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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4화 (4/206)

기적의 IT 재벌 4화

“어이, 강현우.”

등판이 불에 댄 것처럼 뜨겁다.

콧속은 바닷물 덕인지 시큰거렸고, 속은 울렁거려 당장에라도 토할 것만 같다.

“일어나라.”

누군가 나를 불러댄다.

눈앞이 새빨개졌다가 하얘지길 반복한다.

그 덕분일까? 떠지지 않던 눈이 천천히 떠지고 있다.

“으음…….”

눈앞에 뭔가가 있다.

사람치곤 큰 체구에 후드가 달린 망토로 보아하니. 저승사자쯤 되지 않을까.

“늦었다. 빨리 일어나.”

우악스러운 그의 손이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힘이 어찌나 센지 스프링처럼 내 몸이 튀어 오른다.

“잠깐만요. 저 아직 마음에 준비가…….”

“어이쿠, 우리 강 병장. 언제까지 자빠져서 주무실 겁니까? 그만 쳐 자고 일어나시죠. 이러다 나까지 망하겠습니다.”

응?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저승사자라면 뭔가, 좀 더 딥다크하고 시크한……. 아무튼 그런 느낌일거라 생각했는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건 동네 친구들이나 할 법한 찰진 욕사발이었다.

“짜식아, 비 온다. 빨리 우의입고 나와. 오늘 당직 사관 완전 FM이니까 우산 쓰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직 사관? 그게 무슨…….”

내가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자 뒤통수에서 불이 번쩍 난다.

“크헉!”

“빨리 안 깰래? 지금도 늦었단 말이다. 나가서 한 대 피고 있을 테니까 빨리 나와라.”

내 뒤통수를 후려친 녀석은 랜턴과 거적때기 같은 것을 건네주곤 밖으로 나가버린다.

“으아……. 겁나 아프네.”

머리가 아픈 탓인지, 아니면 혼란한 탓인지 어질어질하다.

거기다 받아든 거적때기에선 기분 나쁜 냄새가 흘러나와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게 대체 뭐 기에…… 아, 그거구나.

국방색 군용 우의.

특징은 비를 흡수하고 아무리 말려도 꿉꿉한 냄새를 내 뿜는다.

어떻게 우의가 비를 막는 게 아니라 흡수하는 건지 정말 미스터리다.

“후우, 뭐가 뭔지.”

몸을 움직이자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어다.

아니, 오히려 몸이 가벼운 느낌마저 들었다.

여유가 생긴 나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다.

국방색 매트와 모포, 낡아빠진 철제 사물함 그리고 잠들어 있는 까까머리 사내들.

아! 여긴 내가 복무했던 내무반이구나.

당시엔 죽을 만큼 싫은 광경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리운 것들이다.

이건 꿈일까? 아니면 죽기 전 마주치는 주마등의 확대판 같은 걸까? 어쨌든 현실은 아니다. 난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

내무반 밖으로 걸어 나가자 먼저 우의를 덮어쓰고 있던 사내가 다가온다.

“이제 나왔냐? 느려 터져선.”

장난스럽게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내. 아깐 어두워서 몰랐지만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이경훈? 네가 어떻게?”

* * *

내 옆을 걷고 있는 곰처럼 생긴 사내. 녀석은 고교 동창이자 내 한 달 후임병인 이경훈이다.

녀석은 우연히 같은 부대에 배치 된 케이스로 휴대폰 덕후인 나와, 전자기기 덕후인 녀석은 코드가 맞았기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게 된다.

물론 생업에 뛰어 든 후에는 연락이 뜸해졌지만 말이다.

“야, 이경훈. 진짜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냐?”

“그래, 정확히 4시간만이니까. 겁나 오랜만이네.”

“뭐? 우리 못 본지 3년은…….”

“잠깐. 스톱. 농담은 거기까지만 해라. 네놈이 늦어서 서둘러야 하니까.”

아차차. 깜빡했다. 지금은 내 군 시절의 꿈이다. 지금 시기의 녀석은 나를 매일 같이 봤을 것이다.

“그래도 반갑다. 진짜 반가워.”

경훈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나는 씩 웃고 말았다.

어영부영 당직 사관에게 탄약을 지급받고 경계초소를 향해 걸어간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퀴퀴한 비옷냄새.

질척이는 바닥은 물론이고 총열에 뭍은 기름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위화감이 느껴진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현실들이 꿈이라고 치부해 버린 내 생각을 비집고 공격해 들어온다.

이게…… 꿈이라고? 이렇게 생생한데? 말도 안 돼.

정리 했다고 생각했던 머릿속이 다시 엉킨 실타래처럼 변해간다.

* * *

“강 병장님, 이 병장님. 그럼, 수고하십쇼.”

“그려, 잘들 들어가라.”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상병 녀석들이 경례를 하고 초소를 빠져 나간다.

얼떨떨한 표정의 나완 달리 경훈은 자연스럽게 총을 구석에 던져 버리곤 초소에 드러눕는다.

“아이 씨, 졸려 죽겠네. 전역하면 이쪽으론 오줌도 안 눈다. 개 같은 국방부 놈들. 나라에서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아! 여자 만나고 싶다. 여자!”

심란한 나머지 줄곧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주절거리는 경훈의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풉. 푸, 풋!”

“웃어? 새벽에 끌고 나와서 개고생 시키는 게 그리 좋냐?”

“아니, 그냥 옛날 생각나서.”

“옛날은 생각은 무슨. 아오, 썅! 겁나 춥고 시간도 안가네. 핫팩이라도 보급해주면 좀 나을 텐데, 하다못해 외투라도 좀 두꺼운 거로 주든가! 생각하니 더 열 받네. 똥별 새끼들 골프장 지을 돈은 있고, 병사들 핫팩이나 옷 사줄 돈은 없냐? 이 개 같은 똥별들 삼백육십오일 동안 막사에 가둬두고 똥국이랑 코다리 조림만 멕여야 정신을 차리지.”

“코다리 조림도 잘 하면 은근 맛있는데.”

“너나 많이 처먹어!”

그 후로도 경훈은 분노의 하소연을 끝없이 내뿜었다.

“보급품은 어디다 다 삥땅치는지 우리 같은 후방 부대엔 보급 자체가 안 나와요. 내가 이병 때 보급받은 양말을 아직 신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냐? 하다못해 건빵이라도 제대로 보급해 달라고!”

“큭큭큭…… 야. 그만해라. 나 웃겨 죽는 거 보고 싶냐.”

“나 지금 심각하거든? 어휴, 말자 말어. 간부들 욕하다 보면 끝이 없어요.”

분명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인데 사람을 빵빵 터지게 만든다. 경훈은 미래에 기자가 되는데 개그맨을 했어야 했나 싶다.

“현우야, 빨리 전역하고 싶다. 내가 너 대신 전역 좀 하자.”

“지금은 힘들어도 지나면 다 추억이다.”

녀석은 나를 향해 중지를 치켜든다.

“영감탱이 같은 소리하지 말고 담배나 한 대 주라. 소리를 너무 질렀더니 목이 따갑네.”

“목이 따가우면 물을 마셔야지.”

“후우, 내가 말을 안 하려 했는데. 수통도 무슨, 6.25때 쓰던 걸 그대로 쓰고 있냐? 내가 말이야, 6.25 참전 용사랑 간접키스를 해야겠냐고! 이게 나라냐!”

“또 시작이네.”

“그러니까 빨리 담배 달라고.”

“잠깐 기다려봐. 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주머니를 뒤지는 데 깔깔이 품 안에 불룩한 것이 느껴진다.

“이게 뭐지? 묵직한 걸 보니 담배는 아닌 거 같고…….”

별생각 없이 손에 잡힌 물건을 꺼내들었는데.

“컥!”

순간 말을 잊었다.

그럴 수밖에.

내 손에 딸려 나온 것은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움켜쥐었던 애플폰XI였다.

“이, 이게 왜 여기에?”

[환영합니다. 기기를 사용하시려면 터치해 주세요.]

녀석은 놀란 내가 떡 벌린 입을 닫을 시간도 주지 않고 메시지를 뿜어댄다.

[주변 네트워크를 검색중입니다…….]

멋대로 작동하는 녀석을 끄곤 억지로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왜 이게 내 주머니에 있는 거지? 게다가…… 내 기억으론 완전 부서진 상태였는데.

두근, 두근, 두근.

요동치는 심장이 지금의 내 심정을 대변한다.

강약중강약 같은 것도 없다. 그냥 강! 강! 강! 이다.

제발 깜빡이 좀 켜고 나와라. 갑자기 이딴 식으로 튀어 나오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경훈과 대화하며 살짝 현실이라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는데, 망할 애플폰 덕에 다시 꿈 쪽으로 추가 기운다. 이대론 혼란만 더해질 뿐이다.

“머리 아프다, 진짜.”

난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우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후에 손을 치켜든다. 그리곤 소심하게 내 뺨을 후려쳤다.

짝!

허벅지도 꼬집는다.

꾸욱.

“흠…….”

역시 자해 하는 건 쉽지 않다. 세게 하고 싶어도 마지막에 힘을 빼버리니까.

마지막 선택은 도구를 사용 하는 것.

개머리판으로 정강이를 찍어볼…….

“켕!”

아오. 망할. 좀 살살 찍을 걸.

바보 같은 짓이지만 하나만은 확실해졌다. 지금은 꿈 따위가 아닌, 현실이다. 이건 내 뇌가 아니라 내 허벅지와 볼따구. 그리고 정강이가 보증한다.

내가 살았다는 게 중요한 거야. 암, 그렇고말고. 세상에 그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

그런데 너무 아프다. 역시 개머리판은 오버였나.

절뚝거리며 초소에 걸터앉자 경훈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밖에서 뭐해? 안 들어 와?”

“으, 응?”

“뭐야, 얼굴이 완전 새하얀데?”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닌 놈의 얼굴이 그러냐? 갑자기 툭 튀어나온 멧돼지라도 본 표정이구만.”

그따위 흔해 빠진 야생동물이 아니라 십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야 등장하는 미래과학의 집약체를 봤단다.

뭐, 얼굴이 새하얀 건 정강이가 아파서 그런 거지만.

“여기 같은 후방 부대에 멧돼지가 있을 리 없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상태 안 좋으면 내일 의무대에 가보던가.”

나를 걱정하는 경훈에게 ‘난 미래에서 회귀했고 2020년에 출시 될 휴대폰도 가지고 왔어. 어때, 죽이지?’라고 말 할 순 없었기에 대신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로 했다.

“그냥 달이 너무 밝네. 하. 하. 하.”

“오늘은 달 안 떴거든? 전역 날이 다가오니까 슬슬 맛이 가는 구만.”

“내 전역 날짜가 언제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경훈이 내 철모를 팡팡 두들긴다.

“이 새끼 봐라. 전역까지 삼 일 남았다고 염장을 지대로지르네. 어디 한 달 남은 놈은 서러워서 살겠냐.”

제 딴엔 장난으로 두들기는 거지만 곰 같은 덩치만큼 힘도 발군이었기에 골이 울릴 지경이다.

그나저나 전역까지 삼 일이라. 군 시절의 추억을 곱씹기엔 짧은 시간이다.

물론 내 상황이 이제 막 입대한 이병이고 앞으로 전역까지 2년 남았다면 자살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진짜다. 궁서체로 진지하게.

“왜 그딴 표정이냐? 설마, 아쉬워?”

“뭐, 조금은?”

그 말에 경훈의 입이 사선으로 기울어진다.

“어이쿠, 우리 강 병장님이 군 생활이 아쉽다고 하시네. 그럼 내가 군 생활 좀 늘려 드려야지. 저번 주엔 담 넘어서 무단 외출했고 그저께는 초소에서 짜장면시켜 드시던데.”

“내, 내가 그랬었나?”

“어렵게 갈 필요도 없이 네 관물대에 짱박아둔 게임기나 PMP만 들켜도 영창 직행일걸? 딱 한 달만 쉬다 나와. 그러고 나랑 같은 날 전역하자. 오케이?”

듣다 보니 생각났다.

전자기기 덕후인 내가 군에 있다고 게임을 포기할 놈이 아니었다.

이미 관물대 서랍엔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전자기기들이 쌓여 있다.

전역하면서 다 챙겨 나왔는데, 정작 사회에선 손이 안 갔었지. 그냥 군에 둘 걸 왜 가져왔는지 몰라.

“이 짜쓱, 영창 보낸다니까 쫄았냐? 왜 대답이 없어.”

“어이쿠 영창 갈까 무서워서 다 불태워야겠네. 사물함 물건들 전부 두고 가려고 했더니.”

“진짜? PSP나, NDS도?”

귀가 쫑긋해진 경훈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들겼다.

“그래, 인마. 대신에 전역할 때 후임들한테 주고 와.”

“흠, 흠. 나도 한 달 뒤면 전역이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 간 것이 어지간히도 좋나보다.

“그리고 전역하면 바로 면회 올 게. 올 때 담배 한 보루도 지참함. 어때, 콜?”

“면회는 무슨. 그 말하고 오는 놈 하나를 못 봤거든.”

“오면 어쩔래?”

“네놈이 안 온다는 거에 내 왼쪽 소중이를 걸지.”

“평생 쓸 일없는 거라고 막 굴리네. 야, 그래도 한 짝만 없으면 균형 안 맞으니까 두 짝 다 거는 걸로?”

“이 새끼가.”

십 년 전의 친구와의 대화.

어색할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오히려 오버한 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예를 들어 미래의 경훈이 M자 탈모가 오며, 37세까지 여자 친구 한 번 만들지 못하고 모솔로 지낸다고 천기누설을 해버렸다.

엉겁결에 진짜배기 예언을 해줬지만 당사자는 ‘개소리 좀 작작해. 내가 머리숱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넘겨 버린다.

친구야, 지금부터라도 준비해라. 자, 따라한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잡담을 나누다 보니 2시간의 경계근무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생활관에 복귀한 경훈은 옷을 벗는 둥 마는 둥 집어던지곤 모포로 들어가 버린다.

“야, 이경훈. 벌써 자냐?”

“잔다. 말 걸 지마라.”

그 후로도 말을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내겐 삼 년 만의 반가운 재회지만 놈에겐 내가 매일 보는 지겨운 얼굴일 테니까.

드르렁…….

드르렁…….

코골이 소리만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생활관.

나 역시 자리를 찾아가 누워도 봤지만…… 잠이 올 턱이 있나.

당장 잠들면 죽었던 미래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한 느낌마저 든다.

최대한 깨어 있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던 난 다시 야상을 걸쳐 입곤 밖으로 향했다.

십 년도 지난 기억을 더듬어 어두컴컴한 생활관 주위를 돌아본다.

좁디좁은 휴게실과 비닐하우스로 지은 체력 단련장.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도 있다.

한 바퀴를 크게 둘러 봤지만 별다른 감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내가 생활했구나라는 생각만 들 뿐.

다시 생활관으로 방향을 틀어 화장실로 들어선다.

실은 처음부터 목적지는 여기였지만 지금이 현실임을 되뇌고 싶어 잠시 미룬 것이었다.

철컥-

좌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 중얼거린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이 현실이고, 나 강현우는 살아 있어. 오케이다. 그거면 된 거야. 지금은 현실이다. 무조건 현실이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심플하게 생각하면 된다.

그저, 37세였던 강현우는 25세의 전역이 삼 일 남은 말년 병장으로 회귀한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회귀 전의 25세 강현우는 빈털터리였지만, 지금의 25세 강현우는 스마트폰에 6,400개나 되는 비트코인을 소유한 잠재적 부자였다.

그래. 그게 문제다.

‘잠재적’ 부자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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