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
<귀환무사 421화>
귀환무사 2부
196화
“여기가 더 잘 보이는데요.”
제자들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좁고 험한 좋은 길목을 버리고 굳이 넓은 뒤쪽으로 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 빛이다.
진승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분의 명령이시다! 이놈들아!”
“아!”
“예! 빨리빨리 움직이자!”
곳곳에서 매복했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하얀 백색 무복을 걸친 터라 주변 환경과 동화되어 쉽사리 눈에 띄지가 않았다.
다른 곳보다 높고 가파른 곳이어서 적과 교전이 벌어지면 지형적인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해서 대부분이 젊은 무사들이었다.
반면, 이곳보다 위험한 곳엔 상대적으로 강한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조심해라.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저승길이다, 이놈들아.”
모두가 진승을 따라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누군가가 그곳에 모습을 나타냈다.
풀썩!
하얀 털옷을 입고 연방 오들오들 떠는 청년과 소년이었는데, 놀랍게도 가인과 카츄였다.
“으…… 여긴 너무 춥다. 괜히 왔나 봐.”
“흐…… 춥다.”
오들오들 떠는 둘의 뒤쪽에서 아리엘과 왕전이 나타났다.
왕전은 혁련천후의 명령에 의해 아리엘의 호위무사로 임명이 된 상태였다.
카츄가 물었다.
“누나! 우리 여기서 뭐 해?”
“나쁜 놈들을 물리쳐야지. 계곡이 좁고 높아서 이곳까지는 올라오지 못할 거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위험해도 상관없어. 우리도 제법 강해졌으니까.”
가인이 어깨를 으쓱하자 아리엘이 웃으며 대답했다.
“여긴 그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자들이 많은 곳이야. 쉽게 생각하면 큰코다치니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해.”
“그렇게 강한 자들이 많아?”
“그렇다니까.”
왕전이 주변을 살펴보고는 가인에게 말했다.
“날이 추우니까 화염 계열보다는 아이스 붐인가 뭔가가 더 효과적일 거다.”
“아이스 붐도 괜찮고 파이어 볼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무엇이든 그들에겐 생소한 공격이 될 테니까 뭘 사용해도 쉽게 막아 내진 못하겠죠. 더욱이 지형까지 이런 좁고 높은 협곡이면 위력이 두 배는 더 강해질 겁니다.”
가인이 자신감을 드러내었다.
아리엘이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그들과의 해후가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왕전히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좋아! 얼리든 굽든 마음대로 해라. 뒤처리는 내가 깨끗하게 해 주마.”
“그럼 여긴 우리 넷만 있는 건가요?”
아리엘이 카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우리만 있어도 아무도 이곳을 통과하지 못할 거야. 이번 전쟁만 끝나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게 될 거니까 힘내, 카츄!”
“응.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숨을 만한 곳을 만들어 주마.”
“저도 도울게요.”
카츄가 나서자 왕전이 고개를 저었다.
왕전은 곧 몸을 은신할 만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퍽! 퍽!
손짓 한 번에 엄청난 양의 눈이 날아갔다.
공간이라야 장력으로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몸을 숨기는 게 전부였지만 내린 눈으로 둥그렇게 위장하자 완벽한 매복처로 변신했다.
“와. 따뜻하다.”
“그러네. 눈 속이 이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네.”
“적들이 나타나면 신호를 보내 줄 테니 그동안에는 못다 한 회포나 푸십시오.”
“고마워요.”
왕전은 세 남매를 생각해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졌다.
한편 다른 곳에서도 작전은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군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자신들만 있었다면 별다른 작전이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연합군의 무사들을 위해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작전을 세워야 했다.
해서 가장 강력한 고수들인 팔왕을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시키고 그 뒤쪽은 정도맹의 중진들이 배치하는 형태로 진을 편성했다.
젊은 청년 무사들은 혹시 모를 적의 기습을 대비하여 후미를 맡겼다.
혹시라도 적이 난입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만 팔왕의 눈을 뚫고 후미로 돌아갈 능력의 소유자는 거의 없다고 봤기에 걱정을 하는 청년 무사들은 거의 없었다.
휘이잉!
눈발은 점점 거세졌다.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대는 바람에 시계는 불과 십장을 넘어서지 못했다.
혁련천후는 무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검후와 함께 서 있었다.
“마지막 싸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검후는 혁련천후의 팔을 꼭 안고서 그렇게 말했다.
“향후 백 년 동안은 감히 중원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오.”
“그런 말을 하니 꼭 중원 무림의 수호자처럼 보여요.”
“그런가.”
“아무튼 보기 좋아요. 사실 사람들이 당신을 신마라고 부르는 게 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하필이면 마가 뭐예요, 마가.”
“모두가 꿈꿨던 전설을 이었지 않소. 그 호칭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는 당신뿐일 거요.”
“그런가요?”
검후가 담담히 웃었다.
그러고는 다른 말을 꺼냈다.
“연 교주도 하루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진천 님이 잘하고 계시겠죠?”
“놈의 능력이라면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는 진전을 봤을 것이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여기들 있었는가.”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검후가 재빨리 혁련천후에게서 떨어졌다.
십전무제와 십지신검이 다가왔다.
십전무제의 등 뒤에서 영호수란이 고개를 내밀며 혀를 내밀었다.
“다 봤거든요?”
“우리가 뭐 나쁜 짓을 했나?”
“하긴, 부부 사이에 안는 게 대수겠어요.”
영호수란이 토끼처럼 뛰어 와 검후의 팔을 안았다. 그러고는 뒤로 끌어당겼다.
“여긴 남자들끼리 얘기하게 놔두고 우린 다른 곳으로 가요.”
“어딜?”
“기왕이면 젊은 남자들이 있는 곳이 좋겠죠? 얼른 가요!”
영호수란이 끌다시피 검후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십전무제와 십지신검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허허! 내가 성주에겐 할 말이 없네. 저렇듯 철이 없으니…….”
혁련천후는 미소로 화답했다.
십지신검이 물었다.
“벽력탄의 사용을 금했다고 들었네. 일천에 육박하는 적을 감안하면 벽력탄이 꽤 효과적일 텐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혁련천후가 담담히 대답했다.
“벽력탄을 사용하면 자칫 군의 개입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네의 그…… 셋째 부인 말인가?”
십지신검은 특히 셋째 부인이라는 대목에 힘을 줘서 물었다.
혁련천후는 내심 씁쓸히 웃었다.
하긴 동생들을 생각하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것은 영호수란의 증조부인 십전무제도 마찬가지였지만 내색을 않을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있습니다. 곧 그 아이들의 능력을 보게 될 겁니다.”
“흠! 진천보다 강력한 환술을 펼치는 존재가 있었다니 솔직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네.”
십전무제가 아리엘을 거론하며 새삼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는 아리엘의 마법을 환술로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이라는 단어조차 들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검술도 초절정에 근접한 수준입니다.”
“크험! 지금 삼부인 자랑을 하는 것인가?”
십지신검이 다소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십전무제가 껄껄 웃었다.
혁련천후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 그게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그때였다.
팍!
주변 공간이 흔들리더니 아리엘이 나타났다.
“엇!”
“헛!”
텔레포트가 뭔지를 전혀 모르는 십전무제와 십지신검이 화들짝 놀랐다.
깜짝 놀라는 둘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 그녀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혁련천후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으려니 심심해서 한번 와 봤어요. 아직 멀었나요? 언니들은 어디 있죠?”
“중요한 곳인데 이렇게 자리를 비우면 곤란하지.”
“금방 갈 거예요. 카츄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먹을 것 좀 가지러 왔어요. 가 볼게요. 나중에 봐요.”
아리엘의 표정에 섭섭함이 묻어났다.
여전히 혁련천후의 무심한 어조가 그녀는 익숙하지 않았다.
혁련천후도 괜히 마음이 쓰였다.
해서 위로를 해 주려고 했는데, 아리엘이 그만 사라져 버렸다.
십전무제와 십지신검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요술처럼 보일 뿐이었다.
“도대체 저런 경공술이 있었다니…….”
“제 눈에는 그저 환술처럼 보일 뿐입니다.”
“나 역시 그러네.”
십지신검을 바라보는 혁련천후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텔레포트라고 이형환위보다 몇 단계 위의 경공술입니다. 저도 못하는 겁니다만…….”
“텔레포트? 그것 참 해괴한 무공명도 다 있군그래.”
“그건 그렇고 또 셋째 마누라 자랑인가?”
“……예?”
“자네도 못하는 것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십지신검의 불평에 혁련천후는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하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 * *
푸드드득!
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은밀하게 이동하던 홍교의 고수들은 이동을 멈추고 전방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일백에 달하는 그들은 가장 선봉에서 사천당문을 향하는 중이었다.
홍교의 장로인 혈마불을 수장으로 하여 이른 새벽에 태백산을 넘은 그들은 전방에 좁은 협곡이 나타나자 재빨리 몇을 그쪽으로 보내어 지형을 살피게 했다.
수색을 나섰던 고수들이 돌아와 혈마불에게 보고했다.
“적의 매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은밀하게 이동을 하는데 제깟 놈들이 어떻게 간파를 할 수 있겠느냐. 좋다! 빠르게 협곡을 벗어난다!”
“예!”
홍교의 고수들이 다시 이동을 재개했다.
대부분이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답설무흔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라 허리까지 쌓인 눈은 그들의 이동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파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