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귀환무사 419화>
귀환무사 2부
194화
“노야께서 납신 것을 안다면 모두가 사기 백배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남궁기는 진정으로 그를 반겼다.
중원 연합군으로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혁련강은 신마에 버금가는 절대고수가 아닌가? 그 존재만으로도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게 분명하다.
적용백이 공손하게 말했다.
“미리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사람을 보냈을 것을 말입니다.”
“허허!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 그럴 수는 없지 않겠소. 난 괜찮으니 괘념치 마시오.”
사천당문의 곳곳에 불이 밝혀졌다.
자던 자들에게도 혁련강이 왔다는 소식이 들어간 것이다.
모두가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청룡단의 청년들과 연고가 있던 사람들은 안위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곳곳에서 탄식이 흘렀다.
살아온 자들과는 달리 죽음을 접한 지인들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생존을 확인한 자들은 혁련강과 북궁천소에게 감사를 표하느라 연방 허리를 숙였다.
슬퍼하는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숙연하게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누군가 빠르게 뛰어 오며 소리쳤다.
“오셨습니다! 오셨습니다!”
모두가 무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사는 천지개벽이라도 본 듯 반쯤 얼이 빠진 모습으로 빗속을 뚫고 뛰어왔다.
“누가 왔단 말이냐?”
“시, 신마께서 오셨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이냐?”
“오오! 신마께서 진정 오셨단 말이냐?”
혁련강이 미소를 머금으며 일어섰다.
“허허허, 생각보다 빨리 왔군그래.”
“그렇습니다, 어르신.”
조윤과 흑야, 북궁천소가 일어섰다.
신마성의 무사들이 좌우로 늘어져 혁련천후를 맞을 준비를 했다.
살아 있는 강호의 전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꿀꺽.”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조금이 지나자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혁련천후.
모두의 눈에 희열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신마성의 무사들이 내지르는 군례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충!
* * *
하룻밤을 꼬박 퍼부은 폭우는 대지를 질펀하게 변화시켰다.
강호의 고수들이 아니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변해 버린 진창길을 이동하는 마차의 행렬이 있었다.
사천의 서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이동하는 마차들은 뭔가를 잔뜩 싣고 있었는데 마차 주변은 무기를 든 무사들 수십 명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푹푹 빠져드는 마차 때문에 이동 속도는 어린아이의 걸음 정도로 느렸다.
선두에서 온갖 치장을 한 말에 몸을 실은 인물이 연방 짜증을 부렸다.
“속도를 내어라! 이대로 가면 제시간에 당도하지 못한단 말이다!”
짜증을 부린다고 길이 마르면 얼마나 좋을까?
무사들이 마차를 손으로 밀었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렸다.
“빌어먹을! 그냥 인근 마을을 약탈하면 될 것을 보급은 무슨 얼어 죽을 보급이란 말이냐!”
“전주님! 말들이 너무 지쳤습니다! 이대로 가면 곧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게 분명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가심이…….”
전주라 불린 자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말이 쓰러지면 모든 게 틀어져 버린다.
방법이라면 무사들이 짐을 들고 가면 되지만 천 리 길을 그렇게 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쉴 것을 허락했다.
“반 시진 동안 말들의 체력을 보충시키고 이동할 것이다! 주변을 철저히 경계하고 보급품에 물이 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도록 해라!”
전주라는 자의 고함이 막 끝나 갈 때였다.
퍽!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 무엇인가가 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피가 튀며 거대한 육신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적이다! 적의 기습이다!”
챙! 챙!
무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란을 떨며 혼란스러움을 보였다.
쐐애액!
“컥!”
“크악!”
털썩! 털썩!
다시 몇 발의 파공성이 울리며 꽤 강해 보이던 자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좌우 숲속에서 그림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거대한 칼을 든 왕전의 사나운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마치 선녀처럼 아름다운 이국의 미녀와 화산의 무복을 걸친 다섯이었다.
그 옆에 정도맹의 무복을 걸친 청년 무사들도 보였다.
“많이도 가져간다. 망할 새끼들!”
늘어진 마차들을 보며 인상을 그린 왕전이 가장 가까이 섰던 마차를 향해 대도를 휘둘렀다.
번쩍!
“피해라!”
콰지직!
마차 주변을 섰던 자들이 기겁을 하고서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마차가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며 날아갔다.
또다시 강기가 날아들었다.
쾅!
히히힝!
“크아악!”
말까지 핏물로 화해 버리는 가공할 광경에 호송하던 무사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 엄청난 고수다.”
당장에 달려들어도 시원찮을 그들은 왕전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전왕…….”
왕전을 알아본 모양이다.
왕전이 적들을 향해 특유의 광포함을 한껏 드러내었다.
“무기를 버리는 놈은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 단, 대항하면 어떻게 될지는 네놈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왕전이 사나운 범처럼 으르렁거렸다.
검을 뽑았지만 달려들 생각을 못하고 있던 자들이 갈등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들은 세외 세력의 본영으로 보급물자를 호송하던 자들이다.
당연히 적이 나타났다면 불문곡직, 싸워야 한다.
하지만 적도 적 나름이다. 세외에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팔왕의 한 명, 그것도 가장 사납기로 유명한 전왕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갈등은 당연했다.
갈등하는 것을 본 왕전이 옆의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빛을 주었다.
화려한 은발을 자랑하는 그녀는 다름 아닌 아리엘이었다.
아리엘이 앞으로 나섰다.
왕전이 그녀를 향해 히죽 웃었다.
“흐흐흐. 주모께서 제대로 한번 보여 주시지요.”
“알았어요.”
무엇을 하려는 걸까?
그녀는 양팔을 허공으로 세웠다.
적아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허공에서 뇌전 같은 기운이 일렁거리더니 그대로 마차들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콰콰콰쾅!
마차 네 대가 연속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더니 산산조각으로 화해 날아갔다.
뇌전 한 발이 무사들의 측면에 떨어졌다.
콰아앙!
“으아악!”
“크아악!”
대여섯이 피를 뿌리며 날아가더니 그대로 늘어졌다. 즉사를 한 것이다.
화르르르…….
불길에 휩싸인 마차의 파편들이 빗물 속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활활 타올랐다.
“으, 저럴 수가.”
순간 주변이 적막감으로 휩싸였다.
놀라기는 적뿐만이 아니라 아리엘과 함께 온 화산오웅과 정도맹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태어나 저런 무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왕전이 다시 적들을 향해 싸늘히 외쳤다.
“한 번 더 보여 주랴?”
쨍그랑!
적들이 무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더니 이내 모두가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왕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여간에 쳐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나 잘했죠?”
“흐흐흐! 정말 잘하셨습니다!”
왕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아리엘도 환하게 웃었다.
“놈들을 묶어라!”
“귀찮은데 그냥 죽이죠?”
찌릿!
진청이 말하고 나섰다가 왕전의 매서운 눈길을 받고는 누구보다 빨리 적들을 포박했다.
* * *
사천당문으로 들어서는 마차의 행렬을 보며 군웅들은 환호했다.
왕전 등이 적의 보급 부대를 털러 갔다는 것을 모두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빠른 시간에 돌아올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바였다.
“포로까지 잡으셨네. 역시 전왕이시다!”
“아군은 옷에 흙먼지 하나 묻지 않았잖아? 도대체 어떻게 잡으신 거지?”
젊은 무사들이 놀란 눈으로 모두를 응시했다.
“표정들하고는.”
왕전이 무사들을 향해 짐짓 눈을 부라렸다.
“어머. 오셨네?”
밝은 표정으로 들어서던 아리엘은 갑자기 훌쩍 뛰어올랐다.
그곳에 검후와 영호수란이 있었다.
“언니들!”
검후가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고했어.”
“별로 한 것도 없었던 걸요.”
“그건 아리엘이 강해서 그런 거야.”
검후는 포근하게 그녀를 맞았다.
영호수란은 여전히 샐쭉한 표정이지만 아리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었다.
“여자가 칠칠맞게 이게 뭐야.”
“전부 우리를 쳐다봐요.”
“너희들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거야. 그만 들어가자. 아리엘은 식사도 못했지?”
“예, 배고파 죽겠어요.”
세 여인이 막사로 들어가자 주변에 탄식이 쏟아졌다.
그때 혁련천후가 밖으로 나섰다.
무사들의 두 눈이 다시금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그가 군웅들이 임시로 기거하는 연무장으로 들어서자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세웠다.
특히 젊은 무사들이 혁련천후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무사들의 꿈이자 우상인 그를 직접 본다는 건 누구에게나 크나큰 행운이다.
역사상 최초로 강호를 일통하고 강호의 역사를 적어 놓은 강호사기에 유일하게 무적이란 칭호를 받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엔 열망이 어렸다.
“어디로 가시는 거지?”
“그러게.”
연무장을 가로질러 앞쪽 숲으로 걸어가는 그의 궤적을 쫓아 모두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곳엔 적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은 무사들의 임시 분향이 차려진 곳이었다.
죽은 자들의 수는 무려 이백,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오백이 넘어간다.
그중 화산의 제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소식을 접한 혁련천후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분향소를 찾은 것이다.
매화무적 진유의 얼굴이 침통하게 굳어 있었고, 화산오웅은 평소의 유쾌함 대신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크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