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7
<귀환무사 417화>
귀환무사 2부
192화
하지만 죽은 자의 자리엔 이내 다른 자들이 들어서서 진명을 몰아쳤다.
까가강!
진명이 공격을 막아 내며 뒤로 연신 물러났다.
“악!”
뾰족한 비명이 울렸다.
돌아보니 청룡단의 여무사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마승의 검이 가슴을 뚫고 등까지 삐져나와 있었는데 베어진 옷자락 사이로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주변의 마승들이 그것을 보며 킬킬거리는 모습에 진호가 대노했다.
“죽어 지옥에 갈 놈들!”
휘이익!
에움을 뚫고 그곳으로 쇄도해 들어가려던 진호가 멈칫했다.
퍽! 퍽! 퍽!
여무사의 주변을 섰던 마승들의 머리통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피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육신이 통나무처럼 바닥으로 쓰러지며 진한 핏물을 쏟아 냈다.
용케 공격을 피했던 마승은 뒤에서 날아든 진청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동시에 그 자리에 누군가가 모습을 나타냈다.
뒷모습을 보면 혁련천후를 빼다 박은 그는 바로 혁련강이었다.
진호를 비롯한 화산오웅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태사조님!”
“태사조님이시다!”
혁련강은 그들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장을 쓸어 보는 혁련강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아른거렸다.
죽은 청룡단원들의 부릅뜬 두 눈이 억눌러 놓았던 살기를 끌어내게 만들었다.
쿵!
“안녕하십니까! 하하하!”
“용케 살아 있었군.”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이젠 정겹기까지 한 광포한 음성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혁련강의 옆으로 혁련소와 북궁천소가 내려섰다.
북궁천소의 대도는 내려서기가 무섭게 새파란 강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전장을 둘러본 북궁천소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작 이따위 새끼들한테 그 고생이냐? 전쟁이 끝나면 네놈들은 다시 지옥 수련을 할 테니 각오들 단단히 하고 있어!”
“쪽수가 많아서…….”
“핑계 따윈 소용없다.”
쾅!
바닥을 차고 오른 북궁천소가 대도를 휘두르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혁련소도 마계의 암흑마기를 두르고 마승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혁련강의 입술을 뚫고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살려 둘 가치가 없는 놈들이로고.”
치리릭!
그의 전신에서 무적의 최종 병기, 천살강기가 피어올랐다.
“꿀꺽.”
화산오웅이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어쩌면 혁련천후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혁련강.
그가 어떤 무공을 펼칠지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기대는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저 가볍게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 거칠고 사납던 마승 두 명의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상당히 먼 거리에서 공격을 했음에도 죽기 전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저게…… 인간의 무공이 맞기는 한 거냐?”
“그럴 리가요. 저건 인간의 무공이 아닙니다.”
“신의 무공일까?”
“괴물의 무공이라고 하는 게…….”
퍽!
진청의 뒤통수에 진명의 주먹이 작렬했다.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추는 급격히 기울어 가는 전황에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오대세가에서 차출된 고수들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던 그는 일천에 가까운 적의 대규모 공격에 사천의 초입에서 발이 묶였다.
하나하나가 상당한 고수들로 이루어진 부대라 수를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적의 공격에도 지금껏 버텨 낼 순 있었지만 그들도 내공과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아직 죽은 자들은 없으나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중상을 입은 고수는 몇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신호탄을 있는 대로 다 쏘아 올렸지만 지원군은 지금껏 오지 않았다.
백리추의 동생이자 정도맹의 호법인 백리관이 소리쳤다.
“형님! 이대로 가면 전멸입니다. 힘을 한곳에 집중하여 에움을 뚫어 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중원에 오랑캐가 더 많다니, 참으로 통탄을 할 일입니다.”
백리관이 분을 삭이지 못하자 백리추가 그를 다독거려 주고는 명령을 내렸다.
“냉철함을 잃어선 안 된다! 사람들에게 한곳으로 모이라고 전해라! 어서!”
“예. 형님!”
달려들던 적의 머리를 베어 버린 백리관이 포효하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모두 한곳으로 모이시오!”
그가 작전을 전하자 사방을 흩어졌던 고수들이 점차 백리추가 있는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적이 눈치를 챘는지 뒤쪽에 빠져 있던 자들까지 전장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각자가 고립되는 형국으로 변해 버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서장의 고수들이 전장에 투입되자 전황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파뢰음사의 고수들입니다!”
백리관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무척 사납고 강했다.
체력이 바닥까지 다다른 고수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상대였다.
짧은 시간에 하북팽가의 고수 셋이 그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백리관이 그 광경을 보고는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관! 위험하다!”
백리추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좌충우돌하면서 전장을 휘젓던 백리관에게로 파뢰음사의 고수들이 몰려드는 것을 본 그는 주변을 둘러싼 적의 목을 잘라 내며 그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퍽!
“크악!”
그러나 워낙 많은 인의 장벽으로 인해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이미 백리관은 파뢰음사의 고수들과 검을 섞고 있었다.
백리추의 눈이 불을 뿜었다.
“비켜라! 이놈들!”
쾅! 쾅! 쾅!
혼신의 힘으로 대량 살상용 강기를 펼쳐 낸 그는 바닥을 차고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하수들 사이에 섞여 있던 적의 고수 몇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뜬 그를 향해 날아올랐다.
“백리세가주! 오늘로서 네놈도 끝이다!”
“……!”
백리추는 허공에서 호흡을 가다듬고는 곧장 백리관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뒤를 쫓는 적의 공격을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동생의 위기 때문에 냉철함이 다소 흐트러진 결과가 크나큰 위기로 이어졌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백리추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갔다.
그리고 차가운 사내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흑발을 날리며 언제나 죽음과 함께하는 사내. 하지만 자신들에겐 가족이며 세상의 누구보다 따뜻하게 대해 주는 그가 보고 싶어졌다.
그는 바로 살왕 흑야였다.
‘먼저 갑니다.’
백리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검을 휘두르면 하나는 더 죽일 수 있었지만 그는 이대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다.
그때였다.
백리추는 광포한 기운이 주변을 몰아침을 느꼈다. 그리고 귓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목소리.
“어리석은. 목숨을 포기하다니!”
“……!”
감은 눈이 떠지며 격동이 어렸다.
떠진 그의 눈동자에 자욱한 피안개가 비쳤다.
뒤이어 전장으로 떨어져 내리는 한 자루 검처럼 날카로운 사내, 살왕 흑야가 백리추의 동공을 가득 채웠다.
백리관이 외쳤다.
“매, 매형!”
“뒤쪽으로 물러 서거라.”
쐐애액!
한 줄기 파공성에 이어 적 두 명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날아갔다.
“창왕께서도 오셨습니다!”
“신마성의 고수들입니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장창을 비껴들고 전장을 바라보는 창왕 조윤과 가슴에 신마성의 표식을 새긴 일단의 무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곧장 전장으로 난입했다.
한 줄기 포효성에 적들의 참혹한 비명이 이어지고 신마성 무사들의 광포한 몸짓에 파뢰음사의 고수들이 핏물로 화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윤과 흑야가 나타나자 적의 수뇌부는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내었다.
삽시간에 수하들이 죽어 나가자 그들은 감히 싸울 생각을 못하고 꼬리를 말기에 급급했다.
“후퇴하라!”
뿌우웅!
퇴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황급히 몸을 빼던 적의 수뇌부들이 앞을 막아서는 흑야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어길 가려고.”
그 엄청난 경공에 적의 수뇌부들은 기절초풍을 했다.
흑야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죽음의 미소였다.
서걱!
파뢰음사의 수장이 칼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팔왕은 듣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존재들, 그런 팔왕이 눈앞에서 검을 들고 있었으니 평소의 능력에 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고작 그따위 능력으로 중원을 넘봤다니. 가소로운 놈들.”
까강!
또 다른 자가 용케 흑야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두 번은 없었다.
기괴막측한 궤적을 보이며 날아든 흑야의 검이 허리를 무참히 쳐 냈다.
“크아악!”
수장들이 무참히 죽어 나가자 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개자식들! 어딜 도망가느냐!”
“멈춰!”
분노한 백리관이 도주하는 적을 쫓아 움직이려고 했으나 흑야가 잡아서 말렸다.
“쫓을 가치도 없는 놈들이다.”
“그래도 살려서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또 죽여 주면 된다.”
백리관이 하는 수없이 뒤로 물렀다.
살아남은 고수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인원을 파악하던 백리추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반수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치욕적이며 아플 수밖에 없는 패배라고 할 수 있었다.
흑야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전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어라.”
“……예.”
백리추는 기어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백리관이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가왔다.
“진정 돌아오신 겁니까!”
“내가 귀신으로 보이느냐.”
“아닙니다. 너무 기뻐서 이럽니다.”
백리관도 눈물을 비쳤다.
생존한 고수들이 흑야와 조윤에게 허리를 굽혔다. 인상을 찌푸린 채 전장을 둘러본 조윤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모두들 주공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