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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6화 (6/206)

기적의 IT 재벌 6화

100억이라고?

혹시 잘못 봤나해서 눈도 비벼도 보고 0을 뒷자리부터 몇 번이나 다시 세 본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백억.

찍힌 금액은 진짜 백억이었다.

[남은 잔액. 10,000,004,720원]

처음엔 너무 놀란 나머지 괴성을 지를 뻔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오히려 가슴이 겨울바람처럼 차가워진다.

아마, 몇 일 전 회귀라는 쇼크를 한 번 견뎠기 때문이겠지.

당장 생각난 가능성은 세 가지다.

카드가 다른 사람 것과 바뀌었을 경우.

ATM오류로 금액이 잘 못 표시 된 경우.

은행 전산상의 오류로 100억이 진짜 입금됐을 경우.

그중 첫 번째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 ATM에서 카드를 회수한다.

[카드를 회수해 주세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받아들곤 확인한다.

카드는 군인에게만 발급되는 나라사랑카드였고, 뒷면의 서명 란엔 강현우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적어도 이 카드가 내 것이란 건 확실하다.

다음은 ATM에 카드를 밀어 넣고 출금을 선택했다.

출금 액수는 ATM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인 70만원. 100억이 허수라면 4천원 밖에 없는 내 통장에서 출금이 실패해야 한다.

위이이잉- 철컥, 철컥.

돈 세는 소리에 심장이 동요한다.

진짜 돈이 나올까? 아니면 오류가 뜨면서 멈추는 걸까?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빳빳한 지폐더미가 출금된다.

돈을 빼는 것 보다 영수증을 먼저 펼쳐본다.

[남은 잔액. 9,999,304,720원]

진짜다.

이건 진짜 통장에 100억이 들어 있다는 거다.

심장이 망치로 후려치는 것처럼 뛰었기에 억지로 심호흡을 했다.

“후- 하- 후- 하-.”

주변에서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며 지나가지만 상관없다. 난 100억을 가진 사나이니까.

이거라면…… 이번 생은 금수저 부럽지 않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서울이나 곧 개발될 신도시에 상가를 사거나, 땅값이 폭등할 제주에 부동산을 선점 할 수도 있다.

꼭 부동산이 아니라도 종잣돈 100억이 있다면 돈을 불릴 곳은 많다.

아직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같은 IT 대장주가 두각을 보이기 전이므로 해외 주식에 묻어두고 기다려도 10배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21세기의 튤립이라 불리는 투기의 정점, 비트코인을 사둔다면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돈을 벌 수 있다.

2010년 처음 개장 된 비트코인 거래소에 100만원을 투자하고 기다렸다면 2018년에 700억을 벌었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만약 1억만 비트코인을 사두면…… 700억의 100배.

7,000,000,000,000원

회귀 전 1억을 못 모아 봤는데 조 단위가 나오자 현실감이 없어진다.

7조면 0이 몇 개가 되는 거지? 그보다 비트코인을 7조나 매도하려들면 시장이 버틸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지 영수증을 꽉 말아 쥔 손에서 땀이 줄줄 새고 있다.

워워. 너무 흥분했어. 일단, 진정하자.

마지막 가설인 은행의 오류거나 누군가의 이체 실수일 가능성도 있다.

일단 돈부터 확인하는 거다.

미래에 대한 플랜은 이후로 미뤄두자.

길을 몰랐기에 아무 택시나 잡아탄다.

“여기서 가까운 S은행으로 가주세요.”

석연찮아하는 택시 기사의 표정을 보니, S은행은 가까운 곳에 있는 모양이다.

지금의 난 택시 기사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당장 통장의 100억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다 왔습니다. 기본 요금만 주세요.”

벌써 도착했구나. 막상 들어가려니까 떨리네.

처음엔 은행에 갈까 말까 고민했다.

만약, 이 100억이 단순한 전산오류라면 은행에 가는 순간, 계좌의 100억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게 ATM을 돌아다니며 돈을 인출하고 해외로 튀려는 계획이었는데.

ATM에 찍힌 입금 내역이 마음에 걸렸다.

[타행 입금 : 10,000,000,000원 BTC Reward]

BTC.

여러 뜻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지식으론 비트코인의 약자가 가장 유력하다.

거기다 리워드면 보상이라는 뜻인데.

조합해보면 비트코인에 대한 보상, 이라는 묘한 뜻이 된다.

참고로 2008년 10월 현재. 비트코인은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시기다.

그런데 비트코인 보상이라고 하면 앞뒤가 안 맞다.

하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내가 멀쩡히 과거로 와 있는 것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BTC Reward라는 건 내가 죽기 전 가지고 있던 6400개의 비트코인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잠시 후면 이게 전산 오류인지 진짜 내게 들어온 행운인지 알게 될 것이다.

평일의 은행은 한적했다.

번호표를 뽑고 얼마지 않아 내 번호가 호명된다.

-띵동, 410번 손님.

호명 된 창구로 다가가 앉으려 할 때였다.

푸들처럼 머리를 볶은 아줌마가 의자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아이쿠. 군인 양반 미안혀. 내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먼저 하면 안 될까?”

나이를 먹으면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 부끄러운 줄 몰라간다고 하더라.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아줌마다.

더 황당했던 건 내가 승낙을 하지도 않았는데 직원이 아줌마의 통장을 받아들고 업무를 시작했다는 거다.

“사모님,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어제 들렀어야 했는데, 깜빡했지 뭐야. 내 정신이 요새 오락가락한다니까. 호호.”

“하루 늦은 건 괜찮아요. 저도 가끔 잊어먹는데요 뭘.”

“그보다 저번에 내가 해달라는 건 알아봤어?”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예, 날 없는 사람 취급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어찌나 두 사람의 쿵짝이 맞는지 수다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여기서 확! 깽판을 쳐버려?

고민했지만 나도 켕기는 게 있는 터라, 참을 인을 손바닥에 쓰며 기다렸다.

의미 없는 수다가 십 분여 더 흐르고 나서야 아줌마가 홍홍홍거리며 사라진다.

“다음 손님.”

직원은 무심히 서류를 내밀었다.

[나라사랑카드 발급 신청서]

나라사랑카드.

군인 월급이 들어오는 체크카드다.

보통 입대할 때 만들어주지만, 누락 된 사람은 직접 가서 만들어야 했다.

“거기 네모 친 곳만 서명하시면 됩니다.”

“저는 통장 재발급 받으려고 왔습니다.”

“그러셨으면 미리 말을 하셨어야죠.”

틱틱거리며 말하는 싸가지가 아주 귓방맹이를 부르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내가 군복을 입고 와서 그렇겠지.

막말로 군인은 집지키는 개와 동급이라지 않던가?

국방부에서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떠들어댔지만, 실상은 월급 5만 원짜리 노예나 다름없다.

사회에서 군인을 대하는 태도도 당연히 딱 그 정도 급이고 말이다.

다시 통장 재발급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신분증 주시구요. 도장은 대신 서명으로 하면…… 엑?”

시큰둥하게 처리하던 직원의 눈이 갑자기 크게 떠진다.

“저, 저기…… VIP손님이시면 말을 하시지…….”

“그게 뭔데요.”

쌓인 게 많아서 그런지 반사적으로 삐딱한 말투가 나온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나 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까만 해도 내 말의 꼬투리를 잡고 툭툭 쏘아 붙이던 직원이 이젠 눈도 못 마주치며 고개를 숙인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자,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아래로 처박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이게 뭔 황당한 사태란 말인가? 분명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 사과 받을 정도의 일은.

아! 설마. 통장에 찍힌 잔액 때문에?

순간, 본능적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직원의 반응으로 볼 때, 내 통장의 100억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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