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409화 (407/425)

# 409

<귀환무사 409화>

귀환무사 2부

184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고 했다.

혁련천후의 기도에 눌릴 뻔했던 광요가 이내 안광을 번뜩이더니 두 손에 내공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꼭 이럴 때 상대의 신분을 묻고 하더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왜 그런지 참 궁금해, 후후후.”

혁련천후는 싸늘히 웃었다.

그 웃음만으로도 광요의 두 손과 두 발을 저리게 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광요도 서장의 절대고수. 결코 기도에 눌리지 않겠다는 듯 더욱더 강렬한 안광을 번뜩였다.

“화산파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대체 누구냐! 네놈은!”

“곧 죽을 놈이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그러게요.”

검후가 혁련천후의 곁으로 내려섰다.

순간 광요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과거 검후를 본 적이 있었다. 신마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먼발치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천하제일미녀라는 그녀의 미모를 잊지 못해 숱한 나날을 밤잠까지 설쳤었다.

비록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광요는 지금도 검후의 아름다운 자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누구의 여자인지도.

덜덜덜…….

광요의 두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몸과 두 다리로 전해지며 전신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파리하게 질려 버린 입술을 뚫고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 신마…….”

번쩍!

태양에 반사된 혁련천후의 검이 광요의 눈앞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내가 없으니 중원이 쉬워 보였나 보군. 그런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러니까 사라졌을 때 왔어야지, 후후후.”

혁련천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광요는 필사의 힘으로 그와 맞섰다. 하지만 세 번째 날아든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그가 죽었을 때, 뇌음사의 다른 마승들은 모조리 핏물 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떼굴떼굴!

능선을 따라 굴러 떨어지는 광요의 머리.

그런 그의 두 눈은 여전히 불신으로 부릅떠져 있었다.

* * *

화르륵!

거대한 불꽃이 하늘에서 떨어지자 포달랍궁의 마승들은 산산이 흩어졌다.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공격에 그들은 감히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거렸다.

콰아악!

“크아악!”

“으악!”

피할 방법도 막아 낼 방법도 없었다.

너무나도 광활한 면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하늘이 불꽃 비를 내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리엘의 가공할 마법 공력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멋집니다!”

혁련소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아리엘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의 가공할 마법에 천하의 영호도성과 독고무도 경악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적진을 향해 성난 호랑이처럼 뛰어들었다.

무자비한 살육이 이어졌다.

전의를 상실한 포달랍궁의 마승들은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거기에 혁련소와 연소민마저 가세하자 전황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포달랍궁의 마승 하나가 아리엘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마녀다. 마녀의 강림이다!”

“저렇게 예쁜 마녀도 있다더냐!”

서걱!

마승의 목이 혁련소의 검에 의해 날아갔다.

꽈르릉!

쩌저적!

천둥벼락에 이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이 흘린 피가 폭우와 함께 대지를 적셨다.

그렇게 한 시진이 채 못 되어 피와 살이 튀는 혈전이 막을 내렸다.

포달랍궁이 무너졌다.

침공 이후 거침없이 중원을 질타하던 그들이 십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죽음으로 야망의 끝을 보고야 말았다.

십전무제 영호도성과 십지신검 독고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인물들, 바로 영호수란과 혁련소, 그리고 연소민과 아리엘의 마법 공격이 가장 큰 몫을 했다.

특히 아리엘의 마법 공격은 아군조차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십지문과 영호세가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포달랍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십지문은 승전의 기쁨에 한껏 취했다.

왁자지껄!

많은 사람들이 들어찬 객청이 활력에 넘쳤다.

“허허! 이제 놈들 따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먼. 그동안 신검께서 고생이 참 많으셨네.”

“하하하! 무제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젠 천후가 돌아왔으니 그깟 변방의 오랑캐 따윈 일거에 쓸어버릴 일만 남았습니다. 이 소식을 정도맹의 식구들에게 전해야지 않겠습니까?”

“아니네. 아직은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게야. 그나저나 축하하네. 성주와 검후가 돌아왔으니 십지문의 경사가 아니겠는가? 허허허!”

“무제께서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천하제일 사위가 돌아왔지 않습니까, 하하하!”

“허허허.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구먼.”

영호도성과 독고무가 덕담을 주고받으며 껄껄 웃었다.

포달랍궁을 물리친 기쁨보다는 꿈에서도 기다렸던 존재들이 돌아왔다는 것이 너무 기뻤던 그들이다. 혁련천후의 귀환이 알려지면 전쟁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중원천하가 환호성을 지르게 될 것이다.

영호수란이 잔을 들고 일어섰다.

“잠깐만요.”

좌중이 조용하게 가라앉으며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술잔을 손에 든 그녀는 살포시 웃음을 보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그녀는 아리엘을 응시했다.

조금은 수줍은 표정을 지은 아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신마성에서 함께 지낼 사람이랍니다. 인사드려.”

“아리엘이라고 합니다.”

아리엘이 작은 목소리로 모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모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리엘을 쳐다보았다. 과연 저런 여 고수의 진정한 신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영호수란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궁금하죠?”

“허허! 저렇듯 대단한 처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영호도성조차도 호기심을 보인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갑자기 영호수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아리엘의 어깨를 툭 쳤다.

“직접 말해 줘.”

“……제가요?”

“잘하잖아?”

“그래도…….”

아리엘이 그녀답지 않게 부끄러움을 나타낸다. 그때 혁련소가 불쑥 말했다.

“제게 셋째 어머니가 되실 분이십니다.”

“뭣이!”

“셋째 어머니라고?”

순간 좌중이 크게 술렁거렸다.

영호도성과 독고무조차도 두 눈을 부릅떴다. 셋째 어머니라니…….

소란스럽고 흥겹던 객청에 적막감이 흘렀다.

적막감은 십지신검 독고무에 의해 깨어졌다. 영호수란을 응시하는 눈빛이 조금은 어둡다.

“설마…… 천후가 바람을 피운 거요?”

“피워도 제대로 피운 거죠.”

아리엘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영호도성과 독고무가 혁련천후와 어떤 사이인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해서 둘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고약한지고.”

“그러게 말입니다.”

영호도성과 독고무가 인상을 찡그리자 영호수란이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와 제가 괜찮은데 두 분이 왜 그러세요. 사람 무안하게.”

“흐흠!”

둘은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리엘이 안절부절못하자 영호수란이 그녀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괜찮아. 괜히 저러시는 거야.”

혁련소가 거들고 나섰다.

“자고로 영웅은 삼처사첩을 마다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니 좋은 날 술이나 더 드시지요!”

어색하게 가라앉던 분위기가 다시 활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영호도성과 독고무도 어쩔 수없이 술잔을 들어야 했다.

그때 십지문의 무사 하나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손에는 전서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문주님. 화산에서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화산에서 말이냐.”

“여기…….”

전서를 건네받은 독고무의 표정이 대번에 환하게 밝아졌다.

영호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하하하. 화산이 뇌음사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오! 그게 사실인가!”

장내가 다시 한 번 크게 술렁거렸다.

영호수란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사람이 거기로 갔는데 당연한 결과죠. 뇌음사로서는 그야말로 재수가 없었던 거라고 봐야겠죠.”

“중원 천하가 이 소식을 들으면 크게 기뻐할 걸세, 허허허.”

아리엘로 인해 살짝 애매했던 분위기가 화산에서 날아든 낭보로 인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다.

* * *

정도맹주 남궁기는 모처럼 들려온 낭보에 연방 큰 소리로 웃었다.

“껄껄껄! 역시 화산이구먼. 천하의 뇌음사를 단독으로 무너뜨렸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또 있을까, 껄껄껄!”

상당한 골칫거리였던 뇌음사가 화산에 의해 전멸을 당했다는 전서가 막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동안 뇌음사의 마승들이 펼친 사악한 마공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죽어 갔던가.

정도맹도 상당한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위력적이었던 뇌음사가 화산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니.

그야말로 십 년 묵은 체증이 한 방에 싹 가시는 듯했다.

“맹주님! 당장 화산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선에서 적과 대치 중인 무사들에게도 소식을 전하여 사기를 진작시켜야 합니다. 이건 정말 모처럼 있는 낭보가 아닙니까?”

“껄껄! 당연하네. 마음 같으면 이 늙은이가 직접 화산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자네가 일을 서둘러 주게나. 이 몸은 화산의 장문께 감사의 서신이라도 적어야겠네.”

“알겠습니다.”

수석호법인 관승이라는 인물이 막 몸을 세워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다른 전령이 바삐 들어섰다.

관승이 물었다.

“어디서 온 전서이더냐?”

“십지문에서 보냈습니다.”

“오! 신검이 보냈단 말이냐? 어서 이리 줘 보아라.”

관승이 서찰을 남궁기에게 건넸다.

남궁기는 즉시 서찰을 펼쳤다.

남궁기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자 관승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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