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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화 (1/206)

기적의 IT 재벌 1화

난 어릴 적부터 휴대폰을 좋아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휴대폰 자체를 좋아하기보단 조막만 한 액정으로 즐길 수 있는 휴대폰 게임을 좋아했다.

테트리스부터 시작해 타이쿤류의 퍼즐 게임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RPG 게임까지.

휴대폰 성능의 한계로 인해 투박한 도트가 튀는 게임들이었지만 그 당시의 내겐 하늘이 내려준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구매 비용보다 배는 비싼 데이터 통신료가 있었으니.

매월 말에 들이닥치는 요금 고지서는 내 살생부나 마찬가지였다.

추억의 피처폰은 물리 키패드를 제거한 터치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진화한 녀석은 PC처럼 많은 기능을 탑재했는데,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WI-FI로 공짜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오! 유레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데이터 걱정 없이 게임을 다운받고 벨소리도 바꿀 수 있다는 것.

지금에야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실수로 인터넷 버튼이라도 누르면 ?통신사 놈들은 사악하게도 그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는 곳에 배치했다. 주로 키패드 정중앙 따위에 말이다- 다음 달 요금 고지서를 걱정하며 잠을 설쳐야 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은 일 아니겠는가.

유년 시절을 휴대폰과 함께한 탓에 내 꿈은 자연스레 휴대폰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C언어나 JAVA같은 컴퓨터 언어를 맛 본 후엔 급히 산업 디자인 쪽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말이다.

산업 디자인을 배우면서도 내 휴대폰 사랑은 쭉 이어졌다. 아니,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변했다.

신상 휴대폰의 특별한 기능이나 바뀐 디자인, 배터리 타임, 어떤 AP가 쓰였고 액정은 어떤 기술이 적용 됐는지 등등.

열정만은 가득한 나였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휴대폰 디자이너의 길은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 휴대폰 관련 회사는 오성과 KG전자.

단 두 곳밖에 없었는데, 지방 중위권 대학을 나온 내겐 허들이 너무 높았다.

결국 내가 입사한 곳은 영일 포장이라는 지방의 중소기업이었다.

흔하디흔한 중소기업 중 하나지만 국내 1위 전자 회사인 오성전자의 자회사로 오성 전자 제품의 포장 박스를 생산하는 곳이다.

여기서 경력을 쌓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영일 포장은 내 마지막 커리어가 될 듯하다.

지방의 중소기업 출신 37세 디자이너에겐 이직할 만한 직장 자체가 없다시피 했으니까.

결혼은 이미 포기 상태.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까놓고 말하면 가장 부족한 건 내 자존감이겠지.

아무튼, 이대로 정년까지 근근이 먹고 살며 불안한 노후를 보낼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 중소기업 종사자의 미래니까.

* * *

“후아~ 드디어 도착했네.”

서울에서부터 쉬지 않고 차를 몰았기에 허리가 뻐근하다.

한시라도 빨리 차에서 내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영일 포장의 사무동이 보인다.

차를 대충 밀어 넣고 잽싸게 빠져나가려는데,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강현우.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오는 거냐?”

시선을 돌리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사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김현철 부장.

친인척 위주로 다 해먹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그도 사장의 가까운 친척이다.

입사 10년차인 나는 썩은 표정을 능숙하게 가식적인 낯짝으로 바꾼 후 그에게로 향한다.

“잠시 외근이 있어서 나갔다왔습니다.”

“외근? 허이구, 내가 오늘까지 완성하라던 시안은 끝냈나보지?”

영일 포장에서 내 업무는 박스 디자인이다.

거창하게 디자인이라고 했지만 오성에서 내려준 제품 디자인을 적당히 버무려서 박스에 박아 넣는 게 다다.

“아, 그거라면 오전에 결제 올리고 나왔습니다.”

그가 손에든 서류철을 휘적거린다.

“이거 말이냐?”

내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해와.’라는 말과 함께 손에 들려 있던 서류철이 날아든다.

난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서류철을 얼굴로 받아냈다.

“큿!”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받아? 사내놈이 운동신경이 그래서야.”

“죄송합니다.”

망할, 손으로 낚아챘으면 낚아챈 게 맘에 안 든다고 꼰대 질을 했을 것이다.

“으이그, 쯧쯧……. 대리라는 게 이 꼴이니. 아, 이젠 과장이던가? 아무튼, 이러니 아랫것들도 개판이지.”

부장인 당신이 개판이니 아랫것인 저도 개판이죠.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라는 마음의 소리를 억누르자 반사적으로 헤실 거리는 웃음이 나온다.

“사내놈이 맨날 실없이 웃기나 하고.”

“제가 그랬나요?”

무섭다. 방금은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영업용 미소가 자동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이게 직장에서 10년을 버티며 얻은 능력일까?

“상무님 방에 가봐. 급히 찾으시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무동으로 들어간다. 아, 물론 스쳐 지나갈 때 충분히 저주도 퍼부어줬다.

비나이다. 모발의 신이시여. 김 부장의 남은 머리도 빨리 가져가주옵소서.

-문이 열립니다.

승강기에 올라탄 후 혹시라도 부장 놈이 돌아올까 봐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승강기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걸 확인한 후에야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진다.

“후우, 재수 없게 김 부장을 입구에서 만나냐.”

이미 전 자동화 된 포장 공장에서 사장이 꽂아준 낙하산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며 커피나 얻어 마시는 게 하루 일과였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지적 질이나 해대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학벌. 스펙. 노력.

모든 게 부질없다.

보라, 빵빵한 인맥만 있으면 저런 무능력자도 부장 자리를 꿰차지 않는가.

젠장, 나도 어딘가에 사장님 친척 한 명 없으려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때 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부장보다 높은 상무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우연히 보게 된 급여 테이블엔 상무 3명에게 각각 2억에 가까운 급여가 책정 되어 있었다.

상무들은 사장의 친인척도 아닌데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 그보다 포장 공장에 상무가 왜 3명이나 필요하지?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만…… 평범한 직장인A인 나는 평생을 고민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5층입니다.

5층은 임원 전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행여나 그들과 마주쳐봐야 좋을 게 없기에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지른다.

모퉁이를 돌자 바로 목적지가 보인다.

[상무이사 전호영]

잠시 걸음을 멈추고 준비한 물건을 확인한다. 새카만 바탕에 백색 사과마크가 그려진 쇼핑백.

그곳엔 왕복 5시간이나 걸리는 서울에서 공수해온 휴대폰 박스가 담겨 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애플폰XI.

애플사에서 내놓은 고급형 제품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역시 없어서 못 파는 귀하신 몸이다.

박스의 상태를 최종 점검한 나는 상무실의 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하려고 손을 치켜든 바로 그때.

안쪽에서 묘한 여성의 소리가 넘어온다.

-아, 아아. 흐읏. 상무님, 여기선 안 돼요.

* * *

뭐지 이 소리는.

귀를 세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어서 이리와.

-누가 들으면 어떡해요.

듣고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사무실에서 그 짓을 한다고? 미친 거 아냐?

저 연놈들이 방에서 무슨 짓을 하건 나완 상관없는 일이다.

단지, 같은 복도에 사장실이 붙어 있는데도 이런다는 게 경악스러울 뿐.

당황스러움은 곧 분노로 색을 변해간다.

개인적인 심부름으로 부하 직원을 서울에 보내두곤 제 놈은 사무실에서 계집질이나 하고 있다니.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을 망소기업이니 뭐니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장일 줄이야.

누군 10년 동안 주말도 없이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해도 최저임금이 간신히 될까 말까 한 수준인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상무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한 새끼는 사무실에서 계집질만 하는데도 수억대 연봉을 받아 간다.

제기랄, 진짜……. 후우.

울컥했지만 잘 참아냈다.

직장 생활 10년이면 상사의 불의에는 부처가 된다고 ?물론 부하 직원의 흠결에는 야차가 된다? 나 또한 부처의 멘탈로 마인드컨트롤을 시도한다.

그래, 저 상무는 회사에 2억 이상의 뭔가를 기여하고 있으니 그런 연봉을 받아가겠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자. 암, 그렇고말고.

잠시 후.

교태어린 목소리가 잦아든다. 다행히도 상무 놈이 본 게임에는 들어가기 전에 멈춘 듯 했다.

똑똑.

“전 상무님, 디자인팀 강현우 과장입니다. 오전에 지시하셨던 물건 가져왔습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잠시만 기다리게.

부산스러운 소리가 잠시 들려오더니 상무실의 문이 열린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어 준 것은 처음 보는 여성이었다.

팬티가 보일 정도의 짧은 미니스커트와 타이트한 블라우스 속의 풍만한 가슴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했지만.

“아, 예.”

내 얼떨떨한 표정을 보자 묻지도 않았는데 전 상무가 입을 열었다.

“이번 주부터 내 개인 비서로 출근한 미스 김이야.”

박스 떼기나 만드는 포장 공장의 상무가 개인 비서를 둔단다.

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이를 꽉 물어야만 했다.

“듣자하니 서울까지 다녀왔다며?”

“예, 지방에선 구할 수 없는 휴대폰이라.”

서울에서도 구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다만 법인카드라는 아이템이 그걸 가능하게 했을 뿐.

전 상무는 언제 쇼핑백을 가져갔는지 벌써 상자를 개봉하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폰인가?”

“생산량 자체가 적다 보니 품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엔 내년이나 돼야 정식으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상자 속에 숨어 있던 애플폰XI의 모습이 공개 된다.

완전한 리얼 블랙의 액정이 전면부 전체를 뒤덮고 있다.

전작에서 흠으로 지적 받았던 상단 수화부와 센서는 어떤 마법을 썼는지 감쪽같이 사라졌고, 마감까지 완벽하다.

후면은 전면과 대비되는 딥 화이트 색상으로, 우주선 재료인 네오카본 재질을 사용하여 미래적인 느낌이 났다.

전작에서 혹평을 받았던 애플이 이번은 칼을 갈았다는 느낌이다.

“어멋. 이거 애플폰 신형이네요?”

믹스커피를 타온 미스 김이 아는 체 한다.

“네, 이달 초 나온 애플폰XI입니다.”

“대박! 나 이거 완전 가지고 싶었는데. 사고 싶어도 팔지를 않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구했어요?”

“서울에 있는 전자상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사실, 웃돈을 많이 줬다. 아-주 많이.

법인카드 짱짱짱.

“저. 이것 좀 만져 봐도 되나요?”

그녀가 눈을 빛내며 허락을 구한다.

하지만 실 결정권자인 전 상무의 표정은 언짢음, 그 자체였다.

“미스 김, 커피 맛이 좀 이상한데?”

“네? 평소랑 똑같이 탔는데요.”

“아냐, 많이 이상한 거 같아. 설탕 좀 더 넣어서 다시 타와.”

입이 한 뼘은 튀어나온 미스 김이 탕비실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본 전 상무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한국 사람이면 오성전자의 갤럭시스를 써야지 뭔 놈의 애플폰 타령인지. 이래서 한국이 아직까지 선진국이 못 된 거야. 안 그런가, 강현우 과장?”

그럼 갤럭시스나 쓰시던가요. 왜 구하기도 힘든 애플폰을 사오라고 아침부터 서울에 보냈습니까?

속으로 욕을 한 사발하고 있었지만 직장 생활에 최적화된 내 주둥이는 전 상무가 바라는 정답을 토해냈다.

“맞습니다. 애플폰은 쓰다 보면 답답해서 못 쓰겠더라고요. 버튼도 이상하고 녹음도 안 되고 말이죠.”

“그럼, 그럼.”

“저도 갤럭시스로 바꾼 지 오랩니다.”

최신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다.

당연히 갤럭시스, 애플폰, 구글폰, K시리즈 모두를 보유하고 있지만…….

회사엔 항상 갤럭시스를 들고 출근한다.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허허. 역시 강 과장은 뭘 좀 안다니까.”

전 상무는 내가 꺼내든 신형 갤럭시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이 활짝 폈다.

“아 참, 예전에 했던 거 좀 해주게. 그, 뭐더라…….”

전 상무가 애플폰 두 대를 내게 내민다.

하나는 액정이 깨져서 폐급이 된 작년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방금 개봉한 신형 모델이다.

이래서 아침부터 새 휴대폰을 사오라고 했구나.

“데이터를 옮겨 드리면 됩니까?”

“그래, 그거. 한 번에 싹 옮기니까 편하더라고.”

“알겠습니다.”

어서 자리를 뜨고 싶었기에 두 대의 휴대폰을 집어 든다. 그런 나를 전 상무가 막아선다.

“여기서 바로 해줄 수 있겠나.”

“이 자리에서 말입니까?”

“그래, 거기 앉아서 해주게.”

의아한 지시였지만 상사가 까라면 까는 게 내 일이다.

전 상무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미스 김, 화 풀어. 오늘 밤 재미난데 놀러가자. 응? 전에 말했던 그……. 뭐 시기 가방도 사 줄 테니까.”

헐레벌떡 탕비실로 뛰어들어가는 상무 놈의 뒷모습을 보자 한숨이 터져 나온다.

저런 무쓸모한 인간의 연봉이 2억이다. 무려 2억!

입사 후 10년이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만 짬밥이다.

그런 내가 단언컨대 영일 포장엔 저 상무가 필요 없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영업을 전담하는 술상무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영일 포장은 100% 오성전자의 포장재를 생산하므로 영업도 필요 없다.

진짜, 사장 음란 비디오라도 들고 있는 거 아냐? 차라리 그렇다고 해줘. 젠장.

더 자괴감이 밀려오기 전에 다른 곳에 집중해야 했다. 탁자에 놓여 있던 깨진 구형 폰을 집어 든다.

전 상무가 매일 같이 쓰던 휴대폰. 얼마나 중요한 데이터가 있다고 백업까지 해달라는……. 어? 이거라면…….

어쩌면 오늘, 전 상무가 2억짜리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을 알아낼지도 모르겠다.

근데, 진짜 사장 놈 음란 비디오 나오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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