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
<귀환무사 411화>
귀환무사 2부
186화
대부분이 아밀랍타의 말에 반대했다.
아밀랍타가 침중한 기색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대들이 신마와 팔왕을 겪어 보지 못해서 그렇소. 본좌는 오래전에 그들을 본 적이 있었소. 천하를 일통하고 세외 세력들을 쓸어 낼 때의 그들은 진정 가슴이 오그라들 정도로 사납고 광포했소. 해서, 전선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물리고 그곳에서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것이라 생각하오. 만약 그들이 건너편에 진을 치고 있는 정도맹과 세를 합친다면 과연 지금의 전력으로 승리가 가능할 거라 여기시오?”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그래서 우리가 중원으로 들어섰지 않았소. 한데 어찌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이오!”
“이보시오! 신마와 팔왕이 다시 돌아왔을 수도 있지 않겠소. 만에 하나 그들이 화산을 도와 뇌음사를 무너뜨렸다면 그땐 어찌하시려고 그러시오!”
아밀랍타가 고성을 지르자 모두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혈교의 교주가 다시 반론을 꺼냈다.
“총사령의 말씀대로 신마와 팔왕이 돌아왔다고 칩시다. 그리고 사천의 후미까지 전선을 옮긴다면 보급이나 지원 병력의 충당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사기로 결정 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팽팽한 접전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우리가 신마성이 두려워 쫓겨 가는 모습을 무사들에게 보인다면 그 후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들 하실 게요!”
“그렇습니다! 차라리 당분간 공격을 자제하고 수비에만 치중한 다음, 각 문파의 지원 병력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게 좋겠군요. 수비만 한다면 놈들이 제아무리 세를 합쳤다고는 하나 쉽게 넘어오지는 못할 겁니다!”
여전히 아밀랍타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분위기는 아밀랍타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는 침중한 기색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총사령이라고는 하나 각 문파의 수장들을 강제로 부릴 권한은 없다.
아밀랍타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안에 수긍을 표하고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알겠소. 그럼 지원 병력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곳을 수성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합시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는 반드시 알아내어야 하니 각 문파에서는 별도로 정보 파악에 신경을 기울여 주시오!”
“당장 빠른 아이들을 보내어 놈들의 정보를 캐도록 하겠소.”
“본파도 그리하겠소.”
수뇌부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심 무척이나 씁쓸했던 아밀랍타는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모든 수뇌부들이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자 아밀랍타는 참았던 분통을 터뜨렸다.
“신중하지 못한 자들 같으니! 저러다가 신마성의 그 괴물 같은 작자들을 보아야 정신을 차리겠지!”
“교주님, 본교라도 이쯤에서 철수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화산 쪽이 마음에 걸립니다.”
수하의 말에 아밀랍타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본좌 체면에 그럴 수는 없다. 일단 너도 정보를 알아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여라.”
“아이들이야 이미 보냈지 않습니까?”
“그래도 네가 직접 챙기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세외 세력의 총본사라 할 수 있는 태백산의 주둔지가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3장 태백산의 풍운
태백산의 북동쪽 능선은 무림맹과 강호의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진 천막들의 수는 수백을 넘어갔다.
주둔 병력만 일천을 넘어가는 이곳의 책임자는 오성의 일인인 천기수사 적용백이란 절대고수였다.
별호에서 느껴지듯 그는 천문지리에 달통했으며 고강한 무공만큼 학문에도 일가견이 있는 위인으로 무림의 제갈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뛰어난 책략 덕분에 강호는 사천에서 세외 연합군의 발길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무척 믿고 따랐다.
팽팽한 대치전으로 골머리를 앓던 적용백에게 낭보가 날아든 것은 해가 막 떠오른 아침 무렵이었다.
다름 아닌 뇌음사의 전멸과 관련한 소식이었다.
“하하! 화산이 진정 큰일을 해 주었구나. 설마 놈들이 그곳까지 들어갔을 줄이야.”
적용백의 노안에 모처럼 큰 웃음이 걸렸다.
지켜보던 다른 중진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화산을 대표해서 연합군에 파견되어 있던 진승은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놈, 진승아! 네놈들 사문이 내게 한숨 돌리게 해 주는구나, 허허허!”
평소에 진승을 각별히 아꼈던 적용백이 껄껄 웃으며 큰 소리로 말하자 진승의 머쓱함은 더해만 갔다.
헌앙한 기도를 지닌 청년 도인이 진승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역시 너희 화산은 대단하구나, 하하!”
“그만해라. 낯 뜨겁다.”
“나 도량의 몸을 흐르는 피의 반은 화산의 것이 아니냐? 내게도 자랑스러운 일인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느냐.”
“그만 좀 하라니까. 쪽팔리게…….”
“하하하!”
도량이 껄껄 웃자 진승은 그의 옆구리를 세게 쥐어박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도량은 무당의 기재다.
지난날 혁련천후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은 그는 화산을 무당 못지않게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는 허둥지둥 돌아가는 진승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혹시 소식 없었냐?”
“무슨 소식?”
“그분들께서 나오셨다는 소식 말이다.”
“아직 들은 게 없다.”
“혹시 그분들이 오신 것은 아닐까. 아니면 화산이 단독으로 뇌음사를 궤멸시키지는 못했을 텐데…….”
진승이 눈을 부라렸다.
“지금 화산을 우습게 보는 것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다. 혹시 아느냐, 진짜 짠 하고 돌아오셨을지도.”
“그랬다면 벌써 기별이 왔겠지.”
진승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사실 혁련천후와 팔왕의 부재는 중원 무림으로서는 핵심 전력이 빠져나간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지금껏 그들이 있었기에 세외 세력이 중원을 도모하지 못했던 것인데, 혁련천후와 팔왕이 신교와의 전쟁에서 상잔을 했을 거란 풍문만으로 중원을 침공했다.
도량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지었다.
“휴! 그분들이 나오시면 그냥 깨끗하게 정리가 될 것을…….”
진승이 매서운 눈으로 도량을 노려본다.
“그래서 불만이냐?”
“하하! 불만은…… 그냥 너무 방관하는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다.”
“이젠 스스로 강호를 지켜 낼 역량을 길러야 한다며 역설한 게 무림맹임을 잊었느냐? 그분들도 그런 부분 때문에 다시는 강호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고 말이다. 한데 이제 와서 돕지 않는다고 헛소리를 해 대다니. 빌어먹을 인간들 같으니.”
진승이 발끈하자 도량이 그를 달랬다.
“그놈의 성질 머리는 어째 진청, 그분과 똑같으냐? 그만 하고 술이나 한잔하자. 몰래 숨겨 놓은 술이 몇 병 있다.”
“정말이냐?”
진승의 눈이 대번에 번쩍 빛을 발한다.
도량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눈에 불을 켤 때는 언제고…….”
“한데 무당의 장문인을 노리는 놈이 술을 마셔도 되는 거냐?”
“몰래 마시는데 누가 알겠느냐. 그리고 무릇 인간의 삶에 통달을 해야 진정한 극에 오를 수 있는 법이니라.”
짐짓 달통한 도사처럼 말하는 도량을 진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소란스러움이 전해졌다.
도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설마 벌써 맹의 지원군이 오기라도 한 걸까?”
“그 사람들이 무슨 새냐? 벌써 오게?”
“가 보자!”
도량이 몸을 날리자 진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술은, 인마!”
“이런…… 술이야 나중에 마시면 되지. 냉큼 따라오너라!”
“망할.”
둘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 * *
상당수의 무사들이 한곳에 모여 누군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기에 분주했다.
도량과 진승은 환호성을 지르던 무사 하나에게 물었다.
“누가 온 것인가?”
“매화무적께서 오셨답니다. 화산오웅도 함께요.”
진승의 눈이 번쩍 불꽃을 피웠다.
그는 비좁은 틈으로 몸을 쑤셔 넣고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눈총을 받아 가며 앞으로 나선 진승은 매화무적 진유의 모습이 보이자 바람처럼 그곳으로 날아갔다.
“대사형!”
“오! 진승이구나. 별일 없었느냐?”
“별일이 있을 건덕지나 있습니까? 산을 가운데 두고 서로 노려보기만 하는데 말입니다. 한데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어쩐 일은, 싸우러 왔지.”
진유는 무척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때 뒤쪽에서 거친 소리가 들렸다.
“자식아! 우린 눈에 뵈지도 않냐?”
진청이었다.
진승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사형들.”
“용케 안 죽고 살아 있었네?”
“제가 어딜 봐서 죽을 놈처럼 보입니까? 백 년은 더 살다 갈 겁니다.”
어느새 인파를 뚫고 온 도량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습니까?”
“너희 둘이 죽이 척척 맞겠구나. 감춰 둔 술은 당연히 있겠지?”
“오실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하하!”
진승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도량은 환하게 웃었다. 그때 한쪽이 다시 웅성거렸다.
신기수사 적용백과 수뇌부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유가 황급히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화산의 진유가 수사님을 뵙습니다!”
“허허! 이거 화산이 오니까 전선에 활기가 솟는구먼. 잘들 오셨네. 자, 어서 들어가세.”
“진즉에 왔어야 했습니다만, 이제야 미력한 도움이나마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허! 미력하다니, 그 사납던 마승들을 화산이 쓸어버렸음은 이제 온 세상이 알고 있다네. 동도들을 대신하여 진정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바이네.”
진심이 묻어나는 적용백의 태도에 진유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아닙니다! 강호의 일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흡족한 시선으로 진유를 바라보던 적용백이 넌지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