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2
<귀환무사 412화>
귀환무사 2부
187화
“다른 분들은 오시지 않는가?”
“아닙니다. 장문 사형께서도 곧 이곳으로 오십니다. 일이 있어 저와 사제들이 먼저 사문을 나서는 바람에 저희들이 조금 일찍 도착했을 뿐입니다.”
적용백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장문인께서 직접 오신단 말인가? 몸이 불편하단 말이 있어 심히 걱정을 하고 있었네만?”
“다행히 쾌차하셨습니다. 장로님들과 곧 이곳으로 오신다고 기별을 미리 넣어 달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허허! 그거 정말 다행이군. 이거 오늘 내가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군.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서 들어가세. 아무리 전장이라지만 반가운 손님이 왔으니 술 한잔은 해야겠지.”
적용백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배분으로 따진다면 진유는 적용백을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다.
그만큼 오성은 강호 최고의 배분을 지녔다.
하지만 천성이 소탈한 적용백은 배분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더욱 따르는 것이다.
진유가 적용백을 따라 사령막으로 들어가자 화산오웅은 슬그머니 뒤로 빠지더니 진승과 도량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디냐?”
“따라오십시오.”
모두는 도량을 쫓아 은밀한 곳으로 빠져나갔다.
그런 그들의 귀에 진유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적당히 마셔라.]
* * *
신강의 겨울은 그 어느 곳보다 혹독하다.
지형적으로 산림이 적고 탁 트인 벌판이 많은 데다 강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 탓에 언제 봐도 황량함만 전해졌다.
본토를 오가는 상단들이 간혹 보일 뿐 그 외엔 세상을 덮은 눈과 간혹 보이는 짐승들이 전부인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달랐다.
두터운 털옷을 걸친 서른 명에 달하는 자들이 고란 평원에 나타난 것은 해가 중천에 걸렸을 즈음이었다.
그들이 어디서부터 걸어온 것인지는 몰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의 가운데에서 마치 솟아나듯 모습을 나타낸 그들은 한동안 평원의 가운데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눈으로 덮인 평원은 짐승의 발자국조차도 없었다. 간간이 솟아 있는 나무들이 이곳이 땅임을 알려 줄 뿐, 그저 망망대해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키자 사위는 온통 뿌연 눈발로 가려졌다.
눈보라로 인해 시계가 십 장 정도로 좁혀졌음에도 무리들의 하나가 북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쪽입니다.”
“서두르자.”
모두는 빠르게 그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간 눈 위엔 당연히 있어야 할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답설무흔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절정을 넘어섰다고 봐야 하는데, 절정을 넘은 고수들이 한꺼번에 서른 명이 나타난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문파의 전력에 버금가지 않겠는가.
휘이잉!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어 댔다.
무리들이 평원의 끝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먼 곳에 희미하게 드러나 있는 거대한 성곽이 보였다.
“드디어 돌아왔군.”
누군가의 입에서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쩔 수 없었던 귀환입니다. 놈을 처치하고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다른 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후후! 당연하지. 놈은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겠지.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 있다. 그것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얻어서 말이지. 이번만큼은 놈을 반드시 넘어 줄 것이다. 놈이 이루었던 모든 신화를 본좌의 것으로 만든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천년제국을 건설할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넌, 아이들을 보내 중원의 정세를 알아보고 오너라. 그리고 놈의 행방까지도 말이야.”
“존명!”
눈보라 속으로 몇이 사라졌다.
휘이잉!
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회오리처럼 일어나 주변을 요동쳤던 눈발이 가라앉았을 때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조금이 지났을 때였다.
“후후! 역시 이곳으로 오는군.”
무리들이 사라졌던 곳에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역시 두터운 털옷을 걸친 인물은 어깨에 기다란 검을 메고 있었는데 눈부신 금발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방에 보이는 거대한 성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주공은 대단하신 분이군. 이런 변수까지 예측하고 계셨다니…….”
놀랍게도 그는 진천이었다.
아직 이계에 남아 혁련천후의 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그가 어떻게 이곳 신강에 나타난 것일까?
그것도 정확하게 이곳이 겨울임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두터운 털옷까지 걸쳤으니…….
그렇다면 이전의 무리들도 진천과 같은 곳에서 넘어온 자들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진천이 씩 웃었다.
“덕분에 개고생을 하고 있으니 이 값은 제대로 받아 주마.”
입을 통해 나온 입김이 하얀 안개처럼 주변으로 흩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곧 떨어질 듯했다.
북방의 겨울은 무척 짧다.
그래서 빨리 추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어따, 춥다.”
진천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 * *
신교.
전귀들의 대지라는 신강의 절대패자이자 전신 마교의 고수들을 일부 흡수하여 정도맹과 양대산맥이라 불렸던 그곳은 두 번에 걸쳐 핏빛 폭풍을 만났었다.
한 번은 장로 동승을 비롯한 주축 세력들의 반란으로 인해 교주 연유극과 그의 아들 연무진인 행방불명이 되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었고, 다른 한 번은 신마성주와 팔왕이 신교를 무자비하게 쓸어버린 사건이 그것이다.
그들과의 전쟁에서 주요 고수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신교는 더 이상 과거처럼 강력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쇠퇴의 길을 걸었던 신교는 세외 세력들의 침공으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치욕의 나날을 걷고 있었다.
행방불명이 된 교주와 소교주는 여전히 그 행방이 오리무중이었고 반란을 일으켰던 자들은 언젠가부터 신교에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던 고수들이 재기를 꿈꾸고는 있었지만 한번 무너진 세력을 회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유극의 명령을 받고 중원에 들어갔었던 절대고수 철우가 신교로 돌아와 재건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신교를 아우르고 또 흩어졌던 고수들을 찾아 다시 신교로 복귀시키는 작업을 통해 서서히 기틀을 마련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교는 교주파와 장로파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철우로서도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과 같았다.
철우는 자신의 거처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있었다.
오직 홀로 제사를 모시고 있는 철우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함을 자아냈다.
그는 정성껏 절을 올리고는 술잔에 술을 채워 제상에 놓았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철우는 한동안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향이 거의 반쯤 남았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전주님!”
철우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반절을 하고는 등을 돌렸다.
“누구냐?”
“대용입니다!”
“무슨 일이냐?”
“객이 찾아들었습니다. 매우 이상한 자들입니다.”
철우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교를 찾아올 손님은 없다. 특히 요즘처럼 심란한 시기엔 더더욱 그랬다.
“뭐 하는 자들이냐?”
“그게…….”
대용이 머뭇거리자 철우는 문을 열고 대용의 앞에 섰다.
대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분위기가 수상한 자들입니다. 다짜고짜 교의 책임자를 불러 오라고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말에 철우는 말없이 대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이곳이 신교임을 알면서도 난동을 부릴 정도로 대단한 자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벌써 몇이 다쳤습니다.”
“가보지.”
철우가 걸음을 옮기자 대용은 재빨리 벽면에 걸린 철우의 대도를 쥐고는 뒤를 따랐다.
걸어가면서 철우는 생각했다.
‘대체 어떤 놈들이 감히…….’
아무리 신교가 바닥을 긴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라도 이곳에서 난동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신교엔 수백의 고수들이 있었고 대용이 직접 보고를 할 정도라면 벌써 교내로 진입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수백의 고수들로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고수라는 걸 뜻한다.
진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
철우의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 * *
진천은 신교의 첨탑 꼭대기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교의 모든 곳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곽을 넘어 본관의 앞마당에 늘어선 자들을 응시했다.
신강의 초원에서부터 뒤를 쫓아 온 자들이었다.
“한판 뒤집을 셈인가? 아니면 다시 신교를 먹으려는 거야? 뭐야?”
진천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그때, 그의 눈에 본관의 문을 열고나서는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보였다.
철우였다.
진천으로서는 처음 보는 철우인데, 그 느낌이 사뭇 대단했다.
“오호! 이곳까지 기운이 전해지다니, 놀라운걸?”
철우는 신교에서 손꼽히던 강자였다.
비록 교주 연유극의 명으로 중원의 모처에서 비밀스럽게 활동을 한 탓에 세상에 그 명성을 떨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얼래?”
진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그대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성격 한번 죽여주는군.”
진천은 주변을 살폈다.
혹시 몰라서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살펴야 했다. 그는 한 마리 새처럼 몸을 날려 가까운 전각의 지붕으로 이동했다.
까가강!
꽝!
가까이 접근하자 싸우는 자들의 호흡 소리까지 들렸다.
“교의 배신자들! 모조리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