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7화
“왜? 짜장면은 별로냐?”
“아뇨, 의외라서요. 대형 로펌의 변호사라면 점심은 좀 특별할 줄 알았는데.”
매형은 법무법인 청담에서도 잘 나가는 변호사다.
복잡하게 얽힌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맡으면서 승소율도 높았기 때문인데, 그 덕에 순수 연봉만 3억이 넘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변호사라고 별거 없어.”
“아뇨, 그건 아닌데.”
난 입가에 묻은 짜장을 티슈로 훔친다.
“삼선짜장. 아니, 적어도 간짜장은 시켜 줄 거라 생각했거든요.”
“실없는 소리 말고, 밥 다 먹었으면 서류 검토나 해. 오늘 가봐야 할 곳이 많으니까.”
“서류야 뭐 볼 게 있습니까. 매형이 알아서 잘 해주셨을 텐데요. 저는 도장만 찍으면 되는 거죠.”
“너 그런 식으로 일하다간 뒤통수 제대로 맞는다.”
“매형이 뒤통수치면 맞아야죠. 뭐, 어쩌겠습니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매형이라고 그냥 믿는 건 아니다. 회귀 전, 10년간 같이 지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인간 박준오를 믿는 거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건 Sol 에너지 인수 건이 완료됐다는 보고 서류다.
난 빠르게 서류를 훑어 나갔다.
“내년 9월까지 돌아오는 악성 채무가 98억5천만 원이네요.”
“인수하면서 털 수 있는 건 최대한 털어내서 그 정도야. 이런 회사를 6억이나 받고 팔아먹었으니, 전 대표이사는 지금쯤 어깨춤을 추고 있을 거다.”
“저야 급전이 필요했으니,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래죠. 갚을 빚보다 투자로 벌어들이는 돈이 훨씬 많을 겁니다. 두고 보세요.”
실제로 지금도 NG소프트는 무섭게 치솟고 있다.
오전에 봤을 때, 이미 12%나 올랐던데. 오늘도 상한가로 마무리될 듯하다.
“그 35만 원까지 간다는 게 어디서 나온 분석이냐?”
“왜요. 매형도 좀 넣어두시게요?”
매형은 흠흠 하는 헛기침을 하더니.
“왜? 안 되냐?”
“안 될 이유가 없죠. 이제 우리 집 식구 될 사람인데.”
“컥, 컥.”
사레가 들려 급히 물을 찾는 매형을 보며 킥킥거리며 말을 잇는다.
“35만 원까지 갈 수는 있지만, 시간은 걸릴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담으세요.”
“넌?”
“전 대충 수익 나면 빼야죠.”
“가만 기다려도 수익이 13배가 넘는데 그전에 뺀단 말이야?”
“빌빌거리는 말 위에 계속 타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말이 지치면 갈아타는 게 답이죠. 계속 채찍질만 한다고 해서 못 갈 놈이 계속 가겠습니까?”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정말.”
미래를 보고 왔거든요, 라고 말할 순 없으니 씩 웃고 만다.
“그보다 오늘 Sol 에너지 쪽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다면 서요.”
그때 매형의 휴대폰이 드르륵하고 진동한다.
“이 사람도 양반은 못 되겠네. 자, 일단 내려가서 마저 이야기해.”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고급 세단 한 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2008년에 출시 된 대형 세단 제너시스.
자주 몰았었지만 좋은 기억은 없는 차다.
내가 운전대를 잡을 때라곤 영일 포장에서 임원들 뒷바라지할 때가 유일했다.
뭐, 이제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세단의 문이 열리고, 왜소한 중년인이 내린다.
“안녕하십니까, 손만호 부장입니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쯤. 체격은 작지만, 눈빛이 강렬한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박준오 변호삽니다. 이쪽은 이번에 Sol 에너지를 인수한 강현우 대표입니다.”
손만호 부장은 내가 대표라고 소개되자 제법 당황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수된 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들뻘이나 될까 싶은 젊은 놈이었으니까.
이거, 옷이라도 좀 제대로 입고 나올 걸 그랬나.
대충 걸치고 나온 후드티에 까만색 패딩 차림은 집 앞 편의점 가는 패션.
딱, 그 정도였다.
“반갑습니다. 새로운 대표님이시라고요.”
손만호 부장은 급히 당황한 표정을 숨기고 내게 고개를 숙인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예의를 차리는 모습.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다.
“일단 타시죠. 사무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앞좌석에 타려 하자 매형이 가로막았다.
“우리 대표님은 상석에 타셔야죠.”
대표님이라.
아직 어색하지만, 차차 나아지겠지.
고급 세단이 도착한 곳은 경남 김해에 있는 Sol 에너지 영남 지사였다. 아니, 이젠 Sol 에너지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니까 본사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외진 곳이긴 하지만 사무실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손만호 부장은 커피믹스 3잔을 테이블에 올린다.
“이거, 있는 게 없어서 대접해 드릴 게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사무실 직원은 손 부장님 혼자시죠?”
“예, 예. 사무실 직원은 6명 있었는데, 임금이 밀리다 보니 전부 제 살길 찾아서 가버렸죠.”
그 후에도 매형과 손 부장의 대화가 이어졌다.
회사에 남은 비품이 얼마나 되며, 재고 자재는 충분히 관리 되고 있는지, 따위의 질문이 이어진다.
“방금 타고 오신 차는 법인 명의의 렌트 차량입니까?”
“맞습니다. 전 대표이사가 타고 다니던 차입니다. 회사가 이 꼴인데 고급 세단을 몰래 렌트했더군요. 최근에 매각한 것도 제겐 알리지도 않고 진행했습니다. 나 참……. 지금까지 대표를 믿고 버틴 내가 바보지.”
주먹을 말아 쥔 손 부장의 표정엔 분노와 애환이 적절히 섞여 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보다 손 부장님. 저희가 Sol 에너지를 왜 인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변호사님이 오신 것 보니, 자산을 정리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정석이겠지요. Sol에너지는 내년 9월까지 돌아오는 악성 채무만 98억5천만 원이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태양광 패널 공사가 완전히 정지된 지금으로선 상환연장도 무리겠지요.”
손 부장은 고개를 푹 숙인다.
창립 멤버였던 그였기에 회사를 대하는 마음도 특별했을 것이리라.
마시던 커피가 바닥나고 두 사람의 이야깃거리도 바닥났다.
이쯤에서 내가 끼어들어야겠다.
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 시선을 모았다.
“저는 매각보다 태양광 공사를 계속 진행했으면 합니다. 지금 공사를 멈춘 곳이 영릉 지역에 있는 부지죠?”
“맞습니다. 하지만 공사 재개는 무립니다. 거길 지키는 지역 유지들이 아주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놈입니다. 영릉 부지는…….”
손 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영릉 부지는 저희 전에도 다른 태양광 업체가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저희가 이어받아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고요.”
“전에 업체도 그럼 같은 일로?”
“네, 맞습니다. 처음엔 땐,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날름 받았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 업체가 왜 포기했는지 알겠더군요. 그 악마 같은 놈들은 오로지 돈을 더 뜯을 생각밖에 없습니다.”
멀쩡한 임야를 두고 회사가 왜 이 꼴이 됐는지 이제 이해가 갔다.
이미 두 번이나 손을 탔으니 임야를 매각하려 해도 소문이 쫙 퍼져서 나선 곳이 없었을 것이다.
“신고는 해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경찰도 대동해보고 법으로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후우, 다 그놈이 그놈이더군요.”
거기서 얼마나 쌓인 게 많았는지 손 부장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일단 현장에 가서 계속 이야기하시죠. 눈으로 직접 봐야 대책을 세우기 편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