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
<귀환무사 420화>
귀환무사 2부
195화
진승은 눈물을 흘렸다.
죽은 무사들은 그와 같은 부대의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향을 다오.”
혁련천후는 향을 꽂았다.
그다음에 술을 따르고 천천히 절을 했다.
화산의 제자들뿐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숙연한 자세로 그러한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절을 마친 혁련천후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휘이잉!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상당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죽은 제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위패를 말없이 바라보던 그가 일어섰다.
그리고 어디론가 걸었다.
담대소천과 왕전이 그의 옆을 호위하며 걸었다.
다른 팔왕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혁련천후의 명령을 받고 어디론가 떠난 까닭이었다.
그가 지나가는 동안 연무장의 모든 이들은 말문을 열지 않았다.
사천당문의 본관으로 그가 사라지고서야 모두는 수군거렸다.
“분노하신 거 같은데.”
“그래. 나도 그렇게 봤다. 보는 내가 다 가슴이 떨리더라.”
“잘 된 일이지. 저분이 분노하면 우리야 좋은 일이 아니냐.”
“하긴. 하여간에 세외 놈들은 이제 다 뒈졌다니까.”
* * *
신강의 겨울은 혹독했다.
눈은 보름을 쉬지 않고 쏟아졌다.
유례가 없었던 폭설에 신강 전체가 백색 일색으로 변해 버렸다.
신교에도 폭설은 쏟아졌다.
험한 지형에 세워진 그곳이 백색 일색으로 변한 광경은 천하절경과도 같았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고 사라졌던 거대한 신교의 깃발이 첨탑의 꼭대기에서 바람에 휘날리며 위용을 자랑했다.
그 신교기 옆에 쏟아지는 폭설을 맞으며 둘이 서 있었다.
진천은 중원의 본토가 있는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우는 진천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던져 놓은 채 간혹 그를 돌아보았다.
간간이 드러나는 그의 눈빛은 감탄, 그 자체였다.
철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제발 잊지 말거라.”
“교주께서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살아 있어야 좋은 거지. 아직은 확신을 하기 힘들어. 다만 살아 있을 거라 추측을 할 뿐이니까.”
철우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무조건 살아 계실 거라 믿습니다. 그분은 결코 그렇듯 허망하게 가실 분이 아닙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둘은 지금 신교주 연유극과 연무진에 대한 말을 나누는 중이었다.
진천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철우는 그를 무척 공손하게 대했다.
연소민이 신마성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말은 철우에겐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진배없었다.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신교를 이젠 그 누구도 무시하거나 건들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교주 연유극과 연무진이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도 생겨났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해서 철우는 지금 이 순간에 제일 행복했다.
“놈들을 쫓아야 해. 당연히 사천 쪽으로 갔을 거다.”
“무사들을 대령시키겠습니다!”
“아니야. 너와 나, 둘만 가면 된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허리를 숙인 철우는 그대로 첨탑을 뛰어내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진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어째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진천은 자신이 더 강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기존의 무력에다 이계에서 배운 마법까지 더해졌으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아니, 딱 한 사람은 예외다.
“멋지게 쏟아지는군!”
진천은 쏟아지는 눈을 즐기며 한동안 첨탑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계에서의 겨울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이제 놈만 찾아서 죽여 버리면 다 끝나는 건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진천이 이내 폭설 속으로 사라졌다.
휘이잉!
제5장 전설은 신화가 되고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로 인해 사천을 적셔 가던 비가 갑자기 눈으로 돌변했다.
눈은 바람과 함께 폭설로 이어졌고 세상은 온통 백색 일색으로 변해 갔다.
어른의 허리 높이까지 쌓인 눈은 전쟁의 향방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했다.
마차가 움직일 수가 없는 까닭에 보급이 완벽하게 끊겨 버린 세외 세력들은 당장에 식량을 걱정할 지경이 이르렀다.
게다가 폭설로 인해 짐승들마저 꽁꽁 숨어 버린 까닭에 사냥마저 할 수가 없었느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혁련천후는 며칠 동안 퍼붓는 눈을 보고는 수뇌부들과 논의에 들어갔다.
모두는 혁련천후의 입을 주시했다.
혁련강은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는 뒷자리로 물러나 앉았다.
그는 그저 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혁련천후가 좌중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인근의 고을마다 매복을 해야겠소.”
혁련천후의 말에 맹주 남궁기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일반 백성들이 사는 고을에 말이오?”
“그렇소.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적들은 조만간에 대대적으로 약탈에 나설 것이오.”
“그게 어째서…….”
모두는 혁련천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혁련천후가 좌중을 한 차례 쓸어 보고는 말을 이었다.
“폭설 때문에 보급이 원할치 못하다는 건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오. 게다가 이 정도 눈이면 산짐승들도 보금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못할 터, 그렇다면 놈들이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약탈밖에 없을 것이오.”
“아!”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제야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적용백이 감탄하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적들도 우리가 일반 고을에 매복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할 터이니, 강한 고수들을 주축으로 내세운다면 크나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소.”
“바로 그것이오.”
남궁기가 거들고 나섰다.
“하면 당장에 매복조를 편성하고 맡아야 할 고을부터 정합시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갔다.
잠시 후, 모두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각자가 맡은 부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부대를 편성해서는 각각 맡은 고을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혁련천후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약탈을 계획하고 인근 부락들을 찾아다니던 적들이 미리 매복하고 있던 정도맹의 고수들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거기에 곳곳에 산발적으로 주둔하고 있던 거점까지 발각이 되면서 무림맹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죽어 간 자들의 수만 수백을 넘어가자 홍교의 아밀랍타는 다른 이들의 원성에 크게 시달려야 했다.
특히 더 많은 피해를 입은 문파의 수장들이 더는 미루지 말고 총공격을 하자는 강경론을 들고 나오면서 세외 세력은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아밀랍타는 처음보다 확실한 기회가 아니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며 단호히 버텼지만 다른 이들의 성화를 감당하지 못했다.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에서 물러나라는 말까지 나오자 결국 아밀랍타는 강경파들의 뜻을 받아들여 총공격을 결정하고야 말았다.
목적지는 정도맹의 본단에서 사천당문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중원 무림의 주축 세력이 있음을 진즉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아밀랍타는 야음을 틈타 총공격에 나섰다.
그 와중에 몇몇 무림문파가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전체적인 전황에서 보면 그리 큰 피해라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세외 세력의 그러한 움직임마저도 혁련천후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상대는 따로 있었다.
“놈은 반드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세외 세력과의 전쟁보다 더 중요한 일전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 대상이 누군지는 오직 그와 팔왕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쿠쿠쿵!
바야흐로 건곤일척의 마지막 승부가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
* * *
사천에서 태백산을 향하는 곳엔 귀령협(鬼靈峽)이라는 좁고 높은 협곡이 있다.
세외 세력들이 사천당문을 향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그곳은 고대 제국 시절부터 죄를 지은 자들을 참수하고 묻는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라 예로부터 귀신이 자주 출몰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귀령협에도 폭설은 어김없이 쏟아졌다.
휘이잉!
부는 바람이 귀신의 울부짖음처럼 들려온다.
지형 때문에 발생한 회오리바람이 주변 숲을 몰아치자 쌓인 눈이 눈사태를 일으키며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광경이 자주 일어났다.
콰르릉…….
“엄청나다.”
“깔리면 뼈도 추리지 못하겠군.”
협곡의 양쪽 절벽 위에 백색 무복을 걸친 무사들이 협곡 안을 내려다보며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중원 연합군의 무사들이었다.
이미 새벽부터 이곳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그들은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독한 화주를 마시며 자연이 만들어 내는 장관을 감상했다.
말이 감상이지 결코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곧 있으면 적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를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이곳으로 올까?”
“이곳이 아니면 열흘 가까운 시간을 돌아와야 한다. 보급이 끊겼으니 급한 마음에 당연히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승부가 갈리겠군.”
“그렇겠지.”
무사들의 얼굴이 은은한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건곤일척의 승부가 점점 다가오자 그들은 긴장감을 몰아내고 각오를 다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삐익!
건너편 협곡에서 호각 소리가 들렸다.
“뭐야? 벌써 놈들이 왔나?”
“젠장! 굶주린 놈들이 뭐가 이리도 빠르냐?”
모두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때 좌측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나타내며 무사들에게 말했다.
“협곡 뒤쪽으로 이동한다.”
화산의 진승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대화하던 무사들도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유기적인 협력이 가장 절실한 때여서 같은 사문 위주로 부대를 편성하는 바람에 함께 이곳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뒤쪽으로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