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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5화 (15/206)

기적의 IT 재벌 15화

택시에서 내린 박준오 변호사는 걸음을 서둘렀다.

퇴근과 동시에 서둘러 KTX를 탔지만, 시각은 벌써 11시를 넘긴 상태다.

‘일이 너무 순탄하게 풀리는데. 난 왜 이리 불안한 걸까?’

Sol 에너지의 소유권 이전 작업은 일사천리로 끝낼 수 있었다. 이미 자신의 손 안에서 회생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다만 임야를 담보삼아 대출 내는 건 시일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대출은 담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편법을 쓰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금융사를 꼬셔오고, 담보 평가는 이미 회생 신청 때 해둔 데이터를 끌어쓰면 된다.

결과적으로 대출은 성공했다.

계좌에 담긴 돈은 총 240억.

조건은 Sol 에너지 소유의 임야와 더불어 현우가 보유한 NG소프트 주식 25만 주를 담보로 실행된 단기대출이며, 금리는 월 2%에 선 수수료가 3%인 초고금리 대출이다.

사채시장에나 볼 법한 조건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Sol 에너지 소유의 임야는 담보 가치가 불안정했고, NG소프트 주식 역시 안정적인 종목이 아니었으니까.

사실상 박준오의 집안을 보고 내준 신용 대출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현우에게 넘겨줘도 될까……?’

어제까지만 해도 현우를 믿고 대출금 전부를 넘겨주려 했다.

현우는 수두룩하게 봐왔던 ‘가짜’가 아니라 보석처럼 빛나는 ‘진짜’였으니까. 하지만 한 톨 남은 불신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녀석이 진짜 천재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가짜들 중 조금 나은 정도인지.

박준오는 복잡한 고민을 하면서도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그의 목적지는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증권가 사무실이었다.

업무상 이유로 자주 드나들었기에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성큼성큼 걸어서 사무실 문을 열어젖히자.

“어, 박변? 네가 왜 서울에 올라왔어?”

대학 동기인 송호창이다.

친한 사이지만 서울과 부산의 거리만큼 멀어진, 그런 친구다.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환한 미소로 박준오를 맞이한다.

“이 야밤에 어쩐 일이야?”

“술 사달라며. 그래서 왔지. 넌 해외 파트라서 밤에 일하잖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산 사는 놈이 다짜고짜 서울까지 와? 천재는 괴짜라더니…….”

“천재는 무슨.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진짜 천재 놈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테니까.”

묻지도 않고 빈자리를 차지한 박준오는 대뜸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때, 물어봤던 NG소프트.”

“그게 왜? 자꾸 물어보는 거 보니, 아는 사람이 좀 물렸나 보지?”

“좀이 아니라 제법 많이 넣었더라.”

큭큭거리던 송호창은 커피포트에 물을 따라 넣으며 말했다.

“네가 물어봐서 나도 좀 찾아봤는데. 기관이랑 양키들은 다 팔고 튀었는데 개미만 죽어라 모으고 있더라. 그런 잡주는 뒤도 안 보고 파는 게 답이야.”

“너희는 벌써 정리했어?”

“나는 해외 투자 파트라 잘은 모르겠다만……. 얼핏 듣기론 손에 쥔 건 다 팔아먹은 지 오래고 최근엔 공매도 치고 있다던데.”

“공매도?”

“어, 공매도. 그걸로 기관들은 재미 좀 봤대. 불쌍한 개미들만 등짝 터지는 거지. 게다가 오늘 아침에 도착한 찌라시엔 악재도 실려 있던데.”

“무슨 악재?”

듣는 사람도 없었건만 송호창은 목소리를 낮췄다.

“NG소프트의 이번 신작. 출시가 미뤄질 수도 있단다.”

“뭐?”

“인력 충원이나 서버 문제라는 말도 있지만, 테스트 반응이 안 좋아서 고칠 거 고치고 낼 가능성이 크다던데?”

출시를 눈앞에 둔 신작이 연기된다면, NG소프트 주가는 한강까지 처박힐 것이다.

“야, 그것보다 진짜 술 쏘는 거냐?”

송호창의 말은 이미 박준오의 귓가엔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현우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으니까.

‘이 계좌를 현우에게 넘겨주면……. 몽땅 NG소프트를 사버리겠지. 차라리 중도 이자 2%를 내고 대출금을 상환해 버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현장 분위기만 봤을 때, 이번 건은 노다지의 금맥이 아니라 파산으로 가는 직행열차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 박변. 왜 갑자기 말이 없냐?”

“응? 어?”

“너 완전히 심각한 표정이야. 사실대로 말해봐. 대체 NG소프트에 얼마를 넣은 거야?”

“아, 아냐. 난 한 주도 안 샀어.”

“그런데 왜 그래?”

“미안, 나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올게.”

박준오는 비상계단으로 뛰다시피 걸어 나왔다. 그러곤 급히 휴대폰을 눌러댔다.

뚜우- 뚜우- 뚜우-.

“제발 받아라. 제발. 제발.”

한참이나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이 피를 바짝바짝 말린다.

이럴 땐, 100억대 자산을 굴리면서 휴대폰도 없는 동생 놈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툭.

-어, 매형? 지금 시간에 웬일…….

“현우야. NG소프트 오늘도 다 담았냐?”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러세요?

“대답부터 좀 해주라.”

-네, 오늘 90억 꽉꽉 채웠죠. 그런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후……. 지금 증권가에 와 있는데, 오늘 아침부터 찌라시가 돌고 있단다. 신작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서비스가 늦어진다는 악재 말이다.”

-아하. 그래서 오늘 쓸어 담아도 가격이 안 올랐구나.

너무 태연한 반응에 박준오는 기가 찼다.

“얌마,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야? 내일 서비스 연기 공지가 뜨면 주가는 수직 하강이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거 증권사에서 작업 들어간 거니까.

“작업? 그게 무슨 말이야?”

-기관에서 계속 공매도 친 건 아시죠? 분명 주가가 내려갈 요인은 충분한데 계속 안 내려갔거든요.

“네가 계속 담아서 그랬겠지.”

-정답입니다.

3일간 혼자서 43만 주나 담았으니 주가가 하락은커녕 조금씩 오름세를 보였다.

덕분에 기관은 억지로 주가를 누르기 위해 계속 공매도를 쳤고.

“야, 그래도 진짜 연기되면 어쩌려고 그래?”

-오늘 밤부터 홈페이지에서 접속 프로그램 배포한 건 아시죠? 지금 서버가 먹통인 건 순간 다운로드가 접속자가 몰려서 그렇습니다. 최소 20만 명은 동시 접속 중일걸요. 사람이 이리 몰리는데 서비스 연기를 하는 회사가 있겠습니까?

“뭐? 20만?”

동시 접속자가 만 명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기사를 터뜨리는 게 게임업계다.

그런데 그의 몇 배나 되는 20만 명이 몰렸다고? 이게 사실이면 아이온은 역대급 흥행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일주일 전, NG소프트는 추가로 서버를 임대했습니다. 그때 서버 작업한 업체가 20만 명은 끄떡없다고 했으니, 지금은 그보다 더 몰렸겠죠.

“너, 서버가 뻗을 걸 예상했구나?”

-NG소프트의 이름값, 거대 MMORPG, 5년 만의 신작. 그 외에도 흥행 지표는 수두룩합니다. 단순 수치로만 판단하는 증권가 사람들만 몰랐지, 게임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예상했을 겁니다.

“후우-”

박준오는 걱정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고는 생각했던 처남은 이미 높은 곳에서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으니까.

* * *

삐빅- 삐빅-.

오래 된 시계에서 나는 알람소리.

사실, 필요 없는 짓이었다. 어젠 꼴딱 밤을 새웠으니까.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으로 기어가서 아이온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404 Not Found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이용에 불편 끼쳐 죄송합니다.

아이온 오픈 당일.

순수 접속자만 15만 명에 전국 피시방에서 일제히 접속 클라이언트를 내려받게 된다.

덕분에 NG소프트의 서버는 곱절을 확충했음에도 과부하로 퍼지게 된다.

이땐 공지도 없이 홈페이지를 닫아서 난리였지. 11시쯤에 잠시 열렸다가 다시 폭파되길 온종일 반복했었는데 말이야.

이젠 미래를 이미 지난 과거처럼 대하는 게 익숙해졌다.

이번엔 HTS 프로그램에 접속한다.

내 증권계좌의 잔고가 32억.

Sol에너지로 대출 낸 계좌의 잔고는 200억 8천만 원.

합이 232억8천만 원으로, 선취 수수료로 7억2천만 원을 제한 금액이다.

대출 수수료가 중형차 서른 대 값이라니.

“후우- 쫄지 말자, 강현우. 이미 판은 다 깔렸어. 그냥 수확만 하면 된다고.”

전날 종가는 22,100원.

하지만 기관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의 효과가 있었는지, 시간 외 거래에서 21,800원까지 밀린 상태다.

증권 뉴스 쪽을 돌아보자, 경제지들이 기관들의 희망 사항을 사실이라도 되는 양 싸질러 놨다.

[NG소프트 신작 공개 연기? 서버 문제로 홈페이지 먹통! 유저들은 분통!]

[기관·외인 11일 연속 매도. 과연 NG소프트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 평가. 게임평가단 “아이온은 아직 미완성 게임이다.”]

개소리를 아주 장황하게 써뒀다.

보나 마나 기관에서 뿌린 걸 그대로 받아 적은 게 분명하다.

이러니 경제 신문은 광고 찌라시라는 말이 나오지. 쯧쯧.

뉴스를 돌아보는 동안 장이 열렸다.

기관에서 열심히 떡밥을 던져댄 효과가 있는지 주가는 아래쪽으로 슬금슬금 내려가는 중이다.

“너희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기관이 주가가 내리려면 개인이 사 올렸고, 개인이 밀리면 내가 슬쩍 합류해서 가격을 유지한다.

차트상으론 시세가 안정적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관으로선 공매도 물량을 떨어야 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주가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내가 버티고 있는 만큼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흐흐흐.

미래는 그대로 흘러갔다.

11시가 되어 서버가 열렸고, 12시엔 접속자 집계가 들어간 뉴스가 연달아 올라온다.

[NG소프트 5년 만의 신작, 아이온. 사용자 폭주! 대박 조짐.]

[NG소프트, 아이온. 동시 접속자 10만에 대기 인원만 무려 5만 명.]

[아이온 긴급 서버 증설. 퇴근 시간대 20만 명 이상 몰릴 것으로 기대.]

뉴스와 동시에 NG소프트 주가는 하늘로 치솟는다.

폭발적인 거래량과 함께 상한가를 친 주가는 252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날. 난 137만 주를 보유한 NG소프트의 대주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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