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2화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두 시간은 잤을까? 그런데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거실로 걸어 나가자,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둘러메고 잠들어 있는 누나가 보인다.
방 하나에 거실이 전부인 집 구조상 내가 방에서 자면 누나는 거실에서 자야 했다.
처음부터 내가 거실에서 자겠다고 빡빡 우겼지만, 누나의 고집을 꺽진 못했다.
“이럴 땐 꼭 엄마 행세를 하려 든다니까.”
사실, 유년기 시절부터 누나가 내 양육을 도맡다시피 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를 위해 수고한 누나를 위해서도, 이번 인생은 꼭 성공하고자 다짐한다.
미리 준비해 둔 에너지 드링크와 간편식을 잔뜩 챙겨서 방에 들어온다. 어제 밤늦도록 세팅해 둔 컴퓨터들을 점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 이제 9시가 되면 스타트다.
개장 전부터 주가 흐름을 살핀다.
NG소프트의 주가는 금요일보다 소폭 상승한 28,900원. 이쯤이면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내가 쏠 실탄이 80억이니 대략 25만 주 정도만 담아도 성공이다.
잠시 후, 장이 열리는 9시가 됐다.
그와 동시에 주가의 빨간불이 들어오며 그래프가 치솟는다.
“기세가 장난 아닌데? 뭔가 호재가 있는 건가.”
일단 29,500원에 5000주를 담은 후 상황을 주시한다.
[엔씨소프트, MMORPG 아이온 대박 조짐?]
[결실 볼 준비를 하는 아이온. 엔씨소프트 주식 불붙나?]
[아이온 공개 11월 11일. 엔씨소프트의 사활을 걸다!]
증권 뉴스란의 IT쪽은 NG소프트의 아이온이 거의 뒤덮다시피 한 상태였다.
어? 이상한데. 분명 지스타에 공개될 블레이드&소울 때문에 주식이 올라가는 거 아니었던가?
사실, 내 단편적인 기억으론 지스타 이후에 NG소프트 주가가 날았고, 그 이유에 블레이드&소울 공개를 끼워 넣은 것뿐이었다.
NG소프트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지스타 2008 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
기억에 불신이 생기자 문득 겁이 났다.
주가가 오르는 게 확실하던가?
내 기억의 오류나 착각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100억으로 편하게 살면 되는 걸, 괜히 무리해서 투자하는 바람에 쪽박을 차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이유가 어쨌든 간에 주가가 오르는 건 확실한 미래고, 난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게 흐름을 타면 되는 거다.
마음을 다잡고자 입술을 꽉 깨문다.
다시 매수.
또 매수.
5000주씩 계속해서 주식을 매입한다.
급등 타이밍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조급한 마음도 고개를 자꾸 치켜든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움직임이 미래에 영향을 줘선 안 되니까.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매매에 매달렸다.
장이 마감되고.
장 중 31,00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2시 30분부터 고꾸라지더니 27,000원까지 처박히고 끝이 났다.
총 8만 주를 매입했고, 매입 평단가는 29,500원.
오늘 하루만 23억의 주식을 사들인 셈이다.
어제만 해도 내가 주식을 매입해서 미래에 변화가 생기면 어떡하느냐며 고민했지만……. 그건 기우로 끝났다.
개인으로서 80억은 많은 돈이지만 주식시장에선 한 줌의 모래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으아, 오늘은 끝났구나.”
기지개를 쭉 켜며 방을 나선다.
온종일 방에만 처박혀 있었더니 온몸이 다 뻐근하다. 그나저나 오늘 누나가 쉬는 날이던가?
이런 날은 콧구멍에 바닷바람이라도 좀 쐬고 와야 하는데.
“누나, 거기 있어?”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방에 들어왔던 걸 내쫓았더니 입이 한 사발이나 튀어나와 나갔었는데, 혼자 어디 가버린 걸까?
거실 한 편에 잘 차려진 밥상이 보인다.
정성이 들어간 반찬과 국, 거기에 조그마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게임을 하더라도 밥은 먹어가면서 해. 그러다 골골거려서 병원 다니기 시작하면 늙어서 고생이야. -이쁜 누나가-]
읽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그러고 보니 서른 중반쯤 고지혈증으로 고생했었지. 아마, 잦은 야근과 야식으로 체중이 많이 나갔던 게 원인이었던가?
아무튼, 몸 관리는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 이번 일만 끝나면 체육관이라도 알아봐야겠다.
“자, 오랜만에 누나 음식 좀 먹어볼까나.”
집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특히 누나의 특제 계란말이는 회사식당에서 먹던 것과 급이 다른 클래스를 보여준다.
허겁지겁 밥을 반쯤 비웠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 현우 씨. 오랜만입니다.
-준오 씨, 내 동생한테 현우 씨가 뭐예요. 그냥 동생이라고 불러야죠.
-그래도 그건 좀…….
매형과 누나의 목소리였다.
“편하게 부르시는 게 저도 편해요. 말도 이참에 그냥 놓으시죠.”
-하하, 그럴까? 딴 게 아니고, 역 앞에 있는 꼬치 집에 나와 있는데 같이 나와서 먹었으면 해서. 여기 꼬치 소스가 정말 일품이야.
“마음 써주신 건 감사하지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오늘은 일이 많아서요.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툭.
사실, 할 일은 없다. 다만 내가 데이트를 방해할 정도로 눈치 없는 놈은 아니라서 말이다.
전화를 끝내고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천장을 보자, 때 타서 누렇게 뜬 벽지와 먼지 쌓인 백열전구가 보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녀는 잘살고 있을까?
* * *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주식을 담았다.
현재 주가는 26,500원.
내 보유 주식량은 16만5천 주다.
이상하게도 내가 담을수록 주식은 아래로 떨어졌다.
덕분에 담을 수 있는 주식의 양은 늘었지만, 치아에 뭔가 낀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왜 떨어지는 거지?
내가 개입하지 않았어도 오를 주가다. 거기에 추가로 5만 주씩 꾸준히 매수했기에 주가는 올라야 정상인데…….
벌써 계좌에서 빠져 나간 금액만 45억이다. 그런데 주가가 오히려 아래로 내려가다니?
아직 자금의 절반이 아직 남았지만, 비관적으로 보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어느새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초조할 때의 내 버릇이었다.
만약, 미래가 바뀌어 NG소프트가 안 오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온의 흥행이 처참하게 실패한다거나, 아니면 블레이드&소울의 개발이 취소됐다거나.
“젠장, 그럴 리 없잖아. 뭔가…….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야.”
주식에 거금을 투자한 탓인지 사람이 비이성적으로 변해 간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포털에서 NG소프트에 관한 뉴스를 쭉 둘러본다. 끝까지 훑어봤음에도 비관적인 뉴스나 투자 리포트는 없었다.
이번은 종목 토론 게시판에 접속했다.
키워드는 엔씨소프트, NG소프트, 아이온.
주르륵 뜨는 게시물의 대부분 아이온 서비스에 대해 기대감이었지만,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는 주가에 대한 불안감도 보였다.
그중,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물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개관 개 같은 놈들 공매도로 개미들 다 죽는다! 정부는 뭐하냐. 빨리 공매도 없애라!]
개관은 기관을 뜻하는 거고, 공매도? 무슨 말이지?
호기심이 동해 게시물을 클릭한다.
호재는 널렸는데 주가는 연일 떡락이다.
왜 그런 줄 아냐?
오늘 개미만 사고 외인, 개관 다 팔았거든.
그중에 개관 놈들이 오늘 친 공매도만 9만 주가 넘는다. 니들 이러다 한강 ……(중략)……. 나라에서 개인도 공매도할 수 있게 해주던가! 아니면 공매도 아무도 못 하게 막던가! 내가 다시 주식에 투자하면 손가락을 짜른다. 퉤!
주식에 해박한 지식은 없었기에 생소한 단어가 많았다. 그중, 공매도라는 단어가 메인 키워드였기에 즉시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공매도(空賣渡).
말 그대로 없는 걸 판다는 뜻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없는 주식이나 채권을 판 후 결제일이 돌아오는 3일 안에 주식이나 채권을 구해 매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허, 없는 걸 판다고?”
공매도는 강제로 주식 시세를 떨궈서 차익을 내는 방법이구나.
뭐, 여기까진 이해가 하는데. 왜 개인은 못 하고 기관만 가능케 한 거지? 불합리한 거 아닌가? 게다가 주가를 강제로 떨어뜨리면 조작 아냐?
내 지식으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늘 왜 주가가 하락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내가 4만8천 주를 샀어도 기관에서 없는 주식을 9만 주나 팔아치웠으니 주가가 내려간 것이다.
“왜 주가를 내리려 하는 걸까?”
이럴 땐, 상대가 행동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기관 투자자는 NG소프트 주가의 하락에 베팅했다.
아이온은 승승장구하고 블레이드&소울의 공개도 엄청난 호재일 텐데. 왜 주가를 내리려는 걸까?
내 수준에서 전문가의 생각을 읽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은 반대로 개미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개미였다면 지금의 NG소프트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대박이 터질지, 쪽박이 터질지 모르는 그런 폭탄 말이다.
미래를 아는 나조차 이리 불안한데, 정보가 한정적인 개미 투자자라면 보유 주식을 던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을 거다.
이럴 때 공매도로 주가를 내려서 불안 심리를 조금만 자극하면?
개미 투자자들은 버티다 못해 쥐고 있던 주식을 던져댈 것이고 기관은 그 틈에 공매도의 차익을 실현……. 실현? 기관이 차익을 실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가만, 이걸 잘만 이용하면…….”
언제부턴지 내 입가엔 미소가 피어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악당의 미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