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3화
금발의 미녀를 양 손에 끼고 선상 파티를 즐기며, 광란의 밤을 보낸다. 차는 세계에 10대밖에 없는 한정 스포츠카다.
죽인다. 이런 게 진짜 인생이지.
끼룩- 끼룩-.
스포츠카는 배기음부터 특이하구나. 끼룩끼룩이라니. 음? 끼룩끼룩? 이거 완전 갈매기소리린데?
짠내음이 내 코를 스친다.
주기적으로 몸이 흔들리는 것이 억지로 바다낚시를 따라갔을 때를 떠오르게 했다.
그땐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내가 배를 타고 있는 건 맞는 건가? 분명 침대에서 잔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렇다면 꿈? 그래, 계속 해외로 떠난다는 생각을 해서 배를 타는 꿈을 꾸는구나.
다시 잠들기 위해 몸을 뒤척인다.
바로 그때였다.
날이 선 듯 서늘한 목소리가 내게 쏘아져 왔다.
“친구, 슬슬 일어나지?”
등골이 서늘하다는 말을 진짜 느끼게 될 줄이야. 오싹한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하고 멈춰 버릴 뻔했다.
급하게 몸을 일으키자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끼룩-. 끼룩-.
사방은 육지조차 보이지 않는 바다. 그 흔한 섬도 하나 없다. 오직 바다와 갈매기만이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의 전부다.
“여, 여긴 어디죠?”
“어딜 거 같나?”
목소리에 다시 한번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선글라스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누굽니까?”
그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낸 후 천천히 불을 붙인다.
“후우~ 이곳은 서해의 어딘가다. 너무 멀리 와서 나도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그의 분위기,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 유추할 수 있었으니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나?”
“오성……. 에서 보냈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또 품에서 물건을 꺼낸다. 이번에 꺼낸 것은 새까만 권총이었다.
“자, 다시 묻지. 내가 누군지 아직도 알고 싶나?
* * *
최악도 이런 최악이 있을까?
눈을 떠보니 바다 한 가운데고 같이 보트에 동승한 괴한은 총을 들이댄다.
사면초가. 진퇴양난. 절체절명.
무슨 단어도 내 상황을 온전히 표현 할 수 없다.
“……그렇게 돼서 휴대폰의 데이터를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엉망인 상태임에도 괴한이 묻는 말엔 척척 대답이 나왔다.
내 생존 본능이 뇌와 주댕이를 움직이나보다.
“별도의 루트로 해킹한 게 아니란 말이지?”
“저는 해킹이 뭔지도 모르는 일반인입니다.”
“흠…… 유출 된 데이터는 스마트폰에 저장 된 게 전부고, 그마저도 네가 가진 폰에 고스라니 담겨 있다라…….”
“모, 모두 사실입니다.”
“어이가 없군. 전 상무가 멍청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안일할 줄이야.”
잠시 말을 끊고 눈을 마주친다. 오싹함에 몸이 마비된 느낌이다.
“너, 다른 곳에 백업해둔 파일 있지?”
“진짜 없습니다.”
“증거는 있나? 네가 하지 않았다는 증거.”
무슨 일을 했다는 증거야 증명할 수 있다지만 안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뭔가 대답을 해야 할 텐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깜깜하다.
마치, 뇌가 오작동으로 블루스크린이라도 뜨면 이런 상태일 것이다.
“후우~”
그가 말없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댄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그의 입이 열린다.
“무슨 배짱으로 전 상무의 폰을 복사했나.”
이자…… 내가 폰을 복사 한 걸 어떻게 안 거지?
데이터가 유출 되면 USB 따위로 빼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경울 텐데.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복사 한 건 어떻게 아신 건지…….”
“멍청하긴.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
그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훑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보안이 필요한 중요 데이터는 복사방지 뿐만 아니라 추적도 가능하게 만들지. 그쯤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폰의 데이터도 추적이 가능하다니.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게다가 내가 휴대폰 락을 푼 건 어젯밤 아닌가?
고작 몇 시간 만에 위치를 추적해 납치할 정도라니.
사내에 대한 두려운 마음만 더 커져버렸다.
“너, 정말 해커가 아니구나.”
그가 쥐고 있던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더니 연기를 내 안면에 쏘아냈다.
눈이 매울 정도의 독한 연기였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서 따가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생각해라, 강현우. 저놈에게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이런 곳에서 객사하면 지금껏 영일 포장에서 개 같이 일한 세월이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필사적인 동안에도 검은 사내는 여유 있게 담배를 빨아들인다.
“열람 기록을 그대로 노출시키기에 잔챙이 해커인줄은 알았는데……. 그냥 일반인이라…… 재미없군.”
총구가 치켜 올라온다.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보인다.
인생의 마지막이 되면 주마등이 보인다더니, 딱 그 짝이다.
“자, 잠깐만요!”
“유언이라도 할 셈이냐.”
언제부터인지 내 턱 끝으로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저, 절반을 드리죠.”
“절반?”
“제 휴대폰에는 엄청난 금액의 비트코인이 있습니다. 거기서 절반을 떼 드리죠.”
“허허허허허허.”
그는 가소롭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상 망해도 한참을 망한 느낌이지만 포기하긴 일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믿기 힘드시면 지금 바로 전송해드리겠습니다. 비트코인 지갑이나 실물 계좌를 불러주시면…….”
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의 화면을 켜자, 절망적인 메시지가 떠오른다.
[신호 없음]
“아…….”
주변은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먼 바다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건 당연했다.
“지, 지금은 전화가 안 터지니 일단 중국 쪽으로 가시죠. 네트워크에 접속만 가능하면…….”
철컥, 하는 방아쇠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 안에 비트코인도 있었나보군.”
“예?”
정황상 오성은 비트코인의 존재 자체를 모른 거 같다. 그럼 이자는 뭐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지?
놈은 새빨간 잇몸을 들어내며 히쭉 웃는다.
“내가 비트코인 쪼가리 때문에 널 찾아온 줄 아느냐? 아주 웃기는 녀석이네.”
“그게 무슨 말씀…… 아!”
비트코인 쪼가리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 같은 서민에겐 비트코인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 넘쳐나는 재벌가에게도 그럴까?
그들에겐 침대 밑으로 굴러간 동전이나 가치조차 불투명한 가상 화폐가 같은 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성이 회수하려는 건…… 망할, 같이 저장 된 검은 장부구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전신을 절망이 휘감는다.
돈은 회수하면 그만이지만, 장부는 본 사람 모두를 없애버려야 하니까.
“넌 그들의 역린을 건드린 거다. 그런 네가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오성의 제국에서?”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갔다. 놈은 오성이란 이름에 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잘 아는 자니까.
이제 내게 남은 카드는 단 하나밖에 없다.
정면승부다.
총을 든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
“한 대만 더 태우고 끝내자고.”
놈은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들곤 불을 붙인다.
왼손에는 새로 꺼낸 담배와 총이, 오른손엔 라이터가 들려 있다. 당연히 바로 발포 할 수는 없는 상태.
꿀꺽.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다.
놈과 나의 거리는 고작 네댓 걸음 남짓.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지금’ 이라는 단어가 스쳐간다. 그리고 ‘지금?’ 이라고 되물었을 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인 상태였다.
“으아아아아!”
내 생애 가장 절박한, 가장 절실한 몸통 박치기가 놈에게 작렬한다.
툭.
이, 이런!
밀어 붙인 게 나였지만 튕겨져 나간 것도 나였다.
마치 돌덩이와 부딪힌 느낌이다.
“컥!”
꼴사납게 넘어진 내게 다가온 그가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끝까지 웃긴 놈이야.”
“크으…….”
내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검은 사내는 팔짱을 끼고 나를 관찰하고 있다.
마치, 너 따윈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듯.
“죽기 전, 발악하는 인간을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젠장!”
본능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곳. 평소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살겠다는 의지가 등을 떠밀었다.
입수와 거의 동시에 등짝서 열기가 느껴진다.
“끅!”
반사적으로 등이 휘어진다.
후에도 수차례 같은 고통이 사지에 퍼진다. 아무래도 난……. 총에 맞은 듯하다.
이제 허우적거리려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자연스레 몸이 가라앉는다. 아래로. 더 아래로.
이대로 끝인가.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떠밀려 살아온 내 인생. 종점까지도 타인에게 강제로 떠밀려 도착해 버리다니.
난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 온 걸까?
시커먼 바다 속, 밝게 빛나는 휴대폰이 보인다.
녀석은 액정의 가운데가 꿰뚫렸지만 끝까지 빛을 내고 있었다. 나완 달리 마지막까지 빛나고 있다.
난 마지막 힘을 짜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