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5/15)

4장

얌전히 늘어져 있던 금색 속눈썹이 어느 순간 희미하게 떨렸다. 수면 향에 정신을 잃었던 아서는 놀랍게도 침실을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의식을 되찾았다.

반이나마 이종족의 피가 섞인 몸은 인간의 것에 비해 뛰어난 저항력을 지녔다. 침실을 가득 채웠던 수면 향은 카를로스의 예상과 달리 아서를 잠시 재우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음을 깨달은 아서는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이내 아서의 몸에서 그와 빼다 박은 투명한 혼백이 튀어나왔다.

유체 이탈과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 이것은 아서가 지닌 이능 중 하나였다. 다른 이의 꿈에 들어갈 적에 그는 이렇게 몸과 정신체를 분리하여 대상의 꿈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정신을 잃은 척 가장할 때도 꽤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아서는 카를로스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주변을 느긋하게 살폈다. 낯선 장소였음에도 위기감은커녕 흠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창밖으로 울창한 숲이 보이는 게 얼핏 보아도 황성은 아니었다. 카를로스가 비밀리에 소유하고 있는 자택인 듯싶었다.

얼핏 초조해 보일 만큼 성큼성큼 걸어가던 카를로스는 저택 가장 꼭대기 층의 어느 방에 들어서고 나서야 여유를 되찾았다.

도착한 곳은 삭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널따랗고 가구가 몇 없는 침실이었다. 아서의 집무실에 놓여 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카우치, 식사를 위한 테이블, 성인 서넛이 뒹굴어도 될 만한 크기의 침대 정도가 세간의 전부였다.

그 외 거울처럼 상황에 따라 흉기로 사용될 만한 것은 모두 치워 둔 것 같았다. 숲과 정원이 보이는 창은 바깥의 그림 같은 정경이 무색하게 쇠창살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스터용 구속구부터, 감금을 위한 침실을 갖춘 저택까지. 하루아침에 준비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아서가 모르던 사이 카를로스는 이미 모든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끝마쳐 두었던 모양이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풍스러운 저택도 좀 전의 입맞춤도, 모두 아서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침상 근처로 걸음을 옮긴 카를로스가 품 안의 아서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아서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한동안은 저게 내 것이란 말이지.

이미 아서는 옛날 옛적, 그러니까 카를로스가 완전히 넘어오기 전부터 카를로스를 제 것이라고 점찍어 두었다. 본래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척 굴다가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게 아서였다.

이전 삶에서는 보통 상대가 아서의 집착에 질려 먼저 떠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그땐 그도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어쨌든 전생엔 얼굴이 널리 알려진 공인이었으니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까진 가지 않았다.

유독 소유욕과 집착이 심한 건 아서의 전생과 현생 둘 다 해당되었다. 다만 전생을 떠올리기 전의 그가 원하는 걸 가지기 위해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면, 지금의 아서는 교묘하게 일을 꾸며 원하는 것이 제 발로 그의 손에 들어오도록 만든다는 차이가 있었다.

아서가 방 안을 떠다니며 흐뭇해하는 동안 카를로스는 잠든 아서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침실을 떠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침상 위의 형제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엔 어떠한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카를로스의 옆으로 다가간 아서가 그 무표정한 낯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 순간 카를로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더 구미가 당겼다.

아서가 무슨 짓을 해도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카를로스에게서 날것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그때만큼 아서를 고무시키는 것이 없었다.

드디어 단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던 아서는 고민하다 제 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처음 보는 가운이 아서의 속살이 보이지 않게 꼼꼼하게 여며져 있었다. 전혀 반갑지 않은 친절이었다.

아서는 꽉 묶인 허리끈이 거슬리는 척 몸을 뒤척였다. 카를로스를 등지고 돌아누움과 동시에 끈을 풀어내자 벗은 몸이 드러났다.

카를로스는 아서가 제 손이 닿는 곳에 있으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두는 편이었지만, 저에게서 등을 돌리거나 벗어나려 하는 즉시 곧바로 손을 뻗어왔다. 수없이 반복된 꿈을 통해 자연히 알아낸 사실이다.

고작 꿈에 불과한 곳에서도 그러했으니 현실에선 어떨지 대강 짐작이 갔다.

역시나 아서가 등을 돌리기 무섭게 평온하던 분위기에 금이 갔다.

아서의 등 뒤, 침대 위로 한 명분의 무게가 더해졌다. 어깨 위에 카를로스의 손으로 추청되는 것이 닿아 왔다. 아서는 잠버릇을 가장하여 그것을 가차 없이 털어 냈다. 이때다 싶어 페로몬을 개방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하.”

의식이 없는 중에도 제 손을 밀어내는 것이 기가 찼는지 카를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짧은 숨을 뱉어 냈다.

아서는 저 한숨이 오로지 불쾌함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리라 짐작했다. 이런 상황에조차도 어떤 충동을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을 겨냥한 것이기도 할 테다.

흥미가 붙은 아서는 조금 더 대놓고 카를로스를 도발하기로 마음먹었다. 푹신한 이불을 모아 곰 인형처럼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고는 다리 하나를 이불 위로 턱 걸쳐 올렸다. 그가 목석처럼 굴어도 곧장 달려들던 카를로스였는데 이렇게 대놓고 도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자연스레 카를로스의 눈이 목덜미부터, 매끄럽게 이어진 등골을 타고 내려가 벌어진 둔부 틈새까지 훑어 내렸다.

짙게 가라앉은 시선이 드러날 듯 말듯 벌어진 밀부에 붙박였다. 검붉은 눈동자 빛깔이 보다 짙어졌다.

“…도대체가.”

애도 아니고. 아서에게로 향한 건지, 제 자신을 일컫는 건지 모호한 말이 뱉어졌다.

카를로스는 짜증 섞인 손길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평소 성미로 보아선 반듯하게 잘 것 같더니, 이제 형님은 이런 식으로도 그를 건드려 댄다.

또다시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충동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굳건한 줄로 알았던 그의 자제심은 아서와 관련되면 고작 이런 작은 계기로도 모래성처럼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홀연히 뻗어 나간 손이 아서의 날개뼈를 더듬었다. 단련된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이었으나 매끄러운 살갗에서 역시나 귀하게 자란 티가 났다.

결국 살을 더듬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한 카를로스는 아서의 뒤편에 누워 허리를 끌어안았다.

우뚝 솟은 콧대가 목덜미 위로 자리 잡았다. 이젠 눈을 감은 채로도 그려 낼 수 있는 체향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잠든 이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그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미 아래는 팽팽하게 달아오른 지 오래였다.

카를로스는 아서의 숙면을 깨트릴 생각이 없었다. 이토록 안달 내는 모습을 형님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자신을 드러내는 건 그를 죽이려 드는 형님의 손에 제 목줄을 쥐여 주는 것과 같았다. 섣부른 충동으로 모든 걸 그르쳐서는 안 되었다.

흰 살갗 위로 조용히 입술을 붙였다. 느릿하고 집요하게 핥고 깨문 흔적은 목덜미, 날개뼈, 오목하게 파인 등골처럼 아서 스스로 발견하지 못할 부위에만 교묘히 남겨졌다. 그 행위는 바깥이 어스름히 밝아올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

그리고 카를로스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 인내하고 있는 건 카를로스 혼자만이 아니었다.

잠을 자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이던 아서는 고문을 당하는 기분으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아서는 타인과 입맞춤은커녕 악수조차도 기피하며 살았다. 그 말인즉슨, 오늘의 입맞춤이 꿈을 제외하면 태어나 처음 맛본 스킨십이라는 말이다. 지금 카를로스가 하는 짓은 숫제 며칠 굶주린 사람 앞에서 갓 익힌 고기를 흔들고 있는 행위와 같았다.

아서는 너무나 괴로웠다. 페로몬 샘에 고개를 묻고 왕창 들이마시기까지 해 놓고, 고작 조금 물고 빠는 정도로 만족하는 카를로스가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가능하다면 꿈에서라도 재미를 보려 했건만 카를로스는 아예 잠을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음번엔 기필코 이렇게 허망하게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를 간 아서는 뜬눈으로 고문 같은 밤을 지새웠다.

***

부스스 눈을 뜨는데 옆자리가 허전했다. 아서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밤새 아서를 끌어안고 있던 카를로스는 온데간데없었다.

창은 빛이 투과되지 않는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적당한 밝기의 마법구 덕에 시야가 답답하진 않았으나 시간대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꽤 오래 잠을 잔 건지 배가 조금 출출한 것 같기도 했다.

질릴 만큼 실컷 잤더니 정신이 말짱했다.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 한가로울 수가 있다니. 아서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간만의 자유를 느꼈다. 눈을 뜨자마자 서류를 들고 동동거리는 부관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윽.”

아서는 방을 좀 돌아다녀 볼까 싶어 몸을 일으키다, 도로 이불 위로 주저앉았다.

“…뭐야.”

목 부근을 더듬어 보자 쇠사슬을 가죽으로 감싸 둔 튼튼한 개 목걸이 같은 게 만져졌다.

목줄은 침대 기둥에 달린 사슬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쇠사슬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침대 끄트머리까지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발목에 달린 구속구도 그와 사정이 비슷했다.

아서의 오른쪽 손목에는 역시나 마도구가 채워져 있었다. 어제부터 느꼈지만 마도구의 효능이 아주 훌륭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육체가 온몸의 근육이 사라진 것처럼 무기력하게 늘어졌다. 이런 상태로는 검 하나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할 터였다.

탈출은 꿈도 못 꾸도록 철저하게 구속해 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온 힘을 다해 마음껏 반항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니 아서는 내심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제삼자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굴다가도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에겐 결국 물러지고 마는 카를로스였다. 그리하여 크게 기대하지 않았건만 다행히 별달리 우려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아서가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카를로스를 불러들이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란을 피우기에는 도무지 깨트릴 만한 물건이 없었다. 당장 보이는 거라곤 푹신한 쿠션이 유일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터트려야 하나.

난리를 치기 전에 먼저 지켜보고 있을 시선을 의식하여 목줄과 이어진 쇠사슬을 당겨 끊어 내려 했다. 당연히 무의미한 시도였다.

한쪽 팔목에 걸린 구속구 때문에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기분이었다. 성질대로 되지 않자 아서는 화풀이 삼아 베개 커버를 뜯어냈다. 커버 틈새로 손을 집어넣고, 안을 채우고 있던 것을 끄집어내 마구잡이로 흩뿌렸다.

쥐고 있던 쿠션을 집어 던지자 깃털들이 화려하게 흩뿌려지며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제법 그럴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손목의 구속구를 침대 기둥에 내려쳐 깨트리고자 했으나 역시나 불가능했다. 개 목걸이처럼 걸린 목줄이 거슬려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 잡아당기고, 손톱을 세워 안쪽을 긁어내렸다. 목에 불그죽죽한 선이 잔뜩 그어졌다.

“카를로스!”

한참을 성질을 부리다 결국 카를로스를 찾았다. 이렇게 난리를 쳤으면 슬슬 달려올 법도 한데 카를로스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카를로스, 보고 있지. 당장 나와.”

물론 카를로스가 보고 있는지 아닌지 꿰뚫어 볼 재주는 없으니 허세였다.

어쩌면 카를로스가 아니라 가브리엘이 문 앞을 지키고 있을지 몰랐다. 황태자를 납치해 왔으니 보안을 위해서라도 카를로스 본인이나 가브리엘, 마노 같은 심복이 감시역을 맡지 않았을까 싶었다.

헉헉거리던 아서는 결국 털썩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나 개의치 않았다.

황족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사소한 일 하나까지 사용인들의 손을 빌렸고, 다른 이에게 헐벗은 몸을 보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아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나 이전의 아서는 자신의 몸이 다른 이에게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다. 감히 황태자를, 그것도 수틀리면 검을 뽑아 들기까지 하는 성질 더러운 황족을 그런 음흉한 눈으로 바라볼 만큼 간 큰 인간은 없었다. 그간 아서가 어느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서는 타인의 몸이 닿는 것을 역겨워했을 뿐, 타인과의 접촉으로 어떤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카를로스가 아서에게 입을 맞추었어도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혹은 이젠 이런 방식으로 굴욕을 주려 하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건 오직 아서가 계급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황태자였던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사고방식이었다. 설령 카를로스가 대놓고 정욕이 들끓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아도, 불쾌감을 느낄지언정 아서는 그 시선의 원천을 깨닫지 못해야 마땅했다.

물론 지금이야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카를로스가 안달 내며 먼저 몸을 붙여 올 때까지 아서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뗄 생각이었다.

“하….”

아서는 한숨을 푹 쉬고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고작 잠깐 난동을 부린 것만으로도 급격히 무거운 피로가 몰려왔다.

이렇게 허약해진 적은 태어나 처음이라 신선했다. 흘러내린 머리칼이 눈을 찔러 거슬렸는데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귀찮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카를로스는 아서가 한참 씩씩거리다 제풀에 지치고 나서야 귀한 낯짝을 드러냈다.

“일어나셨습니까, 형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이하게 건네오는 인사에 아서가 얼굴을 찌푸렸다.

카를로스의 시선이 엉망이 된 침대 위로 향했다.

“이토록 난리를 쳐 둔 걸 보니 잠은 푹 주무셨나 보군요.”

“잔 게 아니라 기절을 시킨 거겠지. 수면 향을 타서.”

“아…. 눈치채셨습니까?”

“…….”

아서는 따질 힘조차 없어 눈으로만 카를로스를 노려보았다.

만약 갓 일어나 짜증이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온갖 것에 화풀이를 다 하고 기운이 빠진 상태였다. 창백한 얼굴 가득 피곤이 그득했다.

카를로스가 원했던 바였다.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마구 쏟아 냈다가, 어느 순간 확 식어 버리는 형님을 알았다. 그래서 부러 성질을 부리고 있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느지막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상황은 그의 예상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아무리 한바탕 화를 쏟아 냈다 한들 아서가 저렇게까지 늘어져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침대 헤드에 느슨히 기대앉아 있는 아서는 짜증이 날 만큼 무방비했다.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다리를 넓게 벌려 앉은 꼴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타인에게 맨몸을 드러내는 일이 익숙한 황족이라 해도, 불과 하루 전에 입을 맞춘 이의 앞에서 저만큼이나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도대체….

이미 스멀스멀 차오르는 열감을 자각한 그와 달리, 느슨하게 늘어진 아서는 한없이 태연자약해 보였다. 내내 그를 괴롭혀 온 감정이 오로지 일방향의 것이었음이 다시 한번 뼈저리게 체감되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는군요. 궁금한 게 많을 텐데요.”

카를로스는 아서가 아닌 그 주변부를 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입을 닫고 있던 아서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물어본다면 답해 주기라도 할 건가?”

“물어보세요. 웬만한 건 전부 답해 드릴 생각이니.”

“이 저택도, 마도구도. 대체 무얼 원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이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형님이 그에게 묻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닌 듯싶었다.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놓아주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얼 원해서 이렇게 정성스레 목줄까지 걸어 놓고 가둬 둔 건지 아서로선 짐작 가는 바가 없을 터였다.

“본래라면 그건 어제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이제야 말씀드리는군요.”

순서가 조금 달라졌으나 어찌 되었든 절차는 절차였다. 카를로스는 품 안에 있던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아무런 색이 없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뭔지는 형님이 더 잘 아실 테죠.”

그가 묻자 아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을 해 봐도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한 건지 아서는 침묵을 택했다. 카를로스가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께서 어느 쪽을 택하든 존중하겠습니다. 부디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

“이걸 들이켜실지, 아니면 제게 무릎 꿇고 그 한 몸 부지하실지.”

기실 선택지 중 어느 하나를 고르든 간에 뒤따르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건 그저 형님이 차후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그에게 몸을 굽혀 오도록, 그 고고한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덜 다치도록 핑계 댈 여지를 제공해 주는 것뿐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아서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로렌가가 변절했나. 그도 아니면 힐다 로렌을 회유했나?”

“글쎄요, 형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보류하겠습니다. 정 궁금하면 힐다 로렌을 만나 직접 물어보시든지 하시죠.”

감금당한 제 처지를 조롱하는 듯한 말에 아서가 입술을 사리물었다.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는 재차 물음을 건넸다.

“힐다 로렌은 살아 있긴 한 건가?”

“편한 대로 생각하세요. 그자가 죽든 살든 형님과는 관계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카를로스가 건성으로 답했다. 그는 힐다에 관해선 아서에게 알려 줄 의향이 없었다.

“이제 궁금한 건 다 물어봤습니까? 강요하지 않을 테니 답은 천천히 결정하세요.”

이후로는 전부 본인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양 카를로스가 제 손에 들려 있던 병을 아서에게 건네주었다. 어차피 아서의 눈을 속이려 만든 가짜 물건이었으니, 설령 아서가 홧김에 저것을 들이켠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병을 건네받은 손이 투명한 유리병을 깨트릴 것처럼 움켜쥐었다.

“…꼴에 제 손을 더럽히고 싶진 않나 보군.”

화를 참듯 중얼거린 아서가 밀봉되어 있던 것을 열었다.

아서는 투명한 액체의 진위 여부를 가늠하려 한참 동안이나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고요의 숨결이 맞는지 감별해 낼 방도가 없었다.

이내 일그러진 눈매 위로 조소가 떠올랐다.

“하. 누구 좋으라고. 이따위 것을….”

마치 이전 날 환영주를 흘려 버린 카를로스의 행태를 그대로 베껴 온 것처럼, 병을 기울여 든 아서가 바닥으로 액체를 쏟아 냈다.

“죽일 거라면 네가 직접 나를 베어 넘겨라.”

액체를 전부 비워 낸 아서가 병을 집어 던졌다. 카를로스의 가슴팍에 부딪힌 병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다.

아서는 제가 던져 놓고선 카를로스가 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 못 했는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가, 곧이어 코웃음을 쳤다.

“…멍청하긴.”

유리 조각이 박혀 든 가슴팍에서 조금씩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정작 그 당사자인 카를로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쉽군요. 이왕이면 형님께서 자발적으로 굽혀 오길 바랐습니다만, 이렇게 요령 없이 구실 줄이야….”

카를로스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네 앞에서 무릎을 꿇느니 죽어 버리는 게 낫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아서는 카를로스의 피를 본 상황이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그에 카를로스는 무어라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서의 태도에 새삼 상처를 받은 건 아니었다. 애당초 그가 아서에게 품은 감정은 심장을 간지럽히는 보드라운 애정과는 달랐다. 그보다 더 질이 낮은, 소유욕이나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형님, 저도 한 가지 물어보고자 합니다만.”

자신은 대체 형님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형님이 그의 손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썩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카를로스는 무슨 답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면서 물었다.

“그리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라도 나를 죽이고 싶으셨습니까?”

“…….”

“왜 그리 옆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나 했더니…. 내가 죽으면 황좌가 형님의 것이 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이미 답이 뻔한 질문을 그는 기어코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아서가 이제 와 아니라고 한들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래.”

아서는 동요한 기색도 없이 답했다.

“네가 아니라 바로 내가, 황제가 될 것이다.”

그 말에 카를로스가 실소를 흘렸다. 그의 허락 없이는 이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을 형제가, 이토록 당당하게 말한다. 제 아우를 죽여서라도 황제가 될 것이라고. 어쩔 수 없이 비틀린 미소가 지어졌다.

“설마…. 형님.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신 건 아닐 테지요.”

“…….”

“눈과 귀가 제대로 달려 있다면, 형님께서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차갑게 가라앉은 검붉은 눈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뒤따를 말을 예상한 아서가 입 안을 짓씹었다. 노려보는 눈빛 속에 자연히 굴욕감이 서렸다.

“닥쳐라. 네가 감히….”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시선이 아서를 내리깔아 보고 있었다.

“무능하고 모자란 인간인지.”

마주한 자를 시궁창에나 굴러다닐 쥐새끼 취급하는, 늘 아서를 통째로 진창으로 내리박던 그 시선.

짧은 웃음이 칼날처럼 박혀 들어온다. 아서는 저 메마른 눈을 뽑아 버리고 싶다고, 백 번 천 번이고 되뇌었었다.

저를 하잘것없다는 듯 내려 보는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놈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했다. 손톱 끝에 살점이 박혀 들 정도로 꽉 쥐어진 손이 가늘게 떨려 오기 시작했다.

“너 따위가, 무얼 안다고….”

형제는 다퉈 온 세월이 긴 만큼 말 몇 마디로 상대의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 내릴 수단 하나쯤은 갖추고 있었다.

아서의 약점이 제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었다면, 카를로스의 것은 출산의 여파로 숨을 거둔 그의 어머니, 몇 년 전 모종의 사고로 숨을 거둔 그의 누이였다. 아서가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씹듯이 내뱉었다.

“제 어미나 잡아먹고 태어난 놈이…….”

악의가 덕지덕지 붙은 말을 뱉어 내자, 마주하고 있던 검붉은 눈이 일순간 검게 가라앉았다.

그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챈 아서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띤 채 저잣거리 부랑배나 뱉을 법한 어조로 비아냥거렸다.

“알 만하군. 제 어미와 누이를 죽인 걸로도 만족 못 해서, 이젠 내 차례인가?”

안타깝다는 듯 눈꼬리를 끌어 내리며 비아냥대는 모양새가 능숙했다. 한동안 달라진 척 행세를 했다고 본래의 삐뚤어진 성격이 고쳐지는 건 아니었다. 항시 부드럽게 웃고 있던 얼굴보다 이쪽이 아서의 본성에 가까웠다.

카를로스는 잠시간 침묵했다.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론 낯선 모습이었다. 저런 비아냥대는 태도에 적응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니, 그 반대의 것엔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익숙해졌나 보다.

물론 수도 없이 반복된 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꿈속 아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언제나 그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꿈은 깊이 묻어 두었던 형제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말았다.

아서에겐 불운한 일이다.

형제에게 버림받고도 몇 년간 집요할 정도로 매달렸던 아이는 성인의 태를 갖추고 나서도 결국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서도, 카를로스 그 자신도.

“…형님, 지금 본인의 처지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모양인데. 멍청한 짓거리는 이쯤 하십시오.”

“아니. 멍청한 짓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거겠지.”

비틀린 시선이 침상 아래로 향했다.

“그것도 저딴 번거로운….”

뱃속 가득 차오른 열등감을 해소해 내려 되는 대로 지껄이던 아서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칫 시선을 고정했다.

침상 아래를 훑어 내리는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맹독을 쏟아 낸 것치고 지나치게 깨끗해 보이는 카펫. 고급스러운 융단이 깔린 바닥은 물에 젖은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어느 하나 손상된 구석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느릿하게 돌아간 시선이 이번엔 카를로스의 가슴팍을 훑어 내렸다. 약간의 핏물이 비치는 옷감 역시 헐은 곳 없이 깨끗했다.

고요의 숨결은 단 몇 방울로도 치사량에 가까운 독성을 드러내는 맹독이다. 비록 한 차례 쏟아 내 버렸다지만, 병에 남아 있던 잔량만으로도 충분히 제 효능을 발휘하였을 터였다. 당한 자가 저토록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 있을 수 있을 법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독을 담고 있던 유리병이 깨졌다. 로렌가에서 독을 담는 용도로 쓰는 병은 검으로 내려쳐도 부서지지 않는 강도를 지녔다. 그런데 구속구를 찬 아서가 집어 던진 정도로 병에 금이 갔다.

카를로스에겐 지금 이 순간마저 포함해서, 아서를 죽일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서는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저택의 지하 감옥도 아닌 말끔하게 정리된 침실에서.

도르륵 굴러간 눈동자가 이번엔 침실 한편의 카우치로 향했다. 그의 집무실에 비치되어 있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세상 어느 누가 죽일 사람을 위해 이딴 귀찮을 짓을 자처한단 말인가?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놓아주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얼 원해서 이렇게 정성스레 목줄까지 걸어놓고 가둬 둔 건지 의문이었다. 시간 낭비라면 질색하는 카를로스가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저랑 한가롭게 소꿉놀이나 하려는 건 아닐 테고.

이해가 되지 않았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사고의 전제부터가 잘못되어 있었으니까.

‘카를로스는 아서를 성가시게 여기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제 눈앞에서 치워 버릴 작정이다.’

당연한 전제로 깔아 두었던 그 문장 하나만 제외하면 이 모든 단서들이 지시하는 바는 명확했다.

아서의 형제는 애초부터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아서가 카를로스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도 카를로스는 아서를 죽일 수가 없었던 거다.

이채를 띠고 있던 눈가 위로 서서히 희열이 떠올랐다. 어찌 되어가는 형편인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멍청한 카를로스. 고작 몇 개월 웃어 준 걸로 마음까지 주었단 말인가.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생각을 굳혔지만 보다 더 명료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카를로스의 앞에서 한 번 웃어 보이고 돌아오는 반응을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달갑지 않은 형제를 앞에 두고 웃어 보이는 연기 정도야 이미 수개월간 해 온 일에 불과했다.

한 번 시험해 보자. 그리 생각하자 일그러져 있던 눈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얼핏 예민해 보일 만큼 섬세한 눈매가 가느다란 호선을 그렸다. 눈꼬리를 아래로 끌어 내리고 입가를 부드럽게 끌어 올렸다.

눈 밑 살이 도톰하게 차오르고, 시야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면서, 마침내 카를로스가 좋아했던 다정한 얼굴이 만들어졌다.

“카를로스…. 아니, 칼.”

그렇게 아서는 기어코 확인해 내고야 말았다. 제 얼굴 위로 미소가 그려진 순간 동요하고 만 카를로스의 눈동자를.

제 아우는 정말이지 배알도 없는 놈이었다. 아서는 안타깝다는 듯 눈꼬리를 내리며 웃어 보였다.

이번엔 정말로 기쁨에서 우러나온 미소가 지어졌다. 카를로스가 무어라 대답조차 않고 그를 진득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 확인하곤 더욱 확신을 가졌다.

아서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행위에 미숙했지만 그게 이미 한 번 겪어 본 종류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릴 적 아서만이 제 세상의 전부라는 듯 맹목적으로 따라붙던 시선이나, 차갑게 밀어낼 때마다 상처받던 눈 같은 건 그에게 몹시 익숙한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서가, 제 형제의 약점을 발견해 낸 이 순간을 쉬이 흘려보낼 리가 없다.

“칼, 너….”

기쁜 얼굴로 입을 열자 카를로스가 멈칫 표정을 굳혔다.

“…너, 아직도 내가 좋은가 보구나.”

기분 좋게 웃어 보이는 아서는 내용물이야 어떻든 여전히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려 낸 것만 같은 고상한 미소와 달리 갓 짜낸 핏덩이로 빚은 듯한 눈은 저열하게 빛났다.

“응? 맞잖아. 대답해. 내가 너를 죽이려 드는 데도 좋은 거잖아.”

어떤 면에선 정곡을 찌르는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다. 순간 답할 말을 찾지 못한 카를로스가 침묵했다. 그로선 드물게도 동요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아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말해 봐. 머저리처럼 아직도 형님, 형님 하며 매달리는 처지에서 못 벗어났다고.”

“…….”

“형님…. 저는 어미도, 누이도 없는 불쌍한 아이예요. 제발 저를 안아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예전처럼 그렇게 매달리면 혹시 모르지, 내가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 줄지도.”

아서가 웃음기 어린 눈으로 카를로스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입을 다물자 침실 안은 삽시간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정적에 잠겼다.

“……하.”

검게 죽은 눈동자로 아서를 내려다보던 카를로스가 이윽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형님은… 항상 제 예상을 뛰어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미는 화를 삼키듯 숨을 들이켠 카를로스가 입을 열었다.

“감히 내 앞에서 그 두 사람을 언급할 줄이야. 용기가 가상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아서는 제 어머니와 누이를, 특히나 누이의 죽음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되었다.

9년 전, 오나드 왕국의 급습으로 그의 누이가 목숨을 잃었다. 본래라면 그 자리에 있었을 카를로스 대신 적의 목표물이 된 것이었다. 그날의 일로 적색궁의 사용인들은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전부 사망했다. 다른 곳보다 유독 2황자궁의 피해가 이상하리만큼 극심했다.

그때 카를로스의 기사 가브리엘은 ‘우연히’ 황후의 초대를 받아 황태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서는 가브리엘의 구명으로 ‘운 좋게’ 목숨을 부지했다.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사를 불러들였던 황후는 이미 무언가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걸까. 아서가 실제로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하였던 게 맞긴 한 걸까.

만일 가브리엘이 누이의 곁에 있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알 수 없다. 그가 황제, 황후와 비등한 권력을 손에 쥔 건 이미 모든 흔적들이 지워지고 난 후였다.

카를로스는 홀린 듯이 아서에게로 손을 뻗었다. 목을 한 손으로 쥐고 서서히 힘을 싣는데 아서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모든 처분을 맡겨 버린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아 버린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주면 형님을 죽이는 것쯤이야 손쉬운 일이었다. 구속구를 찬 형님은 일말의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목이 꺾여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 손아귀의 힘이 맥없이 풀리고 말았다.

결국 그는 허탈한 얼굴로 아서를 놓아주었다.

“…못 죽이겠나 봐.”

푸른 핏줄이 비칠 만큼 창백한 눈꺼풀이 들리고, 곧이어 붉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아서가 카를로스를 한심하다는 양 쳐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참… 한결같이 한심하군. 멍청한 놈.”

일그러진 눈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카를로스를 제 발 아래 두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다.

“…….”

카를로스가 물끄러미 제 형제를 내려다보았다. 아서의 말 그대로였다. 한심하기 짝이 없게도, 형님이 무슨 소릴 지껄여도 자신은 형님을 죽이지 못한다.

어젯밤 그는 아서를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들고 나서야, 정말 오랜만에 어떠한 꿈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형님을 손에 쥐고 나서야 해소될 갈증이었던 것이다.

“…놀랍네요, 형님.”

카를로스는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다. 아서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기묘할 정도로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아직 그 아둔한 머리로 생각할 정신은 있으신가 보군요. 예,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무언가 느낀 아서가 흠칫 몸을 굳혔다. 뒷일을 생각 않고 성질대로 마구 쏟아 내었다가, 마주한 카를로스의 눈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듯했다.

“헌데 형님을 죽이지 못한다 해서, 다른 짓까지 못 한단 뜻은 아니지.”

카를로스는 지금이 아서를 찍어 눌러야 할 때라는 걸 인지했다.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길들이고자 했던 계획은 곧장 폐기되었다. 애초부터 형님은 그런 유순한 방식으로 길들일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특히나 다른 누구도 아닌 카를로스 그 자신에게는 말이다.

평소 자주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쓸어 올려 주자, 아서가 경계 어린 얼굴로 주춤 물러났다.

그래 봐야 고작 한 뼘 차이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는 사슬 소리가 아서의 현 처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다만 형님, 이 상황에서 형님의 목줄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보셔도 아실 텐데. 멍청해서 그런가…. 영 요령 있게 굴지 못하는 게 안타깝긴 하군요.”

“…….”

“이런 식으로 입을 놀리는 건, 형님께서 전부 감당할 자신이 있으니 하는 말씀이겠지요?”

“네까짓 게 무얼 해 봤자….”

아서가 허세를 부리듯 낮게 말했다. 그러고는 남몰래 달뜬 숨을 삼켜 냈다.

아서는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이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계산한 뒤 그 모습 그대로 행동했다. 순간적으로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제가 죽을 자리에 목을 들이밀었나 싶었다.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흘러가는 대로 내뱉다 보니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카를로스에게 목이 졸렸을 때 아서는 그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체념했다. 이왕 죽을 거면 복상사가 낫지 목이 꺾여 죽긴 싫다고 투덜거리다 순순히 눈을 감았다. 다행히 목을 조르던 건 겁을 주려는 것뿐이었는지, 돌아오는 반응이 생각보다 점잖았다.

자제력이 강한 편인 카를로스는 웬만해선 아서의 도발에 휩쓸리지 않았다. 물론 그래서 싫냐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다.

아서는 카를로스의 재수 없고 거만한 눈빛이 좋았다. 카를로스가 이토록 고압적으로 그를 내리깔아 볼 때마다 살갗이 아릴 정도로 온몸에 열이 올랐다.

쳐다보는 시선만으로도 세울 것만 같아 아서는 극소량의 마나를 이용해 아래로 쏠리는 감각을 차단했다. 명색이 형님이라는 작자가 시도 때도 없이 동생을 보고 좆을 세워 댈 수는 없으니, 전생을 떠올리고 나서 가장 신경 써 익혔던 잡기술이었다.

“우선 형님께 주제 파악하는 법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어찌 생각하십니까.”

카를로스의 손이 아서의 하악골을 움켜쥐었다. 강제로 치켜든 턱이 부러질 것처럼 압박당했다.

아서는 손을 들어 카를로스의 팔을 움켜쥐었지만 원하는 만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턱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놓아 달라 애원하고 싶지 않았다.

굴욕감으로 일렁이는 눈동자가 카를로스를 노려보았다. 카를로스는 그 시선이 기꺼워 웃음 지었다.

“앞으로 형님께선 머리 굴릴 필요 없이, 그저 내 말에 고개나 끄덕이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서가 답을 할 수 있도록 쥐고 있던 턱을 놓아주었으나, 예상대로 아서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순순히 원하는 답을 내놓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아우가 말씀드리는데 대답해 주셔야지요. 형님.”

“닥쳐. 누가 너한테, 읏.”

뒷머리를 움켜쥐고, 서로 간의 콧대가 부딪힐 정도로 바투 얼굴을 마주했다. 노려보는 시선과 일그러진 미간, 어느 하나 보기 좋은 면이라곤 없는데도 눈앞의 것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카를로스는 전날처럼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손으로 아서의 몸을 뒤집고 움직일 수 없게 구속했다. 엎드려진 몸 위로 올라앉아, 양팔을 뒤로 꺾어 구속구를 채웠다.

“어차피 아둔하신 형님께서, 한 번에 알아들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아서 특유의 체향이 느껴졌다. 몸을 숙여 귓바퀴를 깨물자 뻣뻣하게 굳어 있던 등허리가 움찔 튀는 게 보였다. 저번부터 생각했지만 민감한 몸이었다. 그가 아서의 귓바퀴를 진득이 핥아 내렸다.

“윽, 뭐…!”

겪어 본 적 없는 낯선 감촉에 아서의 몸이 들썩거렸다.

민감한 부위를 빨아들이는 입술 점막은 뜨거운 열기를 띠고 있었다. 느긋하게 귓가를 농락하는 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오감이 질척이는 소리 하나로 덮여 버린 듯 원치 않아도 아서의 모든 신경이 한 방향으로 휩쓸려 갔다.

골반 위로 선을 그리던 손이 허리선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만지작거린다. 카를로스가 흰 목덜미에 고개를 박은 채 양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근육으로 이루어진 가슴을 억지로 그러모아 쥐니 아서가 몸을 비틀었다.

“미친 새끼, 뭐, 하는 거야…!”

꿈에선 이렇게 가슴을 만져 주는 걸 좋아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한동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당장은 가슴으로 그다지 느낄 수 없겠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 가슴을 빨아 주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태 그 누구의 손도 탄 적이 없었을 살갗 위로는 전날 밤 그가 남겨 놓은 흔적들이 그득했다. 아서의 몸은 피부가 흰 만큼 자국이 쉽게 남았다.

“항상 묻고 싶었습니다. 형님께서 자위하는 법이나 제대로 아실지.”

카를로스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전날 새겼던 자국 위로 다시금 제 흔적을 새겼다.

혀가 닿을 때마다 흔들리는 몸은 잠들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주었다. 그는 아서의 등 뒤로 몸을 겹치며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는 숨결에서 차츰 숨길 수 없는 열기가 새어 나왔다.

“쓰지도 않을 좆을, 굳이 왜 달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아래로 늘어져 있는 살 기둥을 손에 쥐었다. 전혀 발기한 흔적이 없는데 그 두께와 길이가 상당했다. 속살이 희어서 그런지 아서는 자지마저도 색이 깨끗했다.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던 카를로스가 손에 잡힌 것을 주물럭거렸다.

“윽, 건드리지…!”

경악한 아서가 몸을 들썩이다 등을 누르는 무게에 짓눌렸다.

“형님, 자위는 해 보셨습니까? 하는 법이나 제대로 아실는지 모르겠군요.”

아무리 성생활과 거리가 멀던 아서라 해도 수음하는 방법조차 모를 리가 없건만, 카를로스는 아서를 놀리듯 그렇게 물었다. 그는 어설펐던 꿈속 아서의 모습을 떠올리고 웃어 보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어설픈 손놀림을 보일지 궁금했다.

“무슨, 헛소리를.”

카를로스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 생각한 아서가 발끈했다. 아래를 움켜쥔 손이 아서의 것을 장난감 취급하며 멋대로 주물러 댔다. 아서는 입을 꾹 다물고 새어 나오는 신음을 삼켜 냈다. 이런 식으로 치욕을 준다고 그가 굽히고 나올 줄 알았다면 명백한 착각이었다.

“이딴 헛짓거리, 해 봤자, 읏…!”

“집중하셔야지요, 형님. 아우가 직접 자위하는 법을 알려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서로선 처음으로 느껴보는 타인의 손길이었다. 싫다고 진저리를 쳐도 카를로스의 손에 붙잡힌 성기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같은 성별로서 어딜 만져야 할지를 꿰뚫고 있으니, 굴욕감을 느끼는 정신과 달리 하반신에선 차츰 욱신거리는 감각이 차올랐다. 힘을 받고 단단해진 성기를 카를로스가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 내렸다.

“이번엔 내가 알려 드리지만, 다음번엔 형님 스스로 하는 걸 보여 주는 것도 좋겠군요.”

“입 닥쳐, 흣…, 으….”

아서가 이를 악물었다.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며 주어지는 쾌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악했다.

성욕이 그다지 없는 아서에겐 자위란 아주 드물게 하는, 쌓인 것을 풀어 내고자 하는 의무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다른 이의 손길에 전혀 면역이 없는 성기는 벌써부터 선단 끄트머리에서 맑은 액을 조금씩 흘려 냈다.

“보세요, 형님. 벌써 이만큼이나 젖었네요.”

카를로스가 아서의 코앞에 제 손을 들이밀었다. 손끝이 아서가 흘린 액으로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줄줄 흘려 대는 걸 보니 좋으신가 봅니다.”

아서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성기 끝을 문지르는 손길에 다시금 몸이 튕겼다.

낮게 웃은 카를로스가 아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좆을 달고 있는 이유가 있기는 한 건지, 앞을 만지는 손길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아서였다.

그의 손에 느끼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가도, 금세 무너져 움찔거리며 밭은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 카를로스 역시도 점차 열이 올랐다.

카를로스는 아서의 욕설을 한 귀로 흘려 내며 다른 손으로 젖꼭지를 만지작거렸다. 찌그러질 때까지 꾹 눌렀다가 끝을 뱅글뱅글 돌리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다. 말랑하던 돌기가 바짝 일어났다.

“읏, 무엇 하는….”

얼굴을 찌푸린 아서가 이상한 짓을 하지 말라는 듯 고개 저었다. 카를로스는 절정 직전에 다다른 기둥에 쿠퍼액을 발라 빠르게 훑어 내렸다. 손안의 성기가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을 만큼 팽팽하게 달아올랐다.

찌걱, 찌걱, 물기 어린 소리가 반복되고, 어느 순간 아서가 움찔 몸을 웅크렸다. 밀려드는 쾌감을 견뎌낼 수 없었는지 발끝으로 침대보를 마구 긁어내린다.

“잠깐, 아읏, 싫, 아…!”

선단에서 울컥, 액이 흘러나왔다. 쾌감에 움츠러드는 상체를 카를로스가 뒤로 끌어당겼다. 아서의 가슴이 강제로 활짝 펴졌다.

절정에 이른 아서의 얼굴을 카를로스는 집요한 눈으로 샅샅이 살폈다. 눈썹이 일그러진 정도와 뺨의 홍조까지, 전부 그림으로 찍어 내듯 제 머릿속에 담아냈다. 그와 동시에 쉼 없이 젖은 살 기둥을 문질렀다.

아서가 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자연히 카를로스의 숨결도 점차 거칠어졌다. 카를로스는 손을 뻗어 협탁에 올려져 있던 병을 들었다. 아서의 둔부 사이에 준비해 둔 윤활유를 과하다 싶을 만큼 짜내고 손끝으로 젖은 입구를 만지작거렸다.

“하아. 어찌… 형님께선 뒷구멍도 깨끗하시군요.”

항상 깔끔을 떨더니 이곳조차도 흠 하나 없이 깨끗한 것이 희한하여 카를로스가 웃었다. 남자의 뒤를 만져 볼 생각은 꿈에라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게 형님의 것이라면 오히려 기꺼웠다.

그가 손끝으로 입구 주위를 더듬었다. 절정의 여운으로 늘어져 있던 아서가 크게 몸을 들썩였다.

“미친 새끼, 읏, 역겨운….”

입구를 만지작거리다 중지를 쑤셔 넣자 곧바로 거친 반응이 돌아왔다. 벗어나려 바둥대는 것이 거슬려 앞쪽의 성기를 세게 움켜쥐니 고통스러웠는지 형님이 몸을 웅크렸다.

“아윽…!”

어느새 둘로 늘어난 손가락이 구멍 속을 헤집었다. 카를로스는 한 팔로 아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추삽질을 시작했다.

“아, 윽, 싫,”

겪어 본 적 없는 생경한 감각에 아서가 발버둥을 쳤지만, 등이 짓눌려 허리를 들썩이는 것조차 요원했다.

카를로스는 검지와 중지로 가위질을 해 대며 형제의 아래를 제멋대로 들쑤셨다. 쯔읍, 츱, 젤 덩어리가 찌부러지는 천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아서는 제 뒷구멍에 카를로스의 좆이 박힐 날이 오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고귀한 신분을 타고나 황후와 황제의 아래에서 안온한 삶을 누려 왔을 형님이, 카를로스 탓에 이런 고초를 겪고 있다.

“그러게 왜 나한테 먼저 다가오셨어요, 형님….”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아서는 그에게 접근하지 말았어야 했다. 예전처럼 그렇게 다정히 웃어 보이고, 카를로스의 안위를 염려하는 척 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목이 잘렸을지언정 이 같은 수모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으, 읏…. 싫어, 하지, 윽…!”

아서의 성기가 사정하기 직전처럼 단단해졌을 때 카를로스는 앞을 건드리는 손길을 멈추고 오직 뒤만 쑤셔 댔다. 생각하는 것이 자꾸만 뚝뚝 끊겼다.

“하아. 생각보다….”

마지막 엄지손가락까지 밀어 넣으며 그가 더운 숨을 뱉어 냈다. 처음 중지를 집어넣었을 땐 주름이 단단히 맞물려 있어 제 것이 들어갈 수나 있을지 회의적이었는데, 천천히 길들이며 쑤셔 대니 입구가 차츰 느슨하게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젠 한계였다. 자꾸만 눈앞이 붉게 점멸했다. 해소되지 못한 욕정의 영향으로 아래를 들쑤시는 손끝에 점차 힘이 실렸다.

이쯤 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객관적으로 이 정도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카를로스는 그리 생각하고 제 좆을 훑어 내렸다.

몸을 누르고 있던 그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아서는 무릎걸음으로 벗어나려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골반이 붙잡혀 아래로 질질 끌어 내려졌다. 카를로스의 눈동자가 아서의 발목과 선명한 복사뼈를 훑어 내렸다. 무얼 어찌해야, 아서가 아예 도망갈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서를 끌어안은 카를로스가 바둥대는 하반신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좆머리를 입구에 가져다 대고 문지르니, 무얼 하려는 건지 깨달은 아서가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읏, 미친, 새끼…!”

혐오감을 못 참은 아서가 헛구역질을 해 댔다. 카를로스가 저를 보고 발기한 것 역시 믿을 수 없었는데 심지어 더러운 구멍에 저 역겨운 좆을 박으려고 들었다. 더럽다고 아무리 외쳐 봐도 아서를 구속하고 있는 손은 결코 풀어지지 않았다.

“싫어! 놔…! 역겨운, 욱,”

꾸욱, 서서히 밀려오는 것에 아서의 낯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윽…!”

팔뚝만 한 성기가 아서의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차츰 역겨움보다 끔찍한 고통이 밀어닥쳤다. 미친 새끼, 죽여 버릴 거야, 고통에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아서가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아, 형님. 힘 좀… 풀어 보세요.”

“흐, 으…. 아파, 아프…, 죽여 버릴, 개, 같은….”

“아파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손에 죽는 것보단, 낫겠죠. 안 그런가요?”

카를로스가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지만 아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벌벌 떨어 대기만 했다. 두껍고 기다란 성기가 뱀처럼 꾸물꾸물 끝없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파.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아서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 입을 벌린 채로 침을 뚝뚝 흘려 댔다.

밀고 들어온 좆이 금방이라도 뱃가죽을 뚫고 나갈 것만 같았다. 고통에 점령당한 머리는 스스로가 추하게 침을 흘리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읏…. 죽여, 버릴…, 죽여 버릴 거…….”

“힘 빼요. …아직 반밖에, 안 들어갔습니다.”

아서에겐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삽입이 끝을 보였다. 둔부와 음모가 맞닿을 정도로 끝까지 밀어 넣은 카를로스가 밭은 숨을 흘렸다. 아서의 아랫배가 한계에 다다른 듯 불룩 솟아 있었다. 만일 아서가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카를로스의 것을 전부 품지 못했을 터였다.

밀려드는 고통을 떨쳐 내려 아서가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고 정신이 나간 와중에도 죽여 버릴 거라고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하윽…!”

그러나 카를로스가 깊이 박은 채로 허리를 쳐올리자 욕설조차 모조리 헐떡이는 숨소리로 변했다.

“윽, 읏, 흐, 그만,”

아서의 골반을 부여잡은 카를로스가 얕게 허리를 쳐올렸다.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아서에게서 고통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음낭이 찌그러질 정도로 좆을 밀어 넣어 놓고도 카를로스는 만족을 몰랐다.

“…후으.”

좆을 끊어 먹을 것처럼 조이는 압박감은 여전했지만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완되었다. 그 사실을 확신한 카를로스가 좆을 끝까지 빼내고 박아 넣었다.

“흐윽…!”

아서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그가 다시 끝까지 빼내었다가 쿵 박아 넣었다. 이젠 마음껏 쑤셔 박아도 찢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거친 허리 짓이 시작되었다.

“아, 아… 아, 윽! 으….”

검붉은 성기가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을 드나들었다. 아서는 새어 나오는 신음을 삼키고자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흐릿한 시야가 뒤에서 쿵쿵 처박는 대로 앞뒤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툭, 하고 터진 입술에 핏방울이 맺혔다.

눈을 감으면 뒤를 쑤시는 끔찍한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아서는 감기려는 눈을 애써 부릅떴으나, 그런 그의 노력과는 달리 점차 눈앞이 흐릿해져 갔다. 마치 독한 약에 취한 것만 같았다.

“내가, 반드시, 네놈만큼은…. 읏…!”

이를 악물고 뱉던 말은 아서의 뒤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움직임에 강제로 삼켜졌다. 카를로스가 아서의 귓바퀴를 잘근거리며 속삭였다.

“…형님, 아직, 도.”

“읏, 죽여, 윽, 버릴….”

“지껄일, 힘이 있으셨던가요.”

“윽…!”

뒤통수를 다 덮을 만큼 커다란 손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불 위로 아서의 머리를 처박았다. 가느다란 백금발이 거친 손아귀 안에서 구겨졌다.

보통 때면 포근히 몸을 감싸 안아 줄 침구가 아서의 숨통을 빈틈없이 조였다. 숨이 막혀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리 발악해도 카를로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카를로스는 아서의 입을 틀어막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양껏 제 욕구를 채웠다. 뚝뚝 끊기며 새는 신음은 그의 비틀린 욕구를 더욱 부추겼다.

“형님, …뒷구멍 하나만큼은, 쓸 만하군요.”

“으, 윽…!”

“무능하다는 말은,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정사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느슨히 풀어진 눈이 제 아래에 깔린 이를 진득하게 훑어 내렸다.

검붉은 좆이 흰 둔부 사이를 느릿하게 드나들었다. 틈새를 비집고 나온, 좆물과 유사한 점도의 윤활제가 아서의 허벅지 사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안면이 이불에 처박힌 채 사내의 좆을 받아들이고 있는 천박한 꼴. 그 끔찍할 정도로 난잡한 모습에서 카를로스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제가 벌인 일이 이러한 결과로 돌아오게 되리라고, 아서는 짐작이나 했을까. 그에게 접근할 때까지만 해도 형님은 제가 동생과 흘레붙게 될 줄은 몰랐을 터였다.

카를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득 쌓인 열등감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경계하는 꼴이 성가시다고만 생각했지, 이토록 목이 타게 원하게 될 줄이야. 이걸 왜 이제서야 손에 넣었나. 멍청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진작 이렇게 어디에든 가둬 두었어야 했던 것을.

돌고 돌아 이제서야 제 손아귀 안에 들어왔다.

갈증을 동반한 욕구가 차올랐다. 카를로스는 뜨거운 열기에 제 머릿속을 잠식당하지 않으려 긴 숨을 뱉어 냈다. 이제라도 그의 손안에 들어온 것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윽…!”

혈관이 툭 불거진 손이 제 형님의 머리채를 쥐어 끌어당겼다. 아서의 허리가 한계까지 휘었다. 굴욕감으로 범벅이 된 붉은 눈동자가 증오스럽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카를로스의 눈이 만족스러운 빛을 띠었다. 사랑따위는 반짝 피어났다 사라지는 감정에 불과했다. 열등감, 증오, 공포. 어떤 이유로든 형님은 오직 그만을 바라보아야 했다.

노려보는 눈동자가 형형했다. 열기 가득한 눈가는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으나 눈물 자국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게 아서다웠다. 동생에게 좆을 박히고 있으면서도 아서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순진하게도 아서는 이 행위를 그저 미개한 서열 다툼의 일환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이미 그의 아우는 제 형님에게 발정 난 지 오래건만.

“흐윽…!”

“하아, 형님….”

카를로스가 나른한 얼굴로 허리 짓을 했다. 한계까지 벌어진 내벽이 힘겹게 그의 성기를 감싸 안았다. 거칠게 추삽질을 하다가도, 어느 한 지점을 쳐올렸을 때 아서의 몸이 움찔 튄다 싶으면 그는 집요하게 그곳만을 노렸다.

“아윽, 그, 만, 읏,”

“읏, 형, 님….”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조금씩 위로 밀려나는 몸을 끌어 내렸다. 한참을 잘근거리던 목덜미는 이미 잇자국으로 너덜거렸다. 붉은 살결 위로 다시 이를 세우며 카를로스가 아서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정신 나간 이처럼 추삽질을 하면서 그는 한편으론 이 역시도 꿈이 아닐까 의심했다.

여유를 가장하고 있던 낯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좆을 쑤셔 넣을수록 눈앞의 초점이 흐려졌다.

더는 어떠한 말을 내뱉을 여유조차 없었다. 카를로스는 풀린 눈으로 아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채 미친 듯이 좆을 박아 넣었다. 살덩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정신없이 터져 나왔다.

“아, 하윽, 읏, 흐, 아…!”

거세게 쳐올리는 허리 짓에 아서의 숨소리가 뚝뚝 끊겼다. 카를로스의 손이 벌어진 입 틈새로 파고들었다. 도망가려 드는 혀를 따라가 희롱했다.

입 안을 멋대로 헤집어도 아서는 힘겹게 숨을 몰아쉴 뿐, 이를 세울 정신조차 없는 듯했다. 카를로스는 깊게 박혀 있던 성기를 뒤로 물리고는 제 아래에 깔려 있던 몸을 한 번에 뒤집었다.

돌아본 아서의 얼굴은 이미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색색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힘겹게 숨을 들이쉬고 있는 그는 이미 사고할 이지조차 없어 보였다. 카를로스는 그 엉망인 낯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제 좆을 밀어 넣었다.

“흐, 아, 프….”

흐트러진 얼굴로 무방비하게 앓는 소리를 흘리는 모습에 이가 악물렸다.

몸을 숙여 아서에게 입을 맞추었다. 타액에 젖은 입술을 빨아들이던 카를로스가 깊숙이 혀를 밀어 넣었다. 깊게 혀를 섞자 불규칙적이던 숨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대로 혀가 잘려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하아, 형님.”

그가 아서의 오금을 움켜쥐었다. 가슴께에 무릎이 닿을 정도로 밀어붙이고, 뒤로 한 뼘 물러나 시야를 넓혔다.

좁은 구멍으로 제 것이 들락이는 광경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한없이 풀어져 헐떡이는 낯과, 접혀진 허리 아래 한껏 벌어진 구멍까지 전부 한눈에 담았다.

“흐윽…!”

귀두까지 좆을 뽑아냈다 쑤셔 넣자 아서가 고개를 젖히고 헐떡거렸다.

“하….”

카를로스는 욕지거리가 치미는 것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원래 이렇게 미칠 것 같은 건지. 원래 이렇게까지 좋다 못해 돌아 버릴 것 같은 건지…. 모든 것이 처음인 카를로스로선 답을 알 수 없었다.

타는 듯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눈앞의 것을 이대로 씹어 삼키고만 싶었다.

“형님, 형, 님….”

귓가가 윙윙 울리고, 온몸의 피가 미치도록 끓어올랐다. 카를로스는 양팔로 아서의 다리를 감싸 안고 미친 듯이 추삽질을 했다. 배려 없이 쳐올리는 허리 짓에 아서의 성기가 위아래로 덜렁거렸다. 귀를 때리는 소음이 점점 더 요란해졌다.

서서히 차오르는 절정에 그는 형제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개처럼 좆을 박아 넣었다. 시야가 까맣게 점멸했다. 땀에 젖은 몸을 부서뜨릴 것처럼 끌어안았다.

***

“그, 만…. 흐으….”

아서가 제 성기를 훑는 손길에 몸을 비틀었다. 아래를 들쑤시는 좆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앞까지 건드리니 신음을 삼키기가 힘들어졌다.

느끼는 부위만을 집요하게 박아 대는 삽입에 또다시 눈앞이 새하얘졌다. 몇 번의 절정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절정에 접어들려는 몸을 숨기느라 아서는 그저 가느다란 숨만 힘겹게 흘렸다. 그 모습이 아파하는 걸로 보였는지 다시금 카를로스가 집요하게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좋으면서도 환장할 것만 같았다.

“으, 윽…. 건드리지, 아, 읏,”

얼마나 이어졌는지 모를 정사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귓가에 닿는 거친 숨소리조차도 살갗을 저릿하게 울렸다. 첫 삽입부터 뒤로 느끼는 걸 보여 주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신음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급급해지고 있었다.

처음이 이 정도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하다는 건가. 사람이 너무 좋아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던데 지금이 딱 그러했다.

몇 번의 사정 후 뒤늦게 여유를 찾은 카를로스는 허리 짓을 이어 가는 와중에도 아서의 성기를 잡고 위아래로 훑었다.

기실 카를로스는 그답지 않게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서의 몸이 반응하는 부분을 찾아내어 쳐올렸지만, 좆을 밀어 넣고 나서부터 아픔에 시들해진 성기는 거친 추삽질에 따라 힘없이 흔들릴 뿐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형님, 하아, 왜….”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서의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카를로스는 더욱 집요하게 성기를 만지고, 귓가가 질척해질 정도로 빨아들이고, 젖꼭지를 괴롭혔다.

그는 아서의 성감대란 성감대는 모조리 찾아낼 것처럼 온몸을 만지작거렸다. 처음부터 뒤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하였다. 그 말인즉슨 저는 이렇게 미칠 것만 같은데, 형님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다.

분명 처음은 아서를 찍어 누를 생각으로 시작했던 행위였건만 어느새 카를로스는 아서의 반응에 집착하다시피 했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아서가 이성을 잃고 신음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한참을 공들인 끝에 카를로스의 손에 잡혀 있는 성기가 조금씩 크기를 키워 갔다. 드디어 아서에게서 반응이 돌아오고 있었다.

“형님, 여기…. 여기가 좋아요?”

카를로스가 어느 한 부위를 끈질기게 건드렸다. 좆으로 헤집듯이 그곳을 문지르며 아서의 반응을 유도했다. 사실상 아서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 것이지만, 카를로스는 이제서야 아서가 느끼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만, 좀, 읏….”

아서는 반의반 정도의 진심을 담아 카를로스를 밀어냈다. 자극이 지나치다 못해 아래가 아릴 지경이었다.

관찰력이 좋은 카를로스는 아서가 실수로 내보인 사소한 반응마저 전부 알아차렸다. 성감대 하나를 발견하면 아서가 기겁할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기게 그곳을 괴롭혔다. 아서의 민감한 부위를 빠짐없이 찾아내면서 한편으론 느릿하게 좆을 쳐올렸다. 그 과정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서에겐 불행히도, 카를로스는 마음만 먹으면 며칠간 잠을 자지 않고도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응, 으….”

아서가 버티다 못해 까무룩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깨어나도 카를로스는 여전히 아서의 몸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친, 새끼, 대체, 읏, 언제, 까지….”

추삽질하는 속도에 맞춰 시야가 흔들렸다. 정신이 혼몽했다. 의식이 없는 몸은 아서의 의사와 관계없이 건드리는 손길에 고스란히 반응했다. 밤새 아서를 관찰한 카를로스는 고작 며칠 만에 과할 만큼 능숙해졌다.

벌어진 잇새로 새어 나가는 건 거친 숨소리밖에 없었다. 아서는 무어라 욕을 하다가도 결국은 늘어져서 앓는 신음만 흘려 냈다. 나중엔 눈 뜰 힘조차 없어 온몸을 축 늘어트린 채 흔들리기만 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없어 며칠이 지났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느 날은 눈을 떴을 때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젖꼭지가 빨리고 있었고, 그다음 날엔 카를로스의 몸 위에서 좆이 쑤셔 박히고 있었다.

죽일 생각은 없는지 카를로스는 꼬박꼬박 아서의 입에 무언가 넣어 주긴 했다. 아서는 고집스레 먹을 것을 거부했다. 수저를 쳐 내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입 안에 들이밀어진 것을 뱉어 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 시간이 지나 더는 거부할 기력조차 사라진 아서는 들이밀어지는 음식을 힘없이 받아먹었다.

그러고 나면 카를로스는 만족한 얼굴로 아서의 팔을 베고 누워 부비적거렸다. 그때만큼은 아서도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신음과 욕설만이 난무하던 침실에 평화 비슷한 것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오랜만에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걷어졌다. 아서는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모를 바깥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바람에 날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휘날렸다. 계절감이 선명하게 보이는 걸 봐선 이곳이 황성 근처는 아닌 것 같았다.

카를로스가 창을 살짝 열어 주자 언제나 적정 온도를 유지하던 침실 안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내내 실내에만 있던 아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아서는 이불 속에 파묻혀 겨울바람을 만끽했다. 눈이 나른하게 감겼다.

“…하아.”

거슬릴 만큼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아서는 제가 이 저택에 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런 심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사람을 감금해 뒀으면 착실하게 괴롭혀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만일 카를로스가 자신을 건드릴 마음이 없다면 당장 그럴 의욕이 생기도록 도와줄 의향도 있었다.

“…역겨운 놈.”

카를로스의 기세가 누그러진 것처럼 보이자 아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시비부터 걸었다.

본래라면 잠에서 깨자마자 몸을 섞고 있어야 했건만 카를로스가 저를 잠시라도 방치해 두는 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셈이지, 카를로스.”

분명 아서의 시비 거는 목소리가 들렸을 텐데, 어째서인지 창가 근처에 앉은 카를로스는 그의 물음에 이쪽을 쳐다보았을 뿐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어 아서가 말을 꺼내리라 예상하기라도 한 듯, 매일 밤 아서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이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초연한 모습이었다.

“…왜 답이 없어.”

“형님이 무얼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요.”

아서가 한 번 더 답을 재촉하고 나서야 카를로스가 나직이 답했다.

차분한 표정이 마치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날 사람처럼 보여, 그 잠잠한 눈동자를 마주한 아서는 순간적으로 미미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카를로스의 흥미가 몇 개월은 갈 거라고 생각했건만 어쩌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날지도 몰랐다.

어차피 처음부터 카를로스랑 그리 오래 볼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서는 짜증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이딴 짓거리를 대체 언제까지 할 거냐고….”

부러 말끝을 흐린 아서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카를로스의 아래에서 종일 헐떡거리고, 카를로스가 주는 것을 받아먹는 이 순간이 끔찍해 죽을 것 같다는 어투였다.

카를로스는 저를 혐오스럽다는 듯 노려보는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보냈다.

“글쎄요. 형님의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이 짓거리를 이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개소리.”

아서는 카를로스의 말에 안도하는 한편 겉으로는 이를 악물었다.

“너도 알고 있지 않나. 나를 죽인다면 모를까, 살려 둔 채로 영영 가두어 두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형님께서 걱정해 줄 부분은 아닌 것 같군요.”

카를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열어 두었던 창을 닫았다. 커튼을 쳐 빛이 들지 않게 만든 뒤 아서에게로 돌아갔다.

아서의 말대로, 아서를 영영 이곳에 가둬 두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역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해도 아서의 부재를 영원히 들키지 않을 순 없었다. 다행인 건 아서가 워낙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아 황제, 황후와의 독대만 피하면 들킬 위험이 크게 줄어든단 사실이었다.

지친 아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조용히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 추격을 피하고 있는지 몰라도 결국은 황후께서 나를 찾아낼 것이다. 내 어머니의 가문은 제국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오를레앙이고, 그 아래에는 추격에 능한 개새끼들이 많지.”

며칠간 이어진 고초 끝에 다소 힘없는 어조로 내뱉어진 말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경고였다. 언제가 됐든 간에 결국 황후가 아서를 찾게 될 것이라는.

현명한 언사는 아니었다. 정말로 카를로스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면 경고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전처럼 웃으며 그의 비위를 맞추는 쪽이 차라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카를로스는 평상시 측근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제 계획에 빈틈이 생기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서와 연관된 일에 종종 충동적으로 구는 것은 말 그대로 예외적인 경우였다.

황후의 개입은 이미 카를로스의 예상 범위 내에 있는 상황이었다. 이 순간 그의 마음에 걸리는 건 아서의 태도였다.

아서 자체가 변수였고, 그의 불안을 부추기는 미지의 무언가였다. 지켜본 세월만큼 아서를 안다 자부했으나 이젠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졌다.

몸을 섞고 난 후로부터였다. 아서에게서 조금씩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던 건.

아서는 기묘하리만큼 정사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 관계에 굴욕감, 역겨움을 느끼는 듯했지만 정말로 그게 전부였다.

카를로스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아주 드물게 포로로 사로잡힌 자 중에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했다. 어떤 강압과 굴욕에도 꺾이지 않을 만치 굳건한 자아를 지녔거나, 혹은 제 자신에 대한 애착이란 게 아예 없거나.

무너지지 않을 만큼 강인하거나, 본래부터 무너져 있었거나.

둘 중 어느 하나도 아서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전자라면 애초에 카를로스에게 열등감을 느낄 일이 없었을 것이었고, 후자라기엔 아서를 둘러싼 환경이 완벽하기 짝이 없었다.

황후와 황제의 전폭적인 지지,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 없는 황태자란 지위, 제법 뛰어난 재능. 그 모든 것이 형님의 알량한 자존심을 뒷받침해 주는 것들이다.

아서의 불행은 오직 카를로스 저 하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에선 말이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 무언가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조금씩 불안감이 차올랐다. 형님과 관련된 일에서는 무엇 하나 쉬이 확신할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형님이 그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카를로스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쳐 내고자 버릇처럼 또 다른 수단을 강구했다.

불확실한 상황을 감수한 채 노심초사하는 건 그의 성미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형님의 일신을 물리적으로 구속해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보다 온전히 아서를 묶어 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제 형제를 열렬히 아끼고 사랑해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당장 제 손에 쥐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오기에 가까운 소유욕이었다.

그러니 목적을 위한 수단은 무엇이 되든 간에 중요치 않았다.

상념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자연스레 머릿속에 한 인물이 그려졌다.

***

아서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힐끗 내려다본 몸은 처참한 상태였다. 며칠인지 모를 긴 시간 동안 물고 빨아 재낀 덕에 온몸이 열꽃이라도 핀 듯 울긋불긋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땀을 잔뜩 흘린 몸이 그대로 방치되진 않았다. 제가 잠든 사이에 몸을 씻기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부터 카를로스는 아서와 한시라도 떨어지면 큰일이 나는 사람처럼 집착적으로 달라붙었다.

제 덩치와 무게를 잊어버린 듯 한 번씩 억지로 품 안에 안겨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서는 숨 막히는 압박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서가 참다못해 무겁다고 난리를 쳐야 카를로스는 뒤늦게서야 슬며시 물러나 주었다.

잠시 잠잠하다 싶었던 카를로스는 아서가 바랐던 대로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행인 일이었다.

아서는 즐거우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웠다. 욕구는 넘쳐나는데 몸이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 체력이 회복되는 대로 카를로스를 들쑤셨다가,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들기를 반복했다.

만약 한쪽 손목에 달린 구속구가 없었더라면 카를로스가 무슨 짓을 해도 즐겁게 버텨 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의 아서는 고작 잠깐 진상을 부린 걸로 지쳐서 헉헉거려야 하는 처지였다.

가져 본 적 없던 허약한 몸을 신선하다 여겼던 건 아주 잠시만이었다. 농담 삼아 죽을 거면 복상사가 좋겠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나 싶었다.

결국 아서는 버티다 버티다 못해 진저리를 치며 육신에서 빠져나왔다. 아서의 몸이 스르륵 무너지자 카를로스가 익숙한 듯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아 눕혔다.

정신을 잃고 눈을 꼬옥 감고 있는 제 얼굴은 전에 본 바 없을 만치 퀭했다. 종일 일거리에 치여 살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안 되겠다. 하루빨리 이 구속구부터 어떻게 처리해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아서는 세상에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양 진지하게 머리를 굴렸다. 기껏 28년을 꾸준히 단련해 놓고 그걸 떡칠 때 써먹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억울했다.

한시라도 빨리 구속구를 떼어내기 위해선, 계획했던 ‘그 사건’을 좀 앞당기는 게 가장 적절해 보였다. 아서가 황제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밀고당하는 에피소드 말이다.

본래 원작에서도 이 시기쯤 배신자의 밀고로 아서의 정체가 들통나게 된다. 안 그래도 카를로스가 수상쩍게 반복되는 꿈과 아서의 연관 관계를 의심하던 중이었기에, 그 밀고를 시발점으로 곧바로 아서의 출생이 낱낱이 까발려진다.

아서의 핏줄에 관한 진실은 소설 전개상 어떻게든 밝혀지리라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사실상 아서는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린 순간부터 현재까지 쭉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이어 온 셈이다.

배신자는 황후의 오랜 측근 중 한 명이었다. 황태자파와 2황자파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 2황자파 쪽을 택하게 되는 눈치 빠른 귀족이 하나 있었다. 그 약삭빠른 놈은 후에 카를로스에게 정보를 넘긴 뒤로도 황태자 측에 어설프게 다리를 걸치고 있던 게 들통나, 황태자파가 무너질 때 같이 숙청당했던가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지금쯤 슬슬 배신자가 딴마음을 먹고 있을 터였다. 여기서 아서가 할 일은 이미 입이 근질근질한 배신자를 쿡 찔러 부추기는 것뿐이었다. 꿈을 이용해 놈을 살짝만 자극하면 조만간 카를로스에게 만남을 청하는 서신 한 통이 은밀히 전달될 것이다.

그 후엔 적당히 추이를 지켜보다가 입막음을 하면 된다. 카를로스에게 제 약점을 쥐여 주는 거야 아서도 원하는 바지만, 배신자가 다른 곳에서도 입을 놀리게 내버려 두면 일이 수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커지고 만다. 변수는 확실히 제거하는 편이 나았다.

황후에게 살짝 언질만 주어도 배신자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게 될 터였다. 놈이 못된 귀족의 전형이라 다행이다. 살인 뒤의 찝찝한 기분을 덜 느껴도 될 테니.

아서는 여전히 지칠 기미가 없는 카를로스의 옆에 혼백 상태로 털썩 누웠다. 이제 더 고민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진작 이렇게 몸을 버려두고 쉴 걸 괜히 오기를 부리며 버티고 있었다.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혼을 겨우 뉘고, 가물가물한 눈으로 잠에 빠져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이제 조금 쉴 수 있나 싶었다.

“…….”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서는 저도 모르게 끄응, 앓는 소리를 흘렸다. 좀 쉬려고 하자마자 방해꾼이 들어올 건 뭔가 싶었다.

고개를 돌릴 기력도 없어 눈동자만 굴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잠이 들 것처럼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침입자를 확인했다. 침실을 찾은 불청객은 다름 아닌 은발의 기사, 가브리엘이었다.

기척 없이 걸어 들어오는 기사를 바라보며 아서가 눈을 깜뻑거렸다.

방문객이 가브리엘인 것까진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의아했던 건 그다음 상황이었다. 걸어 들어오는 기사의 얼굴이 지나치게 태연해 보였던 것이다.

바로 코앞에서 벗은 두 사람이 뒤엉켜 있는데 놀랍게도 가브리엘은 잠깐 질린 얼굴을 했을 뿐 전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가브리엘이 문을 열고 들어온 타이밍 역시 의문스러울 정도로 절묘했다. 아서가 정신을 잃자 잠시 뒤에 안으로 들어온 것이, 꼭 침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때맞춤이었다.

아서는 삐걱삐걱 둔한 머리를 굴려 가며 상황 파악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나, 여러 가지 단서들을 끼워 맞추면 앞뒤 상황을 대강 유추할 수는 있었다.

우선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가브리엘의 성격상 하루아침에 이런 노골적인 정사를 앞에 두고 태연히 걸어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짐작건대, 주군인 카를로스를 보좌하려 지난 며칠 내내 저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결국 민망한 정사에 강제로 익숙해져야만 했을 테고.

대체 얼마나 미친놈처럼 그 짓만 해 댔으면….

아서가 조금 질린 눈으로 제 옆의 형제를 바라보았다. 가브리엘을 힐끗 보니 그 역시 아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저 짐승 같은 것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지금은 아서의 목에 고개를 박고 얌전히 끌어안고만 있었다. 아서는 그 모습을 인숙하게 지켜보았다. 지금뿐만 아니라 관계 중일 때도 카를로스는 유독 아서의 목덜미와 체향에 집착하곤 했다.

아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몸이 힘든 것과 별개로 카를로스의 집착적인 모습은 언제나 아서에게 충족감을 안겨 주었다.

“지치지도 않나 봐, 카를로스.”

어느새 침대 앞까지 걸어온 가브리엘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가 엉망이 된 침구와 잠이 든 아서를 찬찬히 살폈다.

아서의 예상대로 가엾은 기사는 며칠 내내 침실 문 앞에서 질척이는 소리를 들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카를로스의 행동을 보고 경악했던 가브리엘은, 밤낮 가릴 것 없이 미친 듯이 제 형제를 탐하는 주군 덕택에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형제의 정사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시일이 꽤 지났어.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작정인지 알고 싶은데.”

“…글쎄? 곧 자리를 비워야 할지 모르니 적어도 그때까지는.”

기사가 묻자 카를로스는 전혀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투로 답했다. 지친 가브리엘과 다르게 카를로스는 오히려 전보다 기운이 넘쳐 보였다. 표정도 전에 비해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다행히 기한이 정해져 있긴 한가 보군.”

잠시 아서의 상태를 살피던 기사가 침실 입구로 걸어 나갔다.

“이런 식으로 업무를 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거 알아 둬. 나는 전하의 시중을 들 테니 밀린 결재부터 해, 어서.”

가브리엘이 입구에 쌓아 두었던 서류 더미를 안으로 옮긴 뒤 카를로스에게 눈짓했다.

틈이 나는 대로 황성을 드나들고 있는 카를로스였지만, 업무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전에 비해 절대적으로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작정인지는 몰라도 해야 할 일을 전부 내팽개쳐 둘 순 없었다.

가브리엘은 축 늘어져 있는 황태자를 안아 들었다. 잠이 들어 있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낯이었다.

“씻겨 놓아도 금세 엉망이 되시는군.”

이틀 정도는 황태자에게 손끝 하나 못 대게 하던 카를로스도 이제는 미뤄 뒀던 정무를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지, 못마땅한 얼굴로 기사에게 아서의 시중을 맡겼다.

하필 감금해 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황태자라 섣불리 사용인을 데려오지도 못했다. 물론 사용인을 들이고자 한다면 그럴 수야 있었겠지만, 카를로스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작은 변수도 납득 못 하는 집착적인 성미 덕에 졸지에 가브리엘이 아서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

황태자를 안아 든 가브리엘이 호화로운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매번 반쯤 기절해 있던 황태자는 아직까지 이 욕실의 존재조차 모를 터였다.

마법석이 박힌 욕조는 한 번의 조작으로도 완벽하게 목욕 준비를 갖추었다. 가브리엘이 물이 차오른 욕조 안으로 조심스럽게 아서를 앉혔다. 널따란 욕조 끝에 등을 기대게 하고, 제 소매부터 걷어 올렸다. 우선 아래에 들어차 있을 정액부터 긁어내야 했다.

며칠 사이 기사는 황태자의 목욕 시중을 드는 일에 제법 익숙해졌다. 어설펐던 첫 시도를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다소 여유로워진 지금과 달리 처음엔 한참을 헤맸었다. 한 팔로 의식 없는 몸을 끌어안은 채 오직 한 손으로만 모든 일을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첫날은 그가 아서의 몸을 씻긴 것인지 제 몸을 씻고 나온 것인지 헷갈렸을 정도로 모든 게 엉망이었다.

온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갔더니 카를로스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노골적으로 그의 하반신을 훑어 내리던 시선이 무얼 확인하려 했던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안심해. 난 너처럼 잠든 사람한테 그런 걸 세울 만큼 제정신이 아니진 않거든.」

「그건 다행이로군.」

그 이후로 황태자의 목욕 시중을 드는 일의 열에 아홉은 그의 몫이 되었다. 종종 난감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으나 그 사실에 불만은 없었다.

가브리엘은 익숙한 손길로 아서의 밀부에 제 손을 밀어 넣었다. 검지와 중지를 갈퀴 모양으로 굽혀 안쪽을 긁어내자 불투명한 점액이 덩어리진 채로 흘러나왔다.

황태자의 입장에선 이 광경을 본인의 눈으로 보느니 이대로 잠들어 있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으응….”

안을 긁어내다 어느 부분을 잘못 건드린 듯 아서가 목을 울리며 신음했다.

보통은 기력 없이 축 늘어져 있는 황태자였는데 가끔은 이런 식으로 반응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사는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생각을 지워 내야만 했다.

품 안에 있는 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그는 될 수 있는 한 예민한 부위를 피해 움직였다. 아무리 이런 쪽으로 무지한 가브리엘이라 하여도, 매번 같은 부분을 건드릴 때마다 반응하는 몸을 보면 무언가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으….”

깊게 잠들지 못한 건지 최대한 조심했음에도 아서의 반응이 평소와는 달랐다. 늘어진 몸을 품에 끌어안고 있는 탓에 신음이 새어 나올 때마다 그와 맞닿은 부분이 덩달아 공명하는 듯했다.

가브리엘은 손끝에 최대한 힘을 뺐다. 집중한 기사의 미간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이미 반쯤 의식이 돌아온 몸은 평소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손끝이 어느 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결국 품 안의 아서가 허리를 들썩였다.

꼭 절정에 맞은 이의 그것처럼 얕게 헐떡이는 모습에 잠시간 시선을 빼앗긴 사이, 물에 젖어 축 처져 있던 금빛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 오기 시작했다.

“…….”

감겨 있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왔다.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새빨간 홍채 가운데, 먹물 한 방울을 툭 떨어트린 듯한 동공을 마주했다.

카를로스의 것에 비해 맑은 색을 띤 그것은 기사에게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굳이 그것들을 무어라 정의하자면 죄책감에 가까웠으나, 실지 그보단 조금 더 복잡하였다.

물론 굳이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는 없는 감정이었다. 그가 황태자의 대척점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앞으로 영영 이 붉은 눈을 이전처럼 편히 마주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초점이 흐리던 눈동자가 서서히 또렷해졌다. 검은 동공이 점차 확대되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만 보던 기사는 찰나 그만 해야 할 말을 잊어버렸다.

“가…, 읍.”

아서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새어 나오기 직전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나갔다. 아서가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입을 틀어막은 손 위로 놀란 듯한 눈이 보였다. 기사는 아서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미미하게나마 웃어 보이며, 입술 위로 검지를 붙였다.

“…전하, 조용히 계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가 아서의 귀에만 들리게끔 조용하게 속삭였다.

“큰 소리가 나면 카를로스 전하께서 바로 알아차리실 겁니다. 그건 원하지 않으실 테지요.”

그러자 기사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실 필요 없으십니다. 전하의 목욕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이 귀엣말로 속삭였다. 조용히 건넨 경고 때문인지 아서의 입술은 맞물려 있었다.

놀란 눈을 했던 것도 잠시, 황태자는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막 잠에서 깨어난 눈은 툭 건드리면 그대로 스르륵 감길 것만 같았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눈꺼풀 위로 이내 피곤이 내려앉았다. 눈꼬리와 맞닿은 흰자위가 불그스레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사납지도 않았다.

기사는 적잖게 안도했다. 아마 그는 아서가 눈을 뜨자마자 욕설을 퍼부었어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형제에게 신랄하게 독설을 내뱉던 황태자는 형제의 기사에게는 그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그는 아서에게 정사의 흔적을 빼내고 있었노라고, 그걸 긁어내지 않으면 침구가 젖어 불편하실 거라고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황태자가 느낄 거부감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은 아서의 아래에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그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담백하게 행동했다.

아서는 불편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으나, 갈고리처럼 휜 손가락이 내벽을 긁어내자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 튕겼다.

“…….”

아서의 눈살이 와락 구겨졌다. 내벽을 긁어내던 가브리엘이 당황하여 하던 것을 멈추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아서는 수치스러운 척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속으로는 이 흥미진진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당혹스러워하는 가브리엘을 보고 아서가 내심 웃음을 흘렸다. 좀 전 자신이 정신을 잃은 척하고 있을 땐 익숙한 듯 비부를 건드려 놓고선,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있는 상황에선 그럴 수 없었나 보다.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가브리엘이 조용히 말했다. 내벽을 긁어내는 손이 간지러울 정도로 조심조심 움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서는 계속해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인 척 가장했다.

아서가 대놓고 불편한 낯을 하고 있으니 가브리엘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잠들어 있을 때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서 덕에 기사는 점점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꾸만 품 안의 몸이 움찔거려, 마치 그가 황태자를 강제로 희롱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카를로스를 언급하여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한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아서의 심기를 살피려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반쯤 내리깐 눈꺼풀과 기다란 속눈썹에 붉은 눈의 대부분이 가려져 있었다.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보단 차라리 빨리 끝내기를 바라는 듯해 그도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내벽을 천천히 긁어내자 욕조 속의 몸이 가느다랗게 경련했다. 가브리엘은 머릿속을 비우고 며칠간 반복했던 일을 본능적으로 이어 갔다.

아서가 깨어 있으니 시중드는 것이 더 편해야 할 텐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모든 일을 끝마치고 나서 기사는 온몸이 녹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전하. 다른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없어.”

“원하신다면 좀 더 몸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잡념을 지워 내려 애쓴 것이 무색하게 온갖 의문이 가브리엘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토록 예민한 몸이니 누군가의 손이 닿는 것을 거부한 건가. 지금 제 손은 불쾌하지 않으신 건가. 왜 화를 내지 않는 건지. 그럴 기력조차 없는 건지. 평소 잔잔한 호수 같던 내면에 낯선 바윗덩이 하나가 풍덩 던져진 듯했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는 황태자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굳이 이 자리에 있는 게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이 쓰일 법한 모습이었다.

며칠간 고초를 겪은 아서에게 기사는 자연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보통 때였다면 지금쯤 카를로스에게서 ‘또 시작이군.’ 따위의 말이 들려왔을 것이다.

책임지지 못할 호의를 베풀지 마라, 의지할 데가 없는 것들에게 어설픈 온정은 차라리 독과 같다. 카를로스는 제 기사에게 그런 소리를 하곤 했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보통 때와 조금 달랐다.

며칠 전 카를로스가 건넨 말은 평소의 것과는 아예 결을 달리했다. 차라리 전처럼 가벼운 충고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마는. 듣고 흘려 넘길 충고가 아닌, 정식으로 떨어진 명령이었다.

「리엘. 네가 잘하는 그대로 해.」

「그래, 그거. 불쌍하고 갈 데 없는 것들을 돌봐 주고, 너 없이 못 살겠다 매달리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리해서 형님이 달아나고 싶은 순간에도 네 손을 붙잡게 만들어라.」

「어려운 명도 아닐 테지. 원래 네가 곧잘 하던 짓이지 않나.」

그러고 나선 ‘시중들 때를 제외하고선 형님께 손끝 하나 대지 마라’는 경고가 이어졌다.

서늘하게 노려보며 경계하는 모습에 가브리엘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알 수 없어 한숨을 쉬었더랬다.

카를로스의 난데없는 명에 그가 무어라 답을 했던가, 아니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던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다지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일뿐더러 기실 제 답이 무엇이었든 간에 달라질 것도 없었다.

주군이 명을 내리면 기사는 받아들인다. 간단한 법칙이었다. 그 후에 따라올 죄악감은 따르는 자의 몫일 뿐이었다.

“눈을 감고 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목욕을 끝마치고, 가브리엘이 건넨 권유에 아서가 순순히 눈을 감았다. 아서는 굳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걸을 기력도 없어 가브리엘의 품에 안겨 욕실을 빠져나왔다.

눈을 감은 아서는 곤히 잠든 척 시늉을 했다. 원한다면 정말로 잠이 든 것처럼 위장할 수는 있지만, 카를로스를 완벽히 속여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규칙적으로 그러나 은근히 티가 날 정도로 불규칙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굳이 이런 수고를 들이는 목적이야 뻔하다. 카를로스의 기분을 들쑤시기 위함이다. 아서는 틈이 날 때마다 카를로스를 건드리고, 제 유치한 도발에 카를로스가 반응을 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곤 했다.

사실상 아서는 특정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기엔 여러모로 최악인 인간이었다. 삐뚤어진 애정관을 가졌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오늘 카를로스가 자신을 원하였다 하여 그것이 다음 날까지 이어질 거라고 낙관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는다는 게, 아서에겐 괴상하고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유치한 짓이란 걸 알면서도 끝없이 카를로스를 시험했다. 저 때문에 동요하고 괴로워하는 얼굴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여겼기에 상대가 괴로워할수록 차오르는 충만감을 느꼈다. 비틀린 집착이었다.

아서는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쉽게 유혹해 냈다. 마음먹고 연기한다면야 원하는 상대를 침대로 끌어들이기까지는 쉬웠다.

그러나 그 끝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원할 것처럼 굴던 이들도 결국은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결별을 선언했다.

아서도 이런 제 행동이 정상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몇 번은 고쳐 보고자 마음먹어 본 적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런 게 쉽게 가능했다면 오늘날까지 이러고 있진 않았을 거였다.

그런 점에서 카를로스는 아서의 맞춤형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쉬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면서, 한 번 손에 쥔 것은 결코 내려놓지 않는 집요함마저 가졌다.

카를로스가 아서에게 집착할수록 아서 역시도 비틀린 소유욕에 불을 붙였다. 좀 더 질투하고, 좀 더 괴로워했으면.

오만하던 눈동자가 여유를 잃고 일그러지는 순간이 좋았다. 발끝부터 저릿한 감각이 차오르는, 어떤 오르가슴보다 황홀한 충만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첫날처럼 과하게 선을 넘진 않을 생각이었다. 아서는 가능한 한 지금 이 즐거운 나날을 오래 누리고 싶었다. 카를로스가 얼마나 자신을 참아 줄지 알 수 없으니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건 자제해야만 했다.

아서는 작은 아쉬움을 털어 내고자 가브리엘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붙이자 의도했던 대로 곧바로 침실 분위기가 차게 가라앉았다.

빠른 속도로 서류를 넘기던 카를로스의 손이 뚝 멈추었다.

‘질투하지 마, 카를로스. 네가 명한 일이잖아.’

아서를 침상 위로 내려놓은 가브리엘이 입 모양만으로 뜻을 전달했다. 기사는 여 보란 듯 아서의 몸 위로 꼼꼼히 이불을 덮어 주고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기사가 침대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카를로스는 여전히 아서가 있는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고작 시중을 드는 것에도 저토록 경계하듯 노려보면서, 대체 왜 아서를 길들이라는 취지의 명을 건넨 건지 가브리엘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명령은 명령이었으니 카를로스가 명령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가브리엘은 충실히 황태자를 보좌할 요량이었다.

침대 주변 정리를 마친 가브리엘이 아서에게서 멀어지자 카를로스의 눈도 펼쳐져 있던 서류로 돌아갔다. 빠른 속도로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본래의 카를로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최근 들어 이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2황자 카를로스가 이 제국의 누구보다도 황제가 되기에 걸맞은 인물임은 분명했다. 기사는 그것만큼은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이대로 방관해도 괜찮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제 형제를 죽이려 드는 황태자와, 그런 황태자에게 집착하는 카를로스. 두 형제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그려지는 것이라곤 전부 비극적인 장면뿐이었다.

잠시 복잡한 눈으로 아서를 내려다보던 가브리엘이 이내 걸음을 옮겨 카를로스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