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7화
군인을 대할 땐 시종일관 삐딱하게 대하던 직원이 100억대 통장을 확인하자, 태도가 확 변해버렸다.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실수한 일이 있다면…….”
내가 사과를 받을 때까지 계속 사과할 생각일까?
그럼, 그녀는 왜 사과하는 걸까? 군복을 입은 날 무시한 것에 대한 사과? 아니면 100억짜리 통장의 주인을 몰라본 데에 대한 사과?
아마도 후자 쪽이겠지.
회귀 전의, 쥐뿔도 없던 나였다면 이런 사과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진다.
소란스러움에 주변에 있던 행원이나 손님의 이목이 이쪽으로 쏠린다.
이거, 내가 갑질 하는 거 같아서 찝찝하네.
아직 ‘갑질’이라는 단어가 이슈 될 시기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주목은 피하고 싶다.
“알겠으니까, 빨리 처리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여직원은 창구 뒤편으로 후다닥 뛰어가더니 배 나온 오십 대 중년인을 데려온다.
“저는 이 은행의 부지점장입니다. 저희 직원이 선생님을 잘 응대하지 못한 점,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사과 받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빨리 은행 업무만 부탁드립니다.”
“예, 예. 그렇게 합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통장 안에 든 예금을 전액 이체 하고 싶습니다.”
전액 이체라는 말에 여직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100억대 자산을 보유한 고객이 이탈한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지점장 역시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건 마찬가지다.
“하하. 선생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은행 안에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VIP 고객만 들어 올 수 있는, 일명 우수 고객 응대 실로 재질부터 고급스러운 소파와 원목 가구들이 즐비했고, 전문가용 원두커피 기계와 더불어 안마의자까지 비치돼있다.
물론, 고민에 휩싸인 내게 그런 물품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은행 전산 실수로 들어온 거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냥 ATM에서 조금씩 출금하고 해외로 튈 걸 그랬나? 아니야, 기껏 회귀했는데 범죄자로 살 순 없다고.
젠장,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00억인데……. 미치겠다, 정말.
지금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일 것이다.
초조하게 소파에 앉아 기다리길 십 여분.
드디어 부지점장이라는 사내가 들어온다.
“어이쿠,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나와 마주 앉은 부지점장의 손엔 두 개의 통장과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성공인가?
아니, 아직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르다고 생각은 했지만 기대감에 내 다리는 탈곡기처럼 달달 떨리는 중이다.
“여기는 기존 계좌입니다. 전액 찾았으니, 확인해보시죠.”
[잔액 : 0원]
조금 전까지 100억이 찍혀 있던 통장에 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이건 새로 만드신 계좌입니다. 똑같은 형태의 자유 입출금 계좌며, 금리는 연 0.5%에 VIP 우대 금리 0.2%를 추가해서 0.7%입니다. 여기서 정기예금으로 돌리신다면 1년 거치에 금리는 연 4.9%까지 가능하십니다.”
금리가 어떤지는 관심 없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기존 계좌에 있던 현금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냐였으니까.
떨림을 억누르며 두 번째 통장을 펼쳐본다.
[신규 : 9,799,304,720원]
환희에 통장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떻게 내 계좌에 100억이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100억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번 인생은 최고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이건 말씀하신 현금입니다. 1억 원 수표 1장, 1000만 원 수표 9장, 100만 원 수표 10장, 합계 2억입니다.”
혹시 싶어 요청한 현금도 무사히 수중에 들어왔다.
1억 원짜리 수표를 실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종이쪼가리가 스스로 빛나는 것 같다.
“정기예금 1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6개월이나 3개월도 괜찮습니다. 아니면 요즘 은행에서는 금융 상품도 많이 취급하고 있으니…….”
“일 처리가 빨라서 좋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서, 선생님.”
난 인사를 하는 둥 둥 마는 둥 하고 은행을 빠져 나왔다. 마지막에 여직원이 달려 나오는 게 보였지만 무시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곳에 신경 쓸 시간 따위 없다.
지금부턴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할 시간도 부족하니까.
* * *
은행을 나서서 내가 향한 곳은 HK 증권사였다. 이곳을 선택한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은행과 가까웠을 뿐.
거기서도 내 대접은 S은행과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엔 군복을 보곤 시큰둥하게 대응하다, 98억이 담긴 통장을 보더니 얼른 VIP 우대창구로 날 안내했다.
“여기 말씀하신 MMF형 CMA통장입니다. 강현우 고객님 증권 계좌와 연결된 상태며, 기존 계좌에 98억 원 전액을 이체 완료했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연이율은 4% 내외이며, 익일 매입, 익일 출금을 기본 원칙으로 합니다.”
MMF.
머니 마켓 펀드의 약자로 고객의 돈을 초단기 상품에 투자하는 형태기에 단 이틀만 돈을 넣어도 이자를 챙길 수 있다.
내 납입금이 98억에 연이율 4%를 적용하면 단 하루 만에 이자만 100만 원이 넘게 붙는 셈이다.
한 달 동안 일해도 100만 원을 못 버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아무 일 안 해도 하루 100만 원의 수익이라니.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물론 이때 당시 저축은행의 우대금리가 7%대에 근접했던 걸 생각하면 MMF 통장은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기예금은 중도해지 때 이자를 거의 못 받는 이유도 있었고 더불어 증권사의 CMA통장은 증권계좌와 연동도 가능했기에 이후 주식 투자의 교두보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증권사 직원은 이게 웬 굴러들어온 복덩이냐 싶은 표정으로 팸플릿을 꺼내 든다.
“저희 증권사에선 VIP 고객에 한 해 전문 자산 관리사를 배정해드리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그쪽으로 연결해 드릴까요?”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것도 나쁜 제안은 아니다.
다만, 미래를 알고 있는 내 앞에선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와도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젓자 또 다른 팸플릿을 내밀었다.
“그게 부담되신다면 펀드는 어떻습니까? 최근 중국이나 신흥국은 국내보다 전망이 밝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펀드는 주식과 채권을 복합적으로 운용하기에 안정성도 높습니다.”
“제가 단기로 운용할 거라. 펀드나 다른 금융상품은 관심 없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직원은 티 나게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닥친 금융위기로 증권사에 개인 고객은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그보다 제가 가진 자산을 주식에 투자할까 싶은데.”
펀드 판매가 좌절되자 시무룩해져 있던 증권사 직원의 표정에 다시 화색이 돈다.
“계좌에서 주식 비중을 얼마나 설정하시겠습니까? 아직 젊으시니 50% 정도는 무리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포트폴리오의 분산은 투자의 기본이다.
모르고 하는 투자는 투자가 아닌, 투기다.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명언은 수없이 많다.
정석대로라면 직원이 권해준 50%가 적당한 자산 운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일 때 이야기고.
“주식으로만 100% 설정해주시죠.”
“예? 그건 너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채권이나 다른 상품을 적당히 섞으시는 게…….”
“아니다. 주식 100%에 레버리지를 추가로 설정하겠습니다.”
직원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느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젊은 놈이 만용을 부려, 무모한 투기에 뛰어든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가 손을 거치면 투기는 더 이상 투기가 아닌, 투자로 탈바꿈할 것이다.
왜냐?
난 미래를 아는 투자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