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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406화 (404/425)

# 406

<귀환무사 406화>

귀환무사 2부

181화

그야말로 야율모영으로서는 저승사자와 대면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스스슥!

그때, 영호세가의 무사들과 십지문의 무사들이 포달랍궁의 마승들을 사방으로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하나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을 전하는 것과 같았다.

“오냐! 네놈들을 죽이고 본 궁주도 죽겠다. 모두 생사결을 준비하라!”

야율모영의 흔들리던 눈빛이 단호한 결의와 함께 본연의 악독함을 비치자 영호도성은 독고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귀어진을 생각하는 모양이네. 조심하게.]

[어르신도 조심하십시오.]

[봐서 놈을 기습하게나. 광신도들은 원래 머리만 잘라 내면 나머지는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네.]

[알겠습니다.]

야율모영의 손이 갑작스럽게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영호도성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놈! 아주 사악한 것을 익혔구나. 살려 줘선 도저히 안 될 놈이 예, 또 있었군.”

“모두들 물러서라!”

독고무도 야율모영의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무사들을 멀찌감치 뒤로 물렸다.

포달랍궁의 마승들도 일제히 사악한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독고무와 대결을 펼칠 땐 나타나지 않았던 변화였다.

[조심하게! 놈들이 죽음을 각오한 모양일세. 저건 일시적으로 내공을 증폭시키는 마공일세.]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것을 펼치면 후유증으로 이지를 상실하지 않습니까?]

[그러네. 그만큼 당장의 위기를 뚫어 내자는 심산이겠지. 꽤 성가시게 생겼네.]

둘은 전음을 주고받으며 간격을 벌렸다.

그들의 말처럼 포달랍궁의 마승들이 보이는 변화는 일시적으로 내공을 두 배가량 증폭시켜 주는 마공으로서 펼치면 이지를 상실하는 후유증이 있다.

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면 마인들도 어지간해선 펼치지 않는 극악한 마공이다.

그런데 야율모영까지 그런 변화를 보인다면 그들이 당장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는 걸 뜻한다.

서로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결정인 셈이었다.

야율모영의 입을 통해 저주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지를 상실해 악마가 되더라고 네놈들만큼은 죽여 주마. 그동안 오성이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십전무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당연히 죽어야지. 다음 생엔 부디 자비로운 승려로 환생하여 지은 죄를 빌며 살아가야 할 게다.”

“배가공의 위력을 안다면 그따위 허세는 부릴 수 없을 텐데?”

“말이 참 많은 놈이구나! 그 입으로 염불을 외웠으면 참으로 좋았으련만…….”

우우웅…….

영호도성의 검이 강기를 둘렀다.

십전무제는 모든 무공에 달통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다. 그중에서도 검으로 펼치는 무학이 가장 출중한 그였다.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영롱한 음성이 흘러나오더니 장내를 울렸다.

“할아버지!”

하늘에서 들려온 듯 목소리는 방향을 찾기 힘들 정도로 울렸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허공을 살필 때, 영호도성의 육신은 폭풍을 맞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파파파팍!

포달랍궁의 마승들이 포진한 뒤쪽에서 하얀빛이 연속적으로 작은 폭발을 일으키더니 순간적으로 모든 이들의 시야를 앗아 갈 정도의 빛이 피어났다.

두 눈이 서서히 시뻘겋게 변해 가던 포달랍궁의 마승들이 빛을 보더니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아! 이 공기! 바로 이 공기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청아해지는 목소리는 하얀 궁장의를 걸친 여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빛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여인 둘과 헌앙한 청년 한 명이 나타나 있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격동으로 물들어 갔다.

여인이 환하게 웃었다.

“저예요. 제가 돌아왔어요, 할아버지!”

“수, 수란아!”

쨍그랑!

영호도성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검을 땅에 떨어뜨렸다.

“소손도 돌아왔습니다! 하하!”

청년은 혁련소였다.

독고무가 벼락같이 그에게 다가가더니 부릅뜬 두 눈으로 그의 얼굴을 보석을 보듯 살폈다.

“진정, 소구나. 으허허! 돌아왔구나! 이놈!”

“외숙부가 보고 싶어서 곧장 이리로 날아왔습니다, 하하하!”

와락!

독고무가 거칠게 혁련소를 끌어안았다.

어찌나 세게 껴안았는지 얼굴이 다 시뻘게진 혁련소가 포달랍궁의 마승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이 보고 있습니다, 켁!”

그래도 독고무의 견고한 팔은 풀리지 않았다.

영호도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한데 그 친구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이냐?”

“먼저 가 볼 곳이 있다며 그리로 가셨어요.”

독고무가 격동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진정 돌아왔단 말이냐!”

“그럼요. 바람까지 피웠는걸요.”

제2장 돌아온 중원

매화무적 진유는 제를 올리는 태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앙상한 어깨와 마를 대로 말라 버린 발목.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파 시선을 돌려야 할 지경이었다.

진유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간신히 참아 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숙조께서 오셔야만 장문 사형을 살릴 수 있다.’

태허의 병은 마음의 병이었다.

혁련천후가 떠나고, 또 그를 찾겠다며 떠났던 화산오웅이 돌아왔을 때부터 쇠진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함께 돌아올 거라고 믿었건만 화산오웅만이 쓸쓸하게 돌아오자 태허의 상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태허는 지금도 화산오웅을 보지 않는다.

혁련천후를 찾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섭섭함이 도를 넘어 분노에 이른 탓이다.

딸그락!

태허가 향을 잡으려다 그만 제기를 건드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제기가 술을 쏟아 내자 태허는 황급히 도포 자락으로 그것을 훔쳤다.

진유가 재빨리 태허를 부축했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허어! 선조님들께 이런 불충을 저지르다니, 이런 불충이…….”

태허는 일어서지 못하고 탄식을 쏟아 냈다.

진유의 눈가에 기어코 이슬이 맺혔다. 지금 태허가 누구에게 제를 올리는 것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비록 영정조차 걸려 있지 않았지만 그의 속마음엔 단 한 사람을 위한 기원만이 담겨져 있을 뿐임을 화산의 모든 이들은 알고 있다.

“허어…….”

태허의 탄식이 그치지를 않았다.

진유는 태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시커먼 그림자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태양이 만들어 낸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둘의 어깨를 덮었다.

사르륵…….

문틈 사이로 태허가 쓸던 나뭇잎이 바람에 쓸려 날아들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둘의 흔들리는 어깨는 멈추지 않았다. 둘을 덮은 그림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태허와 진유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한 잔을 더 올려야 하느니.”

“이제 그만하시지요.”

“허허허, 망자에게 올리는 술이 아니니라. 속히 돌아오라 간곡히 청하는 마음에서 올리는 술이니 어찌 그만할 수 있겠느냐.”

쪼르륵!

태허는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웠다.

지극정성으로 조심스럽게 잔을 채워서는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

그제야 둘은 그림자가 늘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진유의 육신이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역광을 받은 사내의 얼굴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긴 머리카락과 바닥까지 늘어진 장검만이 진유의 눈을 채웠다.

“나를 위한 잔인가.”

무심한 목소리에 태허자의 전신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크게 흔들렸다.

진유의 두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림자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그 잔은 내가 받지.”

부르르…….

진유의 강건한 육신은 이미 바닥을 향해 무너지고 있었다.

“불충한 제자, 진유가 사숙조님을 뵙습니다!”

“사숙!”

태허자의 노쇠한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문이 닫히고 역광이 사라지자 혁련천후의 차가운 얼굴이 드러났다.

미소라고는 모른다는 그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태허를 향해 다가섰다.

“죽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지내다니. 나더러 죽으란 소리요.”

“어허허, 사숙!”

태허자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진유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는 엉엉 울었다.

* * *

스스슥!

아불타는 빠르게 화산의 뒤쪽 봉우리로 올라갔다.

그곳에 오르면 화산의 연무장까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비범한 신법으로 정상에 오른 아불타는 눈에 내공을 담고서 화산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화산의 연무장엔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아불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주변을 다시 한 번 날카롭게 살펴보고는 말했다.

“산문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려 했다면 필시 이곳에 득실거려야 정상인데, 왜 한 놈도 보이지 않는 거지? 혹시 중도에 매복을 하고 있단 말인가?”

중얼거림을 들은 수하 하나가 끼어든다.

“소활불님! 아마 놈들이 매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텅텅 비어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하지만 기왕에 올라왔으니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보도록 하자.”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매화무적이나 화산오웅을 한꺼번에만 만나지 않는다면 걱정할 것 없다. 어서 따라오너라.”

탁!

절벽을 차고 뛰어내린 그들은 날쌘 제비처럼 빠르게 화산의 본문으로 이동했다.

조금을 이동하자 건물에 새겨진 조각이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선 여전히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산문을 지키는 최소한의 인력조차 보이지 않자 아불타는 점점 의구심이 커져만 갔다.

‘더 가까이 가 볼까?’

더불어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더 이상의 접근은 무척 위험하다.

하지만 아불타는 천성이 자만으로 가득한 자였기에 망설임 없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게 아불타의 실수였다.

“너 뭐냐?”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아불타는 기겁을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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