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425화 (423/425)

# 425

<귀환무사 425화>

귀환무사 2부

200화

콰지직!

“크아악!”

신마대주 악승의 대도가 도강을 사방으로 뿌려 댔다.

신마대가 동시에 휘두른 검에서 뿜어져 나온 강기가 일제히 적들을 쓸고 지나갔다.

퍼퍼퍽!

“으아악!”

“크악!”

뒤이어 화산의 제자들이 악승의 머리를 넘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매화무적 진유의 태청검이 매서운 화산의 힘을 뿌려 대자 주변은 죽어 가는 적들의 비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후, 후퇴하라!”

“도주해라! 서장으로 돌아가라!”

전의를 상실한 적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망은 꿈도 꾸지 마라, 쥐새끼들.”

협곡 위에서 모두가 전장으로 내려섰다.

자비를 베풀지 말라는 혁련천후의 명이 있었기 때문일까?

모두는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했다.

온화했던 검후마저도 적의 목숨을 사정없이 거두었다.

질세라 백선녀 영호수란과 아리엘의 공격이 도주하던 적들을 휩쓸었다.

콰지직!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와 왕전, 북궁천소의 대도, 조윤의 창은 죽음을 부르는 악마의 손짓과도 같았다. 관산악은 칠백 년을 묵혔던 살기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누구보다 많은 적들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흑야는 적과 함께 달리며 도주하는 적의 수뇌들의 숨통을 차례로 끊었다.

“와아아!”

“적들을 쫓아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는 신마의 명령이 계셨다! 모조리 죽여라!”

더 이상 전쟁이라 할 수 없는 살육전이 협곡 전체로 번져 갔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혁련천후의 눈빛은 언제나 그렇듯 무심했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적이 나타나 강호를 혼란에 빠뜨릴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래도 혁련천후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 백 년 이내로는 더 이상의 전쟁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뒤쪽으로 돌아갔다.

눈 덮인 숲이 미약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머금었던 미소가 짙어졌다.

“다쳤느냐?”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그때였다.

숲이 살짝 흔들리며 누군가가 눈 속에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도주하던 켈베로스를 육탄으로 막아섰던 아이는 바로 카루가였다.

“헤헤! 조금 아픈데, 괜찮아.”

혁련천후는 양팔을 벌렸다.

“어서 오너라, 카루가!”

***

항주의 북쪽, 서호는 수많은 시인묵객들과 선남선녀들의 발걸음이 일 년 내내 잦은 곳이다.

집을 짓고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게 중원인들의 소망일 정도로 항주는 중원제일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오늘도 서호는 노를 젓는 연인들로 넘쳐 났다.

찰랑! 찰랑!

봄바람에 찰랑이는 물결을 가르며 오가는 작은 배들은 저마다 사랑이 넘쳐 났다.

오늘따라 유달리 많은 배들이 서호의 수면 위를 가득 떠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커다란 배가 서호의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르고 지나갔다.

백색 일색으로 치장된 유람선이었는데 그 화려하기가 마치 큼지막한 보석이 수면 위를 가르는 듯 보였다.

배가 지나가면 모든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그것은 배가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선상에서 서서 서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한 여인 때문이었다.

눈처럼 흰 은발을 바람에 날리며 선 여인은 마치 한 마리 학이 내려선 듯 고고하면서도 우아함을 뿌려 댔다.

간혹 바람에 살짝 날린 머릿결을 치우려 손이라도 올리면 그 폭발적인 자태에 넋을 놓은 사내들은 여인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수많은 배들이 그녀가 탄 배를 향해 뱃머리를 돌려놓고 있었다.

함께 온 여인들의 질투 섞인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사내들은 그녀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노를 저었다.

다가가던 모든 사내들의 얼굴에 극도의 실망감이 드러났다.

여인의 옆에 무척 귀여운 꼬마 아이가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모두는 그 아이가 여인의 아들이라고 여겼다.

사내들의 탄식이 바람에 날려 들려오자 꼬마 아이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다.

“저놈들 배를 전부 뒤집어 버릴까?”

“원래 예쁜 사람을 보면 다 저러는 법이야.”

“쳇! 아리엘보다 그분들이 더 예쁘잖아.”

“흥! 그래도 내가 더 젊어.”

“일러준다?”

“일러라.”

카루가는 아리엘을 가볍게 노려보며 입을 삐죽였다. 그때 검후와 영호수란이 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서호는 다시 뜨거운 기운으로 몰아쳤다. 탄식이 다시 탄성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찬 바람이 몸에 해로울 거야. 어서 들어가.”

검후가 아리엘의 어깨에 겉옷을 걸쳐 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마나로 주변을 차단하고 있어서 끄떡없어요.”

“그것도 태아에겐 좋지 않아.”

“안은 답답해요. 그냥 이곳에 있을래요.”

“그래요, 언니. 누구 핏줄인데 고작 이런 바람 따위에 영향을 받겠어요.”

“그런가?”

“호호호!”

영호수란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머금었다.

서호를 찬찬히 둘러보던 영호수란이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사방에서 쏘아 드는 사내들의 뜨거운 눈빛 때문이다.

“흥! 보는 눈들은 있어 가지고.”

카루가가 해죽 웃으며 말했다.

“아리엘이 틀렸어.”

“뭐가?”

“조금 전보다 반응이 더 뜨겁잖아. 그러니까 다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에라이.”

퍽!

카루가의 뒤통수에 아리엘의 주먹이 작렬했다.

“쪼그만 게 못하는 말이 없어.”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렸다. 한 대 더 맞아 볼래?”

아리엘의 주먹이 뜨거운 마나를 발산했다.

머리를 긁적이는 카루가의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맞아도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그만해. 이리 와, 카루가.”

“고약해, 아리엘.”

검후가 끌어안으며 맞은 부위를 어루만져 주자 혀를 날름거린 카루가는 검후의 뒤로 몸을 숨겼다.

“너, 그러다 또 맞는다?”

“메롱!”

“그만해. 다 왔어.”

배가 멈추었다.

선착장에서 누군가가 공손하게 말했다.

“마차를 대령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장대한 체격에 화산의 무복을 걸친 무사들이 좌우로 줄지어 늘어섰는데 그 끝에 화산의 매화무적 진유가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진유의 뒤에 오색찬란한 치장을 한 육두마차가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족이나 탈법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차였다.

검후가 물었다.

“모두들 기다리고 계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숙조와 가짜 사부들께선 함께 오시지 않으셨는지요?”

혁련천후 등이 보이지 않자 진유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검후의 손을 잡고 섰던 카루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

“……뭐?”

“잔다니까.”

“주무신다고?”

“응, 성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술만 마시더니 지금 배 안에서 전부 쭉 뻗어 있어.”

진유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허…… 혼인식이 당장 한 시진 앞인데…….”

“걱정 마요. 그 안에는 멀쩡하게 깨어날 테니까.”

“신교의 교주께서도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계십니다.”

이번에도 카루가가 대답했다.

“그 털북숭이 아저씨도 저 안에 있어.”

“그럼, 함께 오셨단 말이냐?”

“응, 제일 먼저 취해서 자던데? 얼굴은 제일 무섭게 생겼는데 아무래도 제일 약골인가 봐.”

진유는 웃음을 참았다.

그때 배에서 혁련천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열하고 섰던 모두가 일제히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어서 오십시오, 사숙조님.”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방을 응시했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예, 모두가 사숙조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도 준비를 마쳤느냐.”

“늦으신다고 불만이 대단하십니다.”

피식.

혁련천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때 뒤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맨 앞에 카루가가 제일 무섭게 생겼다고 했던 신교의 교주, 연유극이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걸어 나왔다.

그에 반해 팔왕은 말짱했다.

“술 냄새야.”

카루가가 손으로 코를 쥐며 인상을 찡그렸다.

연유극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해 보이고는 혁련천후의 곁에 섰다.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늦는다고 해서 별스러울 게 있겠소.”

“허허,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신마께서 저와 사돈이 되시다니요.”

“마음에 들지 않소?”

“허허, 좋아 죽겠습니다.”

오늘은 혁련소와 연소민이 혼인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해서 식을 올리는 곳에는 신마성과 화산, 그리고 신교의 고수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무림맹주와 수뇌부들도 축하를 위해 하루 전에 이미 도착을 한 상태였다.

“축하드립니다, 주공.”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흐흐흐.”

“할머니가 신부보다 더 예쁘면 반칙 아닙니까.”

팔왕이 저마다 한마디씩 건넸다.

검후 독고혜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다들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으니 어서 가세요.”

“그럽시다.”

혁련천후가 배에서 내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저만치 앞에서 화사하게 차려입은 남녀가 바삐 뛰어왔다.

혁련소와 연소민이었다.

연유극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눈물을 감추려 애써 노력했지만 이미 다 들킨 뒤였다.

혁련천후는 검후와 나란히 걸었다.

검후가 물었다.

“이제 곧 할아버지가 될 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그냥저냥…….”

“무슨 대답이 그래요.”

“당신은 어떻소.”

“저도 그냥저냥…….”

뒤를 따르던 모두가 웃었다.

하늘에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모두가 우러르는 신마의 전설이 깃든 곳. 바로 신마성을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귀환무사 2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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