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
<귀환무사 414화>
귀환무사 2부
189화
“일단 일정 거리 밖으로 물러난다!”
도량은 어쩔 수 없이 뒤쪽으로 빠졌다.
적은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환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무리해서 올라가선 곤란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모두는 스무 장 밖으로 물러나 그곳에 진을 쳤다.
화염소리를 들은 다른 부대들이 속속들이 들어섰다. 서른 명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이끄는 화산의 진승이 가장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인사를 하는 관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진승이 도량에게 물었다.
“고작 다섯에게 발이 묶인 거냐?”
“다섯이 아닌 것 같아. 뒤쪽에 매복한 놈들이 더 있어. 환술사들도 제법 되는 것 같고 말이지.”
진승이 적의 매복한 곳을 살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흠! 좌우에 암벽, 그리고 통하는 길은 좁고…… 몇 놈만 매복시켜도 수백은 거뜬히 막아 낼 수 있는 지형이군. 돌파하기가 쉽지 않겠어. 그렇다고 암벽을 타고 오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심은 하지만 표정과 태도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도량이 슬쩍 불만 어린 투로 물었다.
“좀 진지해질 수 없냐?”
“내가 뭐가 어때서.”
“이런…… 됐다. 망할 인간 같으니.”
“매사에 긍정적이면 좋은 법이다. 너도 좀 배워라.”
진승이 도량을 보며 환하게 웃을 때, 암벽 위에서 퍽퍽 하는 소리가 모두의 귓속을 울렸다.
마치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또 무슨 개수작을 떨려고 저러는 걸까?”
“글쎄…….”
그때였다.
암벽 위에서 시커먼 물체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헛!”
“이건…….”
순간 진승과 도량의 눈이 부릅떠졌다.
떨어진 물체들은 분명 사람의 머리였다.
사람의 머리만 떨어진 게 아니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들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사숙님들입니다!”
관호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다가오는 사람들은 화산오웅들이었다. 잔뜩 긴장했던 무사들이 환호성을 질러 그들을 환영했다.
진승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휴! 하여튼 저 양반들은 귀신처럼 사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니까.”
“그러게 말이다.”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도량이 재빨리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모두 죽이셨습니까?”
진청이 대답했다.
“다섯 놈뿐이던데?”
“그랬습니까? 저는 더 있는 줄 알았습니다.”
“지형 때문에 소수만 배치했겠지. 그건 그렇고 모두들 다 모인 거냐? 머리들만 잠깐 모이도록 해 봐. 따로 지시할 게 있으니까.”
곧 부대장들이 화산오웅에게로 다가왔다.
모두가 장래가 촉망되는 후기지수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이곳은 적의 주력이 그다지 많은 곳이 아니라 신진고수들로 이루어진 부대만 출전했다.
그들의 눈에 화산오웅은 그저 하늘로 여겨졌다. 진호가 가볍게 호흡을 고르고는 모든 무사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말했다.
“우린 곧장 태백산을 넘어 사천으로 들어간다! 맹의 주력 부대들도 벌써 곳곳으로 출전을 한 상태이니 모두들 각오를 다지도록!”
웅성웅성!
무사들이 동요를 보였다. 사천은 적진이다. 그 말은 곧 적과 전면전을 불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진호가 피식 웃고는 물었다.
“두려우냐?”
“아닙니다!”
백이 넘어가는 무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하자 산천초목이 흔들렸다.
“아예 적에게 우리가 여기 있소! 라고 외치는군. 쯧쯧!”
진청의 투덜거림에 이어 진호가 다시 말했다.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물론 승리는 우리가 할 것이다. 왜인 줄 아느냐?”
무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부대장들도 진호의 입만을 주시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진호가 무사들을 느릿하게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곧 전장으로 그분들이 오신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 거라는 말이다, 후후후.”
“그분들이라시면…….”
“위대한 신마와 팔왕. 그분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계시단 말이다.”
“와아아!”
무사들에게서 산천초목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신마성주와 팔왕이 온다니.
그렇다면 하늘조차 꺾을 수 있으리라 모두는 확신했다.
* * *
태백산의 정상은 두텁게 쌓인 눈으로 지형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회오리처럼 불어 어지간한 고수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그곳에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가 모습을 나타냈다.
아리엘이 전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에요.”
사천의 우거진 수림으로 모두는 시선을 던졌다.
광활하게 펼쳐진 수림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아미파와 당문으로 대변되는 사천의 강호는 지금 세외 세력으로 인해 치욕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놈들을 배후에서 사주한 놈을 찾아서 없애야 한다.”
“이번 기회에 아예 그곳으로 통하는 문을 없애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지. 어차피 그곳이 아니라도 왕래할 방법이 있으니까…….”
혁련소가 나섰다.
“저곳에 장인어른이 계실까요?”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말끝을 흐린 혁련천후는 연소민을 돌아봤다.
다소 상기된 표정을 한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
“무사하실 거야. 무진도 그렇고…….”
혁련소가 연소민을 달랬다.
검후가 바람에 흐트러진 혁련천후의 옷깃을 여며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당문에서 모두 집결하기로 했다면 서둘러야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지.”
“이번이 당신의 마지막 싸움이었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강호는 이제 소에게 맡겨요.”
“그럴 생각이오.”
둘이 혁련소를 돌아봤다.
머쓱한 표정이 된 혁련소는 슬그머니 시선을 외면했다. 담대소천이 피식 웃는다.
“놀러 다니고 싶어서 어떻게 할 거냐?”
“쩝! 강호는 숙부들이 좀 어떻게 해 보시죠. 전, 그런 체질이 아니라…….”
“우리도 그만 물러나야지. 대신 화산의 꼬맹이들이 널 도울 거다. 그리고 셋째 주모님의 동생들도 있으니까 심심하진 않을 거다.”
셋째 주모라는 말에 아리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샐쭉한 영호수란과는 달리 검후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영호수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배고파 죽겠네. 빨리 가요!”
모두는 사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사천의 우거진 수림은 독충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독을 주종으로 사용하는 사천당문이 번성할 수 있었던 원인도 중원에서 가장 많은 종의 독물들이 서식하는 수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리면 촌각 안에 즉사하는 독사부터 고수들의 호신강기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늪지의 독연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세외 세력들이 이곳을 주둔지로 삼은 이유도 바로 천연의 방어막을 형성해 주는 독물들 때문이다.
때문에 중원도 지금껏 세외 세력들의 주둔지를 직접 공격한 적은 없었다.
그들의 주둔지까지 들어서는 동안에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천당문이라도 건재했다면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들은 가장 먼저 세외 세력들의 표적이 되어 멸문의 위기까지 처한 상태였다.
사천의 맹주였던 사천당문과 아미파의 몰락으로 사천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변한 상태였는데, 그런 사천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곳곳에서 은밀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외 세력들의 본영을 치려는 중원의 무사들이었다.
소수로 나뉘어 적의 감시망을 피하거나 우회해서 들어온 무사들의 수는 벌써 이백에 이르렀고 여전히 오백에 가까운 고수들이 사천을 향하는 중이었다.
가장 먼저 태백산을 넘은 무사들은 화산오웅이 이끄는 부대였다.
신진고수들의 집합체인 청룡단을 이끌고 사천으로 들어선 화산오웅은 일차 집결지인 사천당문으로 향했다.
사천당문은 적의 지원 부대가 수림 속의 본영으로 향하는 방향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해 도중에 적의 지원과 보급을 끊으려는 속셈으로 집결지를 사천당문으로 정한 것이다.
“젠장! 겨울 맞아? 왜 이렇게 더워.”
진청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짜증을 부렸다.
사천은 이상 기온이라도 찾아온 듯 상당히 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옆을 걷던 진명이 핀잔을 준다.
“한서불침은 놔뒀다가 엿을 바꿔 먹으려고 그러느냐?”
“내공을 아껴야죠. 펑펑 쓰면 누가 채워 준답니까?”
“그래, 많이 아껴서 내공 부자나 되거라.”
사실 진청 정도의 고수는 조금의 내공만 사용해도 더위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추위도 물론이다.
하지만 진청은 평소에도 쓸데없이 내공을 운용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다른 고수들과는 달리 그는 여름용, 겨울용 무복을 따로 지니고 다닌다.
남들이 웃거나 말거나 오래전부터 그러고 다녔다.
묵묵히 선두에서 이동하던 진호가 둘을 나무랐다.
“적들이 도처에 깔렸으니 목소리를 낮추거라.”
“……예.”
둘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는 주변을 경계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서른 명의 청룡단원들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각 문파에서 차출된 최고의 기재들로 이루어진 무력부대가 청룡단이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라 긴장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세외의 고수들은 잔혹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더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는 은밀함을 유지한 채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갔을까?
선두에서 이동하던 진호가 손을 들어 모두를 세웠다. 진청을 비롯한 넷이 빠르게 다가왔다.
[적입니까?]
[상당수가 앞쪽에 매복하고 있다. 아이들을 조금 뒤쪽으로 물리고 대열을 횡렬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