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5화
비트코인, 비트코인, 비트코인.
정신이 들고 깨달은 거지만, 이 휴대폰에 들어 있는 비트코인들은 현시점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데이터쪼가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지금이 2020년이 아닌, 2008년이기 때문인데.
내가 죽었던 미래, 그러니까 2020년의 비트코인은 개당 몇 천만 원에 달할 정도의 가치를 지녔지만, 비트코인의 첫 가격이 공시된 2009년엔 1달러를 주면 비트코인 1309.03개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쉽게 말해 내가 가진 6400개의 비트코인을 1년간 묵히면 4.8달러의 가치가 된다는 거다.
4만 달러도 아닌 4딸라다.
4딸라!
하하하. 젠장.
뭐, 그래도 나쁘지 않다.
내겐 미래의 비트코인이 폭등에 폭등을 거듭한다는 정보만 있어도 성공이니까.
이 대박 정보만 잘 이용하면 이번 인생은 아랍의 부호도 부럽지 않은 벼락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기껏 회귀했는데 백수로 시간을 날리는 건 싫다.
그렇다고 또다시 중소기업에 들어가 예전 테크 트리를 밟는 건 더더욱 싫고 말이다.
음……. 생각해보자.
분명 미래에서 온 나만이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가능성을 찾기 위해 챙겨온 휴대폰을 꺼내 든다.
[정보 업데이트를 위해 네트워크에 연결합니다.]
[최적의 네트워크를 검색 중입니다…….]
[실패.]
[다시 한번 검색 중입니다…….]
네트워크 검색 중……. 이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진행이 멈췄다.
애플폰XI는 개통도 않은 상태니 먹통인 건 당연하겠지.
모든 작업을 취소시키고 휴대폰 앱 저장소로 들어간다. 내가 노리는 것은 미래에 출시 될 앱이었다.
미래에 나올 게임 중 대박 게임들. 예를 들어 ‘캔디 크러시 사가’나 ‘클래시 오브 클랜’, ‘퍼즐 앤 드래곤’ 같은 게임은 내가 가진 비트코인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다.
한 예를 들면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슈퍼셀은 중국기업에 매각됐는데, 그 금액이 무려 10조 원에 달한다.
만약, 이 폰에 클래시 오브 클랜이 깔려 있다면 그 10조 원의 주인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앱 내역을 훑고 있는 눈동자가 점점 빨라진다.
“쓸데없는 통신사 앱들. 뭐 이리 많아?”
안 되겠다 싶어 기본 앱을 제하고 추가로 설치된 앱만 분류한다.
제발, 클래시 오브 클랜이 깔렸으면……. 아니, 국내 게임인 모두의 마블이나 쿠키런 정도도 괜찮다.
대박은 아니라도 중박 정도는 될 테니까. 하다못해 리니지 시리즈라도!
앱 목록을 끝까지 확인함과 동시에 내가 걸었던 기대는 짜게 식어버렸다.
“크으, 그 흔한 애니팡 하나 안 깔아두다니.”
골프와 술집을 좋아하는 꼰대에게 기대를 건 내 잘못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이 밝을 때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 * *
“면회 꼭 와라. 담배도 챙겨오고.”
경훈의 말이 끝나자, 흐릿한 인상의 후임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전역 축하드립니다.”
“강 병장님, 꼭 면회 오십셔.”
“저도 전역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몸조심들하고.”
이들에겐 내가 매일 같이 지낸 선임이겠지만 나로선 십 년도 넘은 흐릿한 기억뿐이다.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고 군용버스에 몸을 실었다.
군용버스는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창원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저씨들, 다 왔습니다. 빨리 내리세요.”
운전병의 외침에 전역모를 쓴 군인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터미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창원답게 터미널은 입구부터 사람이 가득했다.
“이제야 전역했다는 느낌이네.”
내가 말하고도 웃음이 나온다.
군에서 지낸 건 고작 3일이었으니까. 물론 체감은 3년 이상 지낸 느낌이다.
군부대는 시간을 더디게 만드는 저주라도 있나 보다.
덕분에 고민은 실컷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대학에 복학할 것인지, 뭘 하고 살 것인지 같은 고민 말이다.
물론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이 녀석이지만.
슬쩍 꺼내본 휴대폰 액정에 텍스트가 떠올라 있다.
마치, 액정에 스티커를 붙여 둔 것 같은 쨍함이다.
[최적의 네트워크를 검색 중입니다…….]
[통신 연결에 실패했습니다!]
애플폰은 이 상태에서 진전이 없다.
대리점에 가져간다한들 지금의 3G 통신 규격으로 개통이 될지도 의문이고, 설령 개통된다 해도 애플폰XI는 쓸 생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 폰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
만약 애플폰XI를 오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가져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마트폰의 태동기나 다름없는 지금 시기에 2020년에 나올 스마트폰은 외계 기술이나 다름없다.
이걸 오성전자가 먹는다면 스마트폰 시장의 독주는 따 놓은 당상이다.
어디 그뿐이랴?
애플폰의 주요 부품인 모바일AP와 메모리, 배터리, 액정 등의 기술은 오성전자의 전자제품들에 고스란히 적용될 것이고, 거기서 파생되는 특허마저 오롯이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거대 기업의 출현이다. 국가마저 초월한 초거대 기업 말이다.
고작 스마트폰 하나로 인해 온 세상이 변한다.
이건 그런 물건이다.
세계를 변화시킬, 그런 물건.
“후우-”
갑자기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런 녀석을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어디 쓰겠는가?
팔아먹자니 정상적인 경로론 팔 방법이 없고, 분해해서 써먹자니 일반인인 내겐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
“결국, 폰은 무용지물이라는 건가. 쳇, 이제부터 뭐 하고 산담.”
이틀 전부터 같은 고민으로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답은 안 나온다.
차라리 수능 보기 전으로 돌아왔으면 좋은 대학이라도 노려봤을 텐데.
아차차. 그럼 군대 2년을 꽉 채워야 하구나.
상상만으로도 끔찍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부산행 버스 발권을 마쳤다.
버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때우면 좋겠는데.
마침, 탑승구 옆에 조그만 분식집이 보인다.
허름한 노점엔 시뻘건 떡볶이와 국물에 빠진 꽃게가 날 향해 손을 흔든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단돈 천 원만 있어도 오뎅 2개와 뜨뜻한 국물로 입을 달랠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수중에 현금이 없다.
어떡한담.
고민은 잠시였다. 10월의 이른 추위와 오뎅 국물은 날 ATM으로 이끌기 충분했다.
“으……. 10월 말인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매표소까지 걸어가자 허름한 ATM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미리 지갑을 꺼내려는데, 걱정이 밀려온다.
통장에 돈이 있던가?
무려 10년 전 일이다. 통장 잔액이 얼마 있는지 기억해내는 건 무리였다.
다 쓰고 한 푼도 없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만 원도 없겠어.
카드를 집어삼킨 ATM을 조작한다.
출금. 금액 입력. 비밀번호 입력.
삐빅-
[통장에서 만 원을 출금합니다. 수수료는 1200원입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Yes / No]
무심결에 Yes를 누르려다 손이 멈칫한다.
1200원이라고 생각할 땐 별생각이 없었는데 12%라고 생각하자, 너무 아까운 느낌이다.
그래, 차라리 잔액 확인하고 다 뽑아가자.
만 원이든 십만 원이든 수수료는 1200원으로 같을 테니까.
다시 메뉴로 돌아가 잔액 조회 버튼을 터치했는데…….
메시지를 확인한 난,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뭐, 뭐, 뭐, 뭐야 이거?”
삐빅-.
[남은 잔액. 10,000,004,720원]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내 통장엔 100억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