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2화 (2/206)

기적의 IT 재벌 2화

여섯 평 남짓한 원룸.

이곳이 내가 소유한 유일의 공간이다.

하나 있는 방은 침대와 책상을 제하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빡빡하다. 그나마 화장실과 베란다가 따로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

난 엉망으로 어질러진 침대 위에 몸을 누인다.

“이 망할 회사는 일도 없는데 퇴근을 못 하게 한다니까.”

벌써 시계의 시침은 11시를 가리킨다.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가자, 따뜻한 온기가 내 전신을 감싸왔다.

출근과 동시에 서울까지 왕복 운전을 했고, 오후에는 전 상무와, 저녁에는 김 부장과 시간을 보냈으니.

장담컨대 눈을 감는 즉시 잠들고 말리라.

지금 잠들면 바로 아침이 온다.

눈 뜨자마자 또 출근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똑같은 하루가 시작 될 것이다.

눈이 반쯤 감겼을 때, 나는 튀어 오르듯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대로 잠들 순 없지.”

짝 소리 나게 뺨을 두들겨 잠을 쫒아낸 후, 냉장고를 열어 젖혔다.

냉장실엔 4캔씩 묶어서 파는 수입 맥주가 가득하다.

“이번은 칭다오로.”

맥주 다음은 안주다.

선택된 것은 언제부터 방치 됐는지 기억조차 흐릿한 치킨이다.

말라비틀어진 놈에게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하지만 죽기야 하겠는가.

칙! 하는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거품이 인다.

“크으, 이 맛이야. 이게 인생의 맛이지.”

입술을 대충 축인 후 재킷에서 휴대폰을 꺼내든다.

하나는 평소에 쓰던 오성의 갤럭시스. 나머지 하나는 전 상무에게 건네줬던 애플폰XI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간다고 서울에 있는 전자상가를 들린 내가 전 상무의 폰만 사올 리 없지 않은가.

당연히 놈의 폰을 살 때 내 것도 슬쩍 같이 계산했다.

“내 새로운 컬렉션이 완성됐구나, 흐흐흐.”

치킨과 맥주. 그리고 휴대폰.

매일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서 이것들마저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맥주를 마시며 새 폰의 외관을 면밀히 감상한다.

전면을 가득 메운 올 블랙의 액정과 순백의 뒷 판. 휴대폰의 디자인이나 속도가 상향평준화 됐기에 그놈이 그놈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비슷한 디자인도 재질이나 비율, 모서리의 마감만으로도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그것이 디자인이고.

시각을 초월한 감성이다.

역시 애플은 애플이네. 진짜, 실물이 깡패다.

한참이나 감탄하던 나는 폰의 전원을 켰다.

먼저 떠오른 것은 애플사의 사과로고였다.

흡족하게 첫 화면을 기다리던 나를 맞이한 것은 휴대폰 잠금 화면이었다.

“엥? 잠금? 아차.”

깜빡했다. 전 상무 폰에 백업할 때, 내 걸 덮어 썼었지.

지금 전 상무가 쓰던 폰은 2대가 됐다.

하나는 전 상무에게 전달한 애플폰XI. 또 하나는 내 몫의 애플폰XI.

즉, 같은 폰을 2개로 복사한 셈이다.

데이터를 빼오는 건 2대의 외관이 같았기에 능청스러운 연기만 할 수 있으면 식은 죽 먹기였다.

“이 안에 전 상무의 비밀이 있단 말이지. 좋아, 잠금 따위 단번에 풀어주지.”

말은 쉽게 했지만 타인의 락을 푸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패턴이나 4자리 패스워드면 쉽게 뚫을 수 있지만 지문이나 안면인식이 걸려 있으면 전문 툴(TOOL)을 써야 했기에 전문가급이 돼야 한다.

어떻게 기본 락을 풀었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애플폰은 특유의 보안 정책으로 애플ID라는 2차 패스워드를 요구하는데, 이건 국가의 정보기관도 뚫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암호화 상태로 존재한다.

물론, 아주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정보기관에서 쓰는 무작위 입력툴을 쓰면 언젠가는 뚫리게 된다.

문제는 말 그대로 무작위이기에 언제 성공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렇다고 락을 못 뚫고 중도 포기를 택하려 해도 절차가 복잡하다.

포기하고 폰을 백지로 돌리려면 애플의 공식 서비스 센터에 방문해서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 참고로 애플의 공식 서비스 센터는 대한민국에 딱 하나. 서울의 가로수길에 있다.

아오 진짜. 똥 밟았네.

그 똥을 내가 직접 싸고 밟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순간의 호기심이 불러온 대참사다.

“어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어쩌겠는가. 서울에 가지 않으려면 좋든 싫든 락을 푸는 수밖에 없지.

화면을 터치하자 9개의 점이 떠오른다.

점들을 이어서 잠금을 해제하는 패턴 방식의 보안이었다.

예쓰! 가장 난이도가 낮은 패턴이 걸렸구나. 인터넷에서 전용 언락(Unlock) 툴을 구해다 쓰면 한 나절 정도면 풀 수 있겠지.

넉넉잡아 하루를 생각했던 언락 작업은 10분도 걸리지 않고 풀려 버렸다.

이유는 전 상무가 핸드폰 패턴을 ‘ㄱ’으로 해뒀기 때문이다.

[환영합니다, 전호영님]

다소 허무하게 풀려 버린 패턴.

이대로 폰을 초기화하고 잠들기엔 뭔가 허전했다.

식어버린 맥주를 홀짝이고 있자,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개인 비서랍시고 사무실에 여자를 데려온 것도 모자라 대낮부터 그딴 짓을 해대던 전 상무의 모습.

낮에 품었던 의문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건 찝찝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빼는 것도 웃긴 일이지.

먼저 뒤진 것은 문자 내역이었다.

요즘은 코코아톡 같은 앱 문자를 많이 쓰지만 업무용은 여전히 문자 비중이 높다. 특히, 전 상무쯤 되는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보자, 문자 내역 대부분은……. 미스 김이나 술집 아가씨밖에 없잖아? 이 인간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그 외의 문자는 법인카드 결제 내역들이 주를 이룬다.

결제 승인 : 태성 골프장 4,400,000원

결제 승인 : 아리안 중화반점 2,200,000원

결제 승인 : 태성 골프장 4,400,000원

결제 승인 : 신세계 백화점 2,600,000원

결제 승인 : 미가일식 760,000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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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승인 : 낙원 마사지 950,000원

결제 승인 : 아리안 중화반점 1,500,000원

결제 승인 : 힐튼 호텔 620,000원

상세 내역을 확인하곤 어이가 없어서 한참이나 멍 때리게 된다.

골프장 결제는 업무의 일환으로 본다고 쳐도, 백화점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아리안 중화반점은 보나마나 룸싸롱일 것이고 나 참, 마지막은 아주 풀코스로 노셨구만.

전 상무 놈, 어떻게 안 잘리고 버틴 거지? 내가 사장이었으면 1순위로 모가지를 쳤을 텐데.

이어서 다른 흔적을 훑어본다. 스마트폰 사용에 서툴러서인지 대부분의 기능은 사용한 흔적조차 없었다.

벌써 새벽 1시.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만 흐른다.

“이러고도 안 잘린 거 보면, 이것도 능력이다, 능력. 어? 잠깐.”

슬슬 정리하고 자려던 때, 특이점 하나를 발견했다.

텅 빈 휴대폰에 97?의 용량이 사용 중으로 나타난 것이다.

재빨리 용량 순으로 검색하자 지금껏 찾을 수 없었던 폴더 하나가 발견 된다.

무려 97?짜리 숨김 폴더.

냄새가 난다. 찐한 대박의 냄새가.

찾아낸 폴더는 숨겨진 보안 폴더였다.

보안 폴더는 애플이 자랑하는 락이 걸려 있어 애플ID를 모르면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보안 폴더입니다. 애플ID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마지막에 턱, 하고 막혀버린 기분이다.

“젠장!”

애플ID를 뚫는 건 CIA에게도 힘든 일이라고 들었다. 즉, 일반인이 내가 뚫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 상무의 폰 번호를 입력한다.

삑-!

[비밀번호가 틀립니다.]

그럼 생년월일?

삑-!

[비밀번호가 틀립니다. 앞으로 3회 남았습니다.]

전호영1…… 이려나.

삑-!

[비밀번호가 틀립니다. 앞으로 2회 남았습니다.]

쳇, 기대도 안 했다고. 혹시 군대에서 쓰던 1q2w3e4r! 같은 건 아니겠지?

삐릭-.

[보안 영역의 열람 제한이 해제됩니다.]

“여, 열렸다?”

당황도 잠시.

내 눈동자는 숨겨졌던 폴더를 훑기 시작한다.

[델라웨어]

[라이베리아]

[버진아일랜드]

[버뮤다]

[모나코]

[세인트루시아]

.

.

.

폴더의 이름들을 읽어갈수록 숨이 턱턱 막힌다.

읽어 내려간 지명들은 뉴스에 연일 보도 되던 조세 피난처 국가였다.

좋게 말해서 조세 피난처지 실상은 출처를 알면 곤란한 검은 돈을 보관하거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돈세탁에 주로 사용 되는 곳이다.

각각의 폴더에는 페이퍼컴퍼니의 접근 권한을 위임하는 보안 파일과 상세한 계좌 내역이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계좌와 함께 저장 된 문서에는 비자금을 누가, 언제,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를 상세히 기록 돼있다.

“이 사람은 고위 법관? 허……. 유력 정치인, 언론주필, 정부의 장관까지. 안 받은 놈을 찾는 게 더 빠르겠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금의 흐름이 국내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 액수도 액수지만 미국의 상원의원에까지 돈이 흘러갔을 정도다.

이쯤이면 박스나 만드는 중소기업의 스케일을 아득히 넘어선 상황이다.

2억의 연봉을 받는 걸로 모자라 법인카드를 펑펑 써대는 상무들이 3명이나 있는 이유.

복잡하게 얽혔던 문제의 매듭들이 한 방에 풀려 버린다.

오성그룹.

“역시 그게 정답이었나.”

엄청난 것을 본 탓일까? 가늘게 몸이 떨려온다.

내가 이걸 언론에 제보하면 어떻게 될까?

필시 신문일면을 장식하고도 남을 사항이지만, 이건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검은 돈의 손길은 닿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넓고 깊게 스며들어 있었으니까.

결정적으로 누구에게 전달했다는 내역은 있지만 오성에서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증거가 없다.

아마 언론에 뿌려진다 한들, 전 상무가 전부 뒤집어쓰고 끝날 게 뻔했다. 그는 처음부터 그런 용도니까.

조금 더. 조금만 더 찾아보자.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는 거야.

드르륵. 드르륵.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려 봐도 이거다! 라고 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리스트를 거의 다 훑어 갈 때쯤, 내 눈길을 사로잡는 폴더명이 하나 발견된다.

[bit_coin]

“이거……. 설마, 비트코인?”

가상 화폐=비트코인이라고 아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대표적인 가상화폐가 비트코인이다.

한때 기존 화폐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안정적으로 가치 유지가 불가능하고 국가적으로 제제를 가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인기가 한풀 꺾인 상태다.

예전에 잠깐 굴려보기도 했지만 갑자기 폭락하는 바람에 세 달치 월급을 날렸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환전이나 돈세탁용으로 쓰인다고 들었는데.

폴더의 정보를 보자 크기가 90?를 넘어간다.

이거, 잘하면…….

홀린 듯 폴더를 클릭한다.

딸깍.

유독 마우스의 클릭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하는데.

헛?

“진짜다. 진짜가 들어 있어!”

새벽인 것도 잊은 채 소리를 내질러버렸다.

폴더 안에는 비트코인의 가상 지갑과 지갑의 비밀번호를 적어둔 문서가 담겨 있다.

애플폰의 보안을 믿었기에 가상 지갑의 비밀번호는 소홀하게 관리한 듯하다.

딸깍. 딸깍.

마우스의 클릭 속도가 빨라진다.

코인의 지갑에 접속해서 잔액을 확인하는 데 까지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6400BTC? 보자. 오늘자 코인의 시세가.”

덤덤하게 코인 시세를 확인하던 내 움직임이 멎는다. 잠시지만 호흡하는 법을 잊어버릴 정도다.

“1BTC당……. 미친! 5500달러라고?”

달러로 계산하면 3520만 달러. 한화로 환전하면, 무려 400억이 넘는 엄청난 돈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휘저어버린다.

그런데 웃기게도 방금까지 오성의 비자금을 언론에 제보한다는 따위의 생각은 1g도 들지 않았다.

오직 이 엄청난 돈을 어떻게 빼돌릴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어디로 가서 살 것인지, 같은 속물적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국내에서 이 돈을 인출하는 건 너무 위험해.

우선 해외로 튄 다음 돈을 환전하자.

가상화폐의 장점은 어디서든 돈을 환전 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돈을 어디에 쓸지는 그 후에 생각하는 거야. 그래, 그게 좋겠다.

그날, 나는 집어넣어도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 덕분에 동이 틀 무렵에나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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