 새도 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후…….”

어릴 적부터 가장의 역할을 했던 누나.

내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분명 부모가 돌아오지 않을까? 라고 기대하며 썩어갔을 것이다.

그런 누나의 마음을 생각하자, 눈가가 촉촉해져 온다.

“바보야 정신 좀 차려. 10년을 넘게 기다려도…… 아무도…… 아무도 안 온다고.”

* * *

“전에 맡겼던 일은 다 처리했다. 국내엔 접수 완료고 미국 특허청엔 넘어가고 있을 거다.”

매형은 내 앞에 서류뭉치들을 내려놓는다.

요 며칠간 작업해서 제출한 디자인 특허 관련 서류였다. 자잘한 건 드로잉으로 했지만 세밀하게 표현해야 할 건 3D 렌더링 프로그램을 썼다.

구형 프로그램이 손에 안 익어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게 나온 편이었다.

전체적인 형태부터, 세밀한 모서리 마감 하나까지 따로 특허를 제출했기에 증명 서류만 1000장이 훌쩍 넘어가는 양이다.

“이 많은 걸 벌써 다 하셨어요?”

“당연히 검토만 하고 다른 데 넘겼지. 특허는 기업 소송에서 단골 메뉴라 전담 변리사가 따로 있어. 그런데 대부분이 디자인 특허더라. 이걸 다 써먹을 데가 있는 거냐?”

“언젠간 쓸모가 있겠죠.”

이제 하려는 일에 필수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나중을 위한 보험의 개념이 더 컸다.

후발주자로 따라오는 대기업이 특허로 걸고넘어지는 걸 원천 차단하는 용도라고 할까.

“아, 다음엔 디자인 특허 말고 다른 쪽 특허도 좀 해볼까 하는데요.”

“현우야, 좀 살려주라. 검토만 이틀을 밤새웠단 말이다.”

“벌써 우는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 같으니까요. 흐흐흐. 아, 혹시 근처에 프로그래머 아는 분 계세요?”

죽을상을 한 매형이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더는 못 해. 배 째 인마.”

“저 내일 미국 가니까 당분간은 쉴 수 있을 겁니다.”

“미국? 거길 왜?”

바로 전까지 못 하겠다고 드러누웠으면서 또 몸을 일으키는 매형.

내가 또 무슨 일을 꾸미는지 궁금하나 보다.

“사람 한 명 만나러 가요.”

“네가 만난다는 거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니겠고…… 큰 투자 건이냐?”

“투자 건도 있고, 겸사겸사 좀 들를 데가 있어서요. 아, 오해는 마세요. 돈을 투자한다기보다 사람에 투자하러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 미국에선 뭐 도와줄 거 없고?”

계속 들러붙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궁금한가 보다.

가르쳐 달라고 하면 가르쳐 줄 텐데, 끝까지 묻지 않는 걸 보니 매형답다 싶다.

“음…… 딱히 도와주실 건 없지 싶은데. 아! 매형 혹시, 미국에 아는 분 중에 개인 헬기 가지고 계신 분 있나요?”

“뭐?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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