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8
<귀환무사 408화>
귀환무사 2부
183화
* * *
해후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척에 뇌음사의 병력이 진을 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혁련천후는 곧장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수뇌부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화산파에서는 몸이 불편한 태허를 대신하여 진유와 화산오웅만이 참석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간 끝에 담대소천이 말하고 나섰다.
“초장부터 너무 강하게 나가면 놈들이 꼬리를 빼고 물러날 수가 있으니 스스로 공격을 해 오게끔 자극을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은 방도가 있느냐.”
“아불타라는 놈을 사로잡아 두었습니다. 고문을 해서 알아보니 놈이 뇌음사의 주지인 광요의 제자였습니다. 놈을 이용하면 광요를 자극할 수 있을 듯합니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때에 담대소천의 말을 듣는 편이다.
한때 백만 대군을 거느렸던 대장군 출신이기에 전시에 작전을 짜는 것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왕전이 물었다.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 주면 안 되겠냐.”
“그러게. 꼭 그렇게 애매한 말로 사람 헷갈리게 하면 더 있어 보이냐?”
“누가 군인 출신 아니랄까 봐.”
“하여간에 저놈은 밥맛이라니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진유와 화산오웅이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다 붉어졌다.
담대소천이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광요의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하다고 하니 놈을 죽여서 보낸다면 틀림없이 분노하여 먼저 공격을 가해 올 것입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작전이네.”
“그러게.”
“이제야 사람 냄새가 좀 나는군.”
연이어 터지는 목소리들. 화산오웅이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왕전이 눈을 부라린다.
“전쟁이 목전인데 웃어?”
뚝!
다섯이 이내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붉어진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
혁련천후가 물었다.
“뇌음사의 전력은 어느 정도나 되느냐.”
“숫자보다는 놈들이 하나같이 마공을 익히고 있어서 꽤 까다로운 전쟁이 될 듯합니다. 자칫 제자들의 피해가 클 수도 있으니 주공과 저희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연하지.”
“두말하면 헛소리지.”
“저게 또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네.”
북궁천소가 벌떡 일어섰다.
“제가 놈의 목을 따 가지고 마승인지 광승인지 하는 땡중에게 갖다 주고 오겠습니다.”
“너는 안 된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저었다.
북궁천소가 아니, 왜요?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담대소천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화산이 죽인 것처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죽이고 화산이 죽였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
“됐다.”
담대소천이 머리를 절레절레 젓자 북궁천소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때 혁련천후가 정색을 하고 진유를 불렀다.
“진유.”
“예. 사숙조.”
“놈의 시신에 매화 문양을 남기려면 네가 수고를 해 줘야겠다.”
“그리하겠습니다.”
매화 문양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북궁천소가 머리를 긁적이며 제자리에 앉았다.
진유가 밖으로 나가자 화산오웅이 그 뒤를 따랐다.
아불타는 진유가 죽인다고 해도 다른 마승들은 자신들이 손으로 목을 쳐 버릴 생각이었다.
혁련천후가 좌중을 쓸어 보며 말을 이었다.
“중원 무림의 상황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세외 무림은 수십 년 동안 중원 침공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적으로 힘을 키워 왔으니 그 전력이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 그들의 전력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곧 아이들을 보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는 조금을 더 이어졌다가 끝났다.
말미에 혁련천후가 눈빛을 싸늘히 발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장은 저 아래 진을 치고 있다는 뇌음사부터 확실하게 끝장을 봐 줘야겠지.”
그 말로 뇌음사의 운명은 결정지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죽은 자들은 말이 없는 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물며 강호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뇌음사의 절대자 광요는 비대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발치에 놓인 차디찬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제자이자 차기 뇌음사의 주지가 될 것으로 믿었던 아불타가 하룻밤 사이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부르르…….
그가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불타의 육신에 꽂혀 있는 한 줄기 매화송이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광요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화산…….”
천하에 매화 문양은 오직 화산의 것.
광요의 두 눈에 살광이 번져 갔다.
깨문 입술은 붉은 피를 흘려 냈고 거칠게 말아 쥔 주먹은 힘줄이 돋아나 금방이라도 터질 듯 보였다.
마두라도 제자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에도 못지않았던 광요는 느릿하게 허리를 숙여 아불타의 주검을 안아 들었다.
“크흐흑! 소활불!”
“아미타불!”
뇌음사의 모든 이들이 침통에 빠졌다.
광요가 아불타의 시신을 안고 돌아섰다. 그의 입을 통해 원독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아이를 화산의 태청전에 묻을 것이다. 그리고 화산 놈들의 살을 제물로 바칠 것이며 놈들의 핏물로 목을 축일 것이니, 모두 칼을 들어라! 지금 화산으로 올라간다!”
우와!
뇌음사의 고수들이 검을 뽑아 하늘로 치켜세우며 괴성을 질렀다.
주변이 광포한 기운으로 요동을 쳤다.
그런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 * *
“저놈이 세외의 사대천왕이라는 뇌음사의 대가립니다.”
왕전이 광요를 가리키며 안광을 번뜩였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돌아봤다.
이미 단풍이 지고 곳곳에 눈이 쌓여 완연한 겨울임을 느끼게 해 주는 화산의 산세는 언제 보아도 정겨운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지금 그들은 뇌음사의 병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예상대로 광요는 당장 산문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담대소천의 전략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잠시 주변 경관을 둘러본 혁련천후의 입이 열렸다.
“산문이 놈들의 피로 더럽혀져서는 곤란하겠지. 전장은 이곳으로 정하겠다.”
“알겠습니다. 곧장 쓸어버리겠습니다.”
담대소천이 허리를 숙이고는 등을 돌렸다.
왕전과 북궁천소, 조윤이 담대소천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매화무적과 화산오웅은 혁련천후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섰다.
“너희들도 도와라.”
“넵!”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한 그들은 재빨리 가짜 사부들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혁련천후의 뒤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하는 검후가 조용히 나타났다.
그녀는 혁련천후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혁련천후는 손안 가득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담담히 웃었다.
검후가 물었다.
“보고만 있을 건가요?”
“당신하고 있는 게 더 좋아서…….”
“변했어요, 당신…….”
혁련천후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의아한 빛을 품었다.
검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내가 변했다니?”
“그래요. 조금 뻔뻔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옛날의 당신과는 조금 달라졌어요.”
“난 천년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호호!”
검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 웃음은 또 무슨 의미지?”
“그런 말을 다 하다니. 확실히 변했어요.”
그녀는 혁련천후의 팔을 끌어안았다.
“가요. 저도 도울래요.”
“저들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그럼 당신은 구경만 하세요. 칠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꽁꽁 얼어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려서요.”
검후가 움직이자 혁련천후도 움직였다.
* * *
“그러니까. 우리가 사라지니 욕심이 나더라 이거지.”
콰지직!
“으아악!”
“크아악!”
뇌음사의 마승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그들은 전장으로 뛰어든 무지막지한 존재들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갔다.
날아드는 칼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째 용케 막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무기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목이 날아가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광요의 두 눈이 더없이 커졌다.
“대체 저놈들이 누구기에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속히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화산이 지원군을 부른 것 같습니다. 자리를 피하시어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수하들의 재촉에도 광요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비록 적진에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고수들이 있다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냉큼 적들을 공격하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콰아아!
광요의 손에서 일어난 거대한 광풍이 화산오웅을 향해 광포하게 밀려갔다.
우지끈!
콰지직!
주변의 수풀과 나무가 통째로 뽑혀 날아가는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하고도 남을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 정도에 놀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번쩍!
쐐액!
광요가 일으킨 장풍 속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뜩였다. 뒤이어 장풍을 반으로 쪼개며 날아드는 반달 모양의 강기가 있었다.
“헙!”
놀란 광요가 두 눈을 부릅뜨며 허리를 젖혔다.
간발의 차이로 강기는 광요의 목에 걸려 있던 염주를 끊고 지나갔다.
촤르륵!
염주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이 흩어졌다.
“네가 뇌음사의 주지인가?”
광요는 한 줄기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앞에 내려서는 존재를 응시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놀란 나머지 기억을 더듬을 겨를이 없었다.
혁련천후는 광요를 싸늘히 응시하며 다시 말했다.
“중원을 넘봤기에 너는 죽어야 한다. 하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감히 화산을 넘봤다는 것이지.”
“정체를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