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9화 (19/206)

기적의 IT 재벌 19화

서면의 청담 사무실.

내 맞은편엔 NNB 캐피털에서 나온 김재천 상무가 앉아 있다.

그는 매형의 친우로, 서른에 외국계인 NNB 캐피털에 입사해서 상무까지 초고속 승진한 기재였다.

“강현우 대표님, 내역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대출 기간은 총 3일이었으며, 그에 대해 이자와 중도 상환금을 포함하여 총 3,887만 원을 NNB캐피털에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서류가 깔끔하네요.”

“확인하시고 도장 찍어주시면 됩니다.”

이번 건은 내가 보유한 137만 주의 NG소프트 주식을 담보하는 추가 대출이었다.

추가로 받은 대출금은 58억.

갑자기 웬 대출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지난 3일간은 이 돈을 쓰고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작전명, 남의 돈으로 땅따먹기.

영릉 지역엔 Sol 에너지 말고도 태양광 업체가 3개나 더 있다.

그들 역시 상황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공사는 거의 반 포기한 상태로 부지를 방치하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새파란 젊은 놈이 부지를 전부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니, 업체 사장들은 헐값을 불렀음에도 버선발로 뛰어나와 매각 서류에 사인해 버렸다.

그렇게 손에 넣은 것은 태양광 업체 2개와 더불어 Sol 에너지 소유의 땅보다 4배나 넓은 땅덩이였다.

업체는 Sol 에너지 산하로 인수 합병했고, 부지는 인수와 동시에 NNB 캐피털 쪽으로 담보 대출을 실행해버렸다.

그 돈은 당연히 내가 처음에 빌렸던 58억을 상환하는 데 썼고 말이다.

결과만 보면 Sol 에너지의 규모는 3배가 됐고, 부지는 5배나 넓어졌다.

당연히 내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고 말이다.

물론, 영릉 지역에 통행이 풀리지 않으면 난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되겠지만.

“서류는 내가 확인하니까 거기 두면 돼.”

매형의 말에 김재천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담당 변호사가 아니라 계약업체의 대표가 직접 사인해야 하는 사항이야.”

“내가 그 대표야.”

“뭐?”

“Sol 에너지의 최고 재무 담당자, CFO가 나라고.”

당황한 김재천은 나와 매형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그럼 이번 일은 전부 네가 꾸민 짓?”

“그런 건 저기 앉은 CEO님이 다 하셨지. 인마, 나 같은 돌댕이가 이런 계획을 생각이나 했겠냐.”

“천재라고 소문난 네놈이 돌댕이면 난 뭐가 되냐?”

“넌 쇳덩어리.”

“재수 없는 새끼.”

난 두 사람이 투닥거리게 놔두고 노트북에 시선을 돌렸다.

포털의 메인 페이지를 둘러보는데. 딱 내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이 보인다.

[충격! 마을에 묘 쓰려면 500만 원 내라!]

“어? 매형 벌써 일면에 떴는데요?”

“뭐? 어디 한 번 봐봐.”

두 사람은 하던 드잡이질을 멈추고 노트북 앞으로 모여들었다.

“포털 1면에 바로 떴네? 이대로만 가면 공중파 뉴스에 뜰지도 모르겠다.”

[“통행료 500만 원 안 주면 못 가” 장의차 가로막은 주민들.]

[장의차 2시간 가로막은 주민. “지나가려면 통행료 내라.”]

기사의 말미엔 마을 주민을 욕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었다.

“와우, 효과 장난 아니네.”

우리가 한 일이라곤 장의사 한 명을 섭외한 게 다였다.

섭외된 장의사는 묏자리가 필요한 유족에게 Sol 에너지 소유 임야를 소개했다.

아, 그전에 묏자리 공사를 화려하게 준비하는 건 우리 몫이었다.

그래야 놈들이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들 테니까.

“생각보다 기사가 빠른데요. 적어도 다음 주나 돼서 터뜨릴 줄 알았는데.”

“당연하지. 기업 쪽 일을 진행하려면 언론을 움직이는 것도 종종 필요하거든. 기자들에겐 내가 힘 좀 썼다.”

“우리 박준오 변호사님 능력이 탑 클래스라는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무서울 정돈데요?”

“인마, 난 이런 발상을 해낸 네가 더 무서워.”

김재천은 포털 기사를 끝까지 읽어 내려간 후에야 대화에 합류했다.

“이야, 진짜 이렇게 됐군요. 저는 계획을 듣고도 긴가민가했는데. 영릉 지역에 부지를 판 사장들은 오늘 배 좀 아프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없었으면 그 땅은 그대로 썩혔을 텐데, 어쩌겠어요.”

“그건 그렇네요.”

그때, 매형이 김재천의 옆구리를 툭툭 두드린다.

“내가 말했지? 얘는 진짜배기라고.”

“금융 위기로 100억을 만든 것도 그렇고, 이번 건을 이렇게 해내다니. 반론의 여지가 없네. 깔끔하게 인정.”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본다.

“준오가 천재라고 입이 닮도록 칭찬한 이유가 있었군요.”

“일이 잘 풀린 것뿐이죠.”

천재?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내가 천재라고 생각한 적 없다.

이번 건도 미래에서 일어난 일을 내 방식으로 비틀어 쓴 것뿐이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가 아는 미래가 바닥나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후.

김재천은 내게 깍듯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둘만 남은 사무실에 고요가 찾아온다.

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고, 매형은 포털을 마저 훑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내 쪽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될까요?”

“경찰들이 엉덩이가 무겁긴 하지만 여론이 이리 살벌하니 바로 수사에 들어갈 거다. 당분간은 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할걸.”

“어물쩍 넘어가면 안 됩니다. 저런 치들은 반성이라는 걸 할 줄 모르니까요.”

“나도 알아. 그래서 유족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절대 합의해주면 안 된다고 말이야. 공갈 협박이나 특수 공갈죄로 걸고넘어지면 아주 볼만할 거다.”

“그럼 형량이 얼마나 되는데요?”

“공갈, 협박은 최대 징역 10년. 특수 공갈은 최대 15년. 뭐, 이런 일로 징역형까진 안 떨어지겠지만. 지레 겁먹어서 바짝 엎드릴 걸?”

어찌 됐든. 서로 윈-윈 이다.

우리는 공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됐고. 유족들은 장례가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공짜로 묏자리를 구했으니까.

“공사는 순탄하게 진행될 거다. 이번에 태양광 사업을 인수하면서 인원도 쉽게 보충했으니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태양광 쪽은 정상화와 동시에 매각할 생각이다.

이번 정부는 녹색 성장을 부르짖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생 에너지가 아니라 원전 쪽에 힘을 주는 정책을 지속한다.

재생 에너지가 빛을 보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지나야 할 테니. 빨리 털어 내는 게 답이다.

* * *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니 벌써 해가 떨어진 뒤였다.

누나는 아직 퇴근 전인 시간.

먼저 집에 가봐야 날 반겨 줄 똥개 한 마리도 없을 테고, 오랜만에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기로 한다.

딸랑. 딸랑.

“어서 오세요, 카페 테라스입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샷 하나 추가해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커피를 기다리며 카페 밖을 내다본다.

서면은 부산의 중심지답게 거리마다 팔짱을 낀 연인들로 가득했다.

“좋을 때다.”

회귀 전엔 혼자인 생활을 10년 넘게 버텼는데, 이젠 왠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마음이 더 추워지기 전에 시선을 카페 내부로 돌린다.

카페는 번화가에 있었기에 빈자리가 드물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카페에 꼭 있어야 하는 뭔가가 없는 느낌? 그게 뭘까?

신문을 펼치고 증권란을 보는 중년인.

디지털 카메라로 조각 케이크를 찍고 있는 학생.

MP3에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서 음악을 흥얼거리는 커플.

짙은 화장을 하고 패션 잡지를 들춰보는 여인.

“그래. 그거구나.”

답은 항상 손에 쥐여 있던 그것.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신문, 사진, 음악, 잡지.

거기에 인터넷과 게임까지.

단 하나의 디바이스로 모든 것이 가능케 하는, 말 그대로의 전지전능하고 똑똑한 녀석이 스마트폰이다.

지금은 딱 과도기다. 일반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니까.

2008년은 애플을 필두로 블랙베리, 소니, KG전자, 오성전자. 모든 전자회사가 경쟁적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이 시기에 나온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어서, 잔뜩 기대하고 기기를 산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쓸 만한 것도 있었지. 애플의 애플폰은 그래도 완성도가 높았으니까.

다른 회사도 이 시기에 쓸 만한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면 선점 효과로 제2의 애플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음? 잠깐만.

지금 시기에 나보다 스마트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애플의 스티븐 잡스 할아버지가 와도 지금의 내겐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만약, 미래의 지식을 써서 내가 직접 스마트폰을 개발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리가 팽팽 굴러간다.

제2의 애플. 아니, 애플을 능가하는 회사.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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