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8화
레버리지.
사전적 의미는 지렛대라는 뜻이지만 여기선 빚내서 투자한다는 개념이다.
수익이 발생하면 레버리지를 설정한 만큼 추가로 이득을 보지만, 그 반대의 경우 강제로 반대 매매를 당하거나 심하면 파산까지 이를 수 있다.
레버리지 효과를 보는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직접 종목을 선택해서 투자하길 원했다.
이건 미래를 아는 나로선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내 계획은 시작부터 암초에 걸리게 된다.
그 암초란, 증권사에서 개인에게 내주는 담보 대출의 한도는 기껏해야 10억이었다는 거다.
과거의 나였다면 10억도 크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 계좌에 든 금액만 98억이다.
거기에 10억을 더해봐야 레버리지는 고작 10%로 투자에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고객님, 살펴 가세요.”
증권사에서 빠져나오는데 한숨이 터져 나온다.
“후우. 역시 현실은 녹록치 않네.”
100억이 생기면 투자에 투자를 거듭해 금방 부자가 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돈도 굴려 본 놈이 굴린다고, 단돈 천만 원도 투자해본 적 없던 놈이 100억을 굴리려 드니 막막한 느낌만 든다.
판돈을 늘리는 레버리지 쪽은 찬찬히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어떤 기업에 투자할지를 더 고민해보자.
내가 잘 아는 기업이라곤 IT나 전자 계통인 오성전자나 NEVER, KG전자. 그리고 코코아톡과 합병하는 다음 정도가 있겠고, 억지로 기억을 짜내자면 망해버린 현대큐리텔이나 팬틱 정도?
해외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괜찮아 보이는데……. 주가가 언제 터질 지 확실치 않으니 결정을 내리기도 애매하다.
당장 투자하라면 애플이나 구글이 괜찮으려나? 콘텐츠 면에선 넷플릭스도 유효하다.
아, 중국의 텐센트도 염두에 두자. 거기도 엄청나게 성장할 테니까.
최종적으로 네 개의 회사를 꼽은 후 택시에 올라탄다.
이젠 좀 쉬자.
머리를 쥐어짠 탓인지 머리가 아파져 온다.
은행과 증권사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인지 차창밖엔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기사님, 쭉 올라가 주세요.”
“군인 양반, 길이 너무 좁은데?”
“차 한 대는 갈만해요. 일단 직진해주세요.”
택시 기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 왔기에 길도 익숙지 않은데 컴컴한 달동네로 올라가니까 불안하겠지.
“그냥 저 앞에서 세워주실래요.”
“허허, 그래 주면 나야 좋지.”
택시를 보내고 걷기 시작한다.
가로등 하나 없는 가파른 언덕. 다행이다. 아직 체력이 있을 때라서.
십여 분을 더 걷자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만한 골목길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골목의 끝자락에 있는 회색 지붕 집.
이곳이 내가 살았던. 아니, 살고 있는 곳이다.
끼익-.
녹슨 철문이 비틀려 나는 소리가 익숙하다.
열쇠는 누나가 애지중지 키우던 화분 옆이었던가……?
있구나.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아, 지금은 과거인 2008년이니 있는 게 당연한 건가?
문을 열고 들어가 불부터 찾는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백열전구다. 전구를 켜기 위해 손을 뻗는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가 나를 덮쳐온다.
“으, 으허! 뭐야?”
반사적으로 검은 손길을 뿌리치곤 불을 켠다.
“에구구 허리야…….”
“헛! 누나였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방바닥에 엎어져 있는 여인. 그녀는 나보다 4살 많은 누나, 강현경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 그러니까 정확히 15살에 어머니가 가출하고부터 누나는 가장의 역할을 해왔다.
아, 아버지란 작자는 아직도 누군지 모른다.
바보 같은 누나는 그런 부모 같지도 않은 놈에게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봐 집을 떠나지 못했다.
심지어는 집 전화번호도 십 년째 그대로다.
한 번은 내가 진지하게 이사 이야기를 꺼냈는데, ‘결혼식엔 적어도 부모님 중 한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던 그 슬픈 표정.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뭐, 12년을 더 살아본 결과. 여전히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나만 불쌍하게 된 거지.
상념에서 빠져 나와 바닥에서 허리를 매만지는 누나를 쳐다본다.
뽀얀 백색 피부와 잘 어울리는 숏컷, 거기에 순해 보이면서도 예쁘게 뻗은 눈매까지.
흔히들 말하는 동안 미녀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덕분에 동생인 너는 왜 이렇게 생겼냐는 말을 수백, 수천 번은 들었을 것이다.
옘병, 나도 그게 궁금하니까 물어보지 마라.
“우리 현우가 밖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는구나? 그러니까 방금처럼 깜짝 놀랐지.”
“놀라긴 무슨, 하나도 안 놀랐거든?”
“경찰이 찾아오면 뭐라고 둘러댈까나. 해외 도피? 실종? 재입대?”
“재입대는 또 왜 나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일어나.”
억지로 누나의 몸을 일으키자 다시 내게 엎어져 온다.
“히히. 우리 사랑하는 동생 왔어요.”
“으이그, 술 냄새가 진동하네. 얼마나 마신 거야?”
“쪼끔. 쪼오끔 마셨쪙.”
혀가 벌써 꼬여 있다.
방에 굴러다니는 맥주병 숫자를 보니 낮부터 퍼마신 게 확실하다.
불그스름한 얼굴의 누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뭘 그리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그게 아니구. 우리 동생 얼굴이 왜 이렇게 호올쭉 해졌지? 너 현우 아니지? 아니, 목소리는 맞는데? 내가 술 취했나? 취했구나. 헤헤헤.”
누나는 백화점 면세코너에서 일한다.
휴일이 없기로 유명한 백화점이지만 오늘은 내 전역 날이기에 비번 날짜를 조정했을 것이다.
“점심부터 음식도 하고 케이크도 준비했는데. 현우가 안 왔어. 그래서 쪼끔만 마시고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안 왔어. 계속 안 왔어.”
꼬인 혀로 열심히 설명하던 누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밥상을 가리킨다. 그곳엔 누나가 잔뜩 차려둔 음식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음식은 하나도 안 먹었네.”
“네가 안 오는데 어떻게 먹냐?”
“미련하게 쓰리……. 빈속에 술 마시면 속 다 버린다.”
“그보다, 봐봐. 누나가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백화점에서 뭐 가지고 왔게~? 짜잔. 쟈니워커 플래티넘에디션이지롱.”
“쟈니워커? 켁, 양주잖아.”
고급스러운 병에 담긴 액체가 찰랑댄다. 술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녀석이다.
“이건 어디서 났어?”
“히히히, 저번 달에 재고 정리하다가 남은 거 뒤로 하나 뺐지.”
“그러다 잘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런 걸로 잘렸으면 벌써 수십 번은 잘렸을 걸?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에 잔이나 받으셔 오늘은 내가 쏜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누나의 미소가 낯설다.
영일 포장에 들어간 뒤로, 거의 만나질 못했으니 당연한 건가.
그깟 회사가 뭐라고 유일한 혈육에도 신경을 못 쓰다니.
내 몸과 마음을 바친 회사에서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생각하자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 이번 인생. 우리 가족 멋지게 살아보는 거다.
“오늘은 달려보자. 자, 한잔 따라줘.”
“현우야 그러지 말고 같이 마셔……. 응? 같이 마신다고? 진짜야? 술 먹는 거야?”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한잔 따라줘.”
내가 잔을 치켜들자 누나의 게슴츠레했던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대박! 대에-박! 잔소리 대마왕 우리 동생이 웬일로 술을 먹자 하네?”
“싫어? 그럼 말어.”
“에이~ 왜 이래용, 사랑하는 동생님. 자, 첫 잔은 원샷입니다~”
“스트레이트로 원샷은 무리라고.”
“우리 현우의 복귀를 위하여!”
오늘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보자.
100억을 들고 복귀한, 내 새로운 인생을 위하여.
* * *
“끄으…….”
머리가 쥐어 짜이는 느낌이다.
분명 누나와 페이스를 맞춘다고 속도를 올린 것까진 기억나는데……. 역시 따라가는 건 무리였던 걸까.
괜히 주당 강현경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일어났어?”
나갈 채비를 마친 누나가 쪼그린 채 날 바라보고 있다.
“북엇국 끓여뒀으니까. 해장해.”
“어, 누나. 그런데.”
“응?”
“팬티 보여. 파란색 줄무늬네.”
“쓸데없는 소릴.”
다 큰 처자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가릴 생각도 않는다. 오히려 쳐다보던 내가 민망해져서 몸을 일으킨다.
“으……. 두통. 지금 몇 시야.”
“9시 10분. 나 늦어서 빨리 나가봐야 해. 국은 꼭 데워먹어 알겠지?”
“알겠어.”
“아참. 백화점에서 이거 나눠 주더라.”
누나가 팸플릿과 입장권 하나를 내민다.
어딘지 익숙한 디자인이다.
“지스타? 아, 부산 게임쇼구나.”
지스타 2008.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축제를 일컫는다.
부산에선 제법 큰 행사였기에 개근하다시피 드나든 기억이 나는데…….
어라? 2008년엔 일산에서 했었네? 아, 이땐 전역 백수라서 일산까지 올라갔었구나.
지스타 2008에 갔던 기억을 찬찬히 되감아 본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릴 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뜨거웠던 거 같다.
모바일 게임 일변도인 미래와는 달리, 이땐 블리자드의 WOW가 몰고 온 MMORPG의 전성기였다.
네오위스, 넥키, 컴토스, NG소프트, 넷블 등의 모든 게임사가 신작 출사표를 던졌고 그중 절반이 정통 MMORPG를 표방했기에 행사의 스케일은 자연스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신작으로 나왔던 MMORPG 게임 중에 살아남은 게 뭐가 있더라? 네오위스는 신작을 내는 족족 말아먹었었고, 넥키는 이때도 캐시 아이템만 주야장천 냈었지.
그리고……. 음……? 아-. 아!
순간 댕-! 하고 머릿속에 종이 울려 퍼진다.
“어떤 종목에 투자할지 결정했어!”
내가 내린 답은 게임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