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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8화 (18/206)

기적의 IT 재벌 18화

경북에 위치한 영릉은 밭농사로 생계를 꾸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50세대 남짓 한 늙은 마을엔 도로조차 깔리지 않아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도 드문 곳이었다.

비포장도로에 진입하고 십여 분을 더 달리고 나서야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기 앞입니다.”

“어? 저건…….”

아파트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나 보던 차량 차단기였다.

“예, 차량 차단기입니다. 저기 서서 지나가는 차에 통행료를 뜯어내죠.”

“일반 차량도 통행료를 내나요?”

“여긴 일반 차량이 안 다니는 길입니다. 저 너머에는 공사업체나 그 관계자만 드나드는 정돕니다.”

차단기까지 설치할 정도면 아주 악질이란 건데.

우리가 차단기에 다가가자, 가건물에서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 걸어 나와 차 번호를 확인한다.

“솔에서 온 차구먼. 한 번 지나갈 때마다 20만 원이야. 아니지, 자넨 저번에 걸어서 들어갔었지? 그거까지 합쳐서 30만 원만 주면 되겠네.”

“영감님, 오늘은 공사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잠시 훑어만 보고 나갈 테니.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돈 안 주면 못 지나가. 그게 여기 법이야.”

“다음에 오면 술 한 상 차려드리겠습니다.”

“예끼! 어디서 허튼수작이야. 썩 꺼지지 못해!”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지만 목소리 하난 천하장사급이었다.

손 부장은 창을 다시 닫고 내게 물었다.

“어쩌시겠습니까. 돈을 주고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 멀리 주차 시키고 산길로 걸어가도 됩니다.”

“아뇨. 확인한 거로 됐습니다. 일단 차를 돌리시죠.”

차를 돌리기 시작하자, 노인은 침을 퉤 하고 뱉더니 다시 가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매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들을 땐, 설마설마했는데. 실제는 더 다이내믹하네. 21세기에 통행세를 뜯는 산적질을 하고 있을 줄이야.”

“그러게요. 저도 작업하는 게 맘에 좀 걸리긴 했는데, 이젠 그런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세팅은 벌써 끝내뒀다. 언제 시작할래?”

“역시 빠르시네요. 그럼, 기다릴 거 있습니까? 내일 바로 진행하시죠.”

우리 대화에 손 부장만 이해 못 하고 어리둥절해 있다.

“손 부장님. 저 앞에 차단기만 치워드리면 공사는 바로 진행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죠. 마을 주민의 방해만 없으면 공사 재개는 문제없습니다. 작업은 어차피 하청업체에 진행 시키면 되는 거고, 직원은 천천히 뽑아도 되니까요.”

“그럼 내일부터 재개 준비에 들어가세요.”

“예? 그게 무슨 말이신지? 혹시, 마을 주민들과 협상이라도 하신 겁니까?”

그들과의 협상은 의미 없다.

공사를 재개해도, 얼마 후면 또 돈 내놓으라고 달려들 게 뻔하니까.

난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내일이 되면 제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 * *

구불구불한 길을 까만색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음울한 분위기를 내는 버스는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장의차였다.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가 선 곳은 밭으로 둘러싸인 농로 한가운데였다.

버스가 멈춘 이유는 농로 한가운데를 가로막은 차량 차단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멈춘 기사가 짜증을 내며 차단기로 다가간다.

“아씨, 뭐야 이거? 이런 시골에 뭔 차단기가 있어?”

버스 기사가 낑낑대며 차단기를 올리려 하자, 가건물에서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온다.

“누군데 맘대로 차단기에 손대는 겨!”

“영감님이 차단기 내려놨습니까?”

“누구냐고! 빨리 말 안 해?”

노인이 농기구를 집어 들자, 버스 기사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어르신. 잠시만요. 저는 이 버스 기사고요. 여길 지나가야 하는데 차단기가 막고 있어서 이러고 있었습니다.”

“그려?”

“예, 그러니까 차단기 좀 올려주세요.”

노인은 기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을 척 내민다.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쇼.”

“통행세요? 여기가 뭔데 통행세를 받습니까?”

“안 내면 못가.”

“허, 참 어이가 없어서. 이러는 거 안 무섭습니까? 경찰에 신고하면 어르신 잡혀가요.”

“신고하든 어쩌든 맘대로 해. 그럼 더 못 지나가니까.”

마음 같아선 차단기를 밀어버리고 가고 싶지만, 어느새 트랙터 한 대가 도착해 차단기 너머를 가로막고 있었다.

“와,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냐. 아, 좋수다. 얼맙니까. 얼마면 지나가냐고요.”

“마을 발전 기금으로 300만 원이야.”

“뭐요?”

“귀먹었어? 300만이라고. 그거 안 내면 절대 못 지나가. 그게 우리 마을 법이야.”

“지금 나랑 장난해요?”

실랑이가 길어지자, 유족들과 장의사도 버스에서 내려 자초지종을 전해 듣는다.

상주는 기가 막혀서 소리친다.

“지금 저더러 300만 원을 내라는 거예요?”

“우리 마을에 묘를 묻으려면 마을 발전 기금을 내야지! 버스 돌려서 썩 꺼지던가. 돈 내던가. 니들 맘대로 혀.”

버스를 막은 노인과 트랙터를 몰고 온 노인. 거기에 버스 뒤편에서 경운기를 끌고 온 노인까지 합세했다.

앞뒤가 막혔기에 버스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태가 됐다.

“당신들 진짜……. 법이 무섭지도 않아요?”

“법이고 나발이고 돈 안 주면 못 가! 이젠 500만 원이다. 500만 원 안 주면 죽어도 못 지나가!”

웃통까지 벗어젖히고 눈을 부라리는 노인들. 그들의 눈엔 탐욕이 가득하다.

이번엔 장의사가 나섰다.

“어르신들, 부탁 좀 드립니다. 시체를 빨리 안장하지 않으면 부패 된다고요.”

“그건 그쪽 사정이고.”

“지금 당장 어디서 500만 원을 마련합니까. 사정 좀 봐주세요.”

애가 타는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노인들은 요지부동이다. 유족 중엔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을 펑펑 쏟는 이도 있다.

그때, 장의사가 유족대표를 조용히 버스 안으로 불러들였다.

“상주님 잠시만 이리로.”

“하, 장의사님. 어이가 없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이고 상주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소개한 부지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장의사가 길을 막고 있는 노인들을 슬쩍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저도 책임이 있으니 200만 원을 보태겠습니다. 여기에 상주님 부조금을 조금 합쳐서 일단 지나가는 게 어떻습니까? 협상만 잘 하면 상주님은 조금만 보태시면 될 거 같은데요.”

“저 썩을 놈들에게 돈을 주겠단 말입니까?”

“장례 절차는 진행해야죠. 이대로 있어 봐야 답답한 건 우립니다. 차를 돌려서 다른 묏자리를 알아보는 거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하, 진짜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그리고 나중에 돈도 다 돌려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돈을 돌려받는다는 말에 상주의 귀가 쫑긋 선다.

“정말입니까?”

“제가 잘 아는 변호사님이 있습니다. 실력 있는 분이니 증거만 있으면 승소는 물론이고 소송비용까지 다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을 넘겨 줄 땐 꼭 현찰로 주시고, 그 모습을 차 블랙박스에만 잘 찍히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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